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팬들에게는 '새해 선물'이었다. 남녀 랭킹 1위, 바둑대상 MVP와 5관왕. 이목을 사로잡은 대결에서 박정환 9단이 최정 9단에게 176수 만에 불계승했다. 마지막에는 대마를 잡으러 가면서 이르게 끝났다.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4라운드 2경기
셀트리온, 화성시코리요 누르고 4위로
박정환 9단과 최정 9단은 지난 연말 바둑판 밖에서 뜨거운 경쟁을 벌인 바 있다. 바둑대상 MVP를 놓고 겨뤘다. 최종 득표율은 박정환이 39.75%, 최정이 35.68%. 4.07%포인트 차이로 박정환이 2019 MVP 영예를 차지했다.
30%를 반영한 네티즌 득표에서는 최정(46.7%)이 박정환(36.2%)에 앞섰으나 70%를 반영한 기자단 득표에서 박정환(41.2%)이 최정(30.95)보다 높았다. 사상 첫 여자 MVP가 무산된 최정 9단은 박정환 9단을 1182표 대 612표로 제친 인기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 "오늘의 대진은 봐도 봐도 3국밖에 보이지 않아요. 황제와 여제의 만남, 어떨까요?" (문도원 진행자)
"승패보다 최정 9단이 박정환 9단을 상대로 어떤 내용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이희성 해설자)
"저보다 최정 선수의 활약이 눈부셔서 미안하기도 하다. 이번 주에 KB리그를 두는데 많이 배우고 기를 많이 받겠다." 박정환 9단의 MVP 수상 소감 중 일부이다. 최정 9단은 "오랜만의 대결이라 마냥 즐겁다"고 했다.
그 대국이 3일 저녁 바둑TV 스튜디오에서 2019-2020 KB국민은행 바둑리그 14라운드 2경기로 펼쳐졌다. 랭킹 1위와 여자랭킹 1위의 대결로도, 바둑대상 MVP와 5관왕의 대결로도 이목을 사로잡았다. 방송 중계석의 비유를 하나 더 붙이자면 '황제'와 '여제'의 만남.
▲ 박정환 9단의 백1이 서슬 퍼렇다. 백5 때 흑6으로 12에 두어 대마를 살리는 편이 승률을 높이지만 어차피 지는 길. 흑12에 백13으로 칼을 빼들자 흑대마의 살 길이 없어졌다. 진작에 12의 곳을 선수해 두지 않은 것이 최정 9단의 과오.
-박정환, 최정 대마 잡고 176수 만에 불계승
-신진서, 개막 13연승으로 정규리그 22연승
최정이 햇병아리 시절이던 2012년 9월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 149수 만에 불계패한 후의 두 번째 대결. 바둑팬들에게 새해 선물 같은 승부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1시간 17분, 176수 만에 박정환 9단이 불계승했다. 발 느리게 출발한 최정 9단이 하변에서 따끔한 역습을 터트렸을 때가 한 차례 찾아왔던 기회.
▲ 복기는 오누이처럼 다정했다. 세계페어바둑최강위전에서는 2년 연속 짝을 이뤄 2연패 중인 두 기사이다.
5대 5로 만들었던 형세는 그 후 우변 접전에서 박정환 9단에게 좋은 수를 당하고, 우상귀가 사활에 걸리면서 때이른 종국을 맞았다. 대마를 잡으러 오자 입을 앙다무는 최정 9단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20여수를 더 이어갔지만 살기에는 공간이 너무 좁았다.
6승팀 간의 중요했던 승부는 셀트리온이 화성시코리요를 4-1로 눌렀다. 셀트리온은 최정 9단이 패한 후 신진서 9단, 조한승 9단, 한상훈 8단, 이호승 4단이 각각 송지훈 5단, 최재영 5단, 홍기표 8단, 원성진 9단을 꺾고 4위(7승6패)로 한 계단 올랐다. 화성시코리요는 5위(6승6패)로 내려갔다.
▲ 신진서 9단(오른쪽)이 송지훈 5단을 꺾고 시즌 13전 전승, 작년부터 정규리그 22연승을 질주했다. 출발이 좋지 않았으나 대형 전투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불계 승부'는 지난해 7월 29일부터 44판 연속.
한편 '리그 제왕' 신진서 9단은 개막 13연승을 달렸다. 작년부터 정규리그 22연승을 거두며 매 경기 신기록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번 시즌 전승까지도 이제 세 판만을 남겨 놓았다.
9개팀이 더블리그를 벌여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다섯 팀을 가리는 정규시즌은 4일 포스코케미칼과 수려한합천이 14라운드 3경기를 벌인다. 개별대진은 박건호-박종훈(0:0), 최철한-박영훈(21:21), 변상일-이지현(2:3), 이창석-박승화(0:0), 김세동-박상진(1:2, 괄호 안은 상대전적).
▲ 상반된 기풍의 조한승 9단(왼쪽)과 최재영 5단. 지난 세 번의 맞대결을 모두 이겼던 조한승이 상승세의 최재영에게 반집승.
▲ 좋은 바둑도 여러 차례 놓치면서 이번 시즌이 힘든 한상훈 8단(왼쪽)이 퓨처스 홍기표 8단을 상대로 6연패 수렁에서 탈출했다.
▲ 전반기 5국에서 결승점을 장식했던 이호승 4단(오른쪽)이고, 그 패배 후 극심한 슬럼프로 이어졌던 원성진 9단이다. 원성진은 최근 살아나는 모습이었으나 공교롭게도 다시 만난 후반기 5국에서 설욕하지 못했다.
▲ 6승팀 간의 대결에서 7승에 먼저 오른 셀트리온. 3연승으로 팀 분위기도 살아났다. 15라운드 상대는 현재 1위 한국물가정보.
▲ 화성시코리요는 셀트리온에 전ㆍ후반기 모두 패하며 4위 자리를 내주었다. 15라운드에서는 수려한합천과 대결한다.
▲ "한상훈 선수도 연패를 끊어냈고 최근 살아나는 분위기를 이어가겠다. 신진서 9단을 장고판에 기용한 것은 박정환 9단을 만났을 때 2시간 바둑을 두면 재미있는 승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백대현 감독)
"속기와 장고, 어디에 나오든 큰 차이가 없다. 작년에는 기대보다 성적이 안 나왔는데 올해는 더 노력해서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신진서 9단)
▲ 11승1패로 13연승의 신진서 9단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박정환 9단. 박정환-신진서는 2월 LG배 결승에서 '진짜승부'를 벌인다.
▲ 작년에 공식대회 106국을 소화했던 최정 9단이 새해 첫 대국을 치렀다. 올해는 또 몇 판이나 둘 것이며 어떤 활약을 펼칠 것인가. 리그 전적은 6승6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