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미투 운동/ 김석수
우리 사회는 지금 미투 운동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멀쩡한 남성으로 보였던 사람이 얼마나 끔찍한 괴물이었는지 실체적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흙탕물이 가득한 저수지 안에 오물이 안 보이다가 물이 맑아질 때 드러나듯이 이곳 저곳에서 괴물이 나타나고 있다. 전도양양했던 미래 권력인 유명 정치인, 유명 극단 연출자, 훈장을 받았던 시인, 국제 영화제에서 큰 상을 탄 영화 감독, 잘나가던 대학 교수 등 수 많은 우리 사회 유명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위계에 의한 성폭행 혐의자'로 추락하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괴물’들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는 너무 기만적인 사회에서 살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잔치를 할 때 음식 냄새를 맡고 부엌에 들어갔더니 ‘사내는 이곳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란다.’는 할머니의 꾸지람을 듣고 놀랐다. ‘왜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어른이 되어서 아내 설거지를 도와 주었을 때 어머니는 못마땅해했다. 부엌일은 아녀자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성 중심 문화에 매우 익숙해왔다.
남성과 여성의 성차에는 단순한 생물학적 요인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면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장난감과 노는 것도 다르다. 남자 아이들에게 모형 총이나 자동차를 사주는 반면 여자 아이들에게 인형이나 단순한 것을 갖다 준다. 여자애들은 전쟁놀이 같은 과격한 놀이 보다는 줄넘기 같은 부드러운 놀이를 즐기도록 했다.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성역할 분담이 내면화 되도록 한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문화가 지속되어 왔던 바탕에 가부장적인 가족문화가 있다. 우리 전통 가운데 ‘남녀유별’이라는 윤리규범은 사실상 ‘남녀차별’을 의미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남성이 누리는 여러 가지 특권과 기회가 차단된 차별적 접근이 제도화되었다. 여성에 강요된 덕목도 여성 차별에 크게 기여했다. 예를 들면, ‘현모양처’, ‘삼종지도’, ‘수절’,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의 차별적 편견이 전통사회에서 당연한 윤리 규범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남녀유별’의 전통이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다.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특정 남성들의 성폭력은 사회 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다. 언론에서 ‘한국 사회는 강간문화를 사회적으로 묵인해 왔다.’고 한다. 그랬는지 모른다. 유명 연출가 밑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파렴치한 행동을 알면서 묵인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을 애기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묵인하는 문화가 있었다. 미투 운동이 시작되니까 일부에서 ‘우리나라에 그동안 없었던 걸 수입해서 시끄럽게 한다.’고 한다.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불붙고 있는 건 촛불 효과라고 볼 수 있다. 국정농단 세력을 몰아낸 박근혜 탄핵 촛불 이후 일상의 민주주의 실천이 우리 사회 이슈가 됐다. 학교와 직장, 교회와 같은 공동체로 민주주의를 확장해 나아가고 있다. 촛불 이후 직장내 갑질을 비롯한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던 비상식적인 일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면서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미투 운동도 기득권층의 반발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기득권층인 남성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얼마나 공감하고 변화에 적응하느냐에 이 운동의 성패가 달려 있다. 우리 사회 촛불혁명의 완성을 위해서도 남성들이 ’성 기득권층‘ 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본문 첫째 줄에서도 [고친 글]. 고친글이 아니고 고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