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ISSN 2093-9140 2011.08.18 | |
|
|
|
|
|
|
오늘의 서울연극 |
|
Today's Theater In Seoul 제11호 2011. 8.18 | |
| |
|
|
|
|
|
본 잡지에 실린 내용은 서울연극협회나 연극기록실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
발행처: 서울연극협회, 연극기록실 발행인: 박장렬 편집인: 오세곤 편집위원: 김의경, 김태수, 백승무, 양기찬, 이연심, 장용철, 조만수, 최은옥 기자: 이정현 | |
| |
|
|
|
|
|
목차 |
|
- 편집인의 글 | 오세곤
1부 Review
- 씬짜오 몽실 | 송치혁 - 열엿새 달 | 이주영 - 예기치 않은 | 예서희 - 인디아 블로그 | 한상윤 - 키사라기 미키짱 | 김태희 - 키사라기 미키짱 | 박연숙 - 황구도| 김민승 - PADAF 서울 땐스홀을 許하라 | 윤민지 - PADAF 서울 땐스홀을 許하라 | 이주영 - PADAF 하세요 | 윤민지 - PADAF 하세요 | 이주영 2부 재수록
- <벌레>, <파리> | 박정기 - 존 레논을 위하여 | 박정기 - <Saltbush>, <100kilos and his elephants> | 박정기
정책기록실
- 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 토론(11)
편집 후기 | |
| |
|
|
|
|
|
최청 선생의 팬터마임 <벌레> 공연과 장시(長詩) <파리> 낭독공연, 그리고 작품집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출판기념회 |
|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박정기(朴精機)
충무로 무비 하우스에서 최청 선생의 작품집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출판기념회와 장시(長詩) <파리>의 낭독공연, 그리고 팬터마임 <벌레>의 공연이 있었다. 팬터마임은 무언극, 묵극(默劇)이라고 한다. 어의(語意)는 그리스어 판토(panto:모든 것)와, 미모스(mimos:흉내 내는 사람)에서 유래하며 인도 ·이집트 ·그리스에서 시작했으나,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명배우 테레스가 손가락과 몸짓으로 표현법을 구체화한 것이 그 시초다. 이것이 명확하게 연극적 형태를 갖추고 성행하게 된 것은 로마 제정시대부터이다. 당시 미메(mime) ·미무스(mimus)라는 흉내 내기 본위의 연극이 있었으나, 그와 비슷한 것으로 무언의 흉내 내기 극에 붙여진 이름이 팬터마임이었다. 여러 종류의 악기와 코러스를 반주로 하여 귀족층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비속하고 호색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로마의 팬터마임은 르네상스이후 유럽의 무대예술 속에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특히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즉흥희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에서는 피에로가 주인공이 되어 ‘피에로 무언극’으로서 유럽 전체에 널리 퍼졌다. 현재 써커스에 출연하는 삐에로는 16세기의 삐에로가 현재까지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왕립극장의 연극 공연 외에는 대사를 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자연히 팬터마임이 융성하였다. 20세기 팬터마임 연기자로 찰리 채플린과 장 루이 바로, 마르셀 마르소 등이 유명하다. 특히 장 루이 바로는 재래의 팬터마임을 ‘벙어리의 연기’, 새로운 것을 ‘침묵의 연기’라고 하여 동작이 단순한 언어의 대변자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팬터마임 예술의 존재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마르셀 마르소는 1947년 팬터마임전문 극단을 결성, 세계 각지를 순회하며 1994년 두 번째 내한(來韓)하여 명쾌한 그의 연기 ‘양식(樣式)의 마임’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무대 예술의 한 장르로 선보인 것은 1968년 독일 롤프 샤레의 내한 공연부터였다. 무언의 세계에 감동한 몇몇 연극인들이 흉내내기 차원에서부터 마임공연을 워크숍 삼아 준비하고 발표하면서 우리에게도 마임이란 장르가 설정되었다. 70년대에 들어서 극단 ‘에저또’(대표 방태수)를 중심으로 한 마임 워크숍 공연을 통해 마임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고 이때부터 전문 마임연기자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유진규, 김성구, 김동수로 대변되는 한국 마임의 첫 도약기라 할 수 있다. 유진규, 김성구는 서양마임과는 다른 우리 나름의 형식과 세계를 찾기 위해 무언극, 현장 무언극, 침묵극 등의 용어로 공연하였으며 김동수는 서양식의 디테일 마임을 지속해 왔다. 70년대 말 조종두, 최규호, 박상숙 80년대엔 심철종, 유홍영, 임도완 등 새로운 마임연기자가 합세하여 광대마임, 오브제마임, 소리 마임 등 조금은 다양한 형태의 마임이 시도되었다. 한국마임은 1990년 한국마임협의회의 결성으로 커다란 분기점을 맞이했다. 1989년 5월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예술기획 예니(대표 신영철)의 기획·제작으로 한국마임페스티벌이 열렸고 이때 참가한 마임연기자들이 뜻을 같이하여 마임협의회를 발족하였다. 그간 뿔뿔이 흩어져 개인적으로 작업을 하던 마임 연기자들이 모여 마임창작에 더욱 정진하여 ‘한국마임의 전문화를 지향하고 예술전반과의 교류와 충격을 도모하여 한국마임 발전에 기여한다’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여 왔다. 1990년부터 춘천에서 처음으로 한국마임페스티벌을 개최하여 1995년부터는 춘천국제마임축제로 발전,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이외의 축제로는 1995년부터 인천국제크라운마임축제가 인천지역에서 크라운마임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지향하면서 열리고 있다. 서울에서는 1996년부터 국내 마임 연기자들이 모여 자신들의 새로운 작업을 발표하는 교류의 장으로 ‘한국마임’을 개최해 오고 있다. 춘천, 인천, 서울에 이어 2001년에는 대구거리마임축제가 열리면서 마임축제의 다양성과 체계화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축제의 주최가 되는 한국마임협의회는 90년 당시 유진규, 최규호, 박상숙, 심철종, 임도완, 유홍영 등 6명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약 3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 중 임도완(프랑스 작끄 르꼭 국제연극마임학교), 박미선(프랑스 에띠엔느 드끄루 모던마임학교), 남긍호·이태건(프랑스 마르셀 마르소 국제마임학교), 김원범·윤종연(영국 모던 마임학교) 등이 해외에서 다양한 마임수업을 받고 국내에 합류함으로써 한국마임의 다양성과 국제화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 외에도 현재 영국 런던모던마임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활동중인 김용철과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모색 중인 강지수, 프랑스 작끄 르꼭 국제 연극마임학교에서 강의중인 유진우는 유럽에서 한국적인 마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초기 마임협의회 회원들은 팀을 이루어 다양한 작품 활동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마임극단으로는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대표 임도완, 1988년 마임그룹사다리로 창단 1998년 개칭). 유진규네 몸짓 (대표 유진규, 1994년 창단, 춘천) 극단 이슬길 (대표 이두성, 1994년 창단, 서울), 조성진 몸짓패 '빈탕놀이 (대표 조성진, 대구), 모단 메아리 (대표 강정균, 1998년 창단, 서울), 마네트 (대표 김봉석, 1997년 창단, 서울), 호모루덴스 남긍호 컴퍼니 (대표 남긍호, 1999년 창단, 서울) 춤추는 난장이 (대표 이윤재, 2000년 창단, 서울)이 활동 중이고, 금년 29회 원주전국연극제 폐막행사에서 한지작가와 함께 퍼포먼스를 펼친 유진규의 마임은 세계정상급 수준이었다. 원로 마임이스트 최청 선생은 한국문인협회와 한국희곡창작워크숍 회원이고, 산림경제신문 농산국장 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최청 선생은 1960년대 초 명동국립극장과 을지로 입구 원각사에서 <디텍티브 스토리> <고도를 기다리며>를 비롯한 연극에 출연했고, 1968년에 방한한 독일출신의 세계적인 마임이스트 롤프 샤레의 영향을 받고 마임극단 에저또와 더불어 초창기의 팬터마임 연기자로 활동을 벌이는 한편 소설 <인천 갈매기>를 발표하고, 희곡<개미전쟁>을 써서 공연을 하는 등 연극과 글짓기에 기량을 나타내, 원로 연극학자 겸 연출가 한재수 선생의 칭찬의 대상이 되었다. <개미전쟁>은 청소년 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생태와 환경을 주제로 다룬 작품이다. 이번 출판기념회는 희곡<개미전쟁>과 장시(長詩) <파리> 그리고 최청 선생이 직접 쓰고 연출한 팬터마임 극 <벌레>의 공연으로 이어져 금년 70세인 최청선생의 고희(古稀)기념출판과 축하공연의 성격을 띄었다. 하객으로는 최청 선생의 스승이신 극작가 겸 연출가 맹후빈 선생과 와 한국희곡창작워크숍 원로회원이신 극작가 장재원 선생, 영문학자이자 유진 오닐학회회원이신 김구산 스님을 비롯해, 극단 신협 대표 연출가 전세권 선생과 극단 4계 대표이자 극작가 겸 연출가 유보상 선생, 원로 탤런트 정욱 선생과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탤런트 정진 선생, 그리고 원로 탤런트 김봉근 선생,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김천봉 선생, 시인겸 출판사 사장 연규석 선생,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위원장 곽노홍 교수, 재미 한국일보사 칼럼니스트이고 한국희곡창작워크숍 회원 김낙형 선생, 한국희곡창작워크숍 총무 박재현 선생, 그리고 젊은 마임이스트 최성재 씨와 김달님 양과 함께 최청 선생의 친지들이 대거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필자의 사회로 진행된 출판기념회에는 최청 선생의 인사와 정진 선생, 정욱 선생, 그리고 맹후빈 선생의 축사와 함께 곽노홍 서울문화예술대학 교수이자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위원장의 축사가 있었다. 곧이어 최성재 씨와 김달님 양의 최청 선생 작 장시(長詩) <파리>의 낭독공연으로 이어졌고, 이번 기념문집을 발행한 출판사 대표이자 한국문인협회회원, 시인 연규석 선생의 축시 낭독이 있었다. 곧바로 최청 선생의 팬터마임 으로 이어져, 검은색 의상과 흰색의 얼굴분장을 한 모습의 원로 마임이스트의 팬터마임 <벌레>의 공연은 선생을 아는 관객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청년시절의 최청 선생을 상기하며, 백발의 최청 선생의 연기하는 모습에서 세월의 덧없음을 느끼게 한, 감개무량한 공연이 되었다. 출판기념회 참석하신 분들의 사진촬영이 끝나고, 후식자리에 참석한 원로들의 추억과 과거 공연 담이 이어지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밤이 늦은 시각까지 서로의 회포를 풀며 끊임없이 대화는 계속되었고, 잠시 밖으로 나와 문득 하늘을 보니, 은하수는 어느덧 삼경을 가리키고 있었다. | |
| |
|
|
|
|
|
드라마 팩토리 김세환 작/연출의 음악극 <존 레논을 위하여>를 보고 |
|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박정기(朴精機)
공연명 존 레논을 위하여 공연단체 드라마 팩토리 작/연출 김세환 공연일시 7월14일-31일 공연장소 혜화동 게릴라극장 관람일시 7월19일 20시
혜화동 게릴라극장에서 드라마팩토리 김세환 작/연출의 음악극 <존 레논을 위하여>를 관람했다. 1940년 영국의 항구도시 리버플에서 태어난 존 레논(John Lennon)은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여 15세에 비틀즈의 전신인 그룹 쿼리맨(Quarryman)을 조직하여 활동했다. 폴 매카트니와 함께 비틀즈를 결성하고는 활발한 음악 활동 중에도 시집을 발간하는 등, 문학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65년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으나, 존 레논은 그것이 자신들의 레코드 악보출판 등의 매상이 영국의 수출액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로의 상일 뿐 비틀즈를 위한 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존 레논은 ‘우리 비틀즈는 예수보다도 유명하다’는 발언을 해, 한 때 내쉬빌 주변에서는 그들의 디스크와 서적을 불사르는 화형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한 성격의 소유자인 존 레논은 비틀즈가 해산되기 직전인 1969년에 전위 예술가인 일본 여인 오노 요꼬와 결혼해 자신의 밴드인 플라스틱 오노(Plastic Ono)를 만들어 1970년에 첫 솔로 앨범 「John Lennon / Plastic Ono Band」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존 레논이 발표한 앨범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1975년에는 비틀즈 시절의 동료였던 폴 메카트니를 비웃는 내용을 담은 <Imagine>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존 레논은 비틀즈가 해산되고 얼마 후, 기자와 인터뷰 도중에 ‘쇼 비즈니스계에서 돈을 따지는 자는 바보이며, 아티스트는 돈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여, 이익 균등 배분 문제로 법정 투쟁까지 벌였던 폴 메카트니를 공격한 적이 있다. 그래서 폴 메카트니와는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았던 존 레논은, 오노 요꼬와 숱한 화제를 팝계에 뿌리기도 했다. <Imagine>을 발표한 이후로는 몇장의 앨범을 발표하고는 은둔 생활 속에서 오노 요꼬와 함께 전위 예술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0년 게픈(Geffen) 레코드사에서 내놓았던 「Double Fantasy」란 앨범을 발표하고 나서 사진사였던 마이클 채프먼이 쏜 총탄에 의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앨범에 수록된 <Starting Over>가 챠트에 오르고, 상승 무드를 누리면서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던 1980년 12월 8일, 뉴욕의 맨하탄 다코타 아파트 앞 길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존 레논이 세상을 떠나자 사상 유래 없는 추모 기도회가 열렸고, 그의 팬들은 비통한 눈물로 로큰롤 역사에 길이 남을 존 레논의 죽음을 애도했다. 사이가 극도로 나빴던 폴 메카트니도 그의 죽음에 대해, ‘그가 예술과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공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며, 존 레논은 유일한 자신의 파트너였다’고 슬퍼하였다. 또한 존 레논의 미망인 오노 요꼬는 남편을 추모하기 위한 앨범 「Season Of Glass」를 발표해, 그 중에서 <Goodbye Sadness>에서 미망인으로서의 애틋한 감정으로 노래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은, 1981년에 존 레논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만든 <All Those Years Ago>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곡이 제작될 때는 폴 메카트니의 부부와 링고 스타까지 참여하여, 존 레논에 대한 깊은 우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존 레논은 매튜 롱펠로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플라스틱 오노 밴드 (John Lennon: Plastic Ono Band, 2008)로 제작되어 상영되기도 했다. 연극은 시종일관 존 레논의 노래를 최윤희, 신현규, 최영무 등 3인의 출연자가 각자의 개성에 어울리게, 작은 바(bar)와 공원 벤치에서 전자건반악기나, 기타 반주로 노래해, 작은 음악회 같은 성격의 공연이 되었다. 무대는 조그마한 바(bar)로 배경막 가까운 벽면에 수많은 양주병이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고 그 앞으로 길게 카운터가 만들어져 있다. 카운터 앞쪽으로 전자건반악기가 놓여있고, 무대 오른쪽에는 벤치가 놓여 공원장면에 사용된다. 배경막 좌우로 등퇴장 로가 만들어져 있고, 천정에 영사막이 있어 존 레논과 관련된 영상과 음악이 연극 시작 전부터 투사된다. 연극은 도입에 미모의 바 여가수 최윤희가 존 레논의 노래를 전자건반악기 연주로 부르고, 암전되었다가 바로 조명이 들어오면, 최영무가 운영하는 작은 바에 소설가 지망생 신현규가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거칠어 보이지만 정이 많은 성격의 바 주인과 소설 작업이 막히면, 바아를 찾는 소설가 지망생과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잠시 후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무명의 여가수가 등장해 분위기가 안정되면서 그녀의 노래와 함께, 소설가 지망생의 존 레논 이야기가 영상과 함께 펼쳐진다. 소설가 지망생이 쓰는 소설의 내용으로 장면이 바뀌면, 한적한 공원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중년의 거리의 악사와 가출 여고생이 조우하며 존 레논의 [Let it be]가 소개된다. 장면전환으로 바 장면으로 바뀌면 [Imagine] [Love] [Feeling the space] [Men love Ave] 등의 노래가 영상으로 소개되거나 최윤희의 노래가 극장을 작은 음악회 분위기로 이끌어 간다. 다시 장면이 바뀌면 거리의 악사는 가출여고생을 귀가토록 설득시키고, 대단원에서 존 레논의 [White Christmas]와 함께 소설가 지망생의 응모작 <존 레논을 위하여>가 소설공모에 차석으로 당선되고, 바 여여수와 소설가 지망생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바 주인이 축하해 주는 장면으로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부산에서 활동을 하는 젊은 연출가 김세환에 의해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지난 3월에 공연해 성공을 거둔 후 게릴라극장 기획공연으로 서울에서의 재공연이 이루어져 좋은 평과 함께 서울공연 역시 성공작이 되었다. 김세환 작가 겸 연출가의 다음 작품에도 기대를 한다. | |
| |
|
|
|
|
|
ASSITJ 여름축제의 Australia극단의 <Saltbush>와 France극단의 <100kilos and his elephants>를 보고 |
|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박정기(朴精機)
(1) 공연명 솔트부쉬(Saltbush) 공연단체호주극단 (Inside arts, Compagnia TPO) 작/연출 Davide venturini(이탈리아) Jason Cross(호주) 공연기간 7월26-28일 공연장소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관람일시 7월28일 11시 (2) 공연명 100킬로와 코끼리 공연단체 프랑스 극단(L`yonne en scene) 작/연출 Jean Pascal Viault 공연기간 7월26-30일 공연장소 대학로 공간 아울소극장 관람일시 7월28일 12시 아시테지 여름축제 호주극단의 <솔트부쉬>와 프랑스극단의 <100킬로와 코끼리>를 관람했다. 첫 번째로 관람한 호주극단의 솔트부쉬(Saltbush), 솔트부쉬는 염분이 있거나 알칼리성 토양에서 자라는 명아주 과(科) 관목의 일종이다. 지구환경을 중시한 공연의 성격상 적합한 제목이라는 느낌이다. 무대는 배경막 가까이에 길게 계단형태의 관람석을 만들고, 맞은편에도 같은 형태의 좌석을 만들어, 그 가운데 공간에서 공연을 하도록 배치를 했다. 천정에 두 개의 영사 기구를 매달아, 무대 바닥에 벌판, 숲, 강, 바다, 물고기, 나비, 뱀과 그 외의 원형의 물체와 밤하늘을 영상으로 투사해, 그 변화에 따라 연기자와 함께 관객 중 어린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공연을 구성했다. 공연이 시작되면 아름다운 호주 여자연기자가 우리나라 윷가락 형태의 목제 기구를 양손에 쥐고, 호주특유의 민속음인 구음 소리에 맞춰 목제 기구를 두드려 울리면서 무대중앙을 가로질러 가면, 남녀 2인의 연기자가 합세하여 각자 춤을 추듯 무대를 맴돌다가, 바닥을 기어다니고 뒹굴기도 하면서 손 벽을 쳐 박자를 맞추기도 하면서 갑자기 껑충 뛰어오르는 모습에서 호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캥거루의 움직임을 연상할 수 있다. 천정의 영사 기구에서는 토양이나 숲의 형태 또는 강물이나 바다의 영상이 백색의 바닥 화면에 투사되고, 산책로가 나타나면 그 길을 걷고, 원형의 문양이 바닥에 비춰지면, 그 문양을 밟으며 연기자들의 율동이 시작되고, 형형색색의 문양이 계속 무대 위에 나타나면 연기자들은 관람석의 어린이에게 동참을 권한다. 무대 바닥은, 원형의 문양을 즐겁게 밟는 어린이로 가득차고, 어린이와 함께 자리한 어머니들의 얼굴은 즐거움과 경이로움으로 저마다의 눈빛이 빛나고 벌린 입가의 미소는 행복과 열락 그 자체임을 감지할 수 있다. 돌연 대자연의 모습이 도시 한복판으로 변하고, 끊임없이 오가는 차량의 행렬을 바라보며, 연기자들은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차량을 피해 위험한 도로를 재빨리 건너면, 다른 어린이들도 길 건너기를 시작한다. 대단원에서 어둠이 찾아오고 바닥 가득히 투영되어 명멸하는 별빛과 함께 어린이들은 하나 둘 거대한 망사이불 속에 자리를 잡고 무수한 별무리 속에 저마다 한 개의 별이 되어 잠이 드는 순간까지, 공연의 주제인 지구환경의 아름다움과 그를 중시하고 가꿔야 한다는 공연의명제는, 어린이 뿐 아니라 어머니들의 마음에 웅변으로 다가간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출연자 Rosealee Pearson, Sani Townson, Jada Alberts의 호연과 시각예술디자인의 Delwyn Mannix, 기술디자인 Rossano Monti, 응향디자인 Spartaco Cortesi, 디지털 디자인 Elsa Mersi, 기술 Niccolo Gallio, Alberto Martino, 작곡의 Lou Bennett, 안무의 Deon Hastie의 노력과 열정이 공동연출의 Davide Venturini, Jason Cross의 놀라운 창의력과 조화를 이루어 <Saltbush>를 명작으로 탄생시켰다. 두 번째로 관람한 프랑스 극단의<100킬로와 코끼리>는 한 지체장애 노인이 절뚝이며 폐가가 된 듯싶은 오래된 서커스 공연장 앞에 등장하면서 연극이 시작된다. 그는 서커스단 천막을 들추고, 주섬주섬 손에 익은 옛날 도구들을 찾아내며, 먼지가 잔뜩 낀 모자를 털어 쓰고, 자신이 다뤘던 소품과 기구로 관객에게 공연을 재현한다. 낡은 유성기 뚜껑을 열고 레코드판을 돌리고, 벽의 휘장을 걷고 인형악대를 동작시키고, 오토바이의 굉음과 함께 오토바이앞부분의 동체를 들고 나와 달리는 시범을 연기해 내는가 하면, 맹수의 포효에 채찍을 휘둘러 그 소리를 잠재우는 등 그 독특한 발상과 실감나면서도 익살스러운 연기는 관객을 포복절도(抱腹絶倒)토록 만든다. 작은 코끼리 인형과 큰 코끼리 인형을 꺼내 작동을 시키며, 손풍금을 연주하는 익살광대의 모습을 보며 관객은 모처럼 향수와 열락에 몰입된다. 대단원에서 이제는 과거의 추억속의 한 장면이나, 전설 속의 써커스 단의 곡예 물로만 취급되고, 첨단 오락기구의 범람과 디지털 문화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자신의 예술작품과 기예 품과 작별하며 돌아서는 백발의 삐에로의 눈동자에 흘러내리는 하염없는 눈물은, 관객 모두를 숙연하게 하고, 저마다 손수건을 꺼내 눈으로 가져가 소리 없는 흐느낌으로 백발의 연기자의 슬픔과 공감대를 형성시킨 탁월한 공연이었다. Sylvain Luquin의 열연과 기술감독 Pascal Cavignaux의 탁월한 기량과 연출가 Jean Pascal Viault의 천재성이 <100kilos and his elephants>를 한편의 명화 같은 연극으로 창출해 냈다. 아시테지 여름축제의 성공을 기원하고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한다. | |
| |
|
|
|
|
|
정책기록실 |
정책기록실은 연극을 비롯한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하여 활발한 의견 개진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게재된 의견에 대한 반론 또한 보내주시면 귀한 원고로 생각하고 적극 수용하겠습니다.
|
[대학로 포럼 2010~2011 연속 토론]
‘한국의 연극 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 11
주제 : 국제연극제에 대하여 참석자/ 김태수(연출가), 박상순(연출가), 송선호(연출가), 오세곤(평론가, 연출가), 홍재웅(평론가), 채승훈(사회, 연출가), 김한아(배우, 기록) 일 시 / 2011년 7월 16일 대학로 민들레영토
채: 이번 달에는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국제연극제, 국제교류 정책 등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음, 박상순 선생님이 각 토론 마다 그 주제에 걸 맞는 전문가를 초청을 해보는 게 어떤가 하는 의견을 주셨거든요. 그런 참에 국제교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전문가이신 박상순 선생님을 그 전문가 입장으로 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국제연극제, 예술지원센터나 지원정책, 기타 등등 자유롭게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요새 각 지역별로 연극제들이 열리기도 하고.... 춘천, 수원화성, 거창, 밀양, 의정부, 안산, 포항 등 각 국제연극제가 활성화되어가고 있는데.. 박상순 선생님은 포항으로 가셔서 고생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현재 우리나라 여러 국제연극제의 현황이라고 할까요?
박: 사실 우리나라의 문화적인 국제 교류는 89년도에 해외여행자유화 이후에 이전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국제적인 교류가 시작이 되었고, 사회 민주화와 더불어 다양한 문화예술의 형태가 국내외적으로 교류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하구요. 그런 와중에 90년대 중후반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각 지자체는 문화예술영역을 강조하고 이에 대표적인 사업으로 지역축제를 시행하게 되고 이를 통하여 해외의 공연이 소개되는 기회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지자체 주도 축제 중에서 공연예술제는 나름대로 규모나 장르의 다양성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런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극제의 완성도와 변별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공연예술제는 춘천마임축제, 과천한마당축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등 손에 꼽는다고 할 수 있죠. 서울국제공연예술제도 작년에 한팩으로 들어가면서 과연 어떻게 정체성을 가지고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요. 축제라는 것이 독립성을 가질 때 고유한 캐릭터가 형성되기 유리한 것인데 지자체나 아트센터의 직접적인 통제 안에 들어갔을 때 지향점 유지와 계발에 어려움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체제에서 진행되는 올 가을 서울공연예술제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채: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시작된 지 10년 정도 되었지요?
오: 처음 서울연극제와 서울무용제를 합쳐서 시작했던 게 2001년이거든요. 무용협회하고 연극협회가 번갈아 집행위원장을 맡았고요. 그러다 서울연극제, 서울무용제가 다시 부활되면서 독립적인 축제가 된 때부터만 보면 7~8년 되었지요.
채: 그래요. 얘기 나온 김에 궁금한 거 하나 물어보죠. 다른 연극제 같은 경우 독립된 상설사무국을 가지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경우는 잘 운영되던 상설사무국이 있었는데 그것을 도리어 한팩 산하로 가져가 독립성을 훼손해 버렸습니다. 규모도 축소 시켰구요. 임기가 남아있던 예술감독은 해촉시키고.... 많은 연극인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의문을 표합니다. 왜 한팩으로 통합하게 된 것 인지,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오: 그것이야 알 수 없지만, 어떤 게 더 효율적인지는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어떤 게 좋을까 하는 치열한 토론도 없었고, 대부분 잘 모르는 상태로 진행되고 결정이 통보됐다는 게 문제라고 봐요. 사실 누구라도 이게 맞다고 우기면 아니라고 할 근거도 없는 거거든요?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나누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개인적으로 전 조금 더 두고 봐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전의 시스템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거든요? 처음에 복잡했잖아요. 그러나 점점 정체성을 찾아갔고, 박 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몇 년 뒤까지도 생각하고 준비하는 이런 모습도 보였고. 저는 개인적으로 자막 쪽으로 거기에 참여했어요. 자막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소하겠지만 그쪽에 계속 주장했거든요. 근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을 들어주기 시작하더라고요. 그것은 그만큼 그 행사가 여유를 가지고 뭔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거든요. 물론 제가 만족할 만큼의 성과는 아니었지만 조금씩이라도 발전되고, 축적이 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옳으냐, 그르냐 살펴볼 겨를도 없이 다른 체제로 넘어갔다는 것은 상당히 아쉽죠. 좀 더 가보고 그래서 문제점이 드러났을 때 ‘이건, 개선해야겠다.’ 하고 개선했더라면 좋은 재산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또다시 짚어가야 하는, 잘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린 게 아쉽고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사실 통합이라는 것이 좋은 면도 있지만, 통합해 놓고 보면 서로 섞이면서 정체성이 불분명해지고, 또 우리나라 상황에서 담당공무원이 바뀌고 제대로 인수인계를 못 받게 되면, 나중에 담당하게 되는 사람은 “왜 똑같은 것이 또 있는 거야?” 하면서 그냥 예산이 확 준다든가 국회에서 “똑같은 것을 또 하느냐?” 하면서 삭감되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예전의 역사를 다 따지지 않고, 지금 상태에서 누군가가 “변별역이 없다.” 라든가 “정체성이 없다.”고 하는 한 마디에 그냥 항목자체가 없어져 버릴 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없어졌을 때 그거 살리려고 엄청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도 많았잖아요? 그런 것도 걱정이 되고..... 우리나라 행정을 보면 일부러라도 여러 가지를 독립적으로, 설령 중첩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놔둬야 그나마 안전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번 일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채: 동감하는데요. 진행이 거꾸로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한팩에서 주도하는 것으로는 첫 번째 행사죠? 일단 진행되는 것을 지켜 보고나서 생각해야 하겠는데...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송선호 선생님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참가해본 적이 있죠?
송: 2년 전에 참가했고, 이번에 다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채: 올해도 참가하는군요. 어떻습니까? 지원이나 여러 과정들이 만족스럽게 진행 되고 있는지?
송: 단체들이 지원금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참가하는데 의미를 두는 거죠. 그러나 공연예술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축제이다 보니 단체 입장에서는 다른 공연보다 부담을 더 느끼고, 그런 만큼 제작에 더 힘을 쏟게 되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원금은 적어요.
채: 대체로 5, 6백 정도라고 전해들은 것 같은데..... 신작인가요?
송: 예.
박: 몇 회 공연입니까?
송: 6회 공연입니다.
박: 6회라면 적지 않은 공연인데....
송: 공연장 대관료가 없으니까...
홍: 그래도 예전에 공연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적죠.. 게다가 인플레이션과 전체적인 제작비 상승까지 감안을 한다면….
채: 국제교류의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 여러 국제연극제를 하면서 사실 외국 작품을 일방적으로 초청하는 것에 열을 올리는 셈이었지 같이 참가해서 공연했던 우리 작품들이 해외에 초청되는 기회를 갖는다던가 하는 것은 거의 못 본 것 같습니다. 교류가 쌍방으로 이뤄지는 것이 국제교류의 이상적 방향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지금과 같은 제작비지원의 경우는 잘 납득이 가지 않거든요? 참가하는 것에만 의의를 두라는 것인지.... 그렇다고 한다면 근본적으로 국제공연예술제가 왜 존재해야하는 건지를 알 수가 없는 거죠. 마치 국내작품들은 프린지 개념과도 같은, 외국작품들을 위한 하나에 구색 맞추기인 양.... 그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적어도 국내작품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서 외국작품들과 동등하게 되어 있는 여건에서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적어도 국제연극제의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송: 저는 축제에 참가하는 단체의 입장이니 끝나고 나서 할 얘기지만, 2년 전 참가 할 때와 느낌이 달라요. 전체 예산이 반 이상 삭감됐고... 외국 단체 공연이 줄어들지만 축제 규모는 줄일 수 없으니 국내 단체의 공연을 늘인 거죠. 그러니 지원액을 여러 팀에 나눠서 지급하게 되고... 인터뷰를 포함한 절차도 예전과 느낌이 많이 달라졌어요.
채: 지원액 규모는 작품선정 후에 정해지겠지요?
송: 지원액수가 정해진 후 단체가 가부간 선택을 하는 건데, 아마 지원액 때문에 참여 못하겠다고 하는 단체는 드물 겁니다.
박: 내가 A라는 작품을 선택 했다면 그 작품에 강력한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갖고 싶은 거죠. 이 작품을 하고 싶은 거죠. 일부 지명도 있는 작품을 제외하고 해외 팀들도 공연지원비 자체는 많지 않아요. 하나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예산이 전반적으로 줄었습니다. 동일한 상황에서 ‘전 체계’는 예술 감독이나 행정감독이 예산을 확보하려고 아주 다방면으로 노력했어요. 지원기관에 찾아가고 언론하고 인터뷰도 하고 이러한 다양한 노력으로 예산으로 확보를 했어요. 돈이 없으면 정부지원뿐만이 아니라 외국하고도 코웍(co-work)을 해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와 예산확보를 하는 그런 노력을 했었어요. 근데 현 체계로 되었을 때 얼마나 그러한 특별한 예산확보 노력이 얼마나 진행되었는가를 생각해 봐야할 것 같아요.
오: 그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들 아는 얘기지만, 재작년인가 중복 지원 안 된다는, 서울시에서 받으면 문화예술위에서 못 받는다는 이상한 원칙 때문에 공연예술제 예산 줄어든다고 해서 문화예술위원회 연극 소의원회에서 정식 이의 제기도 하고, 예산 삭감 막자고 결의도 하고, 매스컴에 글도 쓰고, 문화예술위원장 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그런 게 단독이어서 된 거지 지금은 그런 식의 노력이 어렵겠죠.
홍: 서울국제 연극제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자기 정체성과 축적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잖습니까? 뿐만 아니라 대개 어떤 조직이나 기관의 경우, 문제가 크게 발생해서 어쩔 수 없이 크게 변화가 요구될 때 구조조정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주최 측이 이제까지 잘 발전해오고 있었는데,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하신대로 이러한 구조조정 이후에는 다시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쌓아왔던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이미지와 발전은 온데간데 없고, 새로운 조직으로 평가를 받게 되었는데, 이렇게 일회적인 성적으로 평가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제까지 이룩해왔던 업적을 그 기간만큼 새로운 조직이 쌓아가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 구조조정이 얼마만큼 효율적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약간의 변화가 아닌 새로운 조직환경이 되었다면 말이지요. 게다가 일회적인 평가는 어떤 면에서 추상적인 것들이라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이전의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의 상대적인 비교는 극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채: 수원화성국제연극제 같은 경우 지금도 계속해서 상설사무국을 수원시에서 만들어 달라고 극구 요구하고 있는 형편인데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나름대로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을 도리어 과거방식으로 역주행 시킨 셈이군요.
오: 예산이 얼마에서 얼마로 줄었나요?
송: 20억이 넘었는데 지금은 10억 이하죠? 그 전년도에 많이 줄었고, 올해가 전년도 보다 더 줄었다고 하더군요.
오: 근데 예를 들어 서울 연극제만 해도 올해 갑자기 1억 줄인다고 해서 난리가 났었잖아요. 그런데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액수가 얼마에서 얼마가 줄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과거에는 관심을 가지고 ‘우리 공동의 것이다.’ 라고 생각한 데 반해서 지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진단 말예요. 부르면 손님처럼 가서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박: 사실 아시아에는 아직 지명도 있는 공연 예술제가 별로 없어요. 도쿄, 싱가포르, 상해 같은 경우가 있는데.. 싱가포르는 요즘은 직접 제작도 좀 하지만 주로 유통하는 측면이 강하고 상하이 같은 경우 규모는 크지만 예술성보다는 공연예술관련 산업들과의 연계성이 강조되어있지요. 그렇다고 도쿄페스티벌의 규모와 예산이 우리보다 많은 것도 아니예요. 우리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지난 몇 년 동안 상당히 재정적으로 어렵지만 많이 확보를 했고, 장르적 캐릭터를 가지고 갔었고 축제 프로덕션 스타일도 초기단계를 벗어나서 다음단계로 가는 과정을 통해 진행이 되었고요. 그것이 지속적으로 된다면 아비뇽축제(Avignon Festival)나 영국의 에든버러 축제(Edinburgh Fringe Festival)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렇게 된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가까운 중국과 일본과 상당히 교류가 활발해지며 아시아권에서의 지명도 있는 축제가 될 가능성을 갖게 하는 축제였습니다.
채: 한팩의 예술감독이 공연예술제의 예술감독도 겸하는 형식인가요?
송: 무용 쪽과 공동으로 하는 거죠...
박: 그 체제도. 기존의 예술감독인 김광림, 김철리 선생 같은 경우도 엄청나게 해외도 많이 돌아다니고, 예산은 빠듯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통해서 국제 교류. 초청의 기회도 마련했고, 프로덕션에 기회도 마련했고 그리고 여러 가지 지원금의 구체적인 계획도 끌어냈고, 또 호주에 아시아 포맨으로 해서 호주사람을 사무국에 직원으로 쓰기도 했고 호주에서 비용을 대주기도 했지요. 이렇게 인적인 자원, 재정적 작품, 예술적인 교류가 다각도로 이루어 졌거든요. 그런데 이런 단계가 내공이 쌓여져 초기단계에서 준비단계로 넘어가는 다음단계로, 발전시킬 상황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한팩에 한 시스템으로 묶여 다시 시작한다면 지켜볼 일입니다. 이것이 더 잘 된다면 좋은 선택이겠지요.
홍: 제 입장은 공연예술제 측의 정보를 제공 받고, 공연을 찾아보는 입장이었는데요. 관객입장에서 공연예술제 측의 준비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는 어렵겠지만, 단순한 예로 일단 관객에게 메일을 통해서 다양한 정보와 내용들을 끊임없이 제공해주는 시스템이 해가 갈수록 더욱 체계적이고 풍요로진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전해주는 다양한 볼거리와 정보를 자꾸 접하게 되면서 보고자 하는 공연과 일정에 대한 상기가 되었지요. 이를 통해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떤 공연이 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나 예상을 할 수 있도록 관객과 공연예술제 측의 교감이 잘 형성되어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이제까지 계속 되어오던 이러한 정보 제공과 공유가 올해는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제 곧 시작인데….. 예전에는 한 해 공연예술제가 끝나고 나면 바로 치루었던 행사와 새로운 행사에 대해서 1년 내내 관객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곤 했었는데 말이지요.
채: 한팩에서 국제연극제를 통합시킬 때 임기가 남아있는 예술감독의 거취문제에 대해서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요?
오: 김철리씨는 연임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체제가 바뀌었고, 그 바뀐 체제에서 차기 예술감독으로 정해졌던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 임기가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채로 또 바뀐 거고요.
박: 재임해서 1년 정도 한 걸로 알고 있어요.
오: 어쨌든 재단에서 정해놓은 것을 무시한 거죠. 임기 보장을 재단에서 원래 해주는 것인데.
김: 좀 이상한 부분이 있군요. 그런 자리를 그냥 가져 가십시오하고 내 놓을 김철리 씨가 아닐 텐데. 그리고 공연예술제는 자신이 해외에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상당한 성과를 이룩했다는 자부심도 클 텐데 말입니다.
박: 그것은 정확히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채: 시스템 통폐합하는 데만 신경 쓰고 기존 노하우를 존중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인적자원의 재배치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라면 정말로 유감스러운 것이죠. 그렇다면 그것은 근래의 국립극단 문제, 한팩 설립과정의 문제 등과 아주 흡사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 완전 본보기 아닌가요. 임기 남은 예술위원장도 쫒아내고, 그런 거지요 뭐.... 완장도 그런 완장은 없는거죠. 그것도 문화의 수장이라는 양반이 그동안 해온 수준을 보면 우리 자신이 부끄러워져요. 그리고 모든 자리가 임기가 있는 것인데 마치 평생해먹을 것처럼 놀고 있으니 안하무인 후안무치한 행동들인 거죠.
채: 뭔가 알면 알수록 연극인들 속만 터지는데.... 그러다보니까 한팩 예산은 전체 운영하는데 있어서도 모자라는 형편이고, 두 조직을 통합하다 보니까 국제공연예술제 예산도 축소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직원들 구조조정도 있을 거고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예년보다 작품 당 지원액이 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연극인을 존중하는 태도 대신 관료성, 경직성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겠지요. 후진을 해도 한참 후진하는 기이한 형태군요. 도대체 왜, 누가 이런 어리석은 통폐합을 주장하고 앞장선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오: 서울연극협회가 주최한 토론회가 있었어요. 물론 여러 가지 안건이 있었지만 국립극단문제와 더불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한팩에 대해서 100분 토론에서 이야기를 했어요. 왜 예산이 줄어들 때는 그렇게 연극계 전체에 알렸는데 그보다 더 큰 일인데 이렇게 조용히 넘어갔느냐고요. 사실 공연예술제가 우리 공동의 자산이라 한다면 당연히 그 성격이나 체제 변화에 대해 다들 알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김: 그래서 그 즈음에 공연예술제 직원에게 물어봤어요. 한팩에 들어갔는데 공연예술제 사무실이 따로 있느냐. 자리는 따로 있대요. 그러면 그 안에 들어가서 국제공연예술제행사를 따로 추진하시겠군요 했더니 그건 또 아니래요. 그럼 이걸 어떻게 하려고 자리, 책상은 주고 할 일은 없애고, 결론적으로 보면 김철리 씨는 시립극단으로 가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아.. 그 해까지만 월급주고 올해 해직시키려고 한거 아닐까요.
오: 작년까지 하고 끝난 거죠. 아예 알고 미리 그만 둔 사람도 있는 거 같고요.
채: 지방인 수원화성국제연극제의 경우 신작이 아니어도 700~800만 원정도 초청비로 주는 데에 비해서....
홍: 그전에는 예산이 적어졌다고 하면 연극제의 주최 측이나 이에 관여하시는 분들께서 지원을 끌어 오기 위해 애를 쓰셨는데, 이제는 극단 측에서, 배우와 연출가가가 직접 스폰서를 끌어오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연극에만 애를 써도 좋은 작품을 만들까 말까 한데 말이지요.
김: 꼭 정치적은 아니지만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을 내세워 정권 창출에 성공했잖아요. 10년 동안의 민주발전을 위험요소로 보는 거 아닙니까. 자신들의 관리 안에 있어야하는데 자생적인 그 꼴을 못 보는 거죠. 왜 뿌리를 내리냐며....
박: 정직한 것은 예를 들어 10억을 주면 10억짜리를 만들어야 해요. 10억인데 작년에 20억했던 것처럼 규모를 유지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예술인들에게로 가지요. 그럼 자기들이 예산확보에 실패했다면 왜 참가 극단들에게 왜 멍에를 넘겨줍니까. 전에 20개 단체가 왔었다면 10단체로 줄이는 게 정직해요. 10단체로 어떻게 잘할까 생각하고, 내년에는 20단체를 부르기 위해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지 생각하는 것이 정직한 논리인데 그렇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일방적으로 극단한테 많은 부담을 지우는 것은 축제정신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예술인으로서 자존심도 상하게 할 수 있어요.
채: 예산이 확보가 되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만 쓰는 건가요? 아님 한팩의 전체예산과 합쳐진 다음 나눠지는 겁니까?
오: 보통은 왔다갔다 못하죠. 하지만 한 기관이기 때문에 타협은 있을 수 있을 거예요.
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모두 함께 지켜 볼일이군요. 음, 그리고....다른 지역의 국제적 축제들도 많은데 국제교류를 하기 위한 이상적인 모델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최근 밀양에 3~4년 관계하면서 본 것은 공연만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자, 공연 기획자, 다방면의 스탭들을 초청해서 함께 작품을 만드는 형식을 취하더라구요. 그래서 아 이것이 현장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실체가 굉장히 큰 교류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자기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연극작업의 모든 다양한 형태들과 새로운 방향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제공 되구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런 작업들이 일회적이 아니라 꾸준하다는 거죠. 각자 자기나라의 자신들의 지금 시점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요.
박: 제 생각에는 체제가 독립사무국이 되어야 해요. 그렇게 되었을 때, 축제의 아이덴티티(identity), 지향점 등이 변별적으로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초점을 키워 나갈 수 있어요. 또 하나는 지속적인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개인적으로 외국축제에 가보면 극단, 연극 자료들이 얼마나 축적 되었느냐를 봅니다. 스팝(서울국제공연예술제)은 그것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체계적인 독립사무국과 지속적인 전문 인력의 참여. 그런 상태에서 인적, 프로그램 교류, 학술행사들이 그러한 체제에 던져지면 훨씬 좋은 효과를 받을 수 있고, 예술인뿐 아니라 일반관객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채: 잘 되어가는 것을 되돌린....
박: 그렇죠. 해외네트워크에 관해서 답답한 거는요. 우리나라에서는 딱 한군데만 물어봅니다. 파트별로 이거 어떻게 된거야?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용 쪽은 씨댄스나 김성희 감독 쪽이, 연극 쪽은 스팝에서 물어보면 가장 좋은 정보를 갖고 있었어요.
채: 독립적 시스템과 그에 따른 전문적 노하우의 축적. 그리고 제 생각으로는, 축제 후 까지도 참가작품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배려가 있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팜스초이스에 참가한 작품들에 대해서 나름대로 여러 노력을 추후에도 지속적으로 해주고 있습니다. 송 선생님은 축제 참가 후에 좋은 반응으로 홍콩 쪽에서 초청의사를 밝히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송: 그때는 홍콩 쪽에서 관심을 보였고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측에서 연결을 해주겠다는 제의였는데, 저희가 거기에 응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사되지 못한 경우였고... 축제의 이상적인 방향이라면 그 자체가 마켓이 되는 것이겠죠. 그래서 사무국도 예술가들도 단발성행사가 아니라 처음부터 행사 이후의 교류를 염두에 두고 일을 할 수 있어야 생산적인 공연예술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 참여하는 국제공연예술제의 경우는 결과를 두고 봐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생각입니다. 그 외의 지역 공연축제들도 외국 작품들이 많이 참여하죠. 제가 평가를 맡게 돼서 요즘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는데, 일단 그 수가 상당히 많다는 것, 그리고 과연 축제를 만들 만한 여건이 조성되어 있는지의 문제, 또 그 축제를 즐길 만한 인구가 얼마나 있는지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이상적인 축제는 관이 주도해서도 안되고, 대표성을 가지면서 사실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거라고 보거든요. 지역민이 즐기지 않는다면 공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건데... 지역의 축제들이 과연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지, 10년 이상 해 온 축제들도 있는데 자체적으로 평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박: 지역축제가 많아졌다가 지자체들이 너무 많아졌다고 지금은 지역축제가 정리되고 총 통합되는 기류를 보았어요. 이상적인 축제의 조직 같은 경우를 예를 들자면 춘천마임축제를 뽑고 싶은데요. 관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민간인, 예술가들이 자기 색으로 먼저 시작해서 자리를 잡고 이미 자기들의 캐릭터를 잡았거든요.
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요한 부분이에요. 축제엔 밀도가 있어야 하는데, 밀도가 높으면 사람들이 몰려들게 돼 있고, 밀도가 낮으면 무늬만 축제고 나중에 보고서만 남거든요. “잘 됐다.”고들 하는 축제를 보면 대부분 민간으로부터 시작했어요. 예산이 없어도 좋아서 하는 식이었단 말이죠. 밀양연극제 같은 경우 주민보다는 하는 사람들이 신나서 한 거고, 그렇게 신이 나서 하니까 지원도 들어오는 것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계속 쌓이고, 그렇게 계속 발전하는 축제가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거창 같은 경우 밀양에 비해 그런 식의 밀도는 떨어지지만 연륜이 길기 때문에 나름의 버틸 힘이 생긴 거고요. 춘천 같은 경우도 하는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잘 되어 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어찌 보면 관제예요.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서울연극제와 서울무용제를 합쳐보자는 결합의 시도가 실패하면서 탄생했기 때문에 허약한 출발이라고 해야겠죠. 하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축적이 시작되었고, 어느 시점이 지나서는 점차 밀도가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고요. 비록 늦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다시 처음부터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봅니다. 어쨌든 실제 밀도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평가가 잘 나온다 해도, 무늬만 축제인 경우는 낭비죠.
채: 평가 항목 중 중요한 것이 관객의 참여도 아닌가요?
송: 다양한 평가 항목 중에 관객 호응도가 들어가 있고, 평가 지표는 모든 축제에 동일하게 적용되죠.
채: 각 지역의 연극제가 많이 있는데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각 축제마다 개성이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 말들도 많습니다. 시민들만을 생각해서 만들어간다면 모든 연극제들이 비슷해지는 거죠. 또 이런 것이 있을 수 있어요. 서울과 같이 큰 도시에서 하는 게 좋은 것이냐, 거창이나 밀양과 같이 좀 협소한 곳에서 임팩트 있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그렇다면 각기 지녀야 하는 개성은 어떤 것이 있는가? 또 외국에 초청 받아 나가보면 한 팀이 공연을 한두 번 밖에 하지 않지 않습니까? 일반 시민들은 안와도 충분합니다. 그 나라 전국 각지의 연극인들이 다 와서 다양한 시간에 프로그램 되어 있는 공연들을 다 보는 거지요. 연극인, 예술인들로 극장이 가득 차요. 그래서인지 각 지역 연극제들이 나름대로 특화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볼 때 어떻게 하면 시민참여와 개성 등을 함께 살릴 수 있는 지가 관건입니다.
박: 제가 축제의 유형 6가지를 정리한 적이 있는데요. 지금 말씀하신 1.대중을 위한 축제, 2. 마니아를 위한 축제, 3.장르적 특성을 가진 축제 등이 있는데요. 그런 모든 것을 특성화라 볼 수 있어요. 정말 빅사이즈의 도시 전체가 움직이는 에든버른이나 아비뇽 축제가 있을 수 있는 반면 작지만 밀도 있는 공연들을 볼 수 있는 그라스 같은 축제도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작지만 밀도와 완성도 있어서 마니아들과 전문가들이 몰려들어 마켓이 형성이 되고 꼭 필요한 교류가 이뤄지게 되겠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한국에서 지역민들과의 교류와 공감이 중요하죠. 특히 관공소에서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지역민들과의 교류를 가장 큰 퍼센테이지를 가지고 가거나 혹은 덜 가지고 가는 축제가 있고요. 우리는 축제의 시장도 그런거 같아요,. 상당히 유니폼한, 유니스타일한.. ‘아 요즘 이런 것이다.’ 하면 모두 그런 것 같아요. 버스로 말하면 시외버스도 있고, 마을버스, 부산까지 가는 고속버스가 있을 수 있고.. 역할이 다른거죠. 마을버스라고 나쁜 버스입니까? 그 마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지역을 위해서요.. 어느 것 하나가 만병통치가 되는 축제는 없다고 보고요. 축제마다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대중적일 수 있다. 어느 것이 강하다 그렇지 않다고 하기 보다는 한 축제가 가지고 있는 환경을 최대한 살려서 특화 시킬 수 있는가? 변별적인 것을 갖는 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해당 영역과 결집되고, 또 다음단계로 이어지는 힘을 모을 수 있다고 봅니다.
채: 대체로 현재의 우리나라 연극제들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게 좀 각기 다양하게 개성화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뭐가 있을까요?
박: 양쪽의 의도를 모두 만족시키기는 어렵지요. 축제의 지향점이 다행히 돈을 주는 지원단체와 일치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평가 기준이 내가 지원하는 것과 다르다 하면 어느 정도 절충선을 찾아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요. 가장 큰 건 축제가 잘 셋업하고 진행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게에 어떤 물건들, 어떤 컬리티를 구성하느냐 그것이 우리 가게가 다른 가게와 차이를 줘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작지만 강한 축제가 되지 않겠나 생각해봤습니다. 이거 일반인 싫다. 작지만 큰 축제를 하고 싶다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프로그램 구성. 그것이 제대로만 구성 된다면 도시던 시골이던 어디든 간에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그런데 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축제가 그게 그거 같고, 어쩌면 문패를 바꿔도 모르겠을 정도로 모든 축제가 너무나 변별력이 없다. 그렇다면 왜 하느냐. 관에서 먼저 사람들이 모여야 하니 협조해 보자 하는 불순한 의도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이제는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지역이 그게 잘 안 되나봐요.
홍: 선진국의 경우. 지금 말씀하신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미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경우, 예술제 정체성과 규모의 측면에서 볼 때 규모를 줄이고 싶지는 않겠지요. 오히려 더 발전시키고 규모를 키우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현재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예산이 이렇게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똑같은 규모로 했으면 하고, 적어도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하고 싶겠지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러한 희생이 고스란히 연극인들과 관객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이지요. 기우인지 모르겠으나, 잘 돼도 문제고 안 돼도 문제일 것 같습니다. 예산이 줄었음에도 규모가 줄지 않고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다른 누구의 희생이 더욱더 커진 케이스가 될수 있겠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면 예산이 줄고 조직이 바뀌었으니까 이 정도는 감수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대충 넘어가는 것이지요. 행사는 이제까지 해왔었으니까 그냥 하자는 식으로요. 이러다 보면 결국 행사 자체가 도태되어 버릴 수 있는 있겠다는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연극 축제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다른 다양한 지역 축제들을 살펴보면 거의 특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로는 지역에서 나오는 농수산물을 두고 하는 축제라고 하지만 가보면 파는 것은 이 축제나 저 축제나 다 똑같고 축제의 특성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냥 뭘 해야 하니까 그런 것을 하는 것 같습니다. 돈은 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장르의 축제로 도서박람회 같은 것들이 있잖습니까? 여기서는 교류가 훨씬 더 강조되는 것 같아요.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다 열심히 가서 보고 만나는 것이지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니까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축제가 되는 것이지요. 두서없이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축제의 목표와 핵심과 같은 것들이 우선 고려된다면 축제의 특성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송: 축제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마음가짐도 중요한 거 같아요. 포항에 간다, 그럼 왜 가는 것인가, 거기서 누굴 대상으로 어떤 행위를 하려는 것인가, 변별력은 있는가 등을 검토해야 하겠죠. 그런 다음 축제의 성격에 동의한 참여 단체들이 교류를 통해 체험을 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고요. 지금은 참여하는 단체들도 축제의 특성을 모르고, 너무 많아서 구별을 못하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박 선생님 의견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여러 축제가 특성을 가져야 하는 건 분명한데, 예를 들어 지역민들의 참여와는 다른 예술적 목적을 가진 축제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지자체에서 돈을 받는다면 그건 지역민들이 낸 세금 아닙니까? 지역민들이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면 다른 부가가치가 있어야겠죠. 다양한 형태의 보상 말입니다. 세금을 냈는데 그만한 보상이 없다면 과연 환영받을 수 있을 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박: 작년, 재작년 문광부에서 발표한 게 문광부 지자체포함해서 전국에 1276개 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일반인들이나 정부에서는 축제가 좀 많다는 얘기를 해요. 물산전, 고추아가씨, 그런거 저하고 무슨 상관있습니까.. 우리는 다 페스티벌이고, 축제라고 하니까.. 공연전문축제가 50개 정도 밖에 안되요. 저는 어디가서 얘기할 때 ‘우리는 전문관련 축제가 많지 않다’고 말해요. 공연 대충 둘러봐요 무대 세워 놓고 다 똑같이 축제해요. 사실 그런 곳에 우리가 출연해야해요. 왜? 돈 벌어야 하니까.. 전국연극제까지 모두 포함해서 50개정도 밖에 안되요. 그러면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라던가 국제 교류라던가 예술인력으로 봤을 때 과연 많은 숫자인가? 우리가 의미를 두고 소비적이지 않고 승산적인 미래에 돈이 될 수 있는 축제는 많지 않다는 것이죠. 지자체의 통폐합의 기류 속에서 그 돈이 어디로 가느냐 준비된 축제를 하게 한다. 우리가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나중에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김: 그런 면에서 방향이 조금 분명한 게 고마나루 축제가 아닌가 싶네요? 마임같이 분야가 다른 것 빼고는요?
박: 장르적 변별성을 가진 수원화성처럼 역사적 구조물을, 상하이 페스티벌처럼 장르적, 프로덕션 중심의 축제 등등 많이 있죠.
김: 또 하나 재미있는 현상은 서울하고 경상도는 있는데 전라도 쪽에는 거의 없더라구요.
채: 최근에 광주에 생겼어요.
오: 거창 빼놓고는 전국적으로 다 얼마 안 되었지요.
채: 다양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김: 외형으로서는 그렇게 좋은 모양새는 아닌데 고마나루가 특화로서의 특성화 방향은 괜찮지 않나 싶어요.
오: 또 지자체에서 하면 그 지역 예술인들이 주도를 하거나 일정 부분 차지해야 한다는 옵션이 생기죠. 결국 지역에서 향유하는 주민들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것이냐 하는 등의 문제도 생기고, 그래 시끄러운 건 싫고 결국 대충 안배를 한단 말이죠. 결국 그러다 보면 남는 것은 보고서 밖에 없다는 거죠. 실제로 재미가 없어도 보고서에 재미있다고 하면 재미있는 게 되어버려요. 근데 문제는 그런 보고서는 다음에 예산을 확보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축제가 발전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더란 얘기죠. 정말 중요한 것은 왔다 간 사람들이 뭔가를 느끼고, 그래 외국에서도 몰려올 정도로 입소문이 나는 건데, 보고서를 가지고 생존하는 축제들의 경우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런 경우가 많다 보니까,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그저 축제가 너무 많다고 하는 건데, 사실 많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가 관계하는 축제는 존재해야 하고, 나머지는 없어져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죠.
채: 지자체와 손을 잡게 되면 연극제는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되죠. 그냥 버라이어티 쇼 같은 시민의 날 행사 같은..... 특화나 개성화, 전문화를 시키려면 지자체의 선진화된 예술인식이 전제 되어야하겠지요.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되기까진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은데 그런 날이 와야겠죠.
오: 지자체는 1년이나 2년 사이 많은걸 보고 싶어 하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고 “당신을 믿고 앞으로 십년을 지원할 테니까 이 한 분야에서 최고의 뭔가를 만들어 봐라.” 한다면, 그래서 시민들이 보건 안보건 매진을 해서 십년쯤 되니까 뭔가 쌓이고, 그래 세계적인 명물이 되어서 그것을 보러 세계에서 몰려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십년 뒤엔 자기는 지자체장이 아니거든요. 그런 전제라면 지자체에서 돈을 받아도 되는데. 그게 아니라 지금 같은 경우는 단기간에 적어도 내 임기 안에 뭔가를 보여줘서 자기 재임에 도움이 된다든가 이런 걸 원한단 말이죠. 예술가들의 생각이 아니라 공무원들의 생각대로 가는 거예요. 왜냐하면 돈 주는 사람을 따라갈 수밖에 없으니까.
박: 칭찬해주고 싶은 축제하나가.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을 정말 칭찬해 주고 싶어요. 정말 좋아서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돈은 정말 되지 않지만 정말 그것만으로 지명도가 꽤 있거든요. 작고 소박하지만 민간에서 시작됐을 때 이것이 영향력을 장기적인 힘을 갖게 되는것 같아요.
오: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홍: 전문인력 확보도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관광 쪽도 마찬가지인거 같습니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면 오히려 망가지는 관광 자원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놔두면 너무 좋은데 전혀 전문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자신들의 뜻대로 만들어 놓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히려 볼거리가 훼손되는 예를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잖습니까? 선진국의 경우,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놔두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손이 안 가는 것이 아니지요. 그 자연스러움 속에서 전문가들의 손길이 느껴지게 됩니다. 그러한 이유는 선진국의 경우 공무원으로 전문인력을 고용하기 때문입니다. 뭐가 필요하다 싶으면, 연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베껴오기식 복사가 우리의 경우 주를 이룹니다. 그 이유는 전혀 아이디어가 없고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그러한 전문인력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선진국의 경우 이러한 전문인력을 확보해서 그들이 공무원이 되어 행사를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주니까 좋은 프로그램이나 좋은 결과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몇몇 전문인 정도를 정책결정자로 뽑아놓고 모든 것을 개혁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러한 전문인들이 정치화되고 세력화 되어 본래의 의도와는 멀어지는 정책과 결과를 늘 보아오고 있지 않습니까? 평생 남을 결과물에 대해서 익명이 아닌 자신의 이름이 남게 될 결과물에 대해서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예술인과 그러한 전문인이 공무를 담당한다면, 이번 임기 끝나고 다른 데로 가버리고 나면 잊어버리는 현실로 인해서 그들의 의지가 떨어질 수밖에 상황을 상당부분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것을 확보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실제로는 전문인력을 공무원으로 쓰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송: 일단 선거 끝나면 다 뒤집어지니까요.
박: 대부분 지자체에 문화 예술부에 보면 전문인력이나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어요. 요는 그런 사람들이 크게 영향력이 없다는 거죠.
송: 지역의 재단도 그렇고, 영향력 있는 자리는 지자체 장이 바뀔 때 다 바꿔버리죠.
오: 여러 가지케이스를 보았어요. 전문위원 역시 인맥으로 뽑는 거예요, 그 사람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예술계와 소통을 안 하고 자기만 내세우는 거죠. 제도 자체는 좋을 수 있으나 실제로 보면 무늬만 그럴 듯하고 내용은 별로인 경우도 많더군요.
홍: 그런 것도 있더라고요. 전혀 다른 얘긴데. 공정 거래 위원회에서 통역을 가서 해본 적이 있어요. 얘기 하는데 법이야길 하는 거예요. 우린 이런 법, 저런 법이 있다 얘기 하니까. 우리 공정 거래법 보다 좋다. 훨씬 좋다는 거죠. 실제 공정거래법이 우리나라가 되게 좋대요. 왜냐면 여러 군데서 다 가져와서 좋은 것을. 근데 실제 법은 좋은데 실행이 안 되는 것이죠. 사실 우리법이라기 보다는 다른데 좋은 것을 보고 받아들이기는 했는데 실행이 안되는 것처럼 실제로 좋은 일을 잘 아는 사람이 왔는데도 활용이 안 되고 모르는 사람이 무식이 용감하다고. 다 연출가가 되어 만들려고 하다 보니 프로그램이 나올 수 없는 것 같아요.
채: 전시적, 행정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리고 연극제의 본질은 예술가들의 교류인데 참가해 보면 자기네 팀 공연하면 부랴부랴 가기 바쁘고.. 실질적 교류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김: 젊은 연극제 같은 경우 예를 들자면 남이섬에서 모아놓고 일주일 서로 보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채: 남의 것을 보고 함께 경험하는 게 최고 아닐까요. 음악 하는 사람들의 경우, 연주시간이 짧으니까 하룻밤 사이에 수십 팀이 다녀가는데, 쭉 서로 보면서 다른 팀 공연할 때 헤드뱅잉 같이 하면서 교류하는데 우리는 연극 특성상 그런 부분이 약하죠.
오: 하나의 예인데, ‘아비뇽’ 가서는 아침부터 보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안 되느냐는 것이죠. 전반적으로 연극계가, 좋게 말하면 여유가 없다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자면 귀찮아해요. 예를 들어 젊은 연극제 같은 경우 다 모아놓고 캠프로 한다든가, 애들끼리 교류하고 분위기를 잘 만들어서 모든 작품을 보는 것을 명예로 생각하고, 그러면 좋은데, 그러기보다는 교수들조차 다른 학교 작품 보라는 소리 안 하고, 자기 학교 작품 끝내고 돌아가기 바쁘고, 이런 식이 되다보니까. 점점 느슨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가면 갈수록 이것 왜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악순환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김: 50개 학교가 하고 있는데 젊은 연극제를. 5군으로 10개 학교씩 나누어서 일주일씩 한 달이면 되잖아요.
오: 한 극장에 3개 학교씩 열흘 동안 하는 방법도 있죠. 그럼 사흘을 기준으로 한 번에 세 학교씩 한 극장에 아홉 개 학교가 들어갈 수 있거든요. 극장 여섯 개면 오십 여개 학교 모두 소화됩니다.
채: 네, 잘 알았습니다. 시간이 모자라는군요. 같은 주제로 다음 달에도 이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
정책기록실은 연극을 비롯한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하여 활발한 의견 개진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게재된 의견에 대한 반론 또한 보내주시면 귀한 원고로 생각하고 적극 수용하겠습니다. |
| |
|
|
|
|
|
기자후기 |
|
이정현기자 jh4017@hanmail.net
새로운 편집위원 선생님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서울 연극이 더욱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 |
| |
| |
|
|
|
|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139 한양빌딩 4층 서울연극협회 E-mail : jh4017@hanmail.net Copyright 2008 Webstage Corp. All rights reserved.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