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공처럼 통 통 튀는 겨울의 한국 그린은 골프 매니어에게는 색다른 골프의 맛이지만 역시 골프는 그린에 공을 세울 수 있을 때가 제 맛이다. 한 겨울에 반팔로 골프를 즐길 곳이 어디일까 찾아보다가 값도 저렴하고 또한 108홀 라운딩이라는 광고 문구에 눈이 고정되어 새로운 골프투어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해남도를 가기로 했다.
골프채를 낱낱이 확인받아 짐을 부치는데 한 시간을 소요한 우리 4팀 일행이 대한항공으로 인천공항을 떠난 것은 저녁 8시였다. 만석인 비행기 좌석은 줄 잡아도 300명 이상이었는데 거의 골프 투어를 가는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라운딩 중에 알았지만 이 기간동안 해남도의 골프장은 거의 한국사람 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남도의 골프장 지도
한 시간의 시차가 있는 해남도의 삼아 국제공항에 내린 것은 현지시간으로 자정 무렵이었는데 우리가 묵은 강락원 호텔은 공항에서 한시간 반을 더 가야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해남도는 우리나라 경상남북도를 합한 정도 혹은 제주도의 열배정도의 크기라고 했다. 인구는 약 700만 정도이며 지도상으로 보면 닭 모양의 중국이 알을 낳으면 떨어질 위치라는 해남도에는 9개의 골프장이 있으며 아 열대성기후로 겨울에도 15도를 내려가지 않으며 여름도 그렇게 덥지 않다고 한다.
강락원 리조트
새벽 한시 반에 도착한 강락원 호텔은 리조트 호텔이어서 2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넓게 퍼져 있었으며 온천지역이어서 노천 온천을 겸한 실외 풀장이 한 밤이지만 아름다운 조명 속에 우리가 묵는 방 앞에 펼쳐 있었다. 우리는 피로도 풀 겸 온천 풀장에 들어갔는데 수영복을 준비 못하고 간 우리 일행은 비 정규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했다. 다음날도 그 곳에서 수영을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수영장 관리에 의하여 쫓겨나왔는데 그 이유는 복장 불량이었다.
첫날은 27홀이 예정되어있었다. 이국에서의 첫날은 피곤했지만 잠자리가 설뜰하여 푹 잠이 오지 않았다. 모닝콜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호텔을 한 바퀴 산책을 하고서야 식당에 첫 식사가 나왔다. 잠이 부족해서 피곤했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골프장을 향하는 마음은 가벼웠다. 고무나무와 야자수가 울창한 강락원 골프장에 도착한 것은 9시 경. 한 친구가 서울에서 새벽골프가 싫어서 여기 왔는데 이곳에서도 새벽 골프라고 툴툴댔다.
강락원 골프장
강락원 골프장은 18홀이다. 티는 모두 열어 놓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고,라운딩 전에 캐디와 말을 해보니 겨우 거리나 알아들을 정도였다. 비교적 쉬운 코스였고 아웃 코스 첫 par 5인 홀은 코스를 둘로 나누어 한쪽은 3온 작전으로 다른 하나는 2온 작전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되어있어서 재미를 더했다. 러프는 길어서 들어가면 공을 찾기 어려워 로스트 볼이 빈번했다. 그린은 거칠어서 속도도 느리고 라이도 일정하지않았지만 주변 운치에 묻혀 즐거운 라운딩이었다.
9홀을 마치고 점심을 클럽하우스에서 간단한 뷔페로 먹는데 비가 내렸다. 이때가 건기여서 비가 왔지만 곧 그쳤다. 식사 후 이어서 18홀을 돌았다. 160야드의 아일랜드 그린의 par 3는 이 골프장 중 가장 아름다운 홀이다. 저녁노을이 반사되어 붉게 일렁이는 물결위의 파란 그린은 정말 보기 좋았다.
이곳에서는 캐디피 이외로 캐디 팁을 18홀 기준 5불정도 주게 되어있었다. 캐디는 고맙다고 우리 버스가 떠날 때까지 차 옆에 서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얼굴에 가득하다.
저녁은 pool side 뷔페였다. 다양한 바비큐 요리와 함께 풍부한 열대 과일로 포식을 했다. 이런 분위기에 술이 빠지면 안 되는 법. 그곳 술인 칭따우 맥주와 한병에 3000원 밖에 하지 않는 죽엽청주를 몇 잔 마셨더니 온 세상 걱정이 남국의 하늘을 수놓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을 따라 아스라이 사라진다.
남연만 골프장
둘째 날 아침에 남연만 골프장을 향해 호텔을 나섰다. 약 30분을 달리니 오른 쪽에서 바다가 우리 버스를 따라 온다. 말 그대로 남쪽 제비 곶이라는 이곳의 경치는 정말 좋다. 첫 홀 티 박스에 오르니 언덕에서 내려치는 par 5홀인데 오른쪽은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이 이어진다. 슬라이스가 심하게 나면 수영복입고 골프채를 휘둘러야 할 것이다.
둘째 홀은 par 3인데 그린 주변이 벙커로 쌓여있는데 벙커라기보다는 해변의 모래사장이라는 말이 맞으리라. 셋째 홀도 바다를 끼고 도는데 바람도 없어서 골프를 즐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멋진 샷을 날린 우리 팀 친구가 카트에 오르며 내게 하이 파이브를 한 후 "지금 이 순간에는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고 했다.
다섯째 홀에서 작은 사고가 났다. 카트 뒤에 실었던 내 캐디백이 카트가 출발하면서 끈이 풀려 땅에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아끼던 내 드라이버의 샤프트가 부러져버렸다. 할 수없이 일행들의 드라이버를 빌려서 칠 수밖에 없어서 공은 이리 저리 날라 갔지만 여러 종류의 채를 쳐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개개 브랜드의 채의 느낌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운동이 끝난 후 사무실에 가서 이를 이야기 했더니 인상좋게 생긴 골프장 사장은 내가 출국 전에 보상을 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며 또한 그 약속을 지켰다.
인 코스는 마운틴 코스로 아웃 코스보다 단조로운 편이었지만 정말 긴 코스였다. 드라이버를 잘 쳐도 파 온을 하기 위해서는 또 3번 우드를 들어야 했다. 우리는 저녁 어두워져서야 36홀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저녁은 8가지 요리가 나오는 중국식으로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났지만 내 식성에는 맞는 편이었다. 오늘 묶는 호텔은 5성급의 최고급 호텔로 산해천 주점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방은 오성급 호텔의 품격을 그대로 갖추고 있었다. 식사 후 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20불을 주었는데 한 시간에 걸친 마사지를 받고 나니 피로가 싹 가시는 듯 했다.
셋째 날은 아룡만 골프장에서의 18홀. 우리가 라운딩한 네 골프장 중 가장 관리가 잘 되어있고 그린도 완벽했다. 보기 좋게 조경된 야자수 나무는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하며 홀의 변화가 많아 비슷한 홀이 하나도 없었다. par 3도 길거나 까다롭게 디자인 되어 있어서 파 세이브가 쉽지 않았다. 긴 연못을 따라 만든 par 5홀은 아룡만의 진수였다. 두 번째 샷을 물을 넘겨 과감하게 공격하거나 물을 따라 샷을 하여 긴 세 번째 샷을 남겨 두거나 해야 했다. 다음에 꼭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골프장이다.
마지막 해남도에서의 밤이었다. 저녁은 해산물 요리로 특식을 했다. 랍스터와 게, 그리고 각종 생선 요리와 함께 몸에 좋다는 뱀탕까지 나왔다. 포만감을 느끼며 해남도 안내책자에서 꼭 한번 해보라는 전신 안마를 받았다. 천장에 철봉 비슷한 것이 설치가 되어있어서 안마사는 거기 매달려 엎드린 우린 등을 시원하게 발로 마사지해 주었다. 마사지 후 가라오케를 갔는데 이 곳이 공산주의를 했던 중국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7층의 건물은 모두 유흥주점이었다. 아래층은 나이트 클럽이었고 2층의 큰 가라오케의 방에서 우리를 서빙하는 여 종업원들은 양담배를 피고 청바지를 입고 삼성 폴더형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 노래와 중국노래를 번갈아 들으며 이젠 “이즘”이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마지막 날은 국제 일출 골프장에서의 27홀로 예정되어있었다. 10시 쯤 도착한 골프장에는 가이드의 말과는 달리 카트가 없었다. 그 동안의 누적된 피로와 어제의 술이 겹쳐 카트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믿을 건 오로지 내 두 다리 밖에 없었다.
첫 홀은 내리막인데 버디성 파로 마무리 한 후 둘째 홀도 빌린 드라이버가 잘 맞아서 쉽게 파. 셋째 홀도 파 .... 공이 잘 맞으니 돈도 술술 들어오고 따라서 힘도 별로 들지 않았다. 물론 나한테 돈을 잃고 있는 내 친구는 힘든 모습이 역력했다. 아마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체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재력 때문인가 보다.
국제 일출 골프장의 백미는 인코스 7번 홀이다. 드라이버를 250미터 이상 보내야 150미터 앞까지 위치한 연못을 넘겨 par를 잡을 수 있게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페어웨이 주변으로 나무가 많아서 정확하게 치지 않으면 그 대가를 꼭 치르게 설계되어있다. 그린은 페어웨이에 비하여 잘 관리 된 편이다.
18홀이 끝났는데 아무도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27홀을 전원이 걸어서 라운딩했다. 4일 중 가장 더운 이날은 낮에는 26도 이상 되는 것 같았다. 코코낫 주스를 시작으로 물을 몇 리터는 마신 듯 했다.
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해 본다. 거의 하루에 잠을 서 네시간정도 밖에 못 자면서 108홀을 4일에 도는 이런 무리한 일정을 즐거움으로 행하는 것은 왜인가 ?
골프에 미쳤기 때문이다. 음! 아니지. 점잖게 이야기해야지. 나는 골프 매니어이다. 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