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키운다 / 곽주현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 ‘꼬끼오, 꼬끼오’ 하고 연거푸 목청을 돋운다. ‘이 녀석들이 주인이 오는 줄 아나?, 설마?’ 새벽에 농장에 왔다.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된다는 백로가 지났지만, 여전히 한여름이다. 가을 농사의 주된 작물인 무와 배추를 심으려고 준비하느라 동틀 무렵에 일어나 며칠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승용차가 농장에 닿자마자 닭들이 반갑다는 듯 꼬꼬댁거리고 날갯짓을 하며 부산을 떤다.
아내가 손주들을 거두느라 딸네 아파트에 가 있어, 나만 혼자 집에 있는 날이 잦았다. 그런 날이면 티브이 리모컨이 종일 손에 쥐어져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무엇인가 색다른 일을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고향 친구를 만났다. 자기가 기른 닭이 낳은 거라며 달걀 한 판을 준다. 나도 몇 마리 키워 보면 어떻겠냐는 의향을 내비쳤다. 키우는 재미도 있고 알도 얻을 수 있으니 꼭 길러 보라고 권한다.
곧바로 인터넷을 뒤졌다. 닭장이 눈에 든 것이 있어 주문했다. 자재를 받아 조립을 시작했다.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부품을 모두 맞추어 놓고 보니 사진으로 보았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 엉성했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금방 넘어갈 것처럼 허술해 보였다. 다시 철근 가게에서 보강재를 사다가 완성하기까지 거의 한 달이 걸렸다. 그것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이만큼 해냈다.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과 달랐다. 야외(농장)에서 기르면 튼튼하게 지어야 들짐승의 수난을 피할 수 있다 해서 사방을 철망으로 두 번 두르는 등 빈틈없이 지었다. 좀 떨어져서 보면 사각 텐트를 쳐 놓은 것 같은 아담한 닭장(가로 3m, 세로 2m, 높이 2m)이 완성되었다. 그냥 부품을 꿰어 맞춘 작은 축사지만 내 손으로 해내서 기분이 뿌듯했다.
5일장에 가서 병아리 몇 마리 사 오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닭을 주겠다 한다. 수년 전부터 닭을 길러온 친구가 여섯, 축산업을 하는 동생이 열, 고향 친구가 열네 마리 등 30마리나 되었다. 너무 많았지만, 생각하고 준다는데 거절할 수가 없어 다 받았다. 부화된 날짜가 20여 일씩 차이가 나서 닭장을 그물망으로 3등분하여 넣었다. 요즈음은 시골 가정에서도 암탉이 달걀을 품어 깨는 병아리는 거의 없고 시장에서 사거나 직접 부화기에 넣어 새끼를 얻는다.
이 녀석들을 길러 보니 예전에 몰랐던 특성들을 새롭게 알아 가고 있다. 닭이 그렇게 물을 많이 먹는 줄 몰랐다. 중닭이 되면서부터 30마리가 하루에 10리터 정도 마시는 것 같다. 20여 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거의 집집이 닭을 10여 마리씩 길렀다. 마당에 풀어놓고 키워서 일부러 물을 주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몇 모금만 마시면 잘 크는 줄 알았다. 또 자기보다 순한 닭을 골라 못살게 구는 성질 고약한 닭이 있다. 수탉이 서열 다툼을 하며 날개를 꼿꼿이 세우고 싸우는 광경을 가끔 보았지만, 약한 녀석을 골라 따돌리고 쪼아 대는 포악한 놈들이 있어 놀랬다. 모이를 주려고 들어갔더니 암탉 한 마리가 피가 흐르고 있어 살펴보니 목 부분이 큰 짐승에게 물린 것처럼 2센티쯤 찢어져 있다. 약을 발라 반창고를 붙여 주고 밖으로 나와 지켜보고 있는데 큰 수탁이 상처 부위를 계속 쪼아 대며 짝짓기를 시도한다. 한쪽 구석으로 도망가 숨었는데 다른 닭이 달려들어 아픈 그곳만 공격한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이럴 수는 없다며 당장 우두머리를 잡아서 손자들 식탁에 올렸다. 나는 차마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이틀마다 물과 먹이를 주다가 바쁜 일이 있어 3일 만에 갔다. 닭장이 안이 난장판이다. 물, 모이 그릇이 여기저기 엎어져 뒹굴고 아래쪽으로 쭉 둘러놓은 매트가 이곳저곳 찢어져 나풀거렸다. 물, 모이 그릇은 조립식으로 되어 있어서 사람이 아니면 몸체와 뚜껑을 분리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이 녀석들도 목마르고 배고프면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고 추측할 뿐이다.
엊그제 농장에 갔더니 달걀이 두 개나 보인다. 하얗고 누런 색깔이다. 방금 낳았는지 따뜻하다. 오져서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눈을 감고 손을 내밀어 보라.’ 하고는 양손에 하나씩 쥐여 주었다. 만면에 웃음이 번진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맛본다. 생활이 심심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면 닭 몇 마리 길러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