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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열왕기상12장1~11절
제목 : 어리석은 선택
북쪽 지파들은 솔로몬이 부과한 고역과 세금을 가볍게 해주면 왕을 섬기겠다고 말하지만, 르호보암은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하라는 젊은 측근들의 강경책을 따릅니다.
1. 왕위 등극과 백성의 요구(1~5절)
1) 온 이스라엘이 르호보람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 그가 세겜으로 갔습니다(1절).
“[1] 온 이스라엘이 르호보람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 그가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이는 '여로보암'(Jeroboam)의 이름의 뜻이 '백성들의 수가 많아지게 하소서'인 것과 좋은 대구를 이룹니다.
때문에 이러한 두 이름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이 이름들을 다 같이 백성의 권리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명칭으로 보는 시각도있습니다(Maclean).
한편 르호보암(Rehoboam)은 암몬 여인 나아마(Naamah)의 소생으로
솔로몬의 독자였습니다 (14:21,31 ; 대하 12:13).
따라서 솔로몬 사후 당연히 아비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11:43).
르호보암이 즉위할 때 그의 나이는 41세였는데,
그때로부터 그는 17년간 통치하였습니다(14:21).
연대문제는 복잡 난점이 따르기는 하나 대략 B.C.930-913년 (솔로몬의 즉위를 B.C.970년으로 보고) 기간이 르호보암의 재위 기간입니다.
세겜 - '세겜'(쉐켐)은 '등성이', '비탈'이라는 뜻으로 추정됩니다.
이 세겜 (Shechem)은 예루렘에서 북쪽으로 약 58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곧 그리심 산과 에발산 사이의, 사방으로 통하는 교차 지점이입니다.
그래서 세겜은 예로부터 이스라엘 종교, 정치의 중심지였습니다(Reed).
또 이곳은 에브라임에 속한 지역이기도 합니다(수 20:7;삿 9;1이하).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수 17:7 주석을 참조하라.
온 이스라엘이 르호보람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 - 여기서 '온 이스라엘' (콜 이세라엘)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전체가 아닌 북쪽의 열 지파를 말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라는 호칭이 열 지파만을 일컫던 전례가 없지않았다.(삼하2:9, 10, 17, 28).
한편 이스라엘 열 지파가 세겜에서 르호보암의 면담을 요구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1) 백성들의 승인이 이스라엘 왕의 즉위에 있어 필수 요건 이였기 때문입니다(1:39;삼상 2:15 ;삼하 2:4; 5:3 ;대하 29:22).
(2) 그 동안 소외되었던 북쪽 지파의 권리를 호소하려는 의도에서였습니다(4절).
2) 여로보암이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그곳에 있는 중입니다(2절).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얼굴을 피하여. - '얼굴을 피하여'(바라흐 미프네)는 어떤 불쾌한 이유로 서로 마주 대하는 것을 피함을 말합니다(시102:2 ; 겔39:23).
한편 이와 유사한 표현이 성경에 간혹 나오는데
'반하여 얼굴을 드는 것'은 적대감의 표현이며(렘 21:10),
'얼굴을 빛나게 하는 것'은 우호적인 영접의 의미(민 6:25)입니다(Dentan).
애굽에 있는 중에. -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10:2에는
'애굽에서 돌아오매'로 되어있습니다.
*대하10: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낯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 일을 듣고 여로보암이 애굽에서부터 돌아오매”
문맥상으로 볼 때 대하의 번역이 더 타당한 듯합니다.
아히야의 예언(11:31,35,37,38)을 잊지 않았을 여로보암이 솔로몬의 사망 소식(11:43)을 듣고 귀국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이상합니다.
70인역(LXX) 및 수리아역(Peshitta) RSV, NIV, 그리고 공동 번역 등은 본절을 '애굽에서 돌아와 있었는데'(returned from Egypt)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3)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합니다(3절)
“[3]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 본절로 보아 북쪽 지파들의 반란(16-20절)이 표면화되기 이전부터 여로보암은 그들의 지도자격이었던 것같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여로보암이 북쪽 지파 중 유력한 지파인 에브라임의 지도자 가문 출신인 점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11:26, 28주석 참조.
물론 본시점에서 북쪽 지파들이 르호보암을 거부하기로 결정짓고 있었던 것은 아직 아닙니다(4절).
단지 유동적인 형편에서 여로보암은 북쪽 지파들의 대변자(代辯者)가 되어 줄 것을 부탁받은 것일 뿐입니다(Lange).
본절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은 1절과 마찬가지로 북쪽 열 지파를 가리킵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모두 남쪽 지파에서만 배출 되었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다윗과 솔로몬은 유다).
그런데 이들이 왕위에 오를 때에는 남쪽 지파는 물론 북쪽 지파들의 승인을 얻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이제 본절은 북쪽지파들이 르호보암에게도 마찬가지 절차를 밟게 했음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엿볼 수 있는 점은 분열 왕국 이전에도
북쪽지파와 남쪽지파 사이에는 일종의 구별 의식이 존재했으리라는 것입니다.
회중. - '회중'('카할')은 신명기 기자가 온 이스라엘의 국민적 종교 집회를 지칭할 때 자주 사용한 단어입니다(한글개역 성경은 대개 '총회'로 번역하고 있음. 신 5:22;9:10;10:4;18:16등).
이에 관하여서는 민 16:2 주석에 상세히 설명해 놓았으니 그곳을 참조하라.
4)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에게 요구하는 내용과 답변입니다(4,5절).
“[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5]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무리들 즉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이 르호보암에 요구사항은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요구 조건을 들어 주면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기겠다고 합니다.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 이처럼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요구에 즉각 승락하지 아니하고 대답을 삼 일 뒤로 미룬 이유는 다음 두어 가지로 추정됩니다.
(1) 역대 왕들과 달리 선뜻 왕위 승인을 얻지 못하고 난관이 있자 이를 숙고할 기한을 가지려 하기 위함입니다.
(2) 예루살렘 (세겜에서 약 58Km 떨어진)에서 상의할 모사(謀士)들을 소집할 시간을 얻으려 하기 위함입니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세겜 까지는 그 거리로 보아 나귀를 탄다 해도 하루가 꼬박 걸렸을 것입니다(Hammond).
하매 백성이 가니라. - 르호보암의 요청에 순순히 말을 듣는 백성에게서 아직까지 그들에겐 반역의 의도가 없었음을 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앞서 그들의 요청(4절)이 진지한 것이었음도 입증해 줍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그들이 르호보암에 대한 반역을 예비했다는 견해(Bahr emd)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2. 원로들의 지혜로운 조언(6~7절)
1) 르호보암 왕이 의견을 듣고자 생전에 아버지를 모셨던 노인들을 소집합니다(6절).
“[6]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 - 본절에서 '노인'(자켄)은 단순히 연로한 자를 지칭하기보다 국가 행정에 직, 간접으로 영향을 끼치던 장로들을 의미합니다. 출3:16 주석 참조.
이들은 솔로몬의 성공과 실패를 몸소 체험했던바 통치의 묘(妙)와 백성의 섭리에 익숙한 노련함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솔로몬의 행정 구역을 담당했던 원로대신들도 있었을 것입니다(4:2-6).
그렇다면 이들이야말로 이스라엘 지역 사회의 문제를 근접한 데서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인물들입니다
충고하여. - ‘충고하여’(이와아츠)는 '교도하다'는 뜻으로 특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겸손히 제시하는 의견을 말합니다.
즉 여기서 이는 왕인 르호보암에게 원로들이 진언(進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2) 장로들의 진언입니다(7절).
“[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1)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장로들의 이 직언(直言)은 여호와 신앙에 입각한 이스라엘의 전통적이고도 이상적인 군주관이 반영된 말입니다.
즉 왕은 백성들에게 봉사할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은 실제에 있어 왕은 율법에 복종해야 하는 인물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으로 표현됩니다(신 17: 14-20).
즉 왕의 권력은 무제한한 것이 아니고 율법에 담긴 민사법과 전통의 규정들에 의해 규제되었습니다(삼하 11:1 이하;16:4;24:14 등).
그런데 왕에게 이와 같은 법의 정신과 의무를 일깨워 주는 역할이 장로들에게 있었습니다(삼상 10:25;삼하 5:3;왕하11:17).
르호보암이 의논한 장로들 중에도 이와 같은 역할자가 있어 본절과 같이 충고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욕에 사로잡힌 왕들은 율법의 정신과 규정에 제한당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아무튼 본절은 과거 이스라엘의 왕들 뿐아니라 오늘날 교회나 사회의 지도
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경고의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은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무리들 위에 군림하려 해서는 아니 되며, 도리어 섬기고 헌신하는 자세로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마20:28).
섬기고. - '섬기고'('아바드')는 '봉사하다', '일하다'는 뜻으로 구약에서 자주(290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그만치 구약이 담고 있는 굵직한 정신의 일맥(一脈)을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아바드'는 사물과 사람 및 하나님 모두를 향해 사용됩니다.
즉 이 단어는 사람이 자연을 경작한다든지 종이 주인에게 봉사한다든지 또는 성도가 하나님을 섬긴다든지 하는 모든 경우에 사용되고 있습니다(창 2:5;29:15;렘 22:13;신 15:19;삿 9:28;삼상 11:1등).
그 가운데서도 본절에서 이 단어는 왕으로서의 백성에 대한 행동의 본질적 성격이 곧 '섬김'(serve)임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에 있는 자는 섬기는 자라는 성경의 정신은 여기서도 발견됩니다(눅 22:25, 26).
*눅22:25,26 “[25]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26]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 좋은 말로 이르라고 하십니다.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좋은말'(드바림 토림)은 본래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말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백성들의 요구에 대하여 승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장로들은 르호보암에게 백성들의 요구(4절)를 들어주도록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그리하시면 그들이 종전에 솔로몬을 섬기듯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젊은 측근들의 어리석은 조언(8~11절)
1)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와 같이 자란 어린 사람들과 의노합니다(8절)
“[8]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버리고. - '버리고'(아자브)는 주로 선한 것, 마땅한 것을 저버리는 경우에 사용되는 말입니다(신 28:20;31:16;삿 10:10;렘 1:16).
즉 본절에서 르호보암은 율법의 정신으로 뒷받침된 장로들의 진언을 저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본 문맥에서 '아자브'는 '무시하다'는 뜻이 강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둔함에서 비롯되는 불찰이기보다는, 탐탁치 않은 감정과 나란히 가는 의도적인 배제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오만한 욕구가 잠재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르호보암은 부친 솔로몬의 생애 중 후반부의 어두운 면을 물려받은 흔적이 엿보입니다.
즉 당시 솔로몬은 부강함에 집착한 나머지 율법의 정신에 위배되는 짓을 곧잘 벌였던 것입니다(11:1-13)
즉 그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으며,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산단을 지었고,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하고 분향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11:5~8)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 - 이들은 현재
르호보암의 신하로서 6절의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
즉 현재는 원로가 된 솔로몬의 신하들과 대비됩니다
이러한 본문이 전하는 사건의 한 측면에는 르호보암 내각 내부에 존재하던 신 . 구 세력 간의 대립이 은연중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같은 대립과 갈등은 곧 이어 완연히 드러나고 맙니다(10, 11절).
자기와 함께 자라난. - '함께 자라남'이 시사하듯, 이들 소년들은 르호보암과 같은 경험을 통해 사물과 인간에 대해 같은 관점, 같은 경향을 갖게 된 부류라 하겠습니다.
즉 이들은 하나의 '파당성'(派黨性)을 가진 무리인 것입니다.
어린 사람들. - 갓 태어난 어린아이로부터 장성한 청년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연령에도 사용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41세 때 왕위에 오른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40대의 동년배들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14:21).
왜냐하면 이들은 르호보암과 함께 자랐다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여기서 '어린 사람들'은 왕성한 활력으로서의 젊음을 내포한 긍정적인 말이 아닙니다.
대신 이는 6절의 '노인'과 날카롭게 대비되어, 경험이 불충분하고 사려 깊지 못한 부정적 면이 강조되는 젊음으로서 '어린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르호보암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힘을 추종(追從)하되 책임의 면을 고려하지 않는 '힘 지향적' 인물들입니다.
이들의 용렬(庸劣)함은 상황을 도리어 악화시키는 강경책을 진언하는 데서 여실히 드러납니다(10, 11절).
2) 르호보암이 어린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합니다(9절).
“[9]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 장로들의 충고를 무시해 버린 르호보암의 오만으로 미루어(6-8절) 백성들의 간청에 대해 그가 어떻게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권력 지향적인 르호보암에게 있어선 자신의 무제한한 욕구 충족을 위해서 백성들의 굴종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그에게 들이닥친 백성들의 요구(4절)는 그의 야심에 타격을 주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르호보암의 심사를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3)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뢴 내용입니다(10,11절).
“[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11]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1)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하겠다.
나의 새끼 손가락이 내 부친의 허리보다 굵으니. - 이 수사학적 표현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두 대비(對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① 굵기의 비교로서, 신체 중 가장 가는 부분인 새끼손가락과 가장 굵은 부분인 허리가 대비됩니다.
② 내적 의미 연관의 비교로서, 새끼손가락이 표상하는 바 손끝의 간릉(幹能)한 재주 정도와 허리가 표상하는 바 힘의 근원지(사 45:1;시 69:23)가 서로 대비됩니다.
결국 이 말은 르호보암이 부친 솔로몬보다 훨씬 능력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실상 이는 르호보암의 능력에 대해 과장된 찬사를 보내기 위한 비유적 표현입니다.
원로들의 충정어린 자문이 노련한 경험에서 나온 지혜로운 것이었음에 반해, 소인배들의 조언은 아첨으로 가득찼으며 젊은 왕의 혈기를 충동질하기에 적절하였습니다.
만일 왕이 원로들의 조언을 따랐다면, 불만을 품은 백성들은 반역의 구실을 잃게 되었을 것이고, 르호보암 자신은 왕국 분열을 조장하는 범죄를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유혹을 해옵니다.
르호보암은 왕직을 수행하기에 앞서 일종의 테스트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막 1:12,13) 사단의 유혹에 넘어감으로서 통일왕국이라는 큰 그릇을 소유하기에 부적격자로 판명되었습니다.
더욱 무겁게 할지라. - 원래 '무겁다'는 말(카베드)에는 '가혹하다' 외에도
'슬프다'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사실 가혹한 대접을 받는 사람은 슬픔을 안게 마련입니다.
아무튼 본절은 백성들에게 이전보다 더 혹독하게 속박을 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처사가 백성들의 슬픔을 가중시키리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2)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채찍. - 본절의 '채찍'('쇼트')로, 죄를 징책하는 의미의 '채찍', 즉 '네가'와는 구별됩니다(삼하 7:14;시 89:32).
다시 말해 이는 단지 문자 그대로의 '채찍'을 가리키는바 여기서는 통치상의 가혹함과 잔인성을 표상해 주는 말입니다.
징계하였으나. - '징계하다'는 말(야사르)는 대개 인간의 변화 및 회개를 겨냥한 긍정적인 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 혹독하게 말해서 솔로몬의 '야사르'는 단지 자신의 이기적 욕구 충족을 위해 백성을 쥐어짠 것일 뿐입니다. 4절 주석 참조.
전갈 - 대개의 학자들은 본절의 '전갈'(아크랍)을 동물(전갈은 곤충이 아니라 절지 동물)로서의 전갈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채찍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합니다.
즉 앞서의 채찍이 단순히 가죽으로 된 끈인데 본절의 '전갈'은 이 가죽 끈에 쇠 조각을 박은 채찍이란 주장입니다.
한편 전갈(scorpion)은 꼬리 끝에 독침이 있어 이에 쏘이면 극심한 고통을 겪게 하는 동물입니다.
그러기에 계시록에서도 전갈은 극도의 고통에 비유되었습니다(계 9:5).
*계9: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우리가 살아가는데 선택할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그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으나 르호보암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이미 자기 마음으로 정하고 그것에 맛도록 행동하였음을 봅니다.
오늘도 먼저 하나님께 물어 하나님의 뜻을 알아 선택하는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온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만나려고 세겜에 모입니다(1~4절).
그리고 솔로몬의 실정을 거론하면서 무리한 건축 공사로
과중해진 노동 징용과 세금징수를 완화해 줄 것을 청원합니다.
그들의 요구는 정당했고, 태도는 정중했습니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왕의 자비를 구하는 백성에게 포악한 말로 겁박합니다(13절).
그는 하늘의 뜻은 물론 백성의 처지도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자기 논리에 기초한 정의만 있고 백성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지도자는 결국 오만한 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정의보다 자신의 영화에 더 심취한 자들에게 지금도 분노하십니다.
2) 북쪽 지파들의 정치 역량을 무시할 수 없던 르호보암은 원로들을 찾아가 자문을 구합니다(5~7절)
원로들은 왕이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백성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상기시키면서,
민심을 헤아리고 다독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참된 권위는 억압이 아니라 섬김에서 나옵니다.
섬김으로써 섬김을 받고,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져야 합니다(마23:12).
*마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교회나 국가의 권력자들이 그리스도처럼 섬기는 종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3) 르호보암은 백성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라는 원로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젊은 측근들의 조언대로 강경책을 고수합니다(6,8절).
그에게 조언은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애초에 원로들의 조언을 들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섬기는 왕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왕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이 그를 망쳤고, 나라도 갈라놓았습니다.
오만함으로 자기 아래도, 하늘 위도 바라보지 못하다가,
이스라엘 분열의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4) 젊은 신하들은 왕의 책임보다는 권력에 주의를 환기하면서, 더 많은 세금과 무거운 부역을 부과하여 백성의 불만을 잠재우라고 왕을 부추깁니다(8~11절).
하지만 강압적인 방식이나 힘의 논리는 당장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불만과 분노를 더 키울 뿐입니다.
나는 힘과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지나치게 지위와 권위를 내세우며 상대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 :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말이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말을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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