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과 진주
1919년 2월 말 고종황제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가 돌아온
김재화(金在華)·박대업·심두섭(沈斗燮)·정용길(鄭鎔吉) 등이
3·1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몰래 갖고 와
이강우(李康雨) 등과 함께 김재화의 집에서
3월 18일 거사하기로 합의함으로 시작되었다.
도청이 있던 진주는 3월 10일 “삼남 지방에는 왜 일어나지 않을까"
라는 격문이 나돌자
3월 11일 최고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학교는 임시 휴교령이 선포되었다.
3월18일 진주교회의 종소리에 맞추어
진주교회에서 운영하는 광림학교 이강우의 독립선언문 낭독
그리고 시원 여학교 학생들이 앞장을 서
영남포정사로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일본 순사들은 먹물을 뿌려 시위에 참가한 자들을
검거하고 탄압을 강화하였지만,
시위는 날마다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애국청년들을 위시하여 걸인독립단,
논개를 기억하여 기생독립단원들이 일어났다.
특히 기생독립단의 한금화는
흰 명주 자락에 손가락을 깨물어
“기쁘다 삼천리 강산에 다시 무궁화가 피누나‘
라고 혈서를 써서
시위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식을 줄 알았던 만세운동은
4월 18일까지 산발적으로 계속되었으나
사전에 검거가 되는 아픔을 격었던 진주의 3.1운동은
기독청년들, 노동독립단, 걸인독립단, 기생독립단, 청소년회까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일어난
서울 다음으로 크게 일어난 대규모 운동이었다.
아! 진주!!!
한마음 한뜻이면 무엇을 못 할까 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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