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저는 청년대안활동가 과정 1기 때 청년유랑단에 발을 들여 2기의 수강생으로 참여하고 있는 손현주라고 합니다. 1기 친구들에겐 다오라고 불렸고 2기 친구들에겐 누리라고 불리고 있어요. 혹시 눈치 채셨나요?^^ㅎㅎ 저의 생태명 ‘누리’는 2가지 의미에서 지었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1기 청년유랑단 때 알게 된 귀한 공동체, 밝은누리에서 따 온 것이기도 해요.
우연인지 운명인지 저의 후기 차례에 밝은 누리를 소개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닿아 기쁨도 큰 반면, 철호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때 느꼈던 감정들, 정리되는 생각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달하고 싶은 욕심에 글을 쓰기 전부터 거룩한(?!) 부담감이 앞서네요.^^;;
먼저는 도대체 누리가 크게 감동 받은 공동체, 밝은누리는 어떤 곳인지부터 소개할 필요가 있겠죠? 죄송합니다만 결론은 생명평화를 일구는 아름다운 연대, 밝은누리는 저의 실력으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줄줄이 나오는 고구마처럼 캐도 캐도 다양한 삶이 빚여진 소그룹들과 여러 조직들로 구성되어 있어 링크의 힘을 빌려 그 공동체의 보여지는 모습과 활동은 대신하고자 합니다. 사실 복붙하면 되는 작업이긴 하지만 왜곡 없이 그리고 그들을 다 담지 못하는 저의 한정된 퍼옴으로 밝은 누리를 소개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한 몫 합니다.http://www.welife.org/ 대신,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소개가 아닌 다른 한 줄의 소개를 하고 싶습니다. 한 개인이...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한 신학생이 졸업을 하기 전 결단 하나를 합니다. ‘공동체로 졸업해야 되겠다’라고. 그 것이 91년이었고 28년의 걸음을 이어온 지금 ‘밝은누리’가 되었습니다. 그 결심을 했던 신학생이 바로 밝은누리 대표 최철호목사님...이라고 불려 지기보다도 철호삼촌, 철호형으로 불려지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불리고 있는 철호님입니다.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상뽕쓰는 어떠한 모임이든 지속이 가능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철호님을 우리 모임 가운데 초대하였는데요. 그것은 아마도 끊임없이 공부의 영역을 깊고도 넓혀가는 밝은누리의 모습을 보면서 그 말과 함께 철호님을 소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라고 짐작해 봅니다. 덧붙여 상뽕쓰는 청년대안활동양성과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청년대안문화와 활동가에 대해서도 여느 때와 달리(?!)^^ 진지하게 말해주었는데 활동가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 끊어진 개인을 연결하는 것. 즉 마을 공동체로 표현하였습니다. 그 후 상뽕쓰가 말한 마을 공동체로 누구보다 잘 살아내고 계시는 철호님의 시간이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기 전 철호님이 준비해 오신 밝은 누리를 소개하는 간단한 동영상을 본 뒤 원으로 둘러앉은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철호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기록하시고 전공을 물어보셨던 것입니다. 1기 청년유랑단 때 만나 잠시 진로고민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핵심은 본인인 지금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채워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이었어요. 어떤 이들은 LETS라는 표현이 더 와닿을수도 있을 것 같은데 쉽게 말하면 무형화된 물물교환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하여 이 날도 사람을 그 저 따로 떼어놓은 한 개인으로만 보지 않고 한 사람도 분리되지 않도록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달란트로 그 사람이 가장 빛나게 어우러질 수 있는 마을 구성원으로 저희들을 보시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요즘 청년’이라고 지칭하고 싶어 하진 않으셨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의미에서 ‘요즘 청년’은 그들을 작동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으며 당장엔 개인의 행복을 위하는 것 같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배전략의 큰 전략적인 면에서는 청년을 고립시킨다고 하셨습니다.
옛날 우리네 국가는 청년을 농촌에서 도시로 내모는 전략을 썼다면 이제는 더 이상 도시에서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다시금 청년을 도시에서 농촌으로 내모는 전략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많이 시행되고 있는 마을 지원사업을 예로 드시면서요. 이런 마을은 자생력을 가질 수 없다고도 덧붙이셨죠. 예전에는 농촌에서 뭔지도 모르고 도시로 내몰렸다면 이제는 다시 농촌을 내몰리듯이 가지말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어떤 것일까? 지금부터 할 세 가지 이야기에서의 핵심단어는 ‘주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또 다시 전환을 맞이하는 것으로서의 새로운 문명에 주체의식을 가져야 하며 청년의 때에 우리가 해야 하는 공부는 ‘자기 정체성’을 세워가는 공부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거 아셨나요? 공부라는 단어가 쿵푸에서 유래된 것.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서는 공부와 수련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 청년 때에 자기정체성을 세우지 않으면 평생을 노예로 살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와 연결 됩니다. 판단력과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은 노동, 쉼, 놀이와 같이 키워나가야 하는데 ‘나 or 사회적 공간’ 이 둘 중에 어떤 것으로 정해지도록 할 것인가? 에 대한 물음을 주셨습니다. 결국 이 둘 중에 정하는 주체가 ‘나’가 아니면 내가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사회적 공간’이 정하도록 내버려두게 되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내가 올바로 서있지 않으면 저의 일상이 사회적 공간으로 송두리째 뺏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순간 공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세 번째로 청년의 때는 비혼, 독신이 아니라면 자녀에서 부모로 전환하는 시기입니다. 상대적으로 주체성이 약한 자녀에서 주체성이 강한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비혼, 독신이 아니라면이라고 먼저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시작하시는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다양한 결혼관을 포용한 다음 일반적인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것을 보면서 소수의 관점을 배려하시는 분이시구나라는 걸 엿볼 수 있었으니까요. 잠시 곁가지로, 늘 어떤 주제든 그리고 단어든 선택함에 있어서 유의하셔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 거슬림 없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주시는 모습에서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부모가 되면 사회적 허상, 허세에 대해서 단호해지는 입장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은 생체권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병원과 약은 의료인에게 내 몸을 맡기는 자세로 또 하나의 완벽한 지배로 종속됩니다. 단편적으로 한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잉태란 남녀가 특별한 준비물 없이도 가능한 일이고 과학자들이 어떤 도구를 써서라도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창조사건이고 감격인데 기형아 검사, 양수검사, 애기 나오면 바로 손발 5개부터 확인하는 등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희망보다는 두려움을 조장하고 출산 후에도 출산카드에 날짜별로 각종 예방접종을 해야만 하도록 되어있는...듣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이 드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돼지나 소나 사육하는 것과 똑같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말이 앞으로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희망하는 저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과 다짐으로 다가왔습니다. 청년 문명 전환의 시기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돈으로 다 해결 하던 걸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내가 주체가 되는 것만큼 개인의 새로운 문명이 허락될 것이라고 합니다. 10대 때는 부모님의 동선 안에서 맺어진 관계라면 20대 때는 내가 맺은 관계이며 직장구조로 가면 친구가 될 수 없지만...새로운 삶은 새로운 참 공부를 통해 새로운 관계가 있어야 거슬러 살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의제로 두고 말하는 사람 중 전체주의의 보상심리로 강력한 기질은 개인주의가 존재하고 의제와 실제 삶에서의 괴리를 많이 보았다고 합니다. 다마치고 나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괴리를 간극이라 표현하시며 그 간극의 폭을 좁혀 가야된다고 했어요. 나 또한 그 간극의 폭을 좁혀나가야 할 시점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결국 주장하고자 하는 진리는 개념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감복된 기운! 그러니까 삶의 진정성만으로 전달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정말 서론의 서론밖에 불과하지 않는 내용인데요. 물이 물길을 따라 자연히 흘러가듯 빈틈없는 3시간의 이야기였습니다. 내용을 다 적자고 하니 양이 너무 방대한데가 글로 옮길 저의 수준이 안되겠고 아예 생략하자니 엄청난 큰 비밀을 혼자 알고만 있는 것 같아 그냥 지나칠수도 없네요.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녹취할껄이라는 아쉬움이 들 정도입니다.
이 날 3시간동안 등장한 단어들은 이렇습니다. 류영모-함석헌, 도덕경-중용, 성경-스토아철학, 도가-유가-묵가, 평화통일-영세중립(코스타리카) 등등. 상상이 가시나요? 이 내용들이 과연 어떻게 연결되는지... 신기하게도 철호님은 이 모든 것을 아울러 큰 한줄기 맥락으로 풀어내셨어요. 그 내공에 진심어린 박수를!
실제로 강의를 들었던 지난주 수요일 현장에서의 이 강의를 듣고 어쩌면 최초의 후기라고도 말할 수 있는 ‘옥’의 한마디. “오늘 참 거.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라며 철호님의 질문이 있냐는 말에 질문을 하기위해서 운을 떼는 말이었는데 그 말에 정말 공감이 갔습니다. (옥은 9번째 후기 때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거대한 이야기를 압축하여 두 가지 재밌는 표현으로 말할게요.
1. 사람 삶 살림
2. 마음 마을 말
이 때까지 한 번도 깨닫기 못했었는데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에 모든 것을 만들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지만 딱 하나, 보기에 안좋다라고 표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은 그의 돕는 배필을 옆에 두시죠. 그럼 그 이를 어떤 태도로 다가가야 할까요. 배고픈 이에게 배불러라, 추운 이에게 따뜻해라 라고 말로만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이롭게 하는 것. 즉 이웃을 살리는 살림 그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마을은 공동의 마음 공동의 몸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옛 현인 묵자는 이를 겸애라고 했는데 팔이 안으로 굽게하지 마라-> 겸애하지 않으면 더불어 살수 없다->(그러나)내 아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지상정->(그래서)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난 수요일의 강의는 토/일(4/28,29) 1박2일로 현장탐방으로 대신합니다.
서론에서 언급했던 저의 생태명 누리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요. 그건 바로 제가 기억하는 인생의 첫 번째(동네) 친구의 이름을 따온 것이기도 해요. 세상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 누리에서 만난 우리들이 이 청년활동양성과정이 발판이 되어 앞으로 더 밝은 세상으로 변해가도록 친구가 되어주고 채워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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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아쉬움이 많아요. 다시 수정 보완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어쩜...
저는 누리글 보면서 '복습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고마워요~ 하나하나 다시 읽으면서 최철호님 이야기를 공부하겠습니다!
최철호 선생님 강의 듣고 감탄 감탄을 했는데, 역시 다 같은 마음이었네요. 엄청난 큰 비밀을 들은 느낌이라는 누리 말에 백프로 공감합니다!ㅎㅎㅎ 저도 듣는 내내 '간극'을 줄이는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을 했는데, 철호님이 간극을 줄이려면 우선 온배움터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책 읽고 이야기를 많이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생각과 몸, 삶의 일치'는 평생 화두로 새기며 가야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