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몸치의 댄스일기27(선물 받은 댄스가방)
2003. 9. 8. 월
추석을 며칠 앞두고 댄스를 배우면서 가장 귀중하고 상징적인 선물을 받았다.
아주 멋있고 실용적이고 메이커 브랜드도 유명한 것이고 값도 꽤 비싼 것으로 보였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걸 받고서 난 너무 기뻐서 팔짝팔짝 뛰고 싶었다.
댄스에 입문하여 몇 개월이 흐르는 동안 언제나 내가 강습을 받거나 연습하러 갈 때는 백화점의 비닐 쇼핑백에다 갈아입을 셔츠와 수건과 기타 필요한 물건들을 담아서 다녔다.
그 비닐 쇼핑백도 몇 개월을 가지고 다니다보니 낡고 지저분해서 보기에는 좀 그랬다.
그렇지만 어느 시기부터 나를 알고 있는 동호회의 회원님들이나 선생님들조차도 그 비닐 백만 보고서도 나, 강변마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의 트레이드마크쯤으로 되었다.
그걸 보다 못한 어떤 회원님들은 보기에 너무 안 좋다며 자기가 사다주려고 가방 가게에도 가보고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선물하겠다고 공언하다시피 할 정도였다.
나도 댄스용품을 담아서 가지고 다닐 적당한 가방을 구입하려고 몇 번 돌아 다녀봤는데 막상 사려고 하니까 어떤 걸 사야지 들고 다니기도 편하고 남 보기에도 괜찮을까 싶어서 선택을 못하고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가방 없이 비닐 쇼핑백을 들고 다니기가 처음에는 어색하고 남 보기에도 좀 그럴 것 같아서 의식이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 자신도 별로 그런 것쯤에는 무디어져 버렸다.
오히려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어 편함 감을 느끼게 될 정도였다.
회원님들이 가끔씩 그 비닐 쇼핑백을 갖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
제발 가방 하나 사서 갖고 다니라며. 그럴 때마다 난 가방 살 돈이 없어 못 산다고 받아친 적도 있었지만...
자꾸 그런 얘길 들으니까 그리고 댄스의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나의 받아치기도 요령과 수완이 늘어서 내 댄스가방은 내가 직접 사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가 있다고 해명했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듣기가 약간은 부담스럽고 짜증도 나서였지만... 내가 그럴 듯하게 해명을 하다보니까 정말 그게 맞는 말인 듯 최면이 걸려드는 것 같았다.
"내게 댄스가방을 선물하는 여성이 나타나면, 또 그걸 내가 받으면 그 분은 내 댄스 파트너로 정할 것이다." 라는 게 나의 맞장구였는데 그렇게 말하고 보니까 그게 스스로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가 댄스를 하러 다닐 때 필요한 물품들을 넣어 다닐 가방을 사주는 여성이 나타나면 내 파트너로 삼겠다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작정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쾌히 그걸 받았을 때...
조금씩 댄스의 기간이 지나니까 회원님들이나 선생님들조차도 모던댄스를 제대로 한번 심취해보려면 파트너가 필요하니까 물색해보라고 공공연히 권하는 시기가 되어 있었다.
그럴 땐 난 그런 건 필요 없다고 대답하면서도 왈츠나 탱고 요즘의 폭스트롯을 약간 접하니까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은 든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댄스를 오랫동안 해 오신 선배님들조차도 그리고 그 분들의 공통적인 견해도 마음 맞고 댄스까지 맞는 파트너를 만나다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배우자 구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느니 그런 말을 들으면서 짧은 경력이지만 나도 몇 달 겪어보고 댄스계의 주변 사람들을 보니까 정말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차피 그것도 남녀가 만나는 건 인연이 닿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아직 초보자 주제에 떠벌거리며 파트너 어쩌고저쩌고 할 수도 없는 처지이고...
댄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굳이 짝꿍이 있어야 된다면 인연이 닿으면 생기겠지 하는 여유로운 마음을 먹고 있었다.
기왕 그런 인연이 닿으려면 내게 댄스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재치와 감각을 지닌 여성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 기준을 내가 댄스를 하는데 물질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댄스용품을 넣고 다닐 가방인데 그걸 알아서 챙겨줄 분만 나타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건 그렇게 금전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게 관심이 정말 있고 조금만 신경써줄 재치와 감각만 있다면 가능한 것이라고 여겼다.
굳이 상대편에서 그걸 모른다면 내가 요구해서라도 난 정말로 댄스 파트너로부터 댄스가방을 선물 받고 싶었다.
물론 나만 받기만을 원한다면 그건 불공평하니까 나도 그쪽에서 꼭 필요하고 댄스를 하는데 상징적인 걸 선물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생각지도 못한 분으로부터 예기치 못하게 추석 선물로 댄스가방을 선물 받았다.
혹시라도 미래에 내 파트너가 될 분은 그 기회를 놓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 내게 선물해주신 분은 내 파트너감은 아니지만 파트너보다 더 소중하고 나의 댄스 생활에는 영원히 존재할 분이니까.
파트너감이 해준 선물보다 오히려 더 값지고 나에게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가방을 전해 주시면서 어느 부분에는 수건을 넣고 어디에는 신발을 넣으면 편할 것이고 셔츠는 어디에 넣고 하시면서 가방의 쓸모 있는 용도까지 일일이 쟈크를 열어 보이며 설명까지 해주셨다.
그렇기에 이제 그 가방을 들고서 댄스를 하러 다니면 더욱 몸과 마음이 가뿐해서 댄스가 더 잘 되어질 것 같았다.
이제 댄스를 하는데 가장 필요하던 것도 생겼고 남은 건 댄스 기량을 향상 시켜서 넓고 큰 화려한 댄스홀에서 멋있게 왈츠를 한 번 즐겨보는 일만 남은 것 같다.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난 지금도 행복하고 즐거운 상상에 젖어 있다.
어쩌면 댄스를 시작하고 가장 행복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