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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고개(珍古介)>
어복쟁반을 겨냥하고 갔는데, 곱창전골로 만족해야 했다. 양이 너무 많아서다. 곱창전골에서도 왜 유명한 집인지 보여준다. 진한 맛이 일품이다. 보쌈김치도 자랑할 만하다. 외국인에게 내놓기에 부족함이 없는 충무로의 역사이고, 한국음식의 백과사전이다. 어복쟁반을 위해 다음을 기약한다.
그 다음날이 운좋게도 빨리 와서 어복쟁반 먹어볼 기회가 생겨 맨 아래 부기한다. (2021.3.26.)
1.식당 얼개
상호 : 진고개
주소: 서울시 중구 충무로 19-1
전화 : 02) 2267-0955
주요음식: 어복쟁반, 소불고기, 곱창전골 등
2. 먹은날 2021.2.24.저녁
먹은음식 : 곱창전골 1인 25,000원
3. 맛보기
맛이 진하다. 국물도 진하고 곱창도 진하다. 곱창에서는 곱이 어디까지 나와 국물도 온통 곱 맛이 나도록 하고, 곱창 건더기를 씹어도 육즙과 곱창 쫄깃한 맛 사이로 온통 곱맛이 감싸안는다. 곱창이 왜 곱창인지 확실히 알려준다.
들어가는 채소도 다양하다. 호박, 쑥갓, 연근, 당근,배추, 양파, 팽이, 대파 등등이 어울려 깊은 맛을 낸다.
국물 맛은 곱창이 지배한다. 곱이 진하게 국물이되어 걸쭉하게 한바탕 맛을 뽑아낸다.
만두를 제일 나중에 넣고 끓여 전골 맛을 즐기다가, 나중 면을 넣어 면발 맛을 즐긴다. 진한 국물이 아까웠는데, 면으로 국물을 담아 먹을 수 있어 다행이다.
자랑하는 보쌈김치, 명불허전이다. 남쪽 명선헌만은 못해도 나름의 개성이 있다. 고기가 양념으로 쫄깃거리며 씹힌다. 배추는 사근거리며 탱탱하며 미끈한 맛을 낸다. 국물의 시원하고도 윤택한 느낌이 우아한 느낌을 준다. 밤도 잣도 보인다. 국물도 흡족하게 배추를 담그어 국물맛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오이와 고기 양념이 풍부한 국물맛에 담겼다.
다른 반찬이 양에 차지 않는 것은 김치로 정성이 몰려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보쌈김치라는데 배추가 주종이다. 조금 특별한 보쌈이다. 아래 보쌈김치에 대한 설명에서 다시 확인 바란다.
물김치는 맛이 좀 달다. 깊은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목이버섯호박꼬지무침이다. 어묵도 보인다. 그러나 국물 일부가 어려 있고 너무 차가운 느낌, 금방 만든 음식은 아닌 거 같다. 때를 못 맞춘 것이 조금 서운하다. 호박꼬지도 정상의 맛은 아니다. 조금 더 물렀다. 목이가 오히려 제맛을 낸다. 식재료의 이런 조합은 별로 만나지 못했다.
무저림도 조금 단 맛이 강하다. 익지 않는 생채인데, 단 맛이 방해가 되어 제맛 느끼기가 힘들다.
4. 먹은 후
1) 진고개-혼마치-충무로
진고개는 중구 명동에 있었던 고개로, 옛 중국대사관 뒤편에서 세종호텔 뒷길까지 이어지는, 지금은 충무로 2가로 불리는 길이다. 중간에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냇물이 수량이 적은 건천이어서, 폭우로 수량이 늘면 남산에서 내려온 토사가 좌우로 퍼져 진고개 일대가 진흙탕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진흙 고개, ‘니현(泥峴)’이라 하는 진고개가 되었다. 선비들이 살던 남산골이 바로 이 진고개다. 남산골 샌님을 '딸깍발이'라고 부른 것은 샌님들의 나막신 소리 때문이었는데, 진흙탕을 다니기 위해 나막신을 신을 수밖에 없었다고도 한다.
진고개 길은 구한말 초기에는 공사장의 일본 인부들로부터 시작하여 음식점과 각종 일본 상점 등의 상업이 활성화되었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마치 일본의 한 도시인 것처럼 일본 상점과 일본인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진흙이 문제여서 1920년경 일본공사관이 주도해 상인들의 자금으로 흙을 2.5미터가량 파내고, 길 아래에 하수관을 묻어 진흙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였다. 이후 일본인들은 진고개를 기점으로 서울 주요지역으로 활동무대를 확대해나갔다.
일본인이 이 지역에 자리잡게 된 것은 1885년 일본의 곤도 대리공사가 조선정부로부터 명동성당 후문 또는 진고개 일대를 일본인 거류지역으로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임진왜란 때 한양을 공격하는 왜군의 주둔지가 남산에 있어서, 그곳을 왜성터라고 불렀는데, 이 일대에 거주하겠다는 사유가 짐작이 된다.
진고개 등 충무로 일대는 1914년부터 일본인들이 붙인 이름인 본정통(혼마치도리, 本町通)라고 불리다가, 해방 이후 1946년 일제식 명칭을 개명할 때, 이순신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로 바꾸었다. 본정은 1정목에서 5정목까지 있었다. 정(町), 정목(丁目), 통(通)은 일본식 행정단위 명칭이다. ‘통’은 주변을 아우르는 거리를 뜻하는 말이다. ‘본정(本町)’은 '으뜸 거주지'란 뜻으로, 보통 한 도시의 중심이 되는 거리에 붙이는 이름이다. 오사카, 교토 등 일본 도시에서도, 부산, 청주, 군산 등 한국의 다른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진고개를 일본인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과연 진고개는 일제시대 내내 전성기를 구가했다. 1896년 진고개의 일본인 거류민은 1년 새 두 배 이상 급증한 1839명(500호), 러일전쟁 직후인 1906년에는 1만 명을 넘어서고 경술국치 1910년에는 3만4400명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성부 속의 작은 일본’이 된 것이다.
진고개에서 혼마찌로, 이제 다시 충무로로 바뀐 지 70년이 지났다. 이제는 혼마찌의 흔적도,진고개의 흔적도 찾기 어렵다. 진고개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바로 이 식당 이름 정도가 아닌가 한다. 혼마찌의 흔적은 충무로가 일본 여행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진고개’는 1963년에 문을 열었지만, 일본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식당의 홍보물도 일본어와 영어로 되어 있다. 충무로에 있으면서, 일본 여행객 손님을 맞고 진고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식당이야말로 충무로 역사의 산 증인인 셈이다.
2) 식당 진고개(珍古介) 음식
충무로 식당은 오래전부터 서민 취향이었다. 저렴한 값에 먹을 수 있는, 전통 있는 집들이 좁은 골목마다 가득하다. 그러나 진고개(珍古介)는 조금 특별하다. 일본인 등 외국인에게 유명한데, 내국인도 많이 찾아 내외국인에게 유명하고, 가격이 서민 취향이라기에는 조금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외국인에게 인정을 받아 코로나로 요즘같이 어려운 시절에도 내국인 손님이 가득이다. 단골 손님이 많은 것도 특색이다. 영화거리 충무로에 있어서 영화인도 단골이 많다. 고인이 된 신성일도 40년 단골로 알려져 있다. 내외국인용이라서인지 메뉴가 무척 다양한데, 외국인이 한식이라고 여기는 여러 메뉴에다, 소종래도 다양해 8도 음식을 두루 제공한다. 한식의 백과사전과 같은 식당이다.
소불고기, 어복쟁반과 양념게장, 갈비찜 정식, 오이소박이 정식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일부 음식에는 딸려 나오고 따로 따로 판매도 하는 보쌈김치도 단골들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 생각한다. ‘오이소박이 정식’은 여름 메뉴다.
진고개는 일제강점기부터 쇠고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진고개’의 소불고기도 유명한데 육수형 서울 불고기의 전형, 60년대 맛으로 알려져 있다. 갈비찜 정식은 1인분에 한 냄비씩 푸짐하게 나온다. 진한 간장 맛에 한약재 향까지 난다.
보쌈김치는 개성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개성배추는 줄기가 길고 잎이 넓었으므로 보쌈김치를 만들기 좋아 개발되었으리라고 보기도 하고, 궁중음식이 일반에 퍼진 것이라 보기도 한다.
넓은 배춧잎을 줄기 채 절여서, 배추와 무에 양념과 새우, 생굴, 표고버섯, 밤편, 배, 낙지 등의 여러 가지 고명을 넣고 담근 것을 넓은 배춧잎에 싸서 익히기도 하고, 통배추를 절여 토막으로 썬 것을 넓은 배춧잎에 놓고 줄기의 사이사이에 여러 가지 고명과 양념을 넣어 담기도 한다. 진고개의 것은 후자에 가깝다.
어쨌거나 보쌈김치는 재료도 귀한 것을 넣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김치여서 일반인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개성에는 송도상인 등, 부자가 많아 가능한 음식으로 본다. 서울에서도 퍼졌을 때 부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는 집에서 늘 담궈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미 일반에 퍼졌던 셈이다. 재료는 형편껏 조절하면 되고 만드는 방법을 알기만 하면, 조금 정성을 더하면 되므로 보통사람이 먹기에 그렇게 어려운 음식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보쌈김치라 하면 여러 재료를 넣는 전자의 방식인데 여기서는 후자, 그중에서도 보통 포기김치를 쌈형식으로 담그면서 양념을 고급화한 것이어서 좀 특별하다. 보쌈김치를 내와 상에서 잘라준다.
어복쟁반은 쇠고기 편육을 놋쟁반에 담아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음식으로 평양 지방의 향토 음식이다. 각자의 그릇에 담아 먹지 않고 공동의 큰 그릇에 담아 여럿이 먹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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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지방의 향토음식의 하나이다. 우복(牛腹)의 발음이 와전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일반적으로 평양의 상가에서 생겨나고 발달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남쪽의 설렁탕과 대응되는 북한음식으로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최근에는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전국 곳곳의 여러 집이 이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오이소박이 정식을 먹고, 겨울에 여럿이 모이면 어복쟁반을 먹는다. 이 식당에는 전국 각지의 음식과 계절별 음식, 다양한 식재료 음식이 망라되어 있다. 이것은 외국인을 상대로 할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가 한다. 상해의 한국음식 맛집으로 알려진 한 식당은 100개 정도의 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한국인 체류자도 많이 찾고, 중국인들은 줄을 서서 먹는 집이다. 중국식당 자체가 워낙 여러 가지 음식을 하는 것이 익숙한 중국인들이 한국음식을 골고루 먹어보려는 욕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진고개의 다양한 메뉴는 내외국인 상대의 경영방식의 특색이 반영된 결과라고 하겠는데, 다양한 한국음식을 하면서도 메뉴마다 고유의 특성과 맛을 놓치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것이 결국 식당의 경영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덕분에 충무로의 역사가 되고, 한국음식의 백과사전이 되는 이중의 실적을 거두고 있는 보물같은 식당이 되었다. 한국음식문화 발전에 있어 참으로 중요하고 고마운 식당이다.
<참고문헌>
박성호,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 행간 읽기 3] <미스터 션샤인>과 주사 서병달 사건 (하), 오마이뉴스 18.10.02
김홍준,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 진고개 점령한 일본인, 혼마치로 바꿔 식민화 거점 삼아, [중앙선데이], 2020.11.0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및 기타 사전
기타 서적, 신문기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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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해 유명 한국 음식점 '돈바우' 메뉴 중 일부. (2021.2월 촬영) 메뉴 면수는 모두 20면쯤 된다. 주문하면 빨리도 나온다니 대단한 식당이다. 대부분의 한식집이 이와 비슷하다.
*진고개 메뉴 소개 브로셔
외국인용 브로셔는 일본인 고객이 많은 집답게 영어 일본어 판으로 되어 있다. 진고개(珍古介)라는 진고개 한자어 니현(泥峴)은 발음이 달라 일본인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발음 대로의 한자어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5. 어복쟁반 먹고 나서
2021.3.26. 저녁
주문음식 : 어복쟁반 80,000원
소문난 음식, 어복쟁반. 소 내장과 쑥갓의 향연이다. 국물맛은 개운하고 깊고 부담없고, 특별하다. 이런 국물맛도 있구나 싶다. 쑥갓은 해물과 잘 어울린다 싶었는데, 소고기와 만남이 이렇게 황홀할 줄 몰랐다. 쑥갓의 재발견이다.
중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가지 요리가 다양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것을 보고 '가지의 재발견'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과 달리 가지의 종류가 다양하다. 둥그런 공같이 생긴 가지, 긴 방망이 같이 생긴 가지, 정작 우리 가지같은 것은 많지 않다. 둥근 공같은 가지는 매우 질겨서 튀김 요리에 좋다. 튀겨서 만드는 지삼선(띠산시엔), 하오요우치에즈 등은 모두 둥근 가지를 이용한 것이다. 중국 가지요리 다양성은 가지 다양성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복쟁반의 쑥갓은 평소 먹는 그대로의 똑같은 쑥갓이다. 요리의 다양성인 것이다. 쑥갓요리의 재발견이다.
어복쟁반은 채소 중에서는 쑥갓을 주로 사용하지만, 이외에도 표고 느타리 팽이 등 버섯과 부추, 양파 등이 고루 들어간다.
국물맛의 비결은 누가 뭐래도 질 좋은 소고기와 내장 덕분이 아닌가 한다. 씹으면 날치알 터지듯이 속이 톡톡 터져 나오면서 풍부한 육즙과 식감을 자랑한다. 그것도 허파, 처녑 등등 다양한 부위를 사용한다.
만두, 계란 등도 입맛을 돋운다. 다 먹으면 면을 주문하여 먹을 수 있다. 진미 국물을 머금은 면 맛이 또한 일품이다. 과연 진고개가 자랑할 만한 명품 음식이다.
소종래에 대해서는 다른 지역의 궁궐진상음식이라는 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평양식 전골로 알려져 있다. 서울 다른 음식점은 물론이고 부산 등 다른 지역의 음식점에서도 이 메뉴를취급하고 제법 맛좋다고 소문난 곳도 상당히 있다. 평양음식으로 우리 음식이 다양해지고 풍부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문화에서 기원을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지금 누가 얼마나 향유하느냐가 더 의미있는 것이다. 북한 음식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 음식도 우리 음식을 중심으로 받아들여 더 풍부해지면 그만큼 경쟁력도 더 강화된다.
눈뜨면 매일 새로운 식재료가 채소가게로 들어오는 거 같다. 새로운 식재료는 국내외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중에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운 재료인 경우도 많다. 어떤 조리법으로 더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내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입맛이 중심이고 소종래가 중심이 아니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개발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는 길이고, 사람을 위하는 경쟁은 강화되어 나쁠 것이 없다.
북한음식으로 풍성해지는 우리음식, 그 일단에 어복쟁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