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먹고, 나물먹고, 물먹으며
장두석
장두석 : 민족의학연구회 회장. 소년시절 심한 간질환과 폐수종 등으로 입산, 산 생활을 통해 병이 완치되는 기적을 체험하고 자연의학에 눈떴다. 그 후 전통의학과 민간요법, 동서고금의 의서들을 섭렵하면서 '자연'과 '생활'에 기초를 둔 민족의학의 체계를 세우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지금은 1년에 서너차례씩 민족생활학교를 열어 암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 난치병을 앓고 있는 많은 환우들을 건강한 생활로 이끄는 데 힘 쓰고 있다.
건강하게 무병장수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건강하게 무병장수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도 없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각종 난치성 질환이 판을 치고 있다. 가히 '질병의 춘추전국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같은 질병의 홍수시대에 살게 되었는가.
건강하다는 것은 한마디로 인간의 몸이 스스로 균형을 가지고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질병이란 이러한 균형이 깨어지고 몸의 조정능력이 상실된 상태를 의미한다. 뒤틀리고 꼬인 상태다. 태초에 절대자는 모든 것이 이치대로 돌아가게 만들어 놓았다. 이치대로 돈다는 말은 원을 그리며 순환한다는 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원만의 이치도 바로 이런 의미다. 일년은 365일 혹은 366일을 주기로 바뀌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로 한, 냉, 온, 열을 조절하도록 되어 있다. 태고이래 인간은 소우주이기 때문에 우주의 질서와 섭리에 적응해 오며 생물학적 시계(時計)를 머리 한가운데 두고 리듬을 익혀 왔다. 지구공전에 따른 4계에 대해 적응하고 낮과 밤의 환경에 적응해 활동과 수면의 리듬을 취해 왔다. 또 이 리듬에 맞게 호흡은 분 단위로, 심장은 초 단위로, 뇌는 초 이하의 단위로 적응해 움직이는 리듬을 익혀 온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 몸은 머리털 하나 발톱 말단까지 모두 민주적 조직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의해 주어진 몸의 민주적 구조를 파괴한 댓가로 우리가 얻은 첫번째 병은 '역천병'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은 '민족병'이다. 19세기말 일본 군국주의가 이 땅을 침입한 이후 우리는 굴절의 역사를 살아왔다. 우리 민족문화는 말살되었고, 민족혼은 땅에 떨어졌다. 1945년 일장기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성조기가 들어선 이후에는 미국식 양키문화가 우리 사회를 풍미하게 되었다. 서구식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정착하고, 우리에게 맞지 않은 식․의․주 문화가 판을 치게 되었다. 특히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식생활을 보자. 본디 우리 민족은 풀먹고, 나물먹고, 물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잡식성 채식을 했던 우리의 장은 길다. 채소는 소화, 분해, 흡수, 배설되는 과정에서 인체에 해로운 독소를 많이 배출시키지 않으므로 장이 길어도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서양인은 장이 짧다. 그들은 육류나 가공식 위주의 식사를 한다. 육류나 가공식은 소화, 분해, 흡수, 배설되는 과정에서 독을 많이 발생시킨다. 그러므로 빨리 배설하지 않으면 그 독으로 인해 몸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그래서 장이 짧은 것이다. 또 서북방에 사는 백인들은 기후가 차므로 더운 음식인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장이 긴 우리가 고기를 많이 먹게 되니 장에 고기독, 가공식 독이 쌓이게 되고, 그것이 장벽을 뚫고 혈관에 들어가 혈액을 탁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만병이 시작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이치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겨울에 먹는 쌀밥, 고춧가루, 갓김치, 무 등은 모두 더운 음식이다. 반면 여름에 먹는 수박, 상추, 보리밥, 포도 등은 모두 찬 음식이다. 장이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계절에 맞는 식품을 먹었던 것이다. 여름에 먹는 보리밥에 된장국, 풋고추와 열무김치는 모두 최고의 보약이 아닌가 싶다.
가옥구조도 지역에 따라 다 달랐다. 북쪽의 찬 지역에는 밀집형, 폐쇄형의 가옥을 지었고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개방형이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주택은 모두 서양식이다. 더구나 고층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도 매우 많은데, 자기 동네에서 가장 높은 나무보다 더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은 불안, 초조, 긴장,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어 있다. 이것이 하우스병이다. 4층이상 올라가면 간장도 발효되지 않고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옷문화는 어떤가. 목이 파인 한복을 입으면 절대로 갑상선 기능 이상을 앓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에는 갑상선 앓는 사람이 없었다. 또 사람은 먹는 것만큼 배설하는 것도 중요한데 여성들이 나일론으로 된 속옷과 몸에 꽉 끼는 거들을 입으니 자궁이나 성기의 노폐물이 잘 될리가 없고 부인병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우리 어머니들의 가리고쟁이 문화를 알아야 한다. 설렁설렁 바람이 통해 노폐물을 배설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했던 어머니들의 건강법을 알아야 한다.
세번째로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은 '환경파괴병'이다.
인간은 전 지구를 암에 걸리게 했고 그 대가로 엄청난 질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리 나라도 삼천리 금수강산은 공해강산이 되어, 공기, 물을 비롯한 모든 먹거리들이 오염되어 있다. 인간의 과잉된 욕심이 자본주의로 체계화하여 얻은 병, 그것이 바로 '환경파괴병'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은 '사회병'이다.
우리 사회는 구조구조마다 뒤틀리고 꼬이지 않은 것이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 막혀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고 난리지만 단언컨대 앞으로 제2, 제3의 '삼풍'이 계속 터져 나올 것이다. 군사독재와 재벌이 행한 밀어 붙이기식 개발논리의 후유증은 곳곳에서 건물붕괴로, 대규모의 인명살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사회가 뒤틀리고 꼬여 있는데 어떻게 백성들이 건강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은 '인간성 상실병'이다.
우리는 가히 도덕성 상실, 미풍양속 실종시대에 살고 있다. 이웃끼리 도타운 정을 나누며 공동체적 생활을 꾸려가던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마음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기주의, 파괴주의,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단지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식이 아비에게 칼을 들이대고, 아비가 일가족을 몰살시키는가 하면 부모 모시는 데도 이해득실을 따진다.
인성과 관련하여 나는 여성들에게 당부하고자 한다. 특히 청소년들의 탈선이 크게 문제되고, 어린 아이들이 심장병, 당뇨, 암, 간질 등 난치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것은 출산, 육아와 깊이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텃밭이다. 어머니 건강이 아이 건강이므로 어머니는 아이를 가지면 특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 미혼시절의 인공유산은 아이로 하여금 '사형장'에서 크게 만드는 것과 같아, 아이정서를 불안하게 한다. 또 아이를 잘게 다져서 뽑아내는 수술과정에서 어머니의 자궁은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얻게 되고 그 찌꺼기들이 각종 부인병의 원인이 된다. 아이는 반드시 자연분만해야 한다. 순산을 위한 각종 운동법을 열심히 행하고 쪼그리고 앉아서 변이라도 보면 순산할 수 있다. 옛날 어른들이 아이가진 각시에게 기어라, 청소해라, 절을 많이 해라했던 것은 아주 지혜로운 것이었다. 또 아이는 모유와 어머니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여 키워야 사랑을 알고 인성이 바르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문명과잉, 영양과잉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는 고민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배설할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양이 과잉되니 노폐물이 정체되고 숙변이 쌓여 신체 각 부분의 기능 이상을 가져온 것이 아니겠는가. 영양이 부족한 것은 채워주면 되지만 지나친 것을 빼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바꾸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교육계 지도자들이 모두 모여 사회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 잘못을 찾아내고 과감하게 바꿔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연순환의 원리,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지혜가 아니면 결코 우리 사회의 환란은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자라는 원리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나무 이파리가 상하면 뿌리부터 다스려 주어야 나무가 살아나게 되어 있다. 환자의 몸도, 우리 사회도 모두 같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치료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풀먹고, 나물먹고, 물먹으며 욕심없이 순천하며 살아온 조상들의 식․의․주 생활을 찾아야 한다. 우리 몸에 맞는 신토불이식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구조가 아니면 안된다. 강남의 유자가 강을 건너오면 탱자가 된다. 우리식으로 절장보단(截長補短)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결국은 나를 넘어 나와 이웃, 더 나아가 국가와 민족이 일체화된 '공동체적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간디에게 한 서양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왜 평생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길을 걸었느냐고, 그때 간디는 대답했다. 나는 남을 위해 희생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나 자신이 좋아서 그 일을 한 것이라고. 내 이웃이, 내 민족이 고통받는 현실 속에서 나만 편하다고 그것이 진정 편한 길인가하고 그는 반문했다. 그 현실에서 가장 행복한 선택은 간디에게 있어 민족의 고통받는 현실을 극복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보면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이 있다. 생사의 초연한 경지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의연한 태도로 무위 자연의 조화를 타고 실상(實相)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일 게다. 무릇 인간의 노쇠나 자연사는 신비로운 생명조화의 물결을 타는 것이다.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천명을 알고 천명을 즐기는 것이 곧 건강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