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 (34) 상여소리
경주 남산은 빼어난 경치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재가 유명하다. 그와 같이 남산에는 문화재적인 가치 이상의 유명한 이야기를 가진 소개거리가 널려 있기도 하다. 금속공예의 명장, 죽음과 삶을 이어주는 상여소리연구소, 지금도 부처와 탑을 깎고 세우는 석공,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문학가와 예술인, 9대째 오래된 전통한옥을 보존하고 있는 남산의 사람들 등이다.
이번 호에서는 경주 남산의 털보로 불리는 상여소리연구소 서승암 소장을 만나 상여소리에 얽힌 이야기와 털보가 공부하고 깨달아가는 삶과 죽음을 잇는 것들에 대한 본질을 들어보기로 한다.
◆경주 남산의 털보 이야기
경주 남산을 찾은 사람들 중 삼릉 입구에 늘어선 이상하게 생긴 조각들을 보고 한 번쯤은 수군거렸을 게다. 35번 국도를 이웃하고 있는 작업실 앞으로 길게 대포보다 크게 생긴 ‘거시기’ 모양의 목공예품들이 하늘을 향하거나 앞산을 향하여 뻣대고 선 것을 말이다.
작업실 안을 들어서면 턱 아래로 회색빛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도인같은 그를 만날 수 있다. 상여소리꾼 털보 서승암(53)씨다. 남산에서 ‘털보’라고 물으면 누구나 아는 사람이다. 그는 남근을 조각하는 공예작가다. 작업실 안에는 그가 깍아 세운 남근조각상이 즐비하다. 생계를 위해 밥상이나 목 다기류, 괴목으로 만든 탁자 등도 조각한다. 소식을 전하고 마을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솟대도 조각해 전시하고 있다. 사실 그는 공예작품 보다 상여소리 연구에 심취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마을 어른들이 태워준 상여가 오래 기억에 남아 상여소리를 연구하게 됐다”는 서승암 소장은 머리에서 상여소리가 떠나지 않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기어이 2012년도 여름 남산의 작업실에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상여소리연구소’란 간판을 걸었다. 상여소리를 연구하고 싶어 3년이나 전국 방방곡곡을 걸어서 상가소리를 찾아 다녔다. 혼자 전국의 상여소리를 찾아다닌 것이다. 그러다 “연구소 간판을 걸고나니 너도 나도 찾아와 한마디씩 거들고 같이 공부하려는 사람도 나선다”면서 사람좋은 털보 소장은 곧 상여소리의 체계가 정리될 것이라고 말한다.
서 소장은 우리 전통의 소리이자 민족의 문화로 친숙한 상여소리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보내는 말을 기록한 만장, 축문과 제문 등의 장례에서 진행되는 전통장례문화를 복원해 일반화시키는 일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그는 장례문화를 복원하고 싶어 경주의 예술인들과 지인들이 사망하면 그가 스스로 장례위원장이 되어 장례를 주관하면서 전통장례문화를 시연한다. 축문과 제문을 지어 바치고 요령을 손에 들고 꽃상여 앞에서 상여소리, 선소리를 외치면서 장례를 인도한다.
그는 상여소리를 공부하면서 자신을 찾는 공부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우주를 알게되는 길”이라며 사찰의 선방에서 10여년을 공부한데 이어 지금도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2시간은 자신을 찾기 위한 공부에 온전히 쓰는 시간으로 남겨두고 있단다.
◆삶과 죽음을 잇는 상여소리
“너호 너호야 너호 넘차 너너어호.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보고파도 아니올 길......”
어찌 들어보면 청승맞고 어떻게 들으면 슬퍼지다가 무서워지기도 하는 상여소리. 경주 남산에 연구소를 차린 서승암 소장에게 상여소리는 친숙한 우리의 소리다. 아무리 공부해도 선명하게 밝혀지지 않는 ‘삶과 죽음의 경계’, ‘나’ 라는 정체가 나날이 방황하게 한단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사람과 이승의 남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나누는 대화가 상여소리다.
혼자하는 소리, 함께하는 소리, 전송의 소리, 안타까움에 몸부림치는 울음소리, 보낼 수 없어 불러보는 소리.... 서승암 소장이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실체가 늘 자신과의 분명치 않은 경계를 두고 서성거려 공부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소리가 상여소리다.
조선팔도 상가집을 기웃거리며 귀동냥한 상여소리들, 다른 듯 하지만 같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자세히 들어보면 다른 것 같기도 한 상여소리. 그가 목을 풀어놓으면 한나절을 읊어도 끝없이 나오는 것이 상여소리다. “일생 일초에 한이 가도 이별이 될 줄은 몰랐는데/ 오늘 내가 당하고 보니 이별이 무언지 알것구나/ 살아 이별은 망발인데 죽어 이별은 어이하나/ 여보시오 벗님네들 이내 한 말씀 또 들어보소/ 놀고가세 놀다가세 후원없이 놀다가세..........”
후렴 없이 늘어놓아도 구성지게 이어지는 털보의 상여소리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어지듯 끝이 없다. 경주 남산 털보 서승암이 기어코 끝을 보아야 할 숙제로 남은 우리의 소리가 상여소리다.
◆털보가 남근을 세우는 이유
경주 상여소리연구소를 방문하는 사람은 먼저 흉측스럽게 생각되는 조각품들을 만나야 된다. 털보 소장의 작업실이 온통 남근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고목으로 장승처럼 작업실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남근, 여성전용이라 불리는 남근으로 치장된 의자, 남근이 줄줄이 달린 남근나무, 운동기구로 쓰이기도 하는 남근의자 등등 남근 공예품이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가 생계 때문에 목공예 작업을 한다는 솟대나 밥상, 괴목 탁자 보다 훨씬 많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털보 소장이 깍은 남근조각은 3천여점에 이를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만점을 깍으면 남산에서 태우는 퍼포먼스를 펼칠 것”이라며 그가 남근을 집요하게 깍는 이유를 설명했다.
털보가 남근을 세우는 이유는 태우기 위해서란다. 그가 말하는 만개의 ‘만’은 궂이 일만개의 단순한 숫자로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꽉 차는 채움을 뜻하는 만개란다.
서 소장이 해석하는 남근의 의미는 남다르다. 사람은 남근에서 태어난단다. 남근에서 비롯된 사람의 씨앗이 여성의 몸에서 자라 태어날 뿐. 아기를 낳는 것은 남성의 남근이라는 것. “근본을 모른다는 것은 아주 심한 욕이 되는 말”이라는 서 소장은 근본이 곧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의미한다며 “삶과 죽음을 잇는 상여소리와 장례문화를 복원해 일반화되는 것을 보고 삶의 근원인 남근을 태우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싶다”며 그가 남근을 조각하는 이유를 세세히 설명했다.
◆상여소리와 영화 ‘군도’
경주 털보의 이름이 지역예술계를 시작해 우리나라 영화계에까지 알려지고 있다. 오는 7월23일 개봉을 앞두고 벌써부터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 ‘군도’에 상여소리로 경주 털보가 출연한다. 영화계에 이름을 떠르르하게 떨치고 있는 하정우, 강동원, 이성민, 조진웅, 마동석 등의 걸출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액션 영화다. 윤동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쌍칼을 휘두르는 백정 출신의 하정우와 전라관찰사를 지낸 부호이자 대표적인 탐관오리의 서자 출신 강동원이 무사로 나와 조선 후기 세상을 통쾌하게 뒤집는 의적들의 액션 활극으로 포털사이트에 벌써 관심이 뜨겁다. 상여소리가 어떻게 조명될지 털보의 기대도 크다.
경주 털보가 주목받은 곳은 훨씬 이전부터다. KBS 설날특집에서 다큐멘터리로 태어나서 죽을때까지의 백의민족의 정신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서 소장의 전통장례에 대한 연구 열정은 경주시의 문화계와도 눈이 맞아 지난해까지 여러차례 경주 첨성대 사적지 일원에서 발인제부터 꽃상여 행열과 노제로 이어지는 전통장례 상여 시연을 길거리 공연으로 펼치기도 했다.
그의 상여소리 보급을 위한 노력은 혼자만의 연구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주 신라문화진흥원을 비롯한 인근 울산과 영천문화원 등지에서 그가 연구한 내용을 강의로 풀어내면서 대중화를 위한 발걸음을 부지런하게 옮기고 있다.
◆경주 남산 털보의 소원
경주 남산 상여소리연구소 털보 서승암 소장이 바라는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중학교 까까머리로 타보았던 꽃상여. 바람따라 두둥실 노래장단에 맞춰 나비춤추며 떠나가는 길.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어지는 길을 가는 상여가 가는 길을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 풍습을 따라 시행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요 소원이다.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자신을 찾는 상객이 있다면 달려가 죽으면서 업장을 소멸해가는 저승길의 동무가 되어주고 싶어 기꺼이 요령을 손에 잡고 선소리로 배웅하는 길에 나선다.
서승암 소장은 “장례 절차에서 노제를 꼭 복원해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바로 안내하고 싶다”며 1차 소원을 말하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에 꽃가마 타고 갈 수 있게 전통 꽃상여 문화도 일반화 시키고 싶다”며 전통장례문화 복원을 꿈꾸고 있다. 서 소장은 전통장례문화 복원을 위해 “마을마다 나무로 전통적인 나무방틀 꽃상여를 만들어 보관하고 언제든지 전통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며 “쉽게 전통장례풍습을 이해할 수 있게 상여시연을 길거리 공연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장례풍습은 불교적인 요소와 유교 등의 문화가 복합돼 있어 특정 종교적 절차로 오인해서는 안된다”며 “전통장례풍속의 대중화작업이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꼭두 새벽을 하얗게 앉아서 맞이하는 경주 남산 털보의 정진에 큰 성취가 있기를 바라는 남산사람들의 소원이 털보의 소원과 하나가 되어 전통장례문화가 꽃상여를 타고 나비춤추게 되는 날을 기대한다.
첫댓글 경주 남산 주변에는 유달리 예술인들이 많이 머물고 있다
서승암 소장의 상여소리는
영화 군도 도입부에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