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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웜-13]
“오케이. 이제부터 지영이라 불러요. 아저씨. 아니 제임스.”
"Deal. 좋아요. 우선 이 호텔을 나가기 전에 몇가지 호신술을 가르칠테니 잊지말고 기억했다 꼭 필요시 제대로 사용하십시요."
"또 그러세요. 어서 고치세요. 그리고 그 전에 케나다로 이 메일을 보내야 하고, 어머니와 한국의 정 박사에게 전화해야 해요. 말씀하신 그 맛치 쌤플을 구해 미생물 분석을 해야 하거든요. 제 생각이 맞다면 KE363과 혼합하여 특이 변종미생물을 배양하여 백신을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KE363과 아직 확실치 않은 맛치가 필요해요."
"좋아요. 어서 하십시요. 그 ST면 다 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제 방에 있겠습니다. 끝나면 호출하십시요.”
방문을 열고 나가는 제임스의 등 뒤로 지영이 소리쳤다.
“못해요. 계속 그렇게 말하시면, 저는 안해요!”
제임스는 302호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리고 지영이 한 말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그는 룸에 들어와서 는 마음을 고쳐잡았다. 방법이 없었다. 시간도 없었다. 제임스는 지영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키스에게서 받은 블루 프린트를 기초로 쿠르타이스 박사 집무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눈동자 인식 스크린을 통과 하여야 했다. 그리고 지문 인식기도 통과 하여야 했다. 쿠르타이스 박사는 그런 보안장치를 믿고 있었다. 밤 7시부터 파티가 열린다고 하였다. 쿠르타우스 박사를 만날 기회는 딱 한번 뿐이다.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는 절대 절명의 때를 잡아야 했다. 제임스는 키스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발코니로 나가 바닷바람을 크게 들이키며 담배에 불을 붙혔다.
키스가 검정색 롤빽을 어깨에 매고 들어왔다. 그는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으며 50대 초반이지만 젊어 보였다. 아마도 머리카락이나 턱수염에 변한 흰색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제임스를 보자 대뜸 물었다.
"제임스. 김지영 박사는 어디있습니까?"
키스는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그 만큼 이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이었다. 솔직히 제임스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여성에 대한 궁금증이 더 한 것이다. 생각은 자유지만, 그가 제임스를 못 따라 왔는지 제임스가 변했는지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자. 옆방으로 갑시다."
그들이 옆방으로 들어갔을 때 김지영 박사는 정인구와 통화하고 있었다. 지영은 반바지 차림에 티셔츠만 입고 있었다. 지영을 본 키스는 눈이 동그래져서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였다. 그는 지영의 뒷태만 보고 감동을 감추지 못하였다.
“제임스. 어마! 누구세요?”
전화를 마친 지영은 뒤돌아서며 의외의 낮선 사람이 있어서 놀랐다.
“김 박사님. 으ㅁ~ 지영아. 이 분은 내 옛날 친구인 키스토니우스인데, 아테네에서 무역사업을 하고 계시다. 우린 키스라고 부른단다. 우리의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제임스의 말에 안심을 한 지영이 웃으며 키스앞으로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So glad to see you, Mr. Kiestoneous. Call me Jiyeong and I will call you as kiss. Okay?”
“Oh! You are so beautiful, very good to see you and I like you too much. Jiyang. Of course. Do it so. That’s no problem.”
그는 지영이 내민 손바닥을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고 지영의 손등에 키스하였다. 지영은 그 모습이 우스워 제임스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의 키는 지영과 비슷하였다.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보기에 좋았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의논해 봅시다. 지영아. 준비되었지?”
제임스가 지영을 보며 물었다. 전화 다 마쳤냐는 의미였다.
“예. 저는 오케이예요. 어머니에게도 전화했어요. 어떻게든 그 맛치를 구하여 서울 제가 근무하는 병원의 정인구 박사에게 전해주라고. 전 세계 그리고 지금 아시아 국가들 속에서 블루웜으로 사망하는 생명을 막을 수 있는 열쇄라 했어요.”
지영은 대답하고 작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 캔 3개를 꺼내서 하나씩 주었다. 그 사이 키스는 가방에서 몇가지 장비를 꺼내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콘텍트 렌즈형 카메라. 이것은 핑거프린트 흡착페이퍼. 그리고 제가 말하는 소리를 잘 듣고 쿠르타이스의 목소리와 어떻게 다른지 말해 주십시요.”
키스는 지영에게 착용할 장비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때 제임스의 휴대폰에서 이 메일이 왔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그는 지영을 보았다. 지영도 그 소리를 들었다. 지영은 다시 키스와 악수하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제임스는 키 패드를 눌렀다.
“안돼. 당신까지 그렇게 끼여 들게 할 수는 없어. 위험하단말이야.”
그는 지영을 보며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지영은 다 들을 수 있었다. 분명히 케나다의 어머니와 통화하는 것이었다.
“좋아. 그러면, 출발 전에 완남이에게 전화해서 내 이야기를 하고 공항까지 마중나와 달라고 그래. 절대 휴대폰 몸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고 밧데리 다 떨어지지 않게 해. 알았지? 매사에 조심해. 알았어? 사랑한다. 당신만을 한도 끝도없이 사랑한다.”
제임스는 잘못을 저지르고 들킨 아이같이 얼굴이 붉어지며 미안해 했다. 지영은 놀랐다. 짐작은 했지만, 고향 학교 선 후배 관계를 훨씬 뛰어넘은... 그렇게 관계가 돈독할 줄이야. 그러나 달리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제임스가 입을 먼저 열었다.
“어머니가 지금 서울로 출발한다는 구나. 직접 맛치를 정 박사에게 전해주는 것을 지켜본 후 다시 오겠다는구나.”
25.
호텔 7층의 연회장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요란스럽게 화려하였다. 다이나믹한 중동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하였다. 키스의 또다른 친구에 의하여 3명은 별 문제없이 연회장에 들어 갈 수 있었다. 7층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 연회장이었다. 그 시각 즉 오후 7시부터 3번 엘리베이터는 7층 전용이 되어있었다. 그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는 흰색 양복을 입고 노란색의 넥타이를 한 건장한 청년 두명이 좌우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로 걸어 오고 있는 지영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깨에 흐르는 검은 머리까락이 지영의 흰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으며 검푸른 실크 원피스는 지영의 균형이 잘 잡힌 몸매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나타내었다. 검고 크다란 눈은 오히려 빛났다. 4대 5의 비율을 가진 붉고 생동감있는 입술을 포함한 지영의 얼굴 모습은 순정하고 아름다운 미인으로 가히 그들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들 중의 큰 덩치가 키스를 아는 척 하였다.
그들이 연회장에 들어섰을 때는 막 연회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호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행히 쿠르타이스 박사는 좌측편 부페식 음식들이 진열된 테이블 앞에서 와인을 골라 잡고 있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지영이 눈짖을 하며 그에게 다가가자 제임스는 지영의 두 발걸음 정도 거리에서 접근해 오는 남성들을 막았다. 키스는 지영의 왼쪽에 서서 같이 움직였다.
"오 마이 갓! Who is a nice gentleman? Dr. Kurtais. It’s you? Nice meet you. What are you doing here?"
"Oh! Dr. Kim, Jiyeong! So happy to see you a beautyful lady at here. You are a perfect beauty. What's happening?"
쿠르타이스 박사는 지영을 보자 혼 나간듯 지영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레스토랑에서의 김지영 박사가 아니었다. 지영은 오른 손을 내밀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중간 쯤 높이의 하이힐로도 그와 눈을 마출 수 있었다. 쿠르타이스는 손바닥을 펴서 지영의 내민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지영은 손바닥으로 그의 손가락을 모아 잡았다. 원샷 투킬이었다. 그때 키스가 끼어 들자 지영은 키스에게 쿠르타이스 박사를 소개하였다.
"I already heard about you from Dr. Kim. So good to see you. How are you, today?"
"Good to see you, too and I'm fine. Thank you."
"How can I call you, sir?"
"Oh. You can call me Dr. Kurtais. Mr.?"
"Please call me Kiss."
엉겹결에 쿠르타이스 박사는 키스와 통성명을 하게 되었고, 그가 이런 연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은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이 연회는 리쎄펀 회원을 위한 연회이자 그를 소개하는 연회로 연맹 회장이 말하지 않았던가. 키스가 쿠르타이스 박사와 말하는 동안 제임스와 지영은 호텔 밖으로 나왔다.
"제임스 아저씨. 쿠르타이스 박사에게 인사라도 하고 나와야 했어요."
지영이 제임스를 보며 야속하다는 듯 말했다.
"적과의 작별인사라... 김 박사 다운 말이군."
그렇게 혼잣말 처럼 했지만 지영은 놓치지 않았다. 제임스는 아차 하는 마음으로 지영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렇게 빈정되며 기분 좋아서 웃는거죠? 아저씨 나빠요."
"지영아. 그건 아니야. 그곳에서 오래있을 수가 없어. 다음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거든."
"이걸 말하는 거예요?"
지영이 손바닥에 쥔 블루프린트 페퍼와 검지로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때 키스가 급히 달려왔다.
"다 잘되었지요?"
그들은 키스의 벤에 올라탓다.
“두 사람이 들어갈테니 올려보내게.”
키스는 운전을 하며 두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영어로 말하였다.
“어떻습니까?”
“비슷해요. 그런데, 그들이 쉽게 문을 열어줄까요?”
지영이 말하며 걱정스러운듯 물었다.
“그리스어로 말하는 대부분의 4-50대 남자들 목소리는 비슷하지요. 그 말에 억양과 톤을 조금만 바꾸면 거의 같을 수 있습니다. 잠시 후 제가 확인시켜드리지요.”
키스가 음성을 조심해서 조절하며 김지영 박사에게 천천히 말했다.
“아하. 비숫해요. 저는 금방 구별할 수가 없는데요.”
지영이 놀란듯 말하며 고개를 돌려 제임스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엉뚱한 말이 제임스에게서 돌아왔다.
"지영아 지금 우린 세 사람이 아니야. 너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야하니까 실수가 없어야 돼."
지영은 아무말도 할 수없었다. 쿠르타이스 박사의 연구실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고 설사 들어갔다고 하여도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런지 무사히 그 건물을 빠져 나올 수 있을런지 등 지영으로서는 전혀 처음 겪는 일이라서 불안하고 걱정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하기도 하였다. 지영은 머리속으로 호텔 방에서 잠깐 제임스가 긴급할 때 사용할 수 있다는 호신술 몇가지를 생각하며 몸을 움찔하였다. 늘 무관심한 듯 지켜보고 있던 제임스가 놀라서 물었다.
"지영아. 몸이 불편하니?"
제임스의 물음에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제임스는 가슴이 쿵쾅대는 것을 느꼈다. 선애였다. 젊었을 때의 선애를 보는 것 같았다. 해맑고 티없는 순정한 아이같은 미소였다.
"아저씨! 왜 그렇게 보세요? 저는 요. 아저씨가 아르켜준 호신술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용할 급한 때가 없으면 좋겠어요."
그 때 키스가 아련한 추억의 분위기를 깼다.
"연락이 왔습니다. 찾았습니다."
"현재 시각이 21시 20분. 정각 22에 침투합니다. 오케이?"
제임스는 키스에게 말하고 지영을 돌아봤다. 수줍듯 지영이 제임스의 의도를 눈치채고 말했다.
"호텔에 잠시 들렀다 가요. 아저씨. 저도 준비할 것들이 있어요. 옷도 바꿔입어야 하고..."
26.
한편 그 시각 한국의 죽변항. 오전 일찍부터 하얀색 4인용 모터보트가 방칫골 마축간에서 새벽의 거울같이 맑은 수면을 가르며 천천히 어항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아니. 선애 걔는 어떻게 맛치를 다 기억하고 있는거야.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그 맛치를 어디에 쓰려고 한데니?"
"몰라. 자세한 이야기는 다 할 수가 없었겠지. 캐나다에서 전화한거니까. 하여튼 무지하게 중요하다고 그러더라."
"걔는 언제 캐나다에 간거야? 나는 대전에 살고 있는걸로 알았는데. 아주 똑똑하고 인물 잘나서 국제적으로 노네. 언제 고향에 온데?"
"선애의 딸이 박사이고 의사잖아. 걔가 블루웜이라는 것 때문에 캐나다에 가 있는 딸 김지영 박사를 도와주러 간 걸거야. 하여튼 잘나고 똑똑해도 힘들어. 그나 저나 맛치가 제대로 있을려나 모르겠다 야."
"있겠지. 없으면 이 넘의 바다 다 뒤져서라도 찾아 보내야지. 객 국에 있는 동창이 부탁한 건데 우리가 못해주면 누가 해주냐?"
"그래. 그건 맞다. 해줘야지. 오늘 아침부터 수경쓰고 담방구질 신나게 해보자."
김지영 박사의 어머니 김선애의 고향 동창들이었다. 전화를 받자 곧 팀을 만들어 수경과 수영복을 챙겨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운전은 수진이 남편 영호가 맡았고, 담방구질은 정혜와 수진이 둘이서 할 것이다. 남편이 남자가 해야 한다고 우겼지만, 귀하고 귀한 고향 초등학교 동창인데 어찌 남편인 남자 선배에게 맡기겠는가 하며 사양하였다. 지금 비록 나이가 중년이지만 그 까짓 담방구질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보트는 항구 정면에서 파도를 막고 있는 방파제와 보트가 출발한 방칫골 마축간. 이제는 없어진 모래사장 터에 만들어진 어판장 그리고 수협건물이 있는 동쪽, 그 네 곳에서 출발한 선이 만나는 바다 중심에 닻을 내렸다. 막 떠오른 아침 해가 잔 물결을 비추어 수면은 눈부시었다. 그들은 서둘렀다. 밤새 오징어 잡이 나갔던 배들이 돌아 올 때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정혜와 수진은 비키니 수영복에 달랑 민물 수영장에서 쓰던 수경을 착용하였다. 말이 비키니지 색상 요란한 반소매 면 셔츠에 사각팬티였다. 어촌에 살며 삶에 바뻐서인지 그렇게 날씬하지는 않았지만 꽤 보기가 괜찮았다. 매년 여름이면 그렇게 입고 쓰고 바다와 친했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이빙 자세를 취하였다. 그 때였다.
"어이! 잠깐. 그냥 들어가믄 어쩌노? 자 여있다 장갑. 이걸 끼야 이쁜 손 안 다치지."
수진의 남편 영호가 바닥이 고무로 덮혀진 작업용 면장갑 2컬레를 가방에서 꺼내 주었다.
"하이고. 역시 영호 형님이 최고요. 언제 그런거를 다 준비했어요. 이제 손 빌 걱정은 없구마."
"내가 누구요? 후배 여자들 챙기는데는 물 불 안가린다 아닝교."
"됐따. 얼르 들어가자. 그나 저나 맛치가 있을라나 모르겠구마."
정혜가 수진의 장갑낀 팔을 잡았다. 그들은 풍덩 소리를 남기며 바로 바다 속으로 입수하여 밑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해가 떠서 그 햇살로 바다밑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은 깨끗한 모래들이 시야까지 깔려 있었다. 부두에는 곧 들어 올 고깃배를 맞으려고 분주하기 시작하였고 그 공판장 한 쪽에 주차된 검정색 그랜져에는 두 사람이 망원경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영호 형님 보이소. 이제 맛치를 다 냉동박스에 넣었니더. 떠나야 안됩니꺼?”
“알았소. 근데, 서울 어디로 가지고 가야하는지 주소를 줘야 가든 말든 할꺼 아니요.?”
“여보! 주소와 정 박사님 전화번호가 여기 있니더. 그리고 맛치는 캐낸 그대로 급속 냉동해서 얼음하고 같이 비닐봉지에 담아 스치로폴 박스에 담았다고 전하소. 김지영 박사 어머니. 그 친구가 김선애이니더. 선애가 말한대로 했다고 하면 될낍니더. 정 박사가 맞는지 확실히 확인 잘하고 예. 전해 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휭하니 돌아오소. 점심도 기름값도 아무것도 안됩니더. 아셨지요?”
“알았다. 니 동창 일이고 내 후배 일이다. 내가 뭐할라꼬 그런걸 받노 말이다. 그냥 올끼니까 걱정마라. 됐나? 그리고 그쪽에 있는 빈 박스 2개만 더 실어주소. 생물같이 소중해서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영호가 시동걸린 스포티지를 막 타려는데 급히 아내인 수진이 달려왔다.
“여보! 조심하소. 길조심, 차조심 그리고 여자조심. 알았지요? 그리고 선애가 절절히 말하기를, 이 맛치가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하다고 했니더. 지체말고 바로 정 박사에게 전해주소. 한 시가 급하다 하데요. 전해주고 나와서 바로 전화해 주소. 선애 이 가시나가 또 전화 할낍니더. 알았니껴?”
영호는 스포티지를 출발시키며 생각했다. 어느 쪽 길로 가야 가장 안전하고 빨리 갈 수 있는가를. 강릉에서 영동고속도를 이용하는가? 아니면 불영계곡을 거슬러 올라 영주를 거쳐 영동고속 도로를 이용하는가? 어느 쪽 길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스포티지가 고등학교 앞을 지날 때 영호는 빽미러로 검정색 그랜져가 같은 간격으로 따라오고 있음을 봤다.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 친구 철웅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야. 철웅아. 지금 서울로 가고있다."
"어디쯤 가고 있냐?"
"고등학교 앞을 지나고 있다. 그런데 시내서부터 검은 그랜져가 따라 오는 것 같다. 기분이 안좋다."
"제수에게 대충 들었다. 그러면 니 동해고속도로에서 좌회전해 울진 쪽으로 달려라. 우리가 니 뒤를 따라갈테니."
"우리라니?"
"응. 진우하고 윤중이 같이 간다. 우리는 방칫골로 나가서 니 뒤를 따르겠다. 니 휴대폰 충전. 계속해놔라. 아마도 불영계곡으로 가는게 좋을 것같다."
"알았다. 샛돌쯤에서도 그랜져가 따라오면 맞는거다. 누구 차노?"
"내 차다. 여기가 아우토반도 아니니 충분히 따를 수 있다. 이따가 보자."
영호는 빽 미러를 주시하며 비상용 비행장 활주로가 펼쳐진 동해 준고속도로 진입 신호등을 지나 후정2리 마을회관 앞에서 좌회전을 하여 서서히 7번 국도로 진입하였다. 빽미러로 보니 그랜져도 같은 라인에 서 있었지만 신호를 받지 못하였다.
“영호. 지금 니 차가 지나는 것을 보고 따라가고 있다. 그랜져를 유심히 보면서 갈테니 니는 뒤를 걱정말고 조심해서 36번 불영계곡으로 가라.”
윤중이 친구였다. 영호는 울진을 지나 왕피천 다리를 건너기 전에서 우회전하여 36번 국도로 들어서자 속력을 좀 내었다. 여름 휴가 씨전이 끝났고 가을은 이미 깊어져 겨울이 가까이 와서인지 상행선 차량들은 많지 않았다. 영호는 주변의 경치를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연신 빽미러를 보며 평상시보다 조금 더 속력을 내어서 달리고 있었다. 그랜져가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고 있었다. 불안하였다. 촌에서만 살아온 영호가 이런 쫏기듯 운전하는 것에 익숙할 리가 없었다. 속에서는 겁부터 났다. 멀리 남쪽으로 가는 917번 도로가 시작되는 3거리 팻말이 보였다. 그 때 회색 벤이 영호의 스포티지를 앞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