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정치 발전
조선의 건국
고려 말에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로 사대부는 혁명파와 온건파로 나뉘게 된다. 혁명파 사대부는 고려를 잡고 조선을 건국한다. 혁명파 사대부는 훈구파라고도 한다. 개국공신과 태종과 세종을 왕으로 세우는데 공을 세운, 15세기 공을 세운 사람들을 통틀어 훈구파라고 하다. 온건파는 선비들이 수풀에 숨어 글공부를 한다하여 사림파라고 한다. 훈구파는 부국강병을 추진하고 다른 학문도 포용했다. 논술과 제술시험을 중시했다. 사림파는 정통 성리학이며 다른 학문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보수적이었고 향존자치를 중시했으며 기자조선을 중시했다. 훈구파는 주례라는 책을, 사림파는 춘추를 받아들였다.
조선
조선왕조 500년이다. 1392년에 이성계의 위해 세워졌으며 1910년 일본에 의해 망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냐며 임진왜란을 전으로 조선 전기라고 하며 임진왜란 후를 조선 후기라고 부른다. 조선 전기를 근세라고 부르며 조선 후기를 근대태동기라고 부른다. 근대라는 조건을 만족하려면 평등사상, 자본주의, 대중문화, 민주주의가 있어야하는데 경제는 그랬을지 몰라도 정치파탄이 일어났기 때문에 근대라고 부르지 못해서 근대태동기라고 부른다. 그러면 언제부터 근대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15세기와 16세기가 근세이며 17세기, 18세기, 19세기가 근대태동기다. 왕들과 그 업적, 그리고 정치와 지방, 군사, 과거시험을 보면 조선 전기를 다 볼 수 있다. 태조부터 선조까지가 조선 전기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천도했다. 불교를 우대했으며 정도전의 압력으로 불교 탄압 정책인 도첩제를 실시한다. 삼봉 정도전은 불씨잡변과 상봉집, 조선경국전을 쓴다. 이성계는 8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죽은 한씨는 6명의 아들을 낳았고 이성계의 엄청난 조력자였던 강씨는 2명의 아들을 낳았다. 한명의 폭군이 나오면 나라 전체가 흔들리므로 정도전은 나라의 매뉴얼을 만들어놓는다. 강씨부인의 막내 아들 방석이 세자가 되고 한씨 부인의 다섯째 아들 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정도전과 방번, 방석을 죽인다. 그래서 이방원이 바로 왕이될 수 있었지만 민심을 고려해 둘째 방과가 왕이되서 정종이 된다. 정종은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천도한다. 그리고 도평의사사를 혁파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정비한다. 정종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형제들 중 세자를 책봉해야 하는데 결국 이방원과 이방간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지만 방원이 승리하고 방간은 귀양을 간다. 그리고 이방원이 3대왕 태종이 된다. 태종은 6조 직계제를 실시한다. 왕이 있고 의정부와 6조가 있다. 6조는 왕에게 직접 보고하고 왕은 6조에게 직접 보고해서 의정부는 하는 일이 없게 만든 것이 6조 직계제이다. 그리고 사병 혁파를 했다. 이방원이 왕이 되기 전 사병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 사병으로 왕자의 난을 일으켰지만 왕이 된 후 사병을 혁파한다. 그리고 신문고를 설치한다. 또한 양전 사업을 실시한다. 태종은 호패법을 실시한다. 그리고 사간원을 독립한다. 고려 때 문화부라는 곳에 언관이라는 사람들은 왕에게 직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언관을 독립시키고 사간원을 만든다. 그래서 왕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리들을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