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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바이러스와 나 외 2편
이시경
나를 알고 싶다면 나를 풀어보라
나는 조건들을 놓고 자꾸만 덜거덕거리는 기계
이차 미분 방정식을 직접 풀어 보아야
누구든지 나를 알 수 있다
나는 어느 때는 빛이고 어느 때는 어둠, 빛과 어둠은 서로 앙숙이지만 우리는 빛과 어둠을 놓고 타협한다. 나에게 빛은 그에게는 어둠, 나에게 어둠은 그에게는 빛이다. 나의 평상시 모습은 ay1+by2, 상수 a와 b가 0과 1 사이에서 널뛰기할 때마다 나의 삶은 요동친다
인플루엔자가 불쑥 나를 찾아와 a를 갉아먹기 시작하면 내가 아프고, 임계점 근처에서 바르르 떠는 나에게 b를 녹이는 항생제를 투약하면 그들이 아프다. 세상에 매여 있는 나처럼 나에게 붙어 있는 고통, 슬픔, 욕망, 환상, 바이러스들
캑캑 뱉어도 떨어지지 않는 그들의 갈고리는 날카롭다
그들은 점점 강성해질 것이고
소모품인 나의 진동자 소리는 점점 더 사그라들다가
언젠가 그들의 소리에 묻혀버리고
비로소 해가 태동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해는 생명이고
두 번째 해는 죽음이고
지금은 과도기
내가 아프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불확정성의 원리 - 바벨탑
우주에서 보면 나는 쿼크
붙박이별처럼 한 곳만을 고집해온 삶이지만
녹색에서 빨강까지 색깔이 흔들리고
시계의 작은 눈금에 눈이 갈수록 심하게 흔들린다
밤낮으로 그녀의 류머티즘 통증이 이어진다
그녀의 부르짖음은 가을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오늘도 자책하며 이브와 함께 지구호를 타고 날아간다
그녀의 음식은 항상 맛있고 나는 무능하나
묵묵히 동행한 수십 년의 세월
하선을 원하는 횟수가 요즘 늘어난 것은
그녀의 통증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이브와 같이 항해할 수 있을지 떨린다
지금의 위치와 운행 속도를 알려고
수학, 과학, 상식 등 헛된 것들을 동원해서
그들에게 접근하면 할수록 더 빠르게 달아나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의 원추세포가 흔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당신의 뜻입니까?
당신의 음성이 초냉각 가스의 분광선같이 선명하고
호통의 충격이 낙뢰처럼 짧고 강력한 것은
어디나 항상 당신이 있기 때문인가요?
어느 제국의 노래
못난 두 사내와 한 여인이 있었다
사내 둘이 서로 으르렁거렸으나 그녀는 모두를 끌어안았다. 한 여인과 두 사내의 동거. 그들 가정이 극성(極性)을 띠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는데, 그들이 무리 지어 바다를 이룬 곳이 이 세상이고 그래서 우리가 무사하다는데, ‘하얀 나비’를 들으며 너를 마신다. 친구들이 재스민 향기 비눗방울로 부풀어 오르다가 꺼진다. 우정도 정의도 싸구려 일회용. 플러스가 플러스를 공격하고 마이너스가 플러스를 반기는 것만이 철칙이다. 멀리서 고기를 쫓던 소년이 다가와서 하모니카 소리를 풀어놓는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오.’
삶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사이에서의 저글링
밀고 당기고 갈라서고 찢기고, 풀벌레도 여름철 내내 나의 숲을 흔들다 가는데 어디 있느냐 시인아 어디 있느냐
<신작시>
노아 게이트 외 2편
이시경
혁명은 잔 다르크를 앞세워 샛별처럼 어둠을 찢고 오고, 그는 ‘더’라는 부하를 데리고 가는 곳마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더 멀리’를 외치고, 하늘에서 살그니 내려앉는 별빛이나 산들바람이 쓰는 대나무숲 이야기는 지우고 새 왕국을 세웠다. 그 나라에는 언제나 둘이 열이 되고 넷이 백이 되고, 기계가 앞서 달리고 상품이 날개를 달고, 왕국에 들어가려면 통과해야 하는 문이 있고, 누구든 그 문을 통과하려면 감시 봇들이 길목 양쪽에 늘어서서 옷을 벗기고 몸과 마음을 모두 샅샅이 훑고, 어디 반점이라도 있으면 목이 달아나고, 간간이 흑이 아니고 백이거나, 그믐달이 아니고 보름달 같거나, 좌가 아니고 우이거나, 돈이 아니고 꿈이어서 척살되기도 하고, 기준은 계절마다 수시로 뒤바뀌고, 문의 앞면은 초승달이고 입구가 두 개이고, 뒷면은 상현달이고 거품을 문 출구는 하나이고, 그 주변에는 유령들이 하얗게 출신 성분을 들먹이면서 응얼거리고
천상의 소리
아무리 불어도 꺼지지 않는 불덩이 108달톤
서산마루에 걸린 소쩍새 울음덩어리 111달톤
호박벌을 향한 코스모스꽃의 그리움 덩이 118달톤
남방 돌고래 무리의 속삭임 덩이 101달톤
이 덩어리 가루를 순서대로 섞고
골고루 버무려 숙성시킨 후 볕에 말리면 무엇이 될까?
밤낮으로 쏟아져 내리는 저 빛 알갱이들,
00100000 01001001 00100000 01101100 01101111 01110110 01100101 00100000 01111001 01101111 01110101 01000000
초목 위에는 이슬방울이 피어오르고
꽃사슴의 눈망울에는 그렁그렁 눈물방울이 어리고
죽은 세포들의 심장은 다시 뛰고
XOR 게이트
죽느냐 사느냐, 내 편이냐 니 편이냐
수식어가 무성해지는 시절은 저물고
고슴도치처럼 털을 쭈뼛 세워야 하는 겨울철
군더더기 형용사는 가라, 조사도 가라
이제는 영과 하나만 앙상히 남아 그것으로 소통해야 하고
어둠과 밝음, 단절과 연결로 소통해야 하고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으로 소통해야 하고
예스나 노로 간결하게 소통해야 하고
적인지 아군인지 암호로 서로 주고받아야 하고
나날이 로봇은 거구가 되고 인구는 영으로 수렴하고
고로 쉼 없이 엑스 게이트가 작동해야 하고
청춘 남녀가 그곳에서 만나 사랑해야 하고
청년들은 이성을 멀리하지 말아야 하고
암컷이 수컷과 둥지에서 새끼를 쳐야 하고
그렇게 게이트에서 신호 1이 출력되어야 하고
문화가 서로 다른 것을 생산의 기회로 삼아야 하고
수학으로 사막에 시의 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은 새 시대가 도래했음이니
<시인의 에스프리>
‘디지털 시’와 만나다
이시경
문학지로부터 청탁을 받게 되면 시인들은 ‘어떤 시를 써서 보낼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이번에 기고를 요청한 문학과 사람은 격변하는 한국의 시문학 생태계 속에서 기존 전통을 이어가면서 치열하게 새로움을 모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문학지이다. 따라서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어느 시인인들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아래는 어떤 시를 써서 보낼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면서 이시경 시인이 쓴 글 (혹은 시), ‘어떤 시를 쓸 것인가?’이다.
1
어떤 시를 쓸 것인가?
어떤 시인은 장편 대하소설 같은 시를 쓰고
어떤 시인은 과학 에세이 같은 시를 쓰고
어떤 시인은 수학 노트 같은 시를 쓰고
어떤 시인은 음악을 작곡하듯이 시를 쓰고
어느 시인은 화판 위에 화필로 시를 그리고
어느 시인은 바이올린을 살살 달래가며 시를 켜고
어떤 시인은 괴테의 철학을 응축시켜 시를 쓰고
어떤 시인은 신에 감동하여 영감으로 시를 쓰고
어떤 시인은 노루처럼 풀숲을 헤치고 다니며 시를 사냥하고
어떤 시인은 술에 취해 횡설수설 절창을 늘어놓고
어떤 시인은 천체 망원경 속을 응시하면서 시를 쓰고
어떤 시인은 농번기에 품앗이하다가 구수한 시를 담아내고
어떤 시인은 의미를 모두 지우고 시를 쓰고
시가 아닌 시를 쓰는 시인이 있고
시가 아닌 것도 아, 아, 아닌 시를 쓰는 시인이 있고
시가 꿈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시인이 있고
시를 낯선 언어로 암호문을 쓰는 시인이 있고
시를 모범생처럼 반듯이 쓰는 시인이 있고
시를 포탄 소나기를 맞으며 처절하게 쓰는 시인이 있고
시를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듯이 쓰는 시인이 있고
시를 CERN에서 입자 가속하듯이 쓰는 시인이 있고
시 속에 수식을 넣는 시인이 있고
시 속에서 수식을 만나 경기驚起하는 시인이 있고
시 속에서 수학을 발견하는 시인도 있고
수학 속에서 시를 꺼내는 시인도 있고
어떤 시는 다가가면 달아나는 시가 있고
어떤 시는 애인처럼 다가오는 시가 있고
어떤 시는 질기게 따라다니며 속박하려고 하는 시가 있고
어떤 시는 고분고분하게 속살을 보여주는 시가 있고
어떤 시는 안개 속으로 안내하여 길을 잃게 하는 시가 있고
어떤 시는 기계가 좋아하는 시가 있고
어떤 시는 병든 자를 회복시켜주기도 하고
어떤 시는 인터넷에서 기생하다가 나타나는 시도 있고
어떤 시는 뻐꾸기 울음을 시구절로 바꿔 노래한 시도 있고
어떤 시는 안드로메다은하에서 탈출한 시도 있고
어떤 시는 피카소가 두 손 들고 포기한 시도 있고
어떤 시는 땅속에 박혀있는 금맥 같은 시도 있고
어떤 시는 지금은 반짝이나 유성처럼 사라질 시도 있고
지금 나는 어떤 시를 쓸 것인가?
2
이번에 문학지 <문학과 사람>에 기고할 시를 놓고 며칠을 고뇌하다가 결국 ‘디지털 시’를 보내기로 했다. 그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지금 시대가 디지털 시대이고 AI 인공지능 시대이기 때문이다. 왜 이 시대를 디지털 시대라고 말할까? 그것은 오늘날의 거의 모든 통신과 인터넷이 디지털이고, 컴퓨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첨단 기기들이 디지털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 속에 있는 자연 그대로의 소리나 이미지들은 거의 모두가 아날로그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날로그 신호는 주변에 있는 잡음에 쉽게 묻혀버리거나 신호가 통신 시스템을 거치면서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취약점으로 인해서 송신자가 메시지를 보낼 때, 메시지가 아날로그이면 우선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시킨 후 수신자에게 디지털 신호를 전송한다. 그러면 수신자는 이 디지털 신호를 받아서 다시 원래의 아날로그 신호로 복원시켜서 메시지를 수신한다. 이렇게 송신, 수신, 전송, 신호처리, 저장 등 모든 작업이 디지털상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이 디지털 시스템이며, 오늘날의 대부분 시스템이 디지털 시스템이다.
디지털 시스템에서는 신호를 복원할 때 0이나 1, 둘 중 하나로 판별하여 복원하면 되기 때문에 더 정확하고 더 빠르게 메시지를 전송 및 처리할 수 있고, 따라서 시스템을 초고속으로 구동시킬 수 있다. 요즘처럼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는 데이터들을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전송하고 처리해야 하는 시대에서 ‘디지털’은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요즘 사회가 각종 전염병과 전쟁 등으로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다. 내일 당장 지구 한쪽에서 전쟁이 터질지, 어떤 전염병이 창궐할지, 혹은 지진이나 기상 이변으로 재해가 발생할지 불안하다. 이 같은 사회적 불안은 시민들을 조급하게 만들고, 이러한 조급증으로 인해서 오늘날의 ‘디지털 시민’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득이 앉아서 자세히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빨리’ 간결하게 결론만을 듣고 싶어 한다. ‘예스’나 ‘노’, 둘 중 하나만을 빨리 알기를 원한다. ‘내 편’인지 ‘니 편‘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빨리 파악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디지털적인 경향이 근본적으로 이 시대를 사는 ‘디지털 시민’들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며칠 전에 겪었던 일을 하나 이야기해보자. 그날도 여느 때처럼 스트레스를 풀고 운동도 할 겸 집 근처에 있는 호수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꽤 운동이 된지라 몸은 좀 노곤했으나 스트레스는 많이 해소된 듯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자동차 경고음 때문이었다. 교통신호가 바뀌면서 앞차가 좀 지체하자 뒤차의 운전자가 ‘빵빵’ 경적을 울린 것이다. 이러한 폭력적이고 디지털적인 소음으로 인해 주변에 있던 시민들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일을 주변에서 거의 매일 경험한다. 그 이유는 현대인들이 불안하고 급변하는 디지털 사회에 적응해 살면서 이제는 디지털의 습성이 몸에 배어 매사 ‘초조’하고 ‘조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날도 뒤차가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운전하려면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운전을 그만두든지’, ‘죽든지 아니면 살든지’ 하라고 앞의 운전자에게 디지털적인 언어를 표출한 것일 수 있다.
그럼 지금 이 디지털 시대에서 주인공은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 스마트폰 아니면 로봇일까? 물론 이들 모두가 지금 이 디지털 시대에서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들의 활약은 대단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들이 모두 컴퓨터와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논리게이트로 구성된 거대한 논리회로라고 말할 수 있다. 0과 1로 구성된 데이터들이 컴퓨터를 드나들면서 다양한 논리게이트를 거쳐서 0이나 1의 데이터들이 출력되어 나온다. 어떤 논리게이트냐에 따라서 같은 데이터들이 입력되더라도 나오는 출력은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 디지털 사회에도 컴퓨터에서 동작하는 것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비슷한 논리게이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일에는 OR나 AND로 동작하는 경우가 있고 NOR나 NAND 또는 XOR 게이트로 동작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논리게이트는 어떤 관점에서는 적합할 수 있으나, 관점이 달라지면 다른 논리게이트가 오히려 더 좋은 수 있다. 참고로 실제 컴퓨터 설계 시에는 OR나 AND보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서 NOR이나 NAND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다소 어려운 개념일 수도 있으나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인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지금, 어떻게 해서든지 미래를 위해서는 인구가 증가해야 한다. 이민 정책도 있으나 우선은 청춘 남녀들의 결혼과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 이때 어떤 논리게이트가 남녀 사이의 결혼을 장려시켜서 아이를 한 명이라도 더 낳게 할 수 있을까? 문화나 성격이 서로 다르다고 서로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될까? 아니다. 성별이 다른 것은 또한 어떠한가? 오히려 XOR 게이트의 원리 측면에서 바라보면 ‘서로 다르다는 것’이 출력 ‘1’로 나타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디지털 시’ 작품들은 우리 삶을 어떤 논리게이트로 비유할 수 있는지 상상하다가 탄생했음을 밝힌다.
이시경(본명 이경식)
2011년 애지 등단, 시집으로 n평원의 들소와 하이에나, 라마누잔의 별 헤는 밤, 아담의 시간여행, 쥐라기 평원으로 날아가기,
교양과학에세이 서적으로 수학을 시로 말하다, 과학을 시로 말하다가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