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 최미숙
겨울잠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는데 날씨는 여전히 차다. 그래도 겨울눈이 한껏 부풀어 올라 꿈틀거리는 것이 봄이 가까이 온 모양이다. 세상은 온통 부조리로 가득하고 어지러워 현기증이 일 지경이지만, 일정한 질서로 움직이는 자연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는 요즈음이다.
25년 3월 4일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10학기째다. 줌 화면에는 지난 학기 함께했던 문우뿐 아니라 새로운 얼굴도 보였다. 글쓰기에 도전하는 일이 쉽지는 않은데 그런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내 수준도 모르고 호기롭게 덤볐다 엉망진창이던 문장에 창피했던 옛 기억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났다. 막연하게 동경만 하다 후배의 권유에 망설이지도 않고 시작한 글쓰기가 몇 년간 내 생활의 일부가 됐다. 뛰어난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햇수로 5년을 이어 왔으니 스스로가 기특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 작가가 될 것도 아니고, 지금껏 한 주도 빼지 않고 썼으니 그 쯤하면 쉬어도 되지 싶었다.
24년 12월 21일 ‘일상의 글쓰기’ 수업이 끝나자 매여 있던 고삐가 풀린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하고 날아갈 것 같았다. 당분간은 들여다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1주일에 글 한 편을 완성해 카페에 자율적으로 올리면 되는데, 일단 글감이 나오면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꼭 써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완성할 때까지 머리가 무겁고 급기야는 스트레스가 되었다. 나와의 약속이기도 해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컸다.
종강하고 나서 방학 동안 내 스스로 몇 편이나 쓰는지 시험해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자꾸 미루게 되고, 무위도식하며 지내다 1, 2월이 후딱 가 버렸다. 그나마 막내아들 결혼식 날만큼은 내 마음을 남겨야겠기에 쓴 글 한 편과 큰아들 부부와 손자, 우리 부부 다섯이 베트남 나트랑으로 여행을 다녀와서(그곳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를 들었다) 반쯤 적다 만 글이 전부다. 시간이 많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러다 글쓰기를 아예 손에서 놓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동안 머리는 아팠지만 나름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끈이 떨어져 버린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앞으로도 혼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등록 기간이 끝났다. 혹시 다른 기관은 없는지 인터넷을 뒤졌지만 그것도 마땅치 않고, 있다고 해도 선뜻 내키지 않아 포기했다. 우연히 후배 양 교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글쓰기와 멀어지게 될까 두렵다는 말에 둘 다 생각이 일치했다. 교수님께 사정을 말하고 계속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수강생도 많은데 우리까지 더해져 교수님이 더 힘들게 생겨 죄송했다. 어쨌든 또다시 머리 아픈 일에 발을 담궜는데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이 양가감정은 무엇인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글쓰기와 더불어 기간제 교사가 되어 학교로 돌아갔다. 역시 아이들이 있는 곳은 생동감이 있어 좋다. 개학 날, 먼지 풀풀 날리고 쓰레기 가득하던 교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책상 줄을 맞추고 나니 마음의 묵은 때까지 벗겨지는 것 같아 한결 개운하다. 탁상용 달력에 학교 일정을 기록하고, 수업 자료를 준비했다.
환기하면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 다행이다. 이런 환경이 그저 고맙다. 마음을 다잡고 더 성장하는 2025년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3월, 글쓰기도 학교생활도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