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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_17_100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ose who reject generalization and insist that history is concerned exclusively with the unique are, logically enough, those who deny that anything can be learned from history. But the assertion that men learn nothing from history is contradicted by a multitude of observable facts. No experience is more common. In 1919 I was present at the Paris Peace Conference as a junior member of the British delegation. Everyone in the delegation believed that we could learn from the lessons of the Vienna Congress, the last great European peace congress a hundred years earlier. A certain Captain Webster, then employed in the War office, now Sir Charles Webster and an eminent historian, wrote an essay telling us what those lessons were. Two of them have remained in my memory. One was that it was dangerous, when re-drawing the map of Europe, to neglect the principle of self-determination. 일반화를 거부하고 역사는 독특한 것에 배타적으로 관계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고 주장은 충분히 논리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주장은 많은 관찰 가능한 사실들로부터 부정된다. 이런 경험은 흔한 것이다. 1919년에 나는 파리 평화 회의에 영국 대표단의 주니어 멤버로 있었다. 대표단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믿었다. 우리는 비엔나 회의의 교훈들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 큰 유럽 평화 회의였다. 백년 전에 있었던. 어떤 웹스터 대위 - 지금은 웹스터경이며 유명한 역사가 - 에세이를 썼다. 우리들에게 교육을 주는. 그것들 중 기억에 남아 있는 두 개는 다음과 같다. 하나는 민족 자결주의를 무시하고 유럽지도를 그리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The other was that it was dangerous to throw secret documents into your waste-paper basket, the contents of which would certainly be bought by the secret service of some other delegation. These lessons of history were taken for gospel and influenced our behaviour. This example is recent and trivial. But it would be easy to trace in comparatively remote history the influence of the lessons of a still remoter past. Everyone knows about the impact of ancient Greece upon Rome. 다른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비밀 문서들을 쓰레기 통으로 버리는 것은. 그 내용들을 다른 대표단의 비밀 요원들이 매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은 안다. 역사에 관한 이 교훈들은 복음같이 받아 들여졌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줬다. 이와 같은 예는 최근의 예이고 사소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역사에서 이런 것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멀리 떨어진 과거의 교훈이 현재 영향을 미치는 것을 추적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가 로마에 준 충격을.
Chapter 3_18_101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But I am not sure whether any historian has attempted to make a precise analysis of the lessons which the Romans learned, or believed themselves to have learned, from the history of Hellas. An examination of the lessons drawn in western Europe in the seventeenth,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ies from Old Testament history might yield rewarding results. The English Puritan revolution cannot be fully understood without it; and the conception of the chosen people was an important factor in the rise of modern nationalism. The stamp of a classical education was heavily imprinted in the nineteenth century on the new ruling class in Great Britain. Grote, as I have already noted, painted to Athena as an exemplar for the new democracy; and I should like to see a study of the extensive and important lessons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imparted to British empire-builders by the history of the Roman Empire. In my own particular field, the makers of the Russian revolution were profoundly impressed - one might almost say, obsessed – by the lessons of the French revolution, of the revolutions of 1848, and of the Paris commune of 1871. But I shall recall here the qualification imposed by the dual character of history. Learning from history is never simply a one-way process. 나는 확신이 안 선다. 어떠한 역사가가 시도를 했는지를 교훈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 로마인들이 배운 것, 또는 그들 스스로 배웠다고 믿는 것, 헤라스의 역사로부터. 교훈들의 조사, 서유럽에서 17, 18, 19세기의 서유럽사에서 구약성서로부터 추론된 교훈은 풍성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푸리탄 혁명은 그것에 대한 이해 없이는 완전히는 이해가 불가하다. 그리고 선민사상은 근대 민족주의의 성장에 중요한 요인이었다. 고전 교육의 각인은 깊이 뿌리박았다. 19세기 영국의 새로운 지배 계급에. 그로테,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아테네를 모범적인 새로운 민주주의로 삼았다. 나는 보고 싶다. 광범위하고 중요한 교훈들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영국 제국 건설자들에게 물려준, 로마 제국의 역사 교훈을. 내 자신의 분야에서는 러시아 혁명 주체들은 깊이 영향을 받았다. 아니 거의 사로잡혔다. 프랑스 혁명의 교훈과 1848년의 혁명에 그리고 1971년 파리 꼬뮨에. 나는 다시 상기시키고자 한다. 역사의 이와 같은 양면성을.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한쪽 방향이 아니다.
Chapter 3_19_102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o learn about the present in the light of the past means also to learn about the past in the light of the present. The function of history is to promote a profounder understanding of both past and present through the interrelation between them. My third point is the role of prediction in history: no lessons, it is said, can be learned from history because history, unlike science, cannot predict the future. This question is involved in a tissue of misunderstandings. As we have seen, scientists are no longer so eager as they used to be to talk about the laws of nature. 과거에 비추어 현재에 관해서 배운다는 것은 현재 관점에서 과거를 또한 배운다는 것이다. 역사의 기능은 더 깊은 이해를 높이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에 관한 이해. 그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나의 세 번째 포인트는 역사에서 예언에 관한 역할이다. 역사에서는 어떠한 교훈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과학과 달리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말해진.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오해의 계층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보았듯이 과학자들은 더 이상 자연의 법칙들에 관하여 말하는 것에 열중하지 않는다.
The so-called laws of sciences which affect our ordinary life are in fact statements of tendency, statements of what will happen other things being equal or in laboratory conditions. They do not claim to predict what will happen in concrete cases. The law of gravity does not prove that particular apple will fall to the ground: somebody may catch it in a basket. The law of optics that light travels in a straight line does not prove that a particular ray of light may not be refracted or scattered by some intervening object. But this does not mean that these laws are worthless, or not in principle valid. Modern physical theories, we are told, deal only with the probabilities of events taking place. Today science is more inclined to remember that induction can logically lead only to probabilities or to reasonable belief, and is more anxious to treat its pronouncements as general rules or guides, the validity of which can be tested only in specific action. 소위 과학의 법칙들, 우리 일상에 영향을 주는 과학의 법칙들은 사실 경향의 진술이거나 실험실 조건에서 모든 것이 같다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예측하지 않는다. 중력 법칙은 특정한 사과가 꼭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증명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빛이 직진으로 진행한다는 광학 법칙은 특정한 빛이 중간의 방해물에 의해 굴절되거나 산란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법칙이 소용없다거나 원리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 물리 이론들은 우리가 듣기에는 오직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들만 다룬다고 한다. 오늘날 과학은 더 아래와 같은 것을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연역은 논리적으로 오직 확률적으로나 이성적인 믿음으로 유도한다고. 그리고 더 열중한다. 그 선언들은 일반적인 규칙이든가 또는 가이드 정도로 간주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의 유효성은 오직 특정한 행동속에서만 테스트 될 수 있다고 한다.
Chapter 3_20_103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Science, d'ou prevoyance; preyance, d'ou action ', as Comte puts it. The clue to the question of prediction in history lies in this distinction between the general and the specific, between the universal and the unique. The historian, as we have seen, is bound to generalize; and, in so doing, he provides general guides for future action which, though not specific predictions, are both valid and useful. But he cannot predict specific events, because the specific is unique and because the element of accident enters into it. This distinction, which worries philosophers, is perfectly clear to the ordinary man. If two or three children in a school develop measles, you will conclude that the epidemic will spread; and 과학으로부터 예견이 나오고, 예견으로부터 행동이 나온다 라고 꽁뜨가 얘기했다. 역사에서 예언의 문제에 대한 단서는 일반적인 것과 특별한 것, 보편적인 것과 독특한 것들 사이의 구별이다. 역사가는 우리가 보았듯이 일반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 것에 의해 그는 일반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 미래 행동에 대한. 물론 특정한 예언들은 아니지만, 그 예측들은 유효하고 사용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는 특정한 사건들은 예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특정하다는 것은 독특하다. 그리고 우연의 요소가 끼어든다. 이와 같은 구별은 철학자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는 완벽하게 분명하다. 만약 어떤 학교에서 2~3명의 어린 아이들이 홍역에 걸린다면 당신은 그 홍역이 학교 전체에 곧 퍼질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this prediction, if you care to call it such, is based on a generalization from past experience and is a valid and useful guide to action. But you cannot make the specific prediction that Charles or Mary will catch measles. The historian proceeds in the same way. People do not expect the historian to predict that revolution will break out in Ruritania next month. 이와 같은 예언은 만약 당신이 그것을 예언이라고 부르기 좋아한다면, 과거 경험으로부터 일반화에 기초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행동에 대해 타당하고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특별한 예언은 할 수 없다. 찰스나 메리가 홍역에 걸릴 것이라고. 역사가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한다. 사람들은 역사가가 예언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루리타니아에서 다음 달에 혁명이 일어날 것이고 예언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Chapter 3_21_104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The kind of conclusion which they will seek to draw, partly from specific knowledge of Ruritanian affairs and partly from a study of history, is that conditions in Ruritania are such that a revolution is likely to occur in the near future if somebody touches it off, or unless somebody on the government side does something to stop it; and this conclusion might be accompanied by estimates, based partly on the analogy of other revolutions, of the attitude which different sectors of the population may be expected to adopt. The prediction, if such it can be called, can be realized only through the occurrence of unique events, which cannot themselves be predicted. But this does not mean that inferences drawn from history about the future are worthless, or that they do not possess a conditional validity which serves both as a guide to action and a key to our understanding of how things happen. 그들이 내리려는 결론의 일부는 루리타니아의 특별한 상황에 의존하고 일부는 역사 연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현재 루리타니아의 상황은 혁명이 곧 일어날지도 모른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을 붙인다든가 또는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결론은 추정을 동반한다. 다른 혁명들을 유추한 것에 기초해서, 또는 국민의 각 계층들이 취하리라 생각되는 태도에도 의존한다. 그 예언은 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 오직 특별한 사건들의 발생들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예언될 수 없는. 그러나 이것은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로부터 끌어낸 추론들이 가치 없다거나 또는 조건부 유효성을 가진다고 해서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행동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하며 앞으로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대한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다.
I do not wish to suggest that the inferences of the social scientist or of the historian can match those of the physical scientist in precision, or that their inferiority in this respect is due merely to the greater backwardness of the social sciences. The human being is on any view the most complex natural entity known to us, and the study of his behaviour may well involve difficulties different in kind from those confronting the physical scientist. All I wish to establish is that their aims and methods are not fundamentally dissimilar. 나는 제안하지 않는다. 사회 과학자나 역사가의 추론이 정확성 면에서 물리 과학자들의 추론만큼이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는 이러한 면에서 그들의 모자라는 부분이 사회 과학의 더 큰 후진성에 기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면에서는 가장 복잡한 자연적 존재이고 그들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은 물리 과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종류와는 다른 어려움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그들의 목표와 방법들은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Chapter 3_22_105p History, Science, and Morality
My fourth point introduces a far more cogent argument for drawing a line of demarcation between the social sciences, including history, and the physical sciences. This is the argument that in the social sciences subject and object belong to the same category and interact reciprocally on each other. Human beings are not only the most complex and variable of natural entities, but they have to be studied by other human beings, not by independent observers of another species. Here man is no longer content, as in the biological sciences, to study his own physical make-up and physical reactions. The sociologist, the economist, or the historian needs to penetrate into forms of human behaviour in which the will is active, to ascertain why the human beings who are the object of his study willed to act as they did. This sets up a relation, which is peculiar to history and the social sciences, between the observer and what is observed. 나의 네 번째 포인트는 한층 더 유력한 주장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구분선을 긋자는 역사를 포함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과의 이것은 주장이다. 사회 과학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다.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물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다변화하는 존재일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른 인간들에 의해 연구되어야 한다. 다른 독립적인 다른 종의 관찰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기서 인간은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다. 그 자신의 물리적 구조나 물리적 반등만 연구하는 것으로는. 사회학자, 경제학자, 역사가는 인간 행동의 형태를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행동에서 의지가 살아있고, 인간의 왜 그렇게 행동하는 가에 대해 밝혀야만 한다. 이것은 관계를 세운다. 역사와 사회과학에서만 특별한 관계를 세운다. 관찰자가 관찰 대상이 되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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