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제77주년 기념식
가황(歌皇) 나훈아(羅勳兒)는 광복절 같은 기념식은 안 하는 게 좋다고 일갈했다. 그는 광복이란 일본 식민지 시대에 겪은 우리의 수치와 모멸의 시간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강성한 국가를 건설해서 이런 기념식을 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이룩해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그의 말에는 진정 나라 사랑의 마음이 진하게 녹아 있었다. 매해 광복절이 되면 정부는 기념식을 행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기성세대만의 의례적인 행사로 남는듯하다. 사실 이런 기념식은 우리의 다음 세대들을 겨냥한 행사여야 한다. 이런 역사의 악순환이 그들 시대에 반복되지 않도록 강력한 경고음을 들려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광복절 노래는 고전 민요로 전락했고, 힙합에 온몸을 맡기며 열광해도 두 손을 든 만세삼창은 꼰대들의 전유물로 취급하는 세대가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런 때에 2022년 제77회 광복절을 맞이하여 봉평교회는 8월 14일 주일 낮 예배 때 광복절 기념식을 거행했다. 79년 교회 역사 가운데 최초의 행사란다. 이런 행사를 국가나 사회단체에서 행하는 의식으로만 여겼던 한국교회는 예배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교회 역사를 보면 풍전등화(風前燈火)에 처한 국가를 구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는 희생정신을 불태우며 믿음을 승화시켜 왔다. 반만년 한민족 역사 중에 기독교가 차지한 기간은 극히 미미하다지만 조국의 근대화를 이루고 무지몽매(無知蒙昧)한 민중들을 깨우치고 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나라 발전의 근간을 형성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나라가 없으면 교회도 신앙도 온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소 깨우친 까닭에 한국교회는 유독 나라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앞장서서 나라 사랑의 마음을 실천했다. 그런 전통은 더욱더 발전하고 활화산처럼 타올라야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역사의 변곡점을 거치면서 나라 사랑의 중심축이 흔들렸고, 아예 그 흔적조차 지우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이념 시대가 낳은 역사의 불행이다. 찬란한 오늘은 선조들의 희생과 헌신의 터전에서 세워진 금자탑일진대, 이념의 갈등과 대립은 국익마저 송두리째 몰살시키고 기억해야 할 역사를 잊게 했다. 그런 시대적인 흐름에 역행하듯이 봉평교회는 광복절 기념식을 굳이 개최했다. 성대하지 않았어도 조촐하지 않게 역사의 물줄기에 실려 정처 없이 떠나가는 일엽편주(一葉片舟)가 될지라도 우리의 후손 세대들에게 다시는 징용, 위안부 등 멸시와 모멸의 악순환이 허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았다.
1부 예배에서 담임목사는 진정한 극일(克日)을 완성하기 위하여 시대에 걸맞는 이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우경화는 자신들의 장기 집권이란 야망을 품고 국익보다 당리당략을 우선하는 정치이념이다. 한국의 좌경화도 동전의 뒷면과 같이 같은 정치 집단이다. 서로는 이런 좌우 이념을 극대화하여 자신들의 정권 입지를 공고히 해왔다. 일본 우파의 반한(反韓) 감정이나, 한국의 좌파의 반일(反日) 감정이 그것이다. 이제는 박물관에나 전시해야 할 100년 전 증조부 세대의 반일 감정을 내려놓고 국익을 위해서 화해의 정신을 가지고 협일(協日) 관계를 구축해야만 극일(克日)할 수 있다. 그래야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 2부 순서 기념식은 광복절 영상시청으로 막을 열었다. 안상국 원로권사의 광복절 기념 시 ‘광복 70년 분단 70년’(홍성현 목사 작) 낭독, 박영균 장로의 나라와 민족, 한국교회를 위한 기도가 있었다. 정연경 장로의 선창으로 만세삼창이 대예배실을 메웠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 하나님나라 만세’를 외칠 때 성도들도 힘껏 외치며 77년 전 해방의 날에 기뻐했던 그날의 함성을 재현했다. 이어서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광복절 노래를 제창했다. 상해(上海) 임시정부 주석이던 백범(白凡 金九)은 해방된 고국의 땅을 밟자마자 그 흙을 한입에 넣고 씹으며 감격했다. 그 해방을 맞이한 조국의 흙은 내 어머니요, 우리 민족의 할아버지였다. 그 흙을 다시 만져볼 수 있을 때 감격을 담은 광복절 노래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1931년 만주사변을 당한 중국 역시 일본의 피해자다. 중국의 제1대 총리 저우언라이(朱恩來)는 전후 처음으로 중국을 찾은 일본 총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和而不忘 後事之師’, 즉 일본에 대해 응대는 하되 잊지는 않겠고 훗날 사표로 삼겠다는 뜻이다. 역사를 모르면 그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에 붙들린 삶이 아니라 바른 미래를 건설하며 밝은 내일을 창출하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역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육백만 명이 희생당한 홀로코스트(the Holocaust)는 인류 역사의 최대 비극적 사건이다. ‘무릎 꿇기 반성’으로 유명한 독일의 제4대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는 1970년 12월 7일 바르샤바 유대인 봉기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이 바르샤바 내 유대인 학살 등 만행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했다. 그 후 실제적인 보상으로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이스라엘은 그런 독일의 태도를 받아주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박물관 내 야드 바셈(Yad Vashem, 유대인학살기념관) 입구 대형 기념비에는 ‘용서하라. 하지만 잊지 말라(Forgive but Not Forget)’고 적어 놓았다. ‘이즈 코르(기억하시오)’란 히브리어가 오늘의 이스라엘을 만들었다. 교회와 나라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 연합체다. 누구보다 그리스도인은 나라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밝은 미래를 여는 열쇠다.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여호수아 4:7).
첫댓글 독일의 제4대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 방문
무릎 꿇기 반성 하는 독일 총리
독일의 제4대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