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중반의 어느 날, 한창 모나미 물감과 왕자파스를 생산하고 있을 때 광신화학의 신설동 임시 공장으로 파란 눈의 외국인 한 명이 불쑥 들이닥쳤다.
직원 보고를 받고 공장 입구도 달려가니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직원들이 그 외국인을 빙 둘러싸고 온갖 몸짓을 해가며 방문 목적을 알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하긴 이제 설립한지 2년여 밖에 안된 광신화학에 갑자기 외국인이 찾아왔으니 직원들로서야 이상하고도 신기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외국인과 수인사를 나눈 뒤 그가 준 명함을 보며 차분히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는 미국에서 ‘트라이마크’(Tri-mark)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전 세계의 문구제품을 수입하는 바이어였다.
그 미국인 바이어는 “일본 출장길에 잠시 한국에 들러 백화점에 갔다가 왕자파스를 써봤는데 제품 질이 좋은 것 같아 제조업체인 광신화학을 찾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크레파스를 수출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타진하면서 “미국으로 돌아가 실무적인 검토를 마친 뒤 수입 여부를 통지해줄 테니 샘플을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모나미’ 브랜드를 사용할 때도 아니어서 나는 샘플용 물감과 크레파스를 건네줬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달 뒤 그 미국인 바이어로부터 수입 오더가 왔다. 무려 5만달러 어치였다.
수출입 업무는 내 전공 분야였다. 삼흥사 시절부터 갈고 닦은 무역업무 실력이 아니었던가. 나는 신이 나서 상공부, 은행 등을 뛰어다니며 서류 처리를 마치고 기한 내에 제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것이 모나미 전신인 광신화학의 첫 수출이었다.
모나미의 제품 수출이 언제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80년대 중반 미국에서 ‘펜텍’(Pen-Tech)이라는 브랜드로 문구류를 수입ㆍ판매하는 바이어가 모나미 153 볼펜 500만 달러 어치를 주문했다. 물론 OEM 방식이었다.
수입업체에 대한 검토를 끝낸 뒤 나는 모나미 153 볼펜이 비록 미국 브랜드로 팔리긴 하지만 첫 미국 시장 공략이라는데 만족하고 계약을 체결했다.
펜텍과의 첫 수출입 계약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펜텍 사장이 색다른 제안을 해왔다. 다음 해에 1,000만 달러 어치, 그 다음 해에는 1,500만 달러 어치로 수입량을 늘려나갈 테니 대신 미국 시장에서 펜텍이 모나미 제품의 독점판매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모나미 제품만 잘 팔아준다면 더 바랄게 뭐 있겠는가’라는 단순한 생각에 펜텍측에 미국시장 독점판매권을 주는 계약에 서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함정이었다. 독점판매권을 갖게된 뒤부터 펜텍측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모나미 제품 수입을 꺼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펜텍 코리아’라는 현지 법인을 설립한 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되는 값싼 문구 제품들을 미국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모나미 제품에 대한 미국 시장내 독점판매권을 손에 쥐고 모나미의 손과 발을 꽁꽁 묶은 뒤 동남아시아의 값싼 제품을 수입ㆍ판매해 더 많은 이윤을 챙기려는 검은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펜텍은 모나미 제품을 수입해 제품에 따라 10~30%의 이윤을 남기고 팔았는데 동남아시아산 문구 제품을 수입해 팔면 이윤폭이 더 커졌다.
모나미는 독점계약권 때문에 다른 바이어들과 미국 수출 계약을 체결하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뭔가 상황 반전이 필요했다.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