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상을 받은 신바람 우체부> - 배0주(남, 72ㅡ 2021.4.6.)
“내 거라고 쥐지만 말고, 내가 어느 정도 찼으면 풀을 줄 알아야 공감이 가요. 베풀어라.”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지 느낀 점을 말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대뜸 베풀라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금전을 모을 줄 알았지 쓸 줄을 모르는 데, 그것은 미련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연금을 타면 부인한테 주지 않고 모두 좋은 곳에 쓴다고 했다. 그 때문일까. 지금 맡은 직책이 꽤 많았다. 게이트볼 회장, 경로당 부회장, 횡성군 대한 적십자사 지부 협의회장, 족구연합회장, 게이트볼 횡성군 부회장 등이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이다. 돈 버는 직책은 아무도 없고, 전부 돈 쓰는 직책이다. 봉사시간이 8천 시간이 넘었고, 20년간 봉사를 했다.
그런데 배0주 씨를 만났을 때, 아주 신바람이 나 있었다. 정말 긍정적으로 즐겁게 사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괜히 옆에 있는 우리가 절로 어깨춤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산 덕분일까. 노무현 대통령 때 청와대에서 대통령상 금상을 받았다. 상금이 1천만 원이고, 15일간 해외여행도 할 수 있었다. 상금은 도와 달라는 데 모두 썼고 오히려 사비로 80만원이 더 들어갔다.
배0주 씨는 군입대전에 우천우체국에 들어가서 특사배로 전보를 배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때가 18살 때였다. 우천우체국은 별정우체국이었다. 우체국장님의 호된 질정에 잠시 우체국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책표지 만드는 일에 종사하기도 했다. 책표지 만드는 회사에서는 군 입대 전과 후에 잠시 일했다. 사장님 아들이 농아여서 수화도 공부했다. 그 때문에 회사 사람들에게 평이 좋았다. 서울에 처음 가서 잘 곳이 없어 청계천 다리 밑에 자다가 방범대원에게 발각 되어 벌칙으로 구두 닦느라 고생도 했다.
그러나 배0주 씨의 천직은 우체부였다. 그 당시는 집배원을 우체부라 했다. 군대에 있을 때도 잠깐 취사병으로 있다가 전령이 되어 우체부 역할을 했다. 군 우체국에 잠시 있었으나, 영어를 잘 못해서 군 우체국에서 나와 전령을 한 것이다. 그렇게 36개월 동안 군에서 있었다. 군에 있을 때 우천우체국장이 면회를 두 번이나 왔다. 그 인연으로 24년간 우체부를 하였다. 정년이 되어 58살에 퇴직할 때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다. 24년의 세월은 많은 일화를 낳았다.
배0주 씨가 18살에 우체국에 입사하여 근무를 하다가 서울로 간 사건이다. 당시 우체국에서 석유를 팔았는데, 사람들은 됫병을 가져와서 석유를 사갔다. 마침 아는 아주머니가 와서 석유를 사러왔기에 병목까지 가득 채워 주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던 우체국장이 그걸 보고는 들아와서 배0주 씨에게 욕설을 했다. 배0주 씨는 화가 나서 그만 서울로 올라갔던 것이다.
우체부는 우편물만 배달하지 않았다. 온갖 심부름을 다 해야 했다. 할머니가 몸이 아프니 약을 사달라고 하면 약방에 가서 증상을 얘기하고 약을 사 드리는 것은 보통이다. 어떤 할머니는 라면까지 사달라고 했다. 매일 마을에 나타나 우편물을 배달하니 그만큼 친해진 것이다. 그렇게 가져가면 아들 같이 생각하고, 점심 먹고 가라하고, 술 먹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신세도 많이 졌다.
주로 전보를 많이 배달하다 보니 낮밤이 없었다. 전보가 오면 시간을 다퉈야 했다. 왜냐면 대부분 누가 돌아갔다든가, 임종이 가까웠다든가, 혼인을 한다든가, 타향에 간 자식들이 부모님께 생활비 좀 부쳐달라고 하는 등의 급박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밤에도 전보가 오면 배달을 했다. 그런데 횡성지역은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온다. 그래서 겨울이면 동상에 걸린 적이 많다. 저녁이면 소금물을 풀어 발을 담그고 잠들기도 했다.
우천은 농촌이기 때문에 낮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토로 나갔다. 그래서 집은 빈집으로 있는 경우가 많다. 도둑들이 그걸 노려서 돈이 되는 개를 훔쳐 가든가 고추를 훔쳐 가든가 하는 도둑이 많이 들렀다. 배덕주 씨는 주인의 얼굴을 알고 도둑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상황만 보면 판단이 되었다. 그래서 용둔리에서는 개를 훔쳐 달아나는 도둑을 경찰에 넘겼고, 하궁리에서는 고추도둑을 잡은 적이 있다. 고추를 찾아주었더니 그 해 가을에 고추 열 근을 고마움의 표시로 주기도 하였다.
마을마다 누가 사는지 잘 알고 있는 터라 중매를 40쌍을 놓아 짝을 맺어주었다. 중매를 할 때는 사돈끼리 재산이나 학벌 등이 기울면 안 된다. 그래서 지금도 다니다 보면 배석주 씨가 중매를 놓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부고장을 가져가면 우천의 풍속에 그냥 보내지 않는다. 뭐든 먹여 보낸다. 차라도 한 잔 줘서 보낸다. 먼 길까지 가져오느라 고생했다는 표시일 것이다. 부고는 마당 안으로 들어가면 주인에게 욕을 먹는다. 그래서 보통 대문께 꽂아둔다.
옛날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때문에 우체부가 편지를 대신 읽어주고, 써주기도 했다. 읽어줄 때 돈 달라고 온다거나 형제간에 죽었다는 것처럼 슬픈 얘기는 읽기가 참 고달팠다. 결혼하니 오라는 것, 군에 간 남편이 제대해서 온다는 것처럼 좋은 소식은 신이 났다.
배0주 씨는 이밖에도 편지통이 없어 집안이나 대문에 꽂아 둔 편지봉투가 바람에 날려가 버렸다고 오해 받아 속상한 일, 용둔에서 불난 집 불 끄다가 데었던 이야기, 장리빚을 받으러 깡패를 보낸다는 전보가 와서 가기 싫었던 일 등등 아주 많은 일화가 있었다.
배0주 씨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악한 사람이 없어요. 상대가 만드니까 악한 거지. 싸워봐야 개코도 아니잖아.”
우체부를 하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