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어느 날
전날 부슬비로 시작된 비가 아침 나절엔 굵은 장대비가 되어 내려 꽂혔다.
그러다 비는 빠지고 시커멓던 하늘은
층내고 갈라지며 엷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웬지 엄마 아빠가 밭에 안 나가신다.
개울가서 물고기 잡을 생각에 눈치만 슬슬 보는데
골목에 웅성웅성 하며 빠른 발걸음 지나는 소리.
얼른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짐작대로 영수, 석진, 영진...
그물과 각종 도구들을 어깨에 지고 간다.
우리 마을엔 동남쪽으로 작은 개울이
서편으론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제법 큰 지류가 있었다.
동네 오빠들은 주로 서편 강에서 놀았다.
(애기 시절엔 키작은 아빠도 크게 보이듯,
지금 생각해보니, 사실상 강이라기보단
조금 넓은 개울 이었을거다.)
조바심치던 나는 급기야
엄마 아빠한테 저 위 순영 언니네 집에 간다며,
툇마루를 내려 냅다 뛰어 세 남자 뒤로 바짝 붙었다.
역시 방향은 서편이다.
석진이가 힐끗 보며,
야! 너 왜 따라오니?, 하며 사과씨 뱉듯 한마디 던진다.
영수는 무반응,
영진이는 미안한 듯 살짝 미소 띄운 거 같다.
석진이가 야속했지만 쭐래쭐래 따라간다.
말괄량이에다 남아 못지 않은 딱지치기, 자치기 솜씨의 내가 기죽진 않지.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멀찌감치 앞서가던 셋 중
영진이가 되돌아 와 손을 내민다.
영수는 21살, 건국대학교 법학과
석진이는 그냥 고졸
영진이는 고 2..
셋은 형제였다.
천에 도착해보니
물이 성을 내며 가장자리까지 넘실거렸다.
오빠들은 겁도 없이 풀섶이 있는 가장자리에
그믈을 찔러 넣고 헤집어댔다.
바위도 뒤집을듯 부딪치며 내달리는 물살이었지만 보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오빠들이 가져온 물건 중에 채반(?)이 있었다.
오빠들처럼 물 속에 발은 못 넣고 두렁에서
상체를 숙이며 풀섶에 채반을 흔들며 찔러 넣었다.
순간 둑의 흙이 떨어져 나가며 내 작은 몸이 미끄러졌다.
본능적으로 풀들을 잡았으나 끊어지고 몸은 두둥실 암 생각 없었다.
어엇~놀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자마자 뭔가
꺼끌꺼끌 한 것이 얼굴에 착 붙고
팔에 감겼다.
순간 번쩍 들렸다 내려지고 땅에 착지.
그믈은 물고기 대신 사람고기를 건져 올렸다.
얘 인공호흡 해야 하는거 아냐?
그 중 어린 영진이 목소리다.
아니, 의식 있잖아. 물도 많이 안 먹었어..
큰 형 영수의 대답이다.
어리버리한 상태에서도 또렷이 구별되었고
영진이의 인공호흡 얘기가 괜히 맘에 들었다.
얘 데리고 집에 가자, 하며 삼형제는
그믈을 접기 시작하는데,
그림자를 짤뚱하게 만든 햇살에
온 들판의 벼 잎파리는 더 날카로와 보였다.
순간 엄마의 뾰족한 얼굴이 떠오르며
생존 영웅담은 커녕 젖은 옷에 대한 쿠사리가 걱정되었다.
오빠, 그 잠바 좀 빌려줘.
왜? 춥니?
첫째는 잠바비스므리, 둘째는 그냥 티셔츠
셋째 영진인 난닝구에 남방을 입고 있었다.
내가 바라던 대로 막내가 옷을 벗어 내민다.
자기 옷이 그나마 작고 벗기도 편할테니..
나는 나무 뒤로 가서 겉 옷을 벗고 남방을 걸치니
발치까지 오는 원피스가 되었다
옷은 벼 위에 쫙 펴서 올리려니 벼가 꺾인다.
걷어 둑 풀밭에 펴 널었다.
따가운 볕에 잘 마를 거였다.
쟤 좀 봐~~
석진이가 신기한듯 어이없는듯 썩소를 날리며,
너 집에 안 갈거니?
(그들이 울 엄마 반응을 가늠할리가 없으니)
옷 좀 말려 입고 갈래.
영진이가 짧은 물놀이가 아쉬웠던지 큰 형을 향해
우리도 물고기좀 더 잡고 가자, 한다.
난 그냥 좋았다.
영진이 옆에 있으면 왜 좋은 느낌이 드는지?
그렇게 한참을 더 있었고 옷은 말랐고
아주 멀쩡하게 귀가했다.
영진이네 집은 동네 뒷산 입구에 있었다.
집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군데 군데 크고 편평한 구덩이들이 있었다.
어떨 땐 미군들이 그곳에서 휴식하며 간식을 먹기도 했는데,
동네 아이들 쪼그리고 앉아 내려다보며 구경할라치면,
껌이나 초콜렛이 던져졌다.
그들이 빠지면 아이들은 그 곳에서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 하며 놀곤했다.
그렇게 놀던 그곳을 가려면 반듯이 삼형제 집 담벼락과 나무대문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내가 그 구덩이를 자주 놀러가는 이유였다.
열린 문틈으로 마루와 작은 방 쪽을 살피며 지나가곤 했다.
하루는 영진이가 쭈뼛거리는 날 발견하고는
영아~ 들어와 과자(매작과) 먹어, 하는데
그런 느낌이 행복인걸 알리 없는 꼬맹이가
기쁘게 마루로 돌진해서 과자를 먹으며 보니
책이 열려 있었는데, 지도책이다.
지도책이라면 내가 집에서 취미처럼 본다.
사실 지도 보는 재미로 한글을 깨치게 되었다.
세계지도 펴놓고 아빠와 지명찾기놀이를 자주 했기에..
그 놀이를 영진이에게 하자고 했더니
꼬마하고 무슨 시시하게~~그런 표정.
냅다 내가 먼저 '리마' 찾아, 했더니
어라~~하면서 지도를 보며 헤맨다.
결국 실패 이어 내 순서..
영진이는 한참 고르더니 고작 '프라하'를 외친다.
그 정도는 껌..
그 게임에서 내가 이겼고
이후 영진인 내가 보이면 먼저 지명 찾기하자고도 했다.
그렇게 겨울에도 화롯가에서
영진이가 배깔고 책 읽을 때 난 지도를 봤다.
(이 때의 지도 탐닉이 나중 중고교 시절 지리박사 라는 별명으로 이어진다.)
그건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분명했으나
꼬마에겐 인식되지 않는, 그냥 꼴리는 대로의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어른같은 고교생을 향한 꼬맹이의 그것은
꼬맹이 만의 비밀스런 일기장 같은 것으로 느껴졌던지,
어디 갔다왔니, 엄마의 물음에 매번 순영언니 집,이라고 둘러댔다.
첫째는 서울서 대학다니니 볼 일이 거의 없었고
겉 멋이 들어 늘 빗을 갖고 다녔던 둘째는 어디 공장을 다닌듯 역시 눈에 안띄었다.
셋째 영진이는 (여학생과 펜팔?) 가끔 꽃 편지를 읽곤 했지만,
이듬해 고 3이 되니 뭔가 분위기가 심각해지며
통 보이질 않았다.
강에 사람 고기낚은 사건 일년 후
아버지나 엄마의 수상쩍은 행보가 이어졌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난 그 마을을 떠났다.
이게 영원인지 잠시인지 떠난다는 개념 조차도 없이
부모님 하는 대로 그냥 실려 갔다.
슬픈건지도 모른 채 그곳을 떠나 왔는데
신기하게도 영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새로운 곳엔 내 호기심을 채울 새 놀이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영진인 내 남자의 척도가 되었다.
부드럽고 여성적이고 자상하게 챙기는 형..
여자가 나이 지긋해지면 으례
힘세고 남성미 충만한 남자보다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주는 남자를 선호하게 마련인데,
나는 꼬맹이 시절 이미 내게는 여성적 남자가 좋다는걸 알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