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벼농사, 금속문명이 일본으로 전해지다
한국과 일본에서 출토된 [기원전 3세기~기원 후 3세기] 유물들 비교.
똑같이 생겼다.
(오른쪽이 한반도에서 발견된 것들.)
맨 윗줄부터 덧띠토기와 한국식동검, 쇠뿔모양 손잡이 항아리.
이상 출처 - 한겨레신문 2007-10-15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431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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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왼쪽의 유물들은 일본 최초의 금속문명 시대의 것인데
한국것과 똑같이 생겼다.
한국은 금속문명이 일본보다 최소한 수천년 빠르고
쌀농사는 일본보다 1만년 이상 빠르다.
고인돌 주요분포도와 일본으로의 문명의 전파
( 백두산지역에 고인돌이 많이 없는 이유는
지대가 높아서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기 때문.)
일본은 내내 석기시대였다가
약 2천4백년전(기원전 5세기)이 되서야 [어떤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와서
고인돌, 벼농사, 금속문명을 가르쳐준다.
그것이 야요이문화(彌生文化(미생문화))라는 것인데
일본에 와서 벼농사와 금속문명을 가르쳐준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증거는 숱하게 많은데 (고인돌 등)
유전자분석으로도 그게 확인이 되었다는 기사가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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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03-06-24]
기원 전 5~4세기 벼농사 도입과 청동기 전래로 상징되는 일본의 '야요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DNA가 현대 한국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교도통신은 23일 "돗토리대 의학부 이노우에 다카오 교수팀이
'야요이 시대' 유적인 돗토리현 아오야가미 절터에서 출토된 야요이인 유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 배열을 분석한 결과
현대 한국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 보도했다.
연구팀은 야요이인 유골 7점에서 DNA를 추출하는데 성공한 뒤
이 중 4점에서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 배열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이들이 한국의 현대인 및 혼슈의 일본인과 동일한 그룹에 속하는 것을 밝혀 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로 이어지는데 이번에 분석된 4점은 모두 모계를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아오야가미 절터 유적에는 적어도 서로 다른 4개 모계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영필 기자>
기사출처-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9&article_id=0000300477§ion_id=104&menu_i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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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위의 이야기는
2천 몇백년전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금속문명, 벼농사문명을 전해줬다는 얘기.
그전 일본의 토착인들이 내내 [석기시대]로 살고 있었고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문명을 전해줬는데
그 유적지 중에 하나가 [돗토리현 아오야가미(靑谷上) 절터]이고
그 유적의 주인공들이 한국에서 건너간 한국인들이라는 것.
[고인돌 주요 분포도]
한국은 세계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존재하는 [고인돌 왕국]이고
가장 오래된 고인돌도 한반도에 있다.( 8천년전 것.)
일본에는 약 2천수백년전 고인돌, 금속(철기, 청동기), 벼농사 문명이 건너가게 되는데
주로 큐슈로 먼저 건너간다.
일본 왕가의 뿌리가 큐슈에서 시작했다고 그들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왕가는 그 뿌리가 2천년전을 전후하여 주로 큐슈로 건너간
고조선(특히 마한)인들.
그리고 후에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이 건너가서 일본 왕가와 혼인한다든지
아예 일본왕을 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생기는데
일본은 큐슈에서 시작한 일본왕가가 최소한 부계혈통은 계속 이어왔다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 물론 일본왕가의 부계혈통 역시 계속 하나의 혈통이었다는 근거는 희박하다 하겠다. )
큐슈 가고시마현에는 한국악(韓國岳)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일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 해발 1,700m )
일본왕가의 시조라고 불리는 사람이 그 위에 올라가서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산으로 유명하다.
고향인 한국땅이 그리워서 그 일대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서 한국쪽을 바라본 모양.
그래서 지금까지도 한국악(韓國岳)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http://cafe.daum.net/121315/AV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