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카페에서 삼년여를 눈팅만하면서 참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처지가 부끄럽고도 고마워 주저하다가 오래전에 써 두었던 신변잡기를 연재로 올려봅니다.
심심풀이 삼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구담 배상
[약초꾼 허씨와 화개 사람들]
약초꾼 허씨를 처음 만난 것이 1989년 가을이었다.
쌍계사 아래에 관광숙박업(콘도, 가족호텔)을 허가 내기 위하여
화개장터 앞에서 장기 하숙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충주에서 살았다.
그는 딸 둘에 아들 하나, 삼 남매를 둔 다복한 가장이었다.
여상을 마치고 은행에 다니는 맏딸이 살림은 맡아서 하고
허씨 부부는 꽃 따라 단풍 따라 남으로 북으로 이동하면서 행상을 하고 있었다.
산에서 캔 약초와 산채를 계절 따라 돌아다니며 팔았다.
지리산 약초는 월악산 밑에서 팔고,
그곳의 산나물은 지리산 아래서 팔면서 충청도와 전라도의
산채와 약재를 버무려주는 약초꾼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산 약재나 나물들이 버젓이 국내산으로 둔갑하여 소비자를 우롱하였지만
허씨는 그런 야바위를 하지 않았다.
타이탄 트럭인 이동점포는 늘 허씨의 부인이 차고 맡아 일하고
그는 산으로 골로 약초와 산채를 캐러 다녔다.
큰 키에 깡말랐고 허리가 꼿꼿하여 지겟작대기처럼 보였으며
쭉 째진 눈매로 첫인상은 차갑고 사나워 보였다.
그의 행장은 늘 단촐 하였다.
맨발에 검정 고무신이나 고무장화를 신고서
부직포로 만든 약초 자루를 어깨에 걸머진 채
자기를 닮은 지겟작대기를 들고 다녔다.
자루 안에는 닳아서 날이 풀잎만 해진 조선낫과 호미 한 자루에
된장 고추장과 김치를 곁들인 보리밥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그가 영 마뜩하지 않았고,
말과 행동을 삼가는 바람에 가까이할 수가 없었다.
할 일이 없어 나 홀로 반야봉에 다녀오던 어느 날 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산을 좋아하셔유? 어디를 둘러서 오는 감유?”
지리산을 두고 서로 묻고 답하다가 비로소 첫인상의 오해를 풀었다.
그는 지리산을 손금을 보듯 샅샅이 아는 도사였다.
나는 비로소 마음을 열고 때가 되면 허씨를 따라서 산행도 하고
약초 채집도 배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댓글 좀만길게 작성해주세요
흥미진진~
흥미진진~2
너무 짧아요~
구담님....
쪽지 보냈습니다.
기다려집니다.^^***
구당 선생님도 있는데...침뜸의 대가....호가 비슷하네여...^^
관심을 보여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다음편부터 길게 싣겠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에 어긋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기대만땅
연재물로 알고 열심히 읽겠습니다.
기대됩니다.^^*
약초꾼과 화개 사람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하네요.
다음 이야기 언능 올려 주세요 즐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