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경기옛길 봉화3길(경기 광주역 - > 곤지암역)
봉화3길을 걸어가고자 경강선 경기 광주역 1번 출구로 나와서 들머리인 경안 육교 입구에 이르니 경기 옛길 안내도에 봉화 3길은‘1,000년을 이어온 ‘광주(廣州)’의 세월을 느껴보는 길’이라고 하였다.
천년의 세월에도 그 명칭 고이 간직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온 광주라는 고을은 어떤 도시일까? “광주는 940년(고려 태조 23)에 ‘廣州’라는 지명을 쓰기 시작해 1,000년을 넘게 써온 지명입니다.
넓을 광(廣)을 쓸 만큼 드넓은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수원으로 편입된 일부 면과 서울 강남 및 강동구, 남양주 일부, 지금의 의왕과 군포, 성남, 하남 일대가 모두 광주였습니다.
이렇듯 넓고 광활한 지역이라는 뜻으로 ‘너른 고을’이라 하였습니다. 국수봉 정상에서 광주의 드넓음을 느끼고, 곤지암천에서 세월 속에 간직된 ‘나의 의미’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라고 경기 옛길 안내도는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는데 천년의 세월 속에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그 변치 않는 절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봉화3길의 시작을 외래어가 섞인 ‘경안 브릿지’로 명명한 다리를 걸어가는 것이 씁쓸하였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두고 외래어를 써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줄 모르겠지만 우리말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사물의 명칭에 대해 외래어로 표기하여할 피치못할 사유가 있는 것일까?
‘브릿지’라는 외래어로 인해 첫발부터 무거운 걸음이 되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이 푸른 하늘을 가려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마치 우리의 아름다움 언어를 외래어에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다.
아쉽고 서운했던 마음이었지만 다리의 가운데에 서서 유유히 흐르는 경안천을 바라보니 경안천의 푸르름과 경강선 철교가 어우러진 풍광과 고요한 정적에 쌓인 자연의 성찬에 이내 마음이 상쾌해진다.
경안 육교를 건너니 체육시설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봉화길은 곧바로 갸지 않고 뒤로 돌아 경안천으로 내려가야 한다. 사람은 가던 길을 그대로 하는 습성이 있어 무심코 진행하여 길을 이탈하기 쉬운 곳이었다.
봉화2길의 경안천을 걸을 때의 건너편 천변길을 걸어간다. 천변에는 갈대가 은빛을 발산하고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도 눈에 띈다. 봉화2길의 목현천을 걸을 때 인도하여 주었던 칠사산(△363.7m)이 오늘도 맞아하고 있었다.
도시의 한복판에 있지만 고요한 정적에 쌓인 자연의 향기를 마시며 발걸음이 가벼워지는데 봉화길은 천변길로 조금 더 계속되지 않고 아쉽게도 시내의 도로에 진입하여 중앙로22번길을 걸어간다.
걸어온 경안천과 올라야 할 국수봉을 하나로 연결하여 주는 시내 도로일지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길이다. 도로에서 골목길인 중앙로14번길로 방향을 바꿔 큰 기쁨의 샘물교회 앞에서 바라던 산길로 진입하였다.
산기슭에는 온양 방씨의 묘동이 있었고 돌로 쌓아 만든 만석탑이 있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안내문이 없어 알 수 없었다. 정성을 담아 소원을 이루고자 담아 탑을 쌓는데 만석탑을 쌓은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아니다, 탑을 쌓으며 소원을 빈다고 그 소원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원은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피눈물이 나는 노력을 다하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요 탑을 쌓는 것과 소원과는 별개의 일인데 탑을 쌓아을까 ?
사연을 알 수 없는 만석탑에서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망상 속에 산등성이를 오르는데 호젓한 산길은 사람의 통행이 드물어 혼자 오기에는 왠지 두려울 것 같았는데 야자 매트를 깔아 놓아 걸어가기에 편하였고 경사가 급한 곳에는 계단을 설치하여 놓았지만, 예상보다 계단길이 많은 힘든 등산로였다.
계단을 오르고 나면 야자 매트가 깔린 산길을 올라야 하고 흙길을 오르고 나면 계단을 올라야 하는 야자 매트가 깔린 숲길과 계단이 반복되는 등산로에서 다소 숨이찰 때 국수봉△373m에 이르렀다.
국수봉國守峰은 나라를 지키던 산봉우리'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봉화로 남한산성과 연락이 이루어졌고 병자호란 때에는 청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그때 군사들이 밥을 지어 먹던 곳이 발견되어 '식골(食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병자호란때에는 청군과 맞서 용전분투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애석하게 패퇴하였는데 전사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비석을 산악인들이 뜻을 모아 세워놓았다. 전망대에 올라 광주 시내를 바라본다.
500m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산봉우리이지만 이곳에서 광주시가지 전체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의 명소였다. 끝없이 펼쳐있는 광주시가지를 바라보니 ‘너른 고장’이 바로 힘찬 기운이 생동하는 도시로 가슴에 와닿는다.
힘찬 기운이 불뿜는 광주임을 느끼며 두 눈을 멀리하니 영장산413.3m, 만덕산506.3m, 검단산534.7m의 산줄기가 뻗어있다. 힘차게 뻗어간 산줄기가 감싸 안은 곳에 넓은 마을이 들어섰으니 그 고장이 어찌 힘차게 웅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작은 거인 같은 국수봉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500m도 되지 않는 고만고만한 산들이 올망졸망 솟아있울지라도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뻗어간 장쾌한 산줄기에서 웅혼한 기상인 바로 우리 민족의 심성인 은근과 끈기로 다가왔다.
산은 정직하다. 오르면 내려와야 하기에 국수봉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고 내려간다. 산등성이는 평탄한 산책길로 계속되었다. 국수봉에 올라올 때는 혼자 오르기에 망설이는 등산로였지만 반대 방향은 사랑이 넘치는 길이었다.
날씨도 걸어가기에 좋은 20도이고 길은 완만하고 평탄한 숲길, 이런 곳을 걸어갈 때는 산과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걸어가면 서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 같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가게 하기에 콧노래를 부른다.
이별의 노래 : 박목월 시. 김성태 작곡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묘하다고 할까? 항시 기분에 젖었을 때 산에서 내려온다. 조금은 더 즐기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하는 것이지만 인생에 100%를 만족할 수 없다면 조금은 남겨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국수봉을 내려서니 대주 피오레 아파트가 있었다. 여기에서 봉화길은 광주 초월읍 도평 초등학교 앞의 도로를 걸어 곤지암천으로 진입할 수 있고 아파트 단지의 길을 따라 곤지암천에 도달할 수 있다.
곤지암천에 이르는 도로이기 때문에 어는 길로 걸어가도 서로 만나는 길이지만 공적인 길인 초등학교 도로를 따라 걸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초등학교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여 아파트 단지 길로 걸어갔다.
곤지암천은 나타났으나 천변으로 내려가지 않고 데크를 설치한 둑길에서 곤지암천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곤지암천은 경기도 광주시의 남부에 위치한 앵자봉, 관산, 천덕봉, 정개산, 국수봉 등에서 발원해 유정천, 노곡천, 궁평천, 진우천,· 산이천, 학동천과 합류되어 지월리(池月里)에서 경안천으로 흘러든다. 추곡저수지, 곤지암보, 쌍둥보, 용수보, 지월보, 지월 양수장 등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곤지암천 둑길에서 천변으로 진입하였다. 광주시민이 애용하는 산책로답게 흐르는 물은 바닥을 볼 수 있는 맑은 물이다. 물이 맑으면 내 마음도 맑아진다. 우리의 천이 자연 하천으로서 되돌왔지만 아직 천에 모래톱이 되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천변을 걸을 때면 항시 보고 싶은 모래톱인데 곤지암천에도 보이지 않는다. 흐르는 물소리는 변함없이 내 마음을 씻어주어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지만 모래벌이 생성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항시 떨쳐낼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천변을 걸어갈 수가 있도록 되살아나 보행자 길과 자전거길이 놓여 사람들의 통행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자연 하천으로써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길을 따라 걷는 것이 좋아 한강 서울 수계인 팔당댐에서 행주산성까지 걸었고, 거주지인 고양시를 흐르는 공릉천과 창릉천을 걸었는데 둘레길을 걷고 나서 그 지방 사람들이 애용하는 하천을 걸을 수가 있어 비록 힘은 들을지라도 설레는 마음으로 걸어간다.
곤지암천도 예외 없이 일자의 곧은길로 뻗어있고 오래 걸으면 발이 아픈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이다. 어떠한 마음으로 걸어가야 할까? 경기 옛길 조성자는 ‘곤지암천에서 세월 속에 간직된 ‘나의 의미’를 찾아보시길 바란다고 하였다.
세월 속에 나의 의미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가슴에 품고 천변을 걸어가는데 곤지암천을 흐르는 물은 쉬지 않고 소리를 내며 경안천을 향하여 흘러간다.
가뭄 때에는 천변에까지 물이 넘칠 기세다. 문득 고전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서자가 말하기를 성인 공자께서 자주 물을 칭찬하여 물이여! 물이여! 라고 말씀하셨는데 물에서 취한 것이 무엇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근원이 있는 샘물은 밤낮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며 웅덩이를 가득 채운 다음에야 앞으로 나아가 나중에는 바다로 흘러간다. 근원이 있는 것은 이와 같으니 바로 이것을 취하신 것이다.
만약 근원이 없다면 칠팔월 사이에 빗물이 모여 크고 작은 구덩이와 도량이 가득 차지만 날이 가물면 서서 기다릴 만큼 금방 말라버린다. 그러므로 명예가 실제보다 지나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
그렇다. 사라져 가는 시간은 강물과 같다.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 다시 돌아오지 세월 속에 후회뿐인 삶을 살면서 또다시 되풀이할 것인가? 라고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꾸짖을 때 나옹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靑山兮要我’란 노래가 입가를 맴돈다.
청산은 나를 보고 靑山兮要我
靑山兮要我以無語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聊無愛而無憎兮 :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如水如風而終我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아, 젊은 시절에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60대의 중년에 우리 땅을 걷고 있는 것은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니요. 이 시대를 살면서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마땅히 실천하여서 할 의무로 가슴에 와닿으니 세월 속에 나의 삶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곤지암천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종착지인 곤지암역으로 진행할 때 소머리 국밥으로 전국적임 명성을 얻은 지역답게 소머리국밥 거리가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온통 소머리 국밥 식당뿐이다.
광주는 예로부터 경상도 지방에서 과거 보러 한양에 갈 때 지나던 길목으로서 이 지방에 숙식할 때 주식으로 먹던 음식이 소머리 국밥이었는데 그 맛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어 곤지암하면 소머리 국밥이 생각나고 소머리 국밥하면 곤지암이 되었다.
● 일 시 :2024년 10월27일 일요일 흐림
● 동 행 : 김헌영 총무
● 동 선
- 09시30분 : 경기 광주역
- 10시25분 : 국수봉
- 11시05분 : 국수봉 기슭(대주 피오래 아파트)
- 11시55분 : 초월역
- 12시50분 : 곤지암역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4.4km
- 소요시간 : 3시간20분
첫댓글 아름다운 우리 둘레길! 나라사랑은 우리 국토의 모습을 잘 아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둘레길 많이 걸어 건강도 지키고 애국심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