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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 어록(達磨大師 語錄)
달마대사어록(達磨大師語錄) - 관심론(觀心論)
제1 관심(觀心) : 마음을 관하다
제2 심구염정연기(心具染淨緣起) : 마음에는 깨끗한 마음과 더러운 마음이 있다
제3 진심인망불현(眞心因妄不現) : 진실한 마음은 무명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제4 선법이각위근자(善法以覺爲根者) : 착한 법은 깨달음으로 그 근본을 삼는다
제5 법이삼독위근(惡法以三毒爲根) : 나쁜 법은 삼독이 뿌리이다
제6 정명육적(正明六賊) : 육적을 분명히 밝힌다
제7 단삼독근(斷三毒根) : 삼독의 뿌리를 끊어라
제8 요출삼계(了出三界) : 깨달으면 삼계를 벗어나리라
제9 삼계원인(三界原因) : 삼계라는 것은 삼독이다
제10 미현육취(迷現六趣) : 미혹하면 육취가 나타난다
제11 섭심해탈(攝沈解脫) : 마음을 거두면 해탈이다
제12 즉삼독현아승지(卽三毒現阿僧祗) : 삼독에 의하여 아승지로 나타난다
제13 명삼취육바라밀(明三聚六波羅蜜) : 삼취와 육바라밀을 밝히다
제14 심정즉불토정(心淨則佛土淨) : 마음이 깨끗하여지면 불국토도 깨끗하여 진다
제15 중명육도(重明六度) : 육도를 거듭 밝히다
제16 명법유(明法乳) : 법유를 밝히다
제17 수조성전(修造聖殿) : 성전을 바르게 지으라
제18 주사불상(鑄寫佛像) : 불상을 조성하는 법
제19 오분향(五分香) : 오분 법신을 향에 비유하다
제20 산화(散花) : 꽃을 뿌리는 것
제21 명등(明燈) : 등불을 밝히다
제22 행도(行道) : 불도를 수행하는 것
제23 재계(齋戒) : 몸과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제24 재식(齋食) : 공양하는 것
제25 단식(斷食) : 식사를 하지 않는 것
제26 예배(禮拜) : 예배하는 법
제27 세욕(洗浴) :목욕하는 법
제28 명염불(明念佛) : 염불의 의미를 밝히다
제29 회상귀심(會相歸心) : 형상은 마음으로 돌아감을 알아라
제30 망영불상탑묘(妄營佛像塔廟) : 망령되이 불상이나 절을 조성하지 말아라
제31 결귀관심(結歸觀心) : 마음을 관하도록 당부하노라
제1. 마음을 관(觀)하다(觀心 : 관심)
달마대사께서 혜가대사의 물음에
"내가 관(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포함하고 있으며 개념적 사고로 사려, 분별하지 않고 곧바로 궁극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니라." 하신 후
다시 말씀하시길,
"마음이라는 것은 만법(만유일체, 모든 법, 모든 존재)의 근본이니라.
일체의 법이 오직 마음에서 생기므로 마음을 깨달으면 모든 수행을 다 갖춘 것이 되느니라.
비유하자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가 모두 뿌리로 인하여 있으므로 나무를 키우려는 사람은 뿌리를 두어야 살릴 수 있고 나무를 베어 버리려는 사람은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일 수 있듯이 마음을 깨닫고 도를 닦으면 공을 적게 들여도 쉽게 이룰 것이고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할 뿐 이익이 없으리라.
그러므로 알아라.
일체의 선과 악은 모두 자기의 마음으로 생겨나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는 것은 결국 옳지 못한 것이니라."
제2. 마음에는 깨끗한 마음과 더러운 마음이 있다(心具染淨緣起 : 심구염정연기)
또 대답을 하셨다.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 원소와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이 본래 공하여 『나』가 아님을 알아야 하며 자기의 마음에 일어나는 작용이 두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무엇을 두 가지라 하는가 하면, 하나는 청정한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더러운 마음이다.
청정한 마음이라는 것은 번뇌가 없는 진여의 마음이고, 더러운 마음이라는 것은 번뇌가 있는 어리석은 마음이니라.
이 두 가지 마음은 본래부터 저절로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어떤 인연으로 어울릴 수는 있으나 서로를 생겨나게 하지는 못하느니라.
청정한 마음은 항상 선인(善因 : 선근)을 좋아하는데 더러운 마음은 항상 악업을 생각하느니라.
만일 진여를 스스로 깨달아 깨달음이 더러운 마음에 물들지 않으면 성인이라 하는데 마침내는 모든 괴로움을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을 받을 것이고 만일 더러움에 유혹을 받아 악을 지어 그것에 묶이고 덮이면 범인이라 하는데 삼계에 빠져 갖가지 고통을 받을 것이니라.
왜냐하면 마음이 더러움에 덮여 진여의 본체를 가렸기 때문이니라.
제3. 진실한 마음은 무명(無明)때문에 나타나지 않는다(眞心因妄不現)
십지경에 이르시길
'중생의 몸 안에 금강같은 불성이 있는데 해와 같이 밝고, 원만하고, 크고, 끝이 없이 없는데 오음(오온)의 먹구름에 덮여 있으므로 병 속의 등불빛이 드러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셨고
열반경에 이르시길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갖고 있는데 무명에 덮이어 해탈하지 못한다' 하셨느니라.
제4. 착한 법은 깨달음으로 그 근본을 삼는다(善法以覺爲根者)
불성이라는 것은 깨달음이다.
스스로 깨달아 깨달은 지혜가 분명하여 덮이었던 것을 벗어나면 해탈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일체의 선은 깨달음이 그 근본임을 알 수 있느니라.
깨달음의 뿌리에 의하여 모든 공덕의 나무가 드러날 수 있으며 구경(열반)의 열매가 이루어지니 아와 같이 마음을 관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 하느니라."
제5. 나쁜 법은 삼독(三毒)이 뿌리이다(惡法以三毒爲根)
혜가대사가 여쭙기를
"어떤 것이 무명의 마음과 모든 악의 근본(뿌리)이 되는 지를 모르겠습니다." 하니
달마대사가 대답하셨다.
"무명의 마음이 팔만 사천의 번뇌와 정욕(여러가자의 욕망)이 있어서 항하의 모래수 같은 온갖 악이 한량없고 끝이 없지만 요점만을 말하다면 모두다 삼독이 그 근본이 되느리라.
이 삼독이라는 것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이니라.
이 세 가지 나쁜 마음이 본래부터 일체의 악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큰 나무가 뿌리는 하나이지만 생겨나는 가지와 잎은 그 수가 끝이 없는 것과 같느니라.
삼독의 뿌리에서 하나 하나의 뿌리마다 온갖 악업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앞서 말한 것보다 백천만억 배이므로 비유를 할 수가 없느니라.
제6. 육적을 분명히 밝힌다(正明六賊)
이와 같이 삼독이 하나의 본체에서 삼독으로 있다가 육근에 응하여 나타나면 육적이라 하느니라.
육적이란 것은 곧 육식이니라.
육식(안, 이, 비, 설, 신, 의의 육근이 색, 정, 향, 미, 미, 촉, 법의 육경에 대하여 알음알이를 냄)이 여러 감각기관을 드나들므로 인하여 온갖 경계에 빠져 자연히 나쁜 업을 만들며 진여의 바탕을 가리우기 때문에 육적이라 하느니라.
일체 중생은 이 삼독과 육적때문에 몸과 마음이 산란하게 흐트러지며 생사에 빠져들어 육취(육도)를 윤회하며 온갖 고통을 받는데 큰 강이 작은 샘을 근원으로 하여 쉬지 않고 흐르다가 마침내 가득히 차면 만리에 파도가 출렁이는 것과 같으니라.
제7. 삼독의 뿌리를 끊어라(斷三毒根)
만약 사람이 그 근원을 끊게되면 온갖 흐름이 모두 쉬게 되느니라.
해탈을 구하는 자가 삼독을 돌려 삼취정계(일체의 악을 끊어버리고 적극적으로 모든 선을 실행하며 널리 중생에게 이익을 베푸는 것)로 만들고 육적을 돌려 육바라밀로 만들면 자연의 모든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되느니라."
제8. 깨달으면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了出三界)
또 대답을 하셨다.
"삼계의 업보는 오직 마음에서 생긴 것이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삼계 안에 있으면서도 삼계를 벗어나니라.
제9. 삼계(三界)라는 것은 삼독이다(三界原因)
탐욕이 욕계로, 성냄이 색계로, 어리석음이 무색계이니라.
이 삼독으로 인하여 모든 악이 생겨나고 업보가 이루어져 육도를 윤회하므로 삼계라 하느니라."
제10. 미혹하면 육취(六趣)가 나타난다(迷現六趣)
또 대답하셨다.
"중생이 정인(佛心印, 자성청정심)을 깨닫지 못하고 미혹한 마음으로 선을 닦으면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세 가지 가벼운 갈래에 태어나느니라.
무엇을 세 가지 가벼운 갈래라 하는가 하면 이를테면 미혹한 마음으로 십선(十善)을 닦으면 망령되이
쾌락을 구하면 탐욕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여 하늘 갈래에 태어나는 것과, 미혹한 마음으로 오계를
지키되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을 헛되이 일으키면 성내는 경지를 벗어나지 못하여 인간의 갈래에 태어나는 것과, 미혹한 마음으로 유위(有爲)에 집착하여 삿된 것을 믿고 복을 구하면 어리석음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아수라의 갈래에 태어나는 것을 말하며 이와 같은 세 가지를 가벼운 갈래라
하느니라.
무엇을 세 가지 무거운 갈래라 하는가 하면 이를테면 삼독의 마음으로 오로지 나쁜 업만 짓는 것이니라.
탐욕의 업이 무거운 자는 아귀의 갈래에 떨어지고, 성내고 원망한 업이 무거운 자는 지옥 갈래에 떨어지고, 어리석음의 업이 무거운 자는 축생의 갈래에 떨어지느니라.
이 세 가지 무거운 갈래와 앞의 세 가지 가벼운 갈래를 합치면 육취가 되느니라.
제11. 마음을 거두면 해탈한다(攝心解脫)
그러므로 알아라.
악업은 마음으로 인해 생겨나므로 마음만 잘 거두어 삿된 것과 악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삼계의
윤회가 저절로 사라져 모든 고통이 없어지게 되므로 해탈이라 이름하느니라.
제12. 삼독에 의하여 아승지(阿僧祗)로 나타난다(卽三毒現阿僧祗)
또 아승지가 무엇인지를 여쭌데 대하여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승지는 삼독의 마음이니라.
호나라에서는 아승지라 하지만 한나라 말로는 수를 셀 수가 없다는 말이니라.
이 마음 속에 항하의 모래수 같은 나쁜 생각이 있는데 하나 하나의 생각마다 모두 일 겁씩이 있느니라.
항하의 모래라 하는 것은 수를 셀 수가 없다는 것인데, 설득으로 생기는 나쁜 생각이 항하의 모래와 같으므로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진여의 성품이 설득에 덮었으니 항하의 모래 수 같은 나쁜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면 어찌 해탈이라 하겠느냐.
지금 탐, 진, 치의 마음을 없앨 수 있으면 바로 삼대 아승지겁을 뛰어 넘는 것이 된다.
말세의 중생들은 우문하여 여래의 깊고도 묘한 뜻인 세 아승지겁의 비밀그런 말씀(숨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렇게 무한히 긴 세월을 보내어야 비로소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말겁(말세)에 수행인을 의심하게 하고 잘못 알게하여 보리의 도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제13. 삼취와 육바라밀을 밝히다(明三聚六波羅蜜)
또 여쭙기를
"삼취정계(三聚淨戒)를 지니고 육바라밀을 행하여야 비로소 불도를 이룰 수 있는데 지금 학자(學者 : 불교의 수행자, 도에 힘쓰는 자, 제자)들에게 '오직 마음 관(觀)하는 법만 지니라' 하시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계행을 닦지 않고 어떻게 성불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대답을 하셨다.
"삼취정계라 라는 것은 삼독의 마음을 누르는 것이니라.
하나의 독을 누르면 무량한 선의 무더기를 이룰 수 있느니라.
취(聚)라는 하는 것은 모인다는 뜻이니라.
삼독의 마음을 억제하면 세 가지 한량없는 선이 모두 마음에 모이므로 삼취정계라 하느니라.
육바라밀이라 하는 것은 육근을 깨끗이 한다는 것이니라.
호나라에서는 바라밀이라고 하지만 한나라 말로는 도피안(저 언덕에 이르름)이니라.
육근이 청정하여 세상의 경계(더러움)에 물들지 않아서, 곧 이는 번뇌에서 벗어나 문득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므로 육바라밀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여쭙기를
"삼취정계라 하는 것은 온갖 악을 끊어야겠다고 맹세하는 것과 일체의 선을 닦아야겠다고 서원하는 것과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여야겠다고 서원하는 것인데 지금 말씀하시기를 오직 삼독의 마음만 눌러라 하시니 어찌 글과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대답을 하셨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은 진실하여 틀림이 있을 수 없느니라.
보살마하살이 과거에 보살이 되기 위하여 보살헹을 닦을 때 삼독을 물리치기 위하여 세 가지 서원을 내어 삼취정계를 지니셨느니라.
항상 계를 닦는 것은 탐욕의 독을 물리쳐 온갖 악을 끊어야겠다고 맹세하는 것이고, 항상 선정을 닦는 것은 성내는 마음을 물리쳐 온갖 선을 닦아야겠다고 맹세하는 것이고, 항상 지혜를 닦는 것은 어리석음을 물리쳐 일체중생을 제도하여야겠다고 맹세힌 것이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계, 정, 혜의 세가지 법을 지키므로 삼독의 악업을 벗어나 불도를 이룰 수 있으니 삼독을 누르면 모든 악이 소멸되므로 『끊는다 』라고 이름하고 삼취정계를 지니면 모든 선이 두루 갖추어지므로 『닦는다 』고 이름하며,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 온갖 수행이 이루어져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여 널리 중생을 제도하므로 『건넌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계행을 닦는 것도 마음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니라.
제14. 마음이 깨끗하여지면 불국토도 깨끗하여 진다(心淨則佛土淨)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여 지면 중생의 마음이 모두 깨끗하여 지느니라.
그러므로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더러우면 중생이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중생이 깨끗하여진다.' 하셨으면
또 말씀하시기를
'불국토를 깨끗이 하려면 먼저 마음을 깨끗이 하여라.
마음이 깨끗하여 지면 곧바로 불국토가 깨끗하여진다' 하신 것이니라.
삼독의 마음을 누를 수 있으면 삼취경계를 자연히 성취하리라."
제15. 육도(六度)를 거듭 밝히다(重明六度)
또 여쭙기를
"육도라는 것은 이를테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입니다.
그런데 방금 말씀하시기를 육근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육도(육바라밀)라 하셨습니다.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니
대답을 하셨다.
"육도를 닦고자 하면 당연히 육근을 깨끗이 하여야 하고 육근을 깨끗이 하려면 먼저 육적을 항복시켜야 하기 때문이니라.
눈으로 봄으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버리면 눈으로 보는 모든 대상을 여의어 마음에 인색함이 없어지므로 보시라 하고, 귀로 들음으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여의면 소리의 경계에 끌려 다니지 않으므로 지계라
하며, 냄새를 맡으므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항복 시키면 향기나 악취에 상관없이 유연하고 자유로우므로 인욕이라 하고, 맛봄으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누르면 삿된 맛을 탐내지 않으며 칭송하고 설법하되 게을리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정진이라 하며, 몸으로 인해 생기는 번뇌를 항복시키면 촉욕(부드러운 의복이나 상대의 피부에 접촉하고 싶은 욕망)에 대하여 초연하여 움직이지 않으므로 선정이라 하고, 생각(인식)으로 일어나는 번뇌를 조복시키면 무명을 따르지 않고 항상 부처님의 지혜를 닦아 공덕을 즐기므로 지혜라 하느니라.
또 도(度)라 하는 것은 운반한다는 뜻이니라.
육바라밀은 또한 배나 땟목 같은 것이라 중생을 운반하여 저 언덕에 이르게 하므로 육도라 하느니라."
제16. 법유를 밝히다(明法乳)
또 여쭙기를
"부처님께서 서말 여섯 되의 우유를 마시고서야 불도를 이루셨다 하셨는데 어찌하여 마음을 관(觀)하기만 하면 해탈할 수 있다 하십니까?" 하니
대답을 하셨다.
"부처님께서 마셨다고 하는 것은 세상의 부정한 젖이 아니라, 진여의 진여의 진정한 법유(法乳 : 어머니의 젖으로 아이가 성장하듯이 스승의 가르침으로 제자가 진보하므로 그 가르침을 법유라 함) 이니라.
서말이라 하는 것은 삼취정계이고, 여섯 되라 하는 것은 육바라밀이니라.
부처님이 도를 이루실 때에 이 청정한 법의 젖을 마신 까닭에 불과(佛果)를 깨달으셨는데 여래께서 세상의 육욕으로 이루어진 더럽고 비리며 누린내 나는 젖을 마셨다 하면 비방이 지나치지 않겠느냐.
여래라 함은 금강과 같이 부수어지지 않으며 번뇌가 없는 진실한 몸이라 세간의 괴로움을 영원히 여의었는데 어찌 이 같이 깨끗하지 못한 우유가 필요하겠으며, 이것으로 어찌 배고픔과 목마름을 면하였겠느냐.
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소는 높은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낮은 습지에 있는 것도 아니니라.
좁쌀이나 보리나 겨나 밀기울을 먹는 것도 아니며 무리와 같이 특별한 소로 그 몸은 자색을 띤 황금색이니라.
이 소라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광명을 두루 비추시는 부처님이시니라.
대자비로 일체를 가엾게 여기시어 청정한 법의 육체에서 이와 같은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의 미묘한 젖을 내어 해탈을 구하는 모든 이를 먹여 기르시니 여래만이 마셔서 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마시기만 하면 모두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얻는 것이니라.
제17. 성전을 바르게 지어라(修造聖殿)
또 여쭙기를
"경전을 보면 성전을 짓거나 부처님의 모습을 만들거나 향을 사르거나 꽃을 흩거나 장명등(밤낮으로 밝히는 등불)을 켜거나 밤낮 여섯차례 예불을 하거나 재계를 지키는 등 온갖 공덕을 닦으면 모두 불도를 이룬다 하셨는데 오로지 마음을 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다 닦는 것과 같다고 하신 말씀은 반드시 허망한 말씀일 것입니다." 하니
대답을 하셨다.
"중생들은 우둔하여 지혜가 좁고 용렬하며 깊고도 깊은 묘한 이치를 깨닫 못하므로 수도 없는 방편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시려고 유위의 일을 빌려 무위의 이치를 나타내신 것인데 그대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안으로 수행하지 않고 밖으로만 구하며 복을 바라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니라.
가람이라는 말은 범어인데 이 말은 청정한 곳이라는 뜻이니라.
삼독을 영원히 없애어 육근을 항상 깨끗이 하며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여 안과 밖이 청정하면 이것이 곧 가람을 짓는 것이니라.
제18. 불상을 조성하는 법(鑄寫佛像)
또 부처님의 모습을 만들거나, 그린다는 것은 중생들이 불도를 구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온갖 각행(覺行 : 스스로 깨닫고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보살의 불도 수행)을 닦으며 여래의 참 모습과 묘한 모습을 빌리는 것이지 어찌 금이나 구리를 부어 만든 것을 말하겠느냐?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자는 자신의 몸을 화로로 삼고, 법을 불로 삼고, 지혜를 공장(工匠 : 물건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 삼고, 삼취정계와 육바라밀을 모양(형태)으로 삼아 몸 속에 있는 진여불성을 녹이고 다스려 온갖 계율의 틀 속으로 들어가 가르침대로 받들어 행하되 하나도 빠짐없이 하면 저절로 참된 모습을 이룰 수 있으리라.
이른바 궁극의 경지이며 항상 머무르는 미묘한 법신이지라 무너지는 유위의 모습이 아니니라.
사람들이 도를 구하면서 참모습을 만들거나 그릴 줄 모르면 무명으로 공덕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제19. 오분 법신을 향에 비유하다(五分香)
향을 피운다는 것도 세상에 있는 향이 아니라 무위(생멸번화를 넘은 상주절대의 진실) 정법(올바른 진리)의 향이니라.
온갖 더러운 냄새를 물리치고 무명과 악업을 끊어 모두 없어지게 하는 것이니라.
그 정법의 향은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첫째는 계향인데, 말하자면 모든 악을 끊고 모든 선을 닦는 것이니라.
둘째는 정향인데. 대기(大機 : 禪의 깊은 경지에 이끌어 들어가게 하는 커다란 움직임)을 깊이 믿어 마음이 물러남이 없는 것을 말하느니라.
셋째는 혜향인데, 항상 몸과 마음을 안팎에서 관찰하는 것을 말하며, 넷째는 해탈향인데, 온갖 무명의 결박을 끊는 것을 말하고, 다섯째는 해탈지견향인데, 느끼고 살피는 것이 항상 분명하여 걸림없이 통달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이 다섯 가지 향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향이라 견줄 것이 없느니라.
부처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제자들로 허여금 이와 같이 값진 향을 사루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라 하셨는데 요즈음의 중생들은 어리석고 둔하여 여래의 진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밖의 불로 세간의 첨단이나 훈륙 등 향체가 있는 향을 사르며 복을 바라니 어찌 얻을 수 있겠느냐!
제20. 꽃을 뿌리는 것(散花)
꽃을 뿌린다는 것도 그 이치가 이와 같으니라.
이른바 정법의 공덕 꽃을 널리 설하여 유정(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이롭게 하고 온갖 진여의 성품을 다스려서 훌륭한 것을 두루 베푸는 것이니라.
이 공덕의 꽃은 부처님께서 찬탄한 것이라 시들거나 떨어지지 않느니라.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꽃을 뿌리면 한량없는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런데 만일 여래께서 제자와 중생들로 하여금 곱고 파릇파릇한 것을 가위로 잘라 초록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꽃을 뿌리게 하셨다고 말한다면 옳지 못한 것이니라.
왜냐하면 계율을 바르게 지키는 자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일체의 모든 물건을 범하거나 죽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니라.
잘못하여 상하게 하는 것도 큰 죄를 받는데 하물며 요즘 사람들처럼 청정한 계율을 무너뜨리고, 만물을 손상시키며 복을 구하는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이익을 바라지만 오히려 손해가 되는지라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느냐?
제21. 등불을 밝히다(明燈)
또 장명등(밤낮으로 항상 밝히는 등불)이라 하는 것은 바르게 깨닫는 마음이니라.
확실한 깨달음을 등에 비유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해탈을 구하는 사람들은 항상 몸을 등 받침으로 삼고, 마음을 등잔으로 삼고, 믿음을 심지로 삼고, 계향(계율을 지키는 것과 그 공덕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향에 바유한 말)을 기름으로 삼고, 지혜가 맑아지는 것을 등불로 삼아야 하느니라.
항상 이와 같은 깨달음의 등을 켜서 온갖 무명과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없애버려야 하느니라.
이 법으로 차례대로 깨달으면 곧 하나의 등으로 백천등을 켜되 등과 등이 차례대로 밝아져 끊어짐이 없으므로 장명등이라 하느니라.
과거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명호가 연등이셨느니라.
이치가 이러하거늘 어리석은 중생들은 여래가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허망한 짓만 하고 유위에 집착하기 때문에 세간의 소유등을 켜서 빈방을 비추는 것으로 가르침 대로 행한다하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느냐.
왜냐하면 부처님이 눈썹사이의 한 터럭으로 광명을 놓으셔도 일만 팔 천 세계를 두루 다 비추시니 어찌 이 같은 세속의 등으로 이익이 되겠느냐.
이런 이치를 자세히 살피면 당연히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으리라.
제22. 불도를 수행하는 것(行道)
또 하루 여섯 차례 불도를 수행한다 하는 것은 이른바, 육근 안에서 항상 불도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온갖 각행(스스로 깨닫고 다른이를 깨닫게 하는 보살의 불도수행, 보리행)을 닦아 육근을 원만하게 다스려서 편안하게 다스려진 것을 영원히 버리지 않는 것을 여섯 차례 도를 향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탑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이니 각혜(사고하고 분별하는 지혜의 힘)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두루 돌게 하는 것을 탑돌이라고 하느니라.
과거의 부처님들도 이 도를 행하여 열반을 얻어셨는데 세상 사람들이 이 이치를 알지 못하니 어찌 도를 행한다 하리오.
우둔한 무리들은 안으로의 수행은 하지 않고 오직 밖으로만 구하느라 세간의 탑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분주히 돌기만 하니 공연히 피곤하기만 하지 진실한 본성에는 하나도 이익이 되지 않으니 매우 가엾은 일이로다.
제23.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齋戒)
또 재(齋 : 신, 구, 의의 3가지 행위를 삼가하여 몸을 깨끗이 하는 것)를 지닌다 하는 것에서 『재』라 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다스려 어지럽지 않게 한다는 것이고 『지닌다』하는 것은 보호한다는 것으로 모든 계행을 법대로 지키되 반드시 육정(喜, 怒, 哀, 樂, 愛, 惡 :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 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여섯 가지 감정)을 붙들어 메고 삼독을 눌러, 깨닫고 살피는 행을 부지런히 닦아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한다는 것이니라.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야 『재』를 지킨다 말 할 수 있느니라.
제24. 재식(齋食 : 공양하는 것)
또 공양에는 다섯 가지가 있느니라.
첫째는, 가르침을 맛보고 기뻐하는 법회식인데 여래의 정법에 의지하여 기쁜 마음으로 받들어 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선열식인데 안팎이 맑고 고요하여 몸과 마음아 즐거운 것이고,
셋째는 , 염식(念食)인데 항상 부처님들을 생각하여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고,
넷째는, 원식인데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할 때라도(행, 주, 좌, 와) 항상 선한 일을 서원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해탈식인데 마음을 항상 깨끗이 하여 세상의 번뇌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니라.
이것을 재식(齋食)이라 하느니라.
제25.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斷食)
또 단식을 한다는 것도 무명과 악업의 음식을 끊는다는 것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심신을 함부로 하여 온갖 악업을 지으며, 여러 가지 욕망에 깊이 빠져 부끄러워 할 줄 모르면서 음식만 머지 않으면 자연히 계율을 지키는 것이라 하니, 철이 없는 아이가 썩어 문드러진 시체를 보고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지극히 옳지 못한 일이니라.
제26. 예배를 하는 법(禮拜)
예배라는 것은 항상 법에 맞고 이치에 맞아야 하느니라.
이체(理體 : 만유의 본체)는 안으로 밝지만 작용의 모습은 밖으로 변하므로 이치는 버릴 수 없지만 현상에는 드러나는 것과 숨은 것이 있느니라.
이와 같은 도리를 알아야 비로소 법에 의지한다 할 수 있느니라.
『예』라는 것은 공경한다는 것이고, 『배』라는 것은 복종한다는 뜻이다.
진실한 본성(진여, 법성)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을 예배라 하느니라.
공경하기 때문에 감히 헐뜯지 못하고 굴복(항복)시키므로 제멋대로 못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쁜 마음을 영원히 없애고 착한 생각을 항상 지닐 수 있으면 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예배하고 있는 것이니라.
수용하면 나타나고 버리면 감추어지는 것이라 밖의 행동(밖의 예배)으로 안이 밝아지는 것은 성품과 모양이 서로 상응한 것이기 때문이니라.
바깥 모습의 예배에만 집착하면 안으로 탐, 진, 치의 마음을 제멋대로 풀어놓은 것이 되므로 항상 나쁜 생각을 하면서 겉음로만 절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고 거짓으로 공경하는 것이 되니 어찌 예배라 할 수 있겠느냐.
현명한 사람을 홀리는 것이고 성인을 속이는 것이므로 반드시 윤회를 면하지 못할 것이니라."
제27. 목욕하는 법(洗浴)
또 여쭙기를
"『온실경』에서 말씀하시길
'스님을 목욕시켜 드리면 한량없는 복을 얻는다' 하였는데 마음을 관(觀)하는 것으로 상응이 되겠습니까?" 하니,
대답을 하셨다.
"스님들을 목욕시켜 드린다는 것은 세간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은 세상의 일로 진실하고 위없는 가르침을 비유하신 것이며 은밀하게 일곱 가지 사물을 말씀하신 것이니라.
그 일곱 가지를 말하지면 첫째는 깨끗한 물이고, 둘째는 불을 피우는 것이고, 셋째는 비누며, 넷째는 양지(치아를 닦는 기구)고, 다섯째는 깨끗한 재며, 여섯째는 우유로 만든 기름이고, 일곱째는 속옷이니라.
이 일곱 가지로 목욕하고 단장하면 삼독과 무명과 때와 더러움을 없앨 수 있느니라.
일곱 가지 법이라는 것은 첫째는 법과 계율이니라.
거짓과 허물을 부드럽게 씻어내는 것이 마치 깨끗한 물로 때와 먼지를 씻어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둘째는 지혜인데 안과 밖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불을 피워 물을 따뜻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셋째는 분별인데 나쁜 마음들을 가려내어 버려버리는 것이 비누로 끈적거리는 더러움을 씻어내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넷째는 진실인데 온갖 거짓말을 끊어버리는 것이 양치질을 하는 나무로 입안의 냄새를 없애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다섯째는 올바른 믿음인데 선을 행하고 악을 끊겠다는 결의를 하면 다시는 걱정이 없는 것이 깨끗한 재로 문지르면 풍병을 피할 수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여섯째는 호흡을 조절하는 것인데 억센 마음을 누르는 것이 우유로 만든 기름으로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인데 나쁜 짓을 뉘우치는 것이 마치 속옷이 추한 알몸을 감추어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인 것이니라.
이상 일곱 가지가 모두 경전 속에 비밀한 가르침인데 요즈음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라.
온실이라는 것은 곧 몸이니라.
지혜의 불로 깨끗한 계율의 탕을 태워서 몸 속의 진여불성을 목욕시키되 일곱 가지 법으로 스스로를 단장하라는 것이니라.
당시의 비구들은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났으므로 부처님의 뜻을 알아 설하신 대로 수행하고 공덕을 성취하여 모두 다 성인의 지위에 올랐는데 지금의 중생들은 어리석고 우둔하여 이 일을 알지 못하고 세간의 물로 육신을 씻는 것으로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라 하니 그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또 진여불성은 세속의 모습이 아니고, 번뇌와 마음을 더럽히는 것은 본래의 모습이 없는데 어찌 형태가 있는 물로써 번뇌가 있는 무명의 몸을 씻을 수 있겠으며 사리에 맞지 않으니 어떻게 도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항상 이 육신은 탐욕으로 인하여 부정하게 생겨난 것이라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 뒤섞여 안팎에 가득한 것이라고 관(觀)할지니라.
이 몸을 씻어 깨끗하기를 바란다면 진흙을 씻어봐야 깨끗해 질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껍데기를 씻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님을 분명히 알지니라."
제28. 염불의 의미를 밝히다(明念佛)
달마대사께서 염불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셨다.
"염불이라는 것은 바른 생각을 닦는 것이니라.
지극한 대승의 도리를 바르다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삿되다 하는데 바른 생각은 반드시 참된 즐거움을 받겠지만 삿된 생각이 어찌 그것을 통달(정통, 이해)하리요.
『불』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을 깨우치고 살펴서 악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념』이라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니라.
계행을 기억해 지니며 잊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니라.
이런 이치를 알아야 바른 생각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생각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말에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지니라.
통발로 고기를 잡는데 고기를 잡으면 잊어버리고 말로 뜻을 얻는데 뜻을 알고 나면 말을 잊어버리듯이 염불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염불의 실체를 행하여야 하느니라.
만약 생각에 실체(진실한 것)가 없이 입으로 헛된 명호만 부른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또 외운다는 것과 생각한다는 것은 이름이나 뜻이 천지 차이이듯이 입에 있으면 외운다하고 마음에 있으면 생각한다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생각은 마음에서 일어나는지라 각행의 문이고 외우는 것은 입 속에 있는지라 음성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지니라.
상에 집착하여 복을 구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니라.
제29. 형상은 마음으로 돌아감을 알아라(會相歸心)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길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示虛妄 :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다)이' 하셨고
또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 만약에 모습으로 나를 보려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려 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라 ' 하셨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나타나 있는 현상들은 진실하거나 바른 것이 아님을 알지니라.
그럼으로 과거에 부처님들이 닦으신 공덕은 모두 다 다른 말씀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논하신 것이니라.
마음은 부처님들의 근원이기도 하며 마음은 온갖 죄악의 주인이기도 하느니라.
위없는 참된 즐거움이 자기의 마음으로 생겨나고 삼계를 윤회라는 것도 역시 마음에서 일어나느니라.
마음이 세간을 벗어나는 문턱이고 마음이 해탈의 나루터이니 출입구를 아는 사람이 어찌 이루지 못할 것을 염려하며, 나루터를 아는 사람이 어찌 도달치 못할까 근심하겠느냐.
제30. 망령되이 불상이나 절을 조성하지 말아라(妄營佛像塔廟)
요즘 천박한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오직 형상 세우는 것을 공덕으로 알고 재물을 많이 허비하며 물이나 육지의 중생을 많이 상하게 하며 망령되이 불상과 탑을 세우느라.
헛되이 사람들을 수고스럽게 하여 나무나 진흙을 쌓아 올리고 울긋불긋 단청을 하는데 마음을 기울이고 힘을 다 하더라도 자기를 손해나게 하고 남도 미혹하게 하는 것이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니 어떻게 깨닫겠느냐.
유위법을 보면 끈질기게 집착을 하는데 무상(無相)을 말해주면 멍청하여지니 바보 같구나.
또 세상의 조그마한 즐거움을 욕심 재느라 다가오는 세상의 큰 고통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이렇게 닦고 배우는 것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며, 올바른 것을 등지고 삿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복을 얻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니라.
제31. 마음을 관(觀)하도록 당부하노라(結歸觀心)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비출 수만 있다면 각관(覺觀 : 마음의 조악한 작용과 자세한 작용)이 항상 밝으리라.
삼독의 마음을 끊어서 영원히 없어지게 하고 육적의 문을 굳게 닫아서 번뇌가 침입하여 방해하거나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면 항하의 모래 수 같은 공덕과 온갖 장엄과 한량없는 법문을 낱낱이 성취할 것이며 범부를 벗어나 성인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눈 깜짝할 사이만큼이나 가까운 것이니라.
깨달음은 잠깐 사이에 있는데 어찌하여 흰머리가 되도록 수고하리오.
진실한 법문이 깊숙이 숨겨져 있는데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느냐.
간단하나마 마음 관(觀)하는 것으로 그 일부분을 밝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