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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그러나 따로' 나무가지마다 푸르던 잎들이 가을의 초입인데도 벌써 낙엽되어 자존심 다 홀연히 떨치고 나락의 길에서 쓸쓸히 나 뒹둘고 있다. 가을이 어느 덧 문턱에 도달했는지 새벽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돈다.
홀어머님 방에도 언제부턴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마을 우산각(노인당역할)에서 노시다가 밤늦은 밤에 오시면 오자마자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새벽녘 날이 밝아 어머님이 들로 나갈 채비가 끝나야 선풍기의 동작은 멈춘다. 어머님의 한 뱃속에서 나온 우리 형제들(8남매)도 같이 함께 자라다가 언젠가 뒤돌아 보니 다들 뿔뿔이 흩어져 있더라. 일찌기 뭣이 바빴길래 아주 멀리 가버린 유일한 남자 형제도 있다.
냉정한게 정치라더만 정치역시 같은 정치이념과 정치사상으로 뭉쳐 출발하였으나 결국은 따로 국밥이 되어 홀로 남거나 아니면 다른 정당으로 이적을 하는 정치 소인배들도 참 많더이다.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변절하여 퇴락의 길로 접어들지 모르는 게 정치 현실 아닌가! 이렇듯 함께 하다가도 함께 잘 어울리는 척(和而) 하면서도 불화(不同)하는 경우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동류집단에서 한솥밥을 먹지만(同而) 함부로 섞이지 않는다는(군자) 경우(不和)를 흔히 보아 왔다. 작금의 사회 흐름을 보면 그냥 막연한 이기주의가 아니라 지극히 아니 아주 극도로 자기만의 잣대를 적용하여 살아가는 '극한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사회 통합은 물론 화합의 무드에 찬물을 끼얹는 정서가 무르익고 있지 아니한 지 참 불안하고 왠지 화가 치밀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지역이기주의니 부서이기주의 하는 낱말들이 생겨나고 있다. 전체적인 실익과 국익등을 고려한 전반적인 고려의 측면이 아닌 부분적이고 편파적이며 일시적인 효과를 노린 그런 정서가 팽배화 혹은 우리 주변 도처에 만연화 되고 있는 게 현실로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인 요소들이 많은 실정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천지만물간의 법칙이라 하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에 나혼자 유아독존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내슬픔을, 고통을, 아픔을 남이 대신 함께해준다는 말을 간혹 사용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다만 그 슬픔과 고통의 순간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마음적으로나마 나누고 위로해준다는 의미일 뿐이다. 결국은 스스로 홀로서기에 길들여져 있어야 한다. 남이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할 줄 아는 사회가 진정으로 성숙된 사회의 기본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현상들을 보노라면 아직 우리 사회 일각엔 많은 것들이 불안전하고 불균형을 나타내어 뭔가 위태위태한 모습들이 많이 발견되곤 한다. 악하고 추한 것을 보면 외면하고 피해버리고 자기와는 무관하다는 이기심에 사로잡힌 몰인배들이 주변에 한 둘은 있을 것이다.
토,일요일은 난 거의 집에서 소일한다. 농사짓느라 바쁜게 아니라 흙과 더불어 나의 작고 소박한 소취미인 나무를 키우며 그냥 그저 살아가고 있다. 쥐뿔도 모르는 사람들은 뭣을 좀 아는 척 하느라 '요즘 농사 일 바쁘죠' 아니면 농장 관리하느라 힘들죠'라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지만, 몰라도 정말 모르는 말씀, 내가 철쭉 농장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좀 고상한 말이되지만 소박하고 순박한 거짓을 용서하지 않는 땅과 나무들의 부름에 즉각 따르고 달려갈 뿐이다.
그들(땅과 나무 그리고 온갖 푸른 생명들)은 나와 함께 있길 원한다. 남들은 다 외면하고 무관심 해도 나는 결코 그들을 향한 발길은 숨이 멎을 때 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함께하면 참 즐거운 세상이 될 것이요, 따로 행동하면 외롭고 쓸쓸할 것이다. 함께하면 행복이 가마니로 쏟아 질것이요, 따로하면 불행의 씨앗이 싹틀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3개월앞두고 여야의 대권후보를 뽑기 위한 지역별 선거가 한창이다. 현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미 여성후보인 박근혜씨를 선출한 상태다 우리 근대정치사상 첨으로 여성분이 대권 후보로 선출되어 마치 왕이 되는 양 열기가 대단하다 한다. 신라 27대 왕이 선덕왕(선덕여왕)이다. 우리 역사의 최초 여왕인 셈이다. 그로부터 1,700년이 훌쩍 지난 서기 2012년도에 여성분이 현 집권여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어 여기저기서 충성하겠다는 움직임이 경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목숨 받쳐 받들어 모시겠다는 의원도 눈에 띤다. 지금 상황을 보면 마치 차기 대통령을 예약이나 해놓은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자기네들은 힘을 합치면 즉 함께라면 못 이룰게 뭐 있겠는냐는 식으로 의기양양해 있다. 사회일각에서도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건 아닌지 벌써부터 상기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야당은 따로국밥처럼 비춰지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 수권정당으로의 가능성은 물론 대표할만한 후보를 선택하여 팽팽한 대결을 해야하는 판국에 갈팡질팡 지금보니 의기소침할 뿐만 아니라 역대 야당사상 최대의 위기와 분열을 본듯하여 한숨만 나올 뿐이다. 빨리 후보를 내어 정책대결을 위한 대안을 만들고 준비를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부족할 터인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애처롭기도 하다. '함께 그러나 따로' 역사의 변화 변혁은 따로보다는 함께 했을 때가 더 빨리 찾아온다. 따로따로의 결과는 분열만 초래할 뿐이다.
굳이 정치이야기뿐만 아니고 어느 집단 어느 사회의 일각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우리 순천 동산초등학교42회 동창회 모임도 이런 현실에 봉착해 있다. 처음처럼 의욕이 넘치고 서로 먼저 나오려고 했던 적극성과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애교심 애향심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소중하고 간절한 만남의 애절한 마음들은 지금 어디 있단 말인가! 마치 서녘 하늘에 지는 노을처럼 온통 희미하고 흐릿한 형체만 보일뿐이다. 완전 지쳐 버린 모양이다. 나는 그 원인을 이런데서 찾고 싶다. 물론 동창회 운영관련 아니면 공사간에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특히 개인적인 이해타산에 의한 작용의 결과가 아닌가 확신한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넘의 애경사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인사를 못해 미안해서 못나오고, 어떤이는 자기집 애경사에 오지 않아서 그넘이 미우니 또 안나오더란 말이다. 초기에 열심히 얼굴을 비춰주고 적극적이던 동창들이 항간에 떠돈 소문이 나돈후 나오지 않음을 수업이 보아온 터다. 내말의 의미가 심장한 말이니 깊이 들어야 한다. 1990년 초중반만 해도 너나할 것 없이 순수한 맘으로 아주 신선하게 자주 만나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나같은 경우는 1970년 초등 졸업이후 처음 본 동창에게도 반가워서 꽃화분을 보내는 정도였다. 내가 무엇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그 이름하나 때문에 꽃을 보낸 것이다. 그야말로 순수 그 자체였다.
역지사지를 떠올리면 그들을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지만, 대의의 측면에서 바라보자는 나의 희망에서 하는 말이다. 비록 함께 한척은 했지만 결국 그 본색 본마음은 늘 다른 데 있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이들수록 더 만나고 화기애애하게 산다는 데 왜 그런걸까! 마음의 여유를 못 찾은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늘 자기 잣대로 세상을 저울질하고 세상의 무게를, 이웃의 무게를 ,동료의 무게를, 친구의 무게 가치를 재오면서 궁극적으로는 따로 놀겠다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에서 나온 부끄러운 小我적인 사고의 결과 아니고 무엇인가! 솔직히 우리 동창회 흐름이나 운영되고 있는 꼴을 보니 중심 주체도 없고 구심점도 없고 어찌 정치판과도 같은 지 모르겠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몰지각한 사람은 안되야 하는 데 하는 아쉬움 밀려든다. 이런 기본적인 생각이 바탕되고 보니 따로국밥을 모두 먹으려 하지 않는가! 따로국밥은 국과 밥이 따로 나온다. 국과 밥이 함께 만나야 그 국밥의 진수를 맛볼 수있는 거 아닐까? 밥만 가지고 국만 가지고 국밥을 먹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늘 강조해왔다. 비닐하우스 물방울이 그 조그만 입자들이 모여 비로소 물방울을 만들어 굴러간다고 말이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들의 작은 목소리들도 소홀히 하지 말고 귀담아 듣는다면 커다란 힘으로 다가온다는 말과 같다. 우리 42회 모임이 갑자기 엉거주춤하게 된 연유를 아무도 찾지 않으려한다.
낮은 소리도 높게 듣고 작은 소리도 크게 듣는 제대로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데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거 같아 더욱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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