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대리운전⌟으로 할지 ⌜톡톡히 본 덕⌟으로 할지 고민입니다.
‘카톡’, ‘카톡“
정확하게 두번 울렸다.
‘코-옥’, ‘쿡’. ‘콕’, ‘쿡’.
폰을 들고 확인하니 익숙한 문자다.
‘여기 관교동’ ‘차 두고 갈까?’
주섬주섬 옷을 걸쳐입고 나서며 문자를 보낸다.
‘기다려요.’
연수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까지 가도 이십분이 채 안걸리는 거리다.
터미널 근처의 횟집, 엄청 많이 가 봤지만 회 맛은 모른다.
지하철에서 내리며 문지를 보낸다.
‘주차장으로 나와요.’
말수도 적고 잘 웃지도 않는 사람이 언제 그랬는가 싶게 환히 웃으며 나타난다.
아주 기분이 좋은 사람처럼.....
스물 하고도 다섯 이나 더 거슬러 올라간 해 오월 초, 주말에 낚시를 갔다.
’아˞유 시원하다!’
뒷방울에 도착하여 차문을 여는 순간 와 닿는 자연의 모습이 정겨웠다. 투명하리만치 맑은 물을 보자 한주동안 부대끼며 일렁이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듯 했다. 저수지 주변엔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낚시를 즐기는 가족나들이 팀과 혼자 낚시에 열중하는 사람이 섞여 있었다.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하자 삼삼오오 둘러앉아 먹을거리를 챙겨 먹는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우리도 준비한 삼겹살을 구워 먹다 곁의 일행과 어울리게 되었다. 고향이야기를 하다 군대에서 있었던 일까지 꺼내 놓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한바탕 기분 좋게 술자리를 한 남편은 잠이 들어 버렸다. 아이들을 집에 두고온 터라 초저녁에 한잔하고 술이 깨면 늦은 시간에라도 귀가하려 했었는데... 운전을 할 줄 모르던 나는 할 수 없이 남편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차에서 뜬 눈으로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먼동이 틀 무렵에야 남편이 눈을 떴다. 잠시 주위를 돌아보다 ‘후다닥’ 일어나더니 운전대를 잡고 쏜살같이 집으로 향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도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계 다루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던 내가.
1993년, 운전학원에 등록을 하러 갔다. 신청하면 바로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신청하는 이들이 폭주하던 때라 집 근처의 학원은 여러 날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멀지만 석남동 목재단지 부근의 학원에 수강신청을 했다. 한 달 뒤 시험을 보러 운전면허시험장에 갔다. 필기시험은 바로 통과 했으나 실기가 문제였다. S코스 T코스 주행과정 모두 통과해야 합격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학원에서는 그런대로 운전대를 움직이며 차를 몰수 있었는 데 면허시험장의 차는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긴장한 탓인지 왜그리 뻑뻑하고 안돌아가는지. S코스는 무난히 통과하였는데 T코스가 문제였다. 떨어지고 다시 시험 보기까지 한달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번엔 후진에서 선을 밟아 다시 한달 반을 기다려야 했다. 또 주행에서 언덕을 오를 때 시동이 꺼졌다. 왜그리 마음 먹은대로 안되는지...
‘에이 그만두자.’ 운전하는 것을 포기하려고 마음 먹었다. 이를 눈치챈 남편이 이른 아침이면 깨웠다. 연습을 시키기 위해서 였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시간을 택하느라 부지런을 떨었다. 그 당시는 수동으로 운전해야 하는 스틱차가 대부분이던 시절이었다. 입시생 공부하듯 연습을 시킨 덕으로 운전면허를 땄다. 5월에 시작한 것이 12월에 가서야 결실을 맺었다. 끈질긴 남편의 재촉이 아니었으면 아마 포기했을 것이다. 그 후로 남편은 가르쳐준 덕을 톡톡히 봤다. 대리운전을 종종 해 주었기 때문이다.
‘카톡’, ‘카톡“
TV를 한참 보다 기지개를 펼 무렵 들려오는 소리.
싫지만은 않다.
운동삼아 나서는 발걸음이어서?
그리고 다행인 것은 단골로 가는 곳이 집에서 멀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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