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 학회 만찬에서 느낀 것
/ 전현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2000년 봄 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유럽지역 정신치료 학회가 있어 내가 소속한 학회에서 혼자 참석하였습니다. 학회 어른을 모시고 가지 않으니 아주 자유로운 기분으로 학회에 참석하여 학술 발표도 듣고 바르셀로나 관광도 하고 혼자 만의 시간을 보내서 지금 생각해도 참 좋았습니다.
피카소가 바르셀로나에 오랫동안 살았던 인연으로 지어진 피카소 박물관도 두 번가고 세계적인 건축가인 아우디가 설계한 건축물도 여유 있게 보고 황영조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도 가보고 스페인 여자 아이들 모두가 영화배우 같이 멋있는 것도 보면서 일주일 정도 바르셀로나에 있었습니다.학회 마지막 날 환영 만찬이 바르셀로나가 항구 도시라 배에서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때 느낀 것입니다.
먼저 배의 밑 부분에서 식사를 하고 난 뒤 모두들 갑판으로 올라가 마련된 좌석에 앉아스페인 뱃노래인지 바르셀로나 뱃노래인지 무식해서 모르지만 뱃노래를 악단들이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배 머리쪽에 설치된 무대에 7-8명으로 구성된 악단이 몇 사람은 아코디언, 기타, 그리고 스페인 민속악기처럼 보이는 악기를 연주하고 나머지 5사람 정도가 청중들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참 듣기 좋았습니다. 특히 한 사람이 우리 청중의 눈을 끌었습니다. 아주 뛰어나게 잘 불러 다른 노래 부르는 사람과 비교가 될 정도였습니다. 아마 젊었을 때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그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쳐다보았습니다. 노래가 참 듣기 좋아 노래를 잘 모르는 나도 노래를 듣는데 빠져들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5명 정도 노래만 부르는 가수중에 노래 실력이나 나이가 2인자 정도되는 사람이 갑자기 무대에서 우리가 있는 객석 쪽으로 황급히 달려갔습니다. 그 날 파도가 좀 있었는데 멀미를 한 모양입니다.
악단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큰 사고가 난 것입니다. 한 사람 빠진 것을 보충하느라 나머지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 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까 말한 왕년의 스타 가수도 더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다른 멤버들도 노력하는 것이 눈에 띨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2인자 같은 사람이 빠지고 난 뒤부터는 그 전의 흥겨운 노래가 더 이상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하는 데도 불구하고 맥이 빠진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30분인가 40분후에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그런 일이 있기 전 노래로 돌아갔습니다.나에게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아주 강하고 뛰어나면 그 사람의 영향으로 조직이나 집단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거기에 모여있는 사람 하나 하나는 자기 소리를 낸다는 것을 여기서 느꼈습니다.
물론 경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 일을 경험하고부터는 여러사람이 하는 일은 예술이든 작업이든 학문적인 것이든 그 속에 들어 있는 사람들 각각이 자기 소리를 내고 그 소리들이 모여서 그 집단의 소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내가 더 많은 소리를 낸다고 생각해서도 안되고 내 소리는 약하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유사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