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7일 05:기상, 오늘 오전으로 3벅4일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후쿠오카 공항에서 16:25분발 인천공항 출발이다. 일반적인 여행과 달리
성지순례는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성인들의 신앙정신을 조금이라도 기리며 이 시대, 우리들의 순교 정신은 무엇인가
라는 깊은 묵상을 위한 시간들이었다.
오무라의 우에마쓰 성당에서 10:00분 송별미사를 긑으로 공식적인 순례는 끝난다.
09"30분에 호텔에서 출발이다.규수의 나가사키현 중부에 있는 도시다. 전국시대에는 크리스찬이었던 다이묘 오무라가 나가사키를 개항해 남방무역으로
번영하였던 지역이다. 메이지 이후 시대에는 군사도시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16세기 후반에는 일본과 포르투칼의 무역기지로 일본가톨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오무라 가문의 18대 영주 스미타다는 1563년 세례를 받고 전국 다이묘 가운데 전국 최초로 가톨릭 신자가 되어 영내 기리시탄이 6만명이
넘을 정도로 교회를 부흥시키기도 했다.
우에마쓰 성당에 도착했다. 개성출신 조선인 할아버지(90세)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랜동안의 일본생활에서 우리말도 잊었는지 가이드가
통역을 할정도다. 마지막 미사는 더 절절하고 장중하고 엄숙한 가운데 드렸다. 미사가 끝나고 할아버지의 기나긴 타국의 삶과 신앙에 대해서 길게
설명이 이어졌다. 수녀님과 할아버지는 우리가 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손을 흔들며 아쉬워 했다. 어머님은 그 할아버지와 긴 이야기로 석별의 아쉬움을
표했다.
신앙은 무엇인가? 왜, 그토록 수많은 생명이 죽도록 하느님은 침묵하는걸까? 말씀하고 계신걸까? '침묵'..침묵은 하느님의
침묵이 아니라 '하느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 신은 사람들의 인생이 그 분에 대해서 말씀하는 방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리라.
엔도 슈사쿠는 '침묵'의 소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아, 하느님의 뜻을 어찌 우리 인간적인 잣대로 말할
수 있단 말인가?
3박4일의 여정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대전가톨릭문학회 회원과 가족 14명의 일행이 3박4일(10.14~17)의 여정으로 나가사키
성지 순례길에 올랐다. 10.14일 후쿠오카 공항에도착하여 입국수속을 마치고 버스에 탑승한 시간이 16:00분이다. 우리의 목적은 여행이 아니라
성지순례다. 그 성스러움이 깃든 나가사키, 그 성스러움이 있기까지 수 만여 명이 순교가 있었다. 후쿠오카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드리고 극진한
환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가장 비참하게 죽은 그 예수,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는 우리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왜, 그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에 이를까? 과연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묵상할 수 있는 시간에 머물렀다. 그래서
더욱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15일 본격적인 순례 여정이다. 오우라 성당에서 09:00분 미사다. 오우라 성당은 일본 최초의 목조 성당이며 일본 국보로 지정된 성당이다.
1864년 프랑스 신부인 쁘띠장에 의해 건립되었다. 아름답고 성스러웠다. 정지풍 지도신부님의 주례로 드리는 미사이기에 더욱 뜻이 있었다.
경건하고, 엄숙하고, 성스럽고, 영광 가득한 미사였다.
1549년 가고시마를 통해 사베리오 신부로부터 복음이 시작된 일본,
우리나라보다 230여년이나 앞서 신앙의 씨앗이 싹텄다. 초기교회의 모습은 우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신앙의 시작, 박해, 순교, 수용,
안정이라는 과정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박해와 순교의 역사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길었다.
1865년 2월 프티쟝 신부는 일본 26위
성인에게 금빛 찬란한 고딕식 오우라 천주당 축성식을 거행했다. 우리는 그 성당에서 순교 성인들을 생각하며 장엄한 미사를 드리는 영광을 누렸다.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서 지은 ‘여기당’은 가난한 삶의 표본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줬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 깊은 사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명저를 남겼다.
엔도 슈사꾸의 ‘침묵’의 무대가 된 소토메
지역은 잠복 신앙의 마을이다. 언덕 중턱에 자리한 조촐하지만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 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푸르고도 맑았다. 철석,
철석하며 출렁이는 말 없는 바다를 내려다보이는 곳에 하나의 비가 있다. ‘침묵의 비’다. 이런 절규가 새겨져 있다. ‘인간이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 푸르릅니다’ 박해를 피해 들어간 소토메 지역, 그 잠복
신앙 안에 숨죽이며 신앙을 지켜온 아픔이 파도와 함께 출렁인다.
운젠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구름과 선녀가 만난다는 이름을 가진 이곳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뜨거운 유황 물에 잔혹한 고문을 당했고, 배교를
거부한 16명이 순교한 지역이다. 도착하자마자 순례가 이루어졌고, 다시 16일 새벽 아내와 함께 운젠 지옥을 찾았다. 배교를 시키기 위해서 그
뜨거운 물(50~80도)을 끼얹는 방법으로 고문을 시작했다니 상상만으로도 오싹한 전율을 느낀다. 이 평온하고 아름다운 땅에서 자행된 만행의 지역
‘운젠’은 성지로 우뚝 서서 수많은 순례 객들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16일 운젠 성당(공소)의 미사(09:00)는 성스러움 자체였다. 공소 신자는 10명이 안된단다. 일본의 특수성이다. 전체 가톨릭 신자가 45만
여명 정도니까. 일본인만이 가진 토속 신앙의 뿌리가 깊어 신앙을 받아드리기가 쉽지 않은 일본인들이 아닌가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탈옥한 수감자 대신 죽음을 자원하여 순교한 콜베 성인 기념관에서의 숙연함이 밀물 듯 밀려온다. 17일, 너무도 아름다운 우에마쓰 성당의 마지막
미사는 은총으로 물들였다. 3박4일의 성지순례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신부님, 가톨릭 문학회 회원들의 따스한 숨결과 함께 하느님의 뜻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18:0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아쉽고 거룩했다. 함께한 신부님, 회원, 헤이리, 회기동 신자들에게도
고맙다. 19:20분 서산행 버스를 타고 조용히 3박4일의 여정을 그려본다. 대전 터미널엔 10시 20분 도착이다. 시골에 도착했을시는 12시가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다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