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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와 독자의 만남
김홍은 교수
1. 작가와의 대화
글을 쓰는 작가라면, 어떻게 써야 맛깔스런 수필을 쓸 수 있을까? 누구나 고민을 하게 된다. 구양수의 삼다(三多)를 다시 떠올리게도 한다. 좋은 수필 작법 조건에 맞게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참으로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예술은 기초가 10년이라 하였다. 이 또한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하고 난 연후에야 스스로 감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는 체험을 통한 창작의 고민으로 사색과 지혜의 인생철학이 담긴 고뇌의 서정적 글을 읽고 싶어 한다. 수필가가 이런 글을 쓰기란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수필은 읽고 나면 내용이 주는 맛과 멋이 있어야 한다. 어떤 글은 읽고 나도,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덤덤한 수필이 많다. 독자는 시큼털털한 맛, 새콤 달콤한 맛을 느끼고 싶어 한다. 글맛은 문장으로부터 느껴지는 감각의 감동이 없으면 밋밋하다.
수필의 멋은 문장으로부터 풍겨오는 향기로운 서정적 맛과 품위가 있어야 한다. 체험으로부터 얻어지는 사실적 이야기는 소재에 따라 주제의 이끌어감에 의해 옅은 맛의 느낌은 있지만, 문장으로부터 얻어진 사색과 사유의 철학이 없으면 깊은 맛이 없다. 어떻게 하면 멋있고 맛깔스러운 수필이 될 수 있을까. 맛과 멋의 향기가 곰삭아 있을 때, 색다른 진미가 함께 우러나 깊고 짙은 감칠맛이 난다고 할 수 있다. 과일도 설익으면 맛이 없듯이 수필도 오래 두고 익혀야 제맛이 나게 마련이다.
김정오(문학평론가)의 <늦깎이 수필문학 입문자에게 드리는 글>의 결미를 인용하면, ‘좋은 수필이란 읽는 이가 감동, 공감해야 하는 글월이다. 그러나 가치 쪽으로 너무 기울면 계몽, 교훈의 글이 되기 쉽고, 흥미에 무게를 두면 통속으로 치우치게 된다. 글을 쓸 때는 주제에 대한 깊고 넓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짧은 지식을 자주 인용하면 섞인 글(雜文)이 되고, 눈높이가 낮은 글은 신변잡기가 된다. 넓고 깊은 지식을 자기화 하여 쉽게 써야 한다. ’
이번 문학미디어 봄호, 신작수필 중에 한두 편은 곰삭은 포도주 맛이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이재영님의 <봄 메아리 따라> 작품은, 봄과 인생을 노래한 수필로 마치 윤선도의 오우가를 풀이하여 읽는 감성으로 정감이 간다. 노년의 값진 삶을 예술 인생으로 승화시켜 놓은 작품으로, 이젠 남가일몽이 되었으나 아직도 봄바람의 불길로 다행히 타오르고 있다는 글이다.
문학적 감성의 표현이 넘쳐나 작품에 대한 감상자로 해설을 달기가 오히려 역부족이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 경칩이면, 언 땅도 풀리고 꽃샘추위도 누그러지고, 한낮 산골짜기엔 얼음층이 녹아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이맘때가 되면 화자는 주로 가는 곳이 팔공산 가산산성이다. 바위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면 두꺼운 얼음층에 뚫린 구멍 사이로 청청(靑淸)한 물이 철철 넘쳐흘러, 마음도 몸도 물속을 헤엄치는 듯 사르르 녹아 산을 오르면서 봄처녀 노래를 자주 부르곤 한단다.
‘봄 처녀 제 오시네 하면, 봄 처녀가 있어서 저기 오는 듯 눈앞에 나타난 환상을 본다. 그러나 봄 처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면, 그때부터 하얀 동정에 연두색 한복을 품위 있게 차려입은 계란형 동양적인 절세가인絶世佳人이 청산 위에 솟아오른 하얀 뭉게구름 너울 달린 드레스를 입고, 진주 이슬 신을 신고, 가슴에는 흰 백합 꽃다발을 안은 신부가 백옥 같은 얼굴에 살며시 미소 지으면서 내 앞으로 다가온다.’
<봄 메아리 따라> 중에서
화자는 산에 가면 거울 같은 물, 바람 맑은 절경에 취하여 ‘봄처녀 제오시네’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와서 꿈인 듯 현실인 듯 몽롱한 상태에서 선경으로 오르다가 노래가 끝난단다. 첫사랑 같은 그녀는 꿈을 꾼 듯 사라지면, 아련한 그림자만 안고 그리움에 젖어 안타까워할 때 촉촉한 개울가에 버들강아지가 눈을 반짝 뜨며 인사 올린다고 하였다.
화자는 봄의 감성을 이은상님의 ‘봄처녀’ 가곡을 인용한, 작품<봄 메아리 따라>로 봄의 서곡으로 물, 바람, 절경의 봄동산을 시속에 한폭의 그림(詩中有畵)으로 그려 놓았다고나 할까. 시와 가곡을 수필가의 마음으로 오감을 통하여 문장으로 각색하여 놓음으로 독자들에게도 봄처녀가 눈앞에 아른대는 듯하게 연상시키고 있다
‘찔레 가시덤불 속에서도 생명 탄생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며, 새싹들이 힘차게 터진다. 묵은 풀잎 속과, 바위틈에서도 병아리 부리 같은 새 생명들이 굳은 땅을 뚫고, 바위를 밀치면서 힘차게 솟는다. 연약한 생명의 힘이 말라붙은 땅을 가르고 돌을 밀어 올리는 기적을 일으킨다. 이처럼 생명력은 힘차고 위대하다.
산수유, 생강나무에도 겨울눈들이 딱딱한 껍질을 뚫고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다. 매화도 뒤질세라 불그레한 꽃망울을 달고 방긋이 미소 짓는다. 목련은 하얀 꽃망울이 터질 듯 부풀어 만개의 꿈을 실은 붓처럼 되어 서예를 하는 내게도 큰 꿈과 희망을 안겨준다.
진달래도 꽃 맹아가 십팔 세 처녀의 가슴처럼 부풀어 터질 듯 윤기가 흐른다. 땅속엔 봄이 흘러 메마른 나뭇가지도 춘풍에 못 견디어 몸을 뒤틀고 흔들면서 발아를 촉진한다. 묵은 풀잎 속과 땅 밑에서도 새 생명들이 들썩인다.’
<봄 메아리 따라> 중에서
화자는 약동하는 봄을 시각적, 청각적, 지각적 감성으로 새 생명들이 용솟음치는 탄생을 잔잔하게 묘사하였다. 씨앗은 씨앗대로 움트는 탄생의 소리로, 나무는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감칠맛 있게 소곤소곤 들려준다.
가시덤불 속에서도, 바위틈에서도 굳은 땅을 뚫고, 바위를 밀치면서 땅을 가르고 돌을 밀어 올리는 새 생명을 기적으로 예찬하였다.
산수유, 생강나무도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매화도 그러하듯이 불그레한 꽃망울을 달고 방긋이 미소짓고, 목련은 하얀 꽃망울이 터질 듯 꿈을 실은 붓처럼 희망을 안겨줌에다 비유시켰고. 진달래 (진달래 꽃 맹아 : 작가가 꽃 맹아라고 표현함은 어색하지 않은가?) 꽃망울도 십팔 세 처녀의 가슴처럼 부풀어 터질 듯 윤기가 흐름을 은유하고, 땅속에도 봄이 흘러 뿌리로부터 메마른 나뭇가지도 춘풍에 못 견디어 몸을 뒤틀면서 발아를 촉진한다는 사고력의 표현들로 관찰의 통찰에서부터 자연과학의 생물학적 생명을 문학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어디서 왔을까? 다람쥐 한 쌍, 해맑은 눈빛 주면서 인사 올린다. 나무 타고 조르르, 바위 타고 재간 부리면서 따라온다.
박새 한 쌍이 날아와 고운 목소리로 지저귀며 저도 보아달라는 듯 물에 꼬리를 적셔서 몸을 씻어 단장하면서 아름다운 몸짓, 날갯짓을 연방하며 관심을 끈다.
어디선가 나무 켜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딱따구리 녀석이다. 새의 부리가 어찌 생겼기에 나무에 구멍을 저리도 잘 파서 집을 지을까? 산에 있는 동식물들은 한 해의 새 삶을 위해 힘찬 약동으로 분주하다. 산도 기지개 켜며 삼라만상들이 꿈틀거린다.’
<봄 메아리 따라> 중에서
이 문장은 동물과 새의 관찰을 들려주었다. 산골짜기 다람쥐도 봄이 되니 재주 부리러 소풍을 나왔나 보다. 나무 타고 조르르 재간을 부리며 따라오고, 귀여운 한 쌍의 박새도 고운 목소리로 지저귀며 물에 꼬리를 적셔 단장하고, 몸짓 날갯짓으로 매력을 떨며 유혹하고, 딱따구리는 고요한 산사의 목탁 소리처럼 탁탁 또르르르, 탁타탁 또르르르, 나무에다 구멍을 파고 집을 짓는다. 새의 부리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의문을 던짐에, 은연중 아리랑 민요에 나오는 앞산의 딱따구리만도 못한 우리 집 영감을 이끈 해학을 연상케도 한다.
‘오늘은 산을 돌면서 운 좋게도 산토끼와 고라니도 만났다. 그들의 해맑은 눈빛에 내 마음속 탐욕의 때를 말끔히 씻는다. ’ 며, 산에 있는 동식물들이 한 해의 새 삶을 위해 약동하는 힘찬 분주함을 들려주었다. 시적 영감으로 삼라만상들의 꿈틀거림을 생동감 나게 동작의 표현을 포괄적으로 그리었다.
자연의 이치와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일여(自然一如)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슴에 담으며 인생의 마무리를 설계한다는 수필로 서정적 표현력이 넘쳐난다.
최잠숙님의 <초겨울 단상>은 깊어가는 가을에 깊은 사색에 머물게 하는 글이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 가는 것이라고’ 하며 가을 산책에서 자연으로부터의 삶의 철학을 들려주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빈손이었던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도 빈손일 것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움켜쥐려고 발버둥친다며, 죽을힘을 다해 움켜쥐고, 쌓아두어도 결국은 빈손이라며 조용한 몸짓으로 후회없이 살다가는 내 생의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왔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면 하는 작은 바람으로 삶의 의미를 담아낸 수필이다.
‘산성의 동문에 이르니 발밑을 맴돌던 안개가 물러났다. 고운 단풍을 보리라는 기대감에 주변을 둘러본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놀란 나뭇잎들이 작은 바람에 바스락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곱게 물들고 싶었을 작은 소망을 뒤로하고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초겨울 단상> 중에서
갑작스런 기후의 변화로 나뭇잎은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고운 단풍으로 물들지 않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안타깝게 여기는 환경의 삶을 느끼게 하고 있다. 곱게 물들고 싶은 소망의 아쉬움은, 마치 사전을 펴들고 생물학적 잎의 역할을 읽는 듯한 지식으로 식물의 가을 잎이 갈색, 황색, 적색으로 변하는 생태적 현상의 관찰로 몰입하게 한다.
‘고운 단풍처럼 물들고 싶었던 욕심을 잠시 내려놓으며 나무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긴긴 겨울의 모진 바람을 이겨내고 기어이 싹을 틔워 올려 마침내 한 송이 꽃을 피워내던 봄날의 아름다움도, 작열하는 태양 속에 타는 듯한 목마름을 견뎌내고 푸른 열매를 내던 여름날도, 풍성하게 익어 가던 가을날의 기억마저도 모두 추억으로 남기고 겨울로 향하는 나무는 빈손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빈손이었던 인간은 마지막 순간에도 빈손일 것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움켜쥐려고 발버둥친다. 죽을힘을 다해 움켜쥐고, 쌓아두어도 결국은 빈손인 것을.’
<초겨울 단상> 중에서
가을이면 산행을 하다보면 누구나 고운 단풍처럼 물들고 싶은 심정이 순간적으로 욕심을 들게 된다. 아마도 그 뜻하는 욕심의 마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황홀한 색은 허영심에 빠져들기가 쉽다. 그러나 화자는 나무들의 일년 간의 삶으로부터 인생을 사유하게 하고 있다.
자연을 통하여 문학적 표현의 사색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인식하며 나무로부터의 단상(斷想)에서 다시금 삶의 깨달음을 음미하게 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사에서 너무도 많이 회자(膾炙)되고 있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空手來 空手去 人生)의 삶을 화자는 나무에서부터 느끼는 마음을 담담하고 수수(愁愁)롭게 말한다. 청정한 마음으로 가을에 단풍을 바라보고 곱게 물들고 싶었던 생각을, 나뭇잎이 떨어지는 아쉬움에서 묻어나는 의식을 깊이 있게 머물게 한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조용히 우는 것, 나는 나의 조용한 몸짓으로 울음을 삼킨다. 굳이 나라는 존재를 알리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임을 겨울나무로부터 배운다. 가져가지도 못하는 것들을 온전히 다 내어 주고 당당히 겨울바람에 맞서고 싶다. 내 생의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왔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내 삶에 약간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
<초겨울 단상> 중에서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는 신경림시인의 <갈대> 시를 연상케 하는 시적 감성으로 화자는 자신의 조용한 몸짓으로 울음을 삼킨다며 존재의 가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삶을 깨닫게도 한다.
논어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하지 않는다면(人不知而不慍) 군자(君子)가 아니겠는가 라는 글귀처럼, 인생을 어질게 살아감을 화자는, 겨울나무로부터 인간다운 품위를 들려주어 독자를 겸손히 머물다 가게 하고 있다.
장자의 인생 삶의 철학인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無己), 공을 내세우지 않고(無功),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無名) 처세의 마음까지 떠올려 가을로부터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 글로 독자의 마음을 오래 머물게 한다.
임도순의 <품바 축제>는, 금년으로 스무 번째 맞는 행사다. 품바가 풍자와 해학으로 관객에게 웃음보따리를 선물하여 나타난 결과물이다. 꽃동네 탄생을 있게 한 최귀동 할아버지의 삶이 동기가 되어, 나눔과 사랑을 통하여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는 축제이다.
남루하게 차려입은 옷과 신발 그리고 품바에 어울리는 분장을 하고 여려가지 악기를 다루며, 노랫가락을 이어가는 모습에 취하는 놀이다.
잊고 지내던 시절이 소환되고 지나온 날들에 박혀있는 추억을 밖으로 꺼내 보는 계기를 마련하여, 오늘날 풍요로워진 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찾아 헤매는 마음을 잡는단다. 너와 내가 함께 만들며 어우러지는 사회,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회, 나눔이 펼쳐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삶에 길을 안내하며 이끌어주는 행사로 발전하였다는 내용이다.
품바축제에 대한 취지와 발돋움을 설명함과 체험을 피력한 글이다.
김미숙님의<나에게도 한때는>은, 두어 달에 한 번씩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긴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지난날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이야기다. 남편이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어 타국에서 생활을 할 때다. 젊었던 시절 평생 처음으로 타인으로부터의 짧은 연정이랄까 호기심을 받아보았던 행복한 순간이었단다.
중국인 남자가 통역을 통해 당돌하게 사귀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쳤던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 육십을 바라보는 이즈음, 생각지 못했던 그 시절에 당황스럽고 짧게 지나갔던 그때의 순간이 설레는 추억으로 남아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단다. 이렇게 좋은 감정으로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다며 세월 흐름의 무상함을 스쳐냈을 뿐이다.
2. 끝을 맺으며
수필이란 체험으로부터 얻어지는 문학이라지만, 평범한 사실적 이야기만 늘어놓은 글은 읽고 나도 머리에 남는 게 없다. 경험의 이야기만으로는 수필이 아니라 기록에 불과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수필은 상상의 오감(五感)문학이다. 사물을 통찰하고 맛과 멋을 가함으로 형상화하여 심리적 상상력으로 주제와 문장을 보다 사색과 철학으로 흥미를 유발하게 만들어야 한다. 평범한 경험의 수필 소재라도 남다른 주제로 구성하여 서정적 문장 표현으로 섬세하게 수식한다면 읽히는 감성도 다른 맛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