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윤용하. 그는 1951년 부산에서 재회한 박화목에게 "아무리 피난살이지만 보람 있는 일을 해야 할 것 아니겠나"라며 "가곡을 만드세"라고 제안한다. 박화목이 '옛 생각'이라고 붙인 시 제목을 윤용하가 '보리밭'으로 바꿔 곡을 붙인다.
보리밭의 멜로디는 서정적이다. 그러면서도 애조 띤 가사와 함께 처지지 않는다. 추억에 잠시 발을 멈추고 돌아봤다가 이내 고독을 떨쳐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윤용하는 외로운 작곡가였다. 주류가 아니었고 주류에 서기를 거부했다. 그의 학력은 보통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1960년대 전후 서울동북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해방 후 친구인 성악가 오현명이 남산음악학교에서 공부를 더 할 것을 권했지만 듣지 않았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이 무슨 자격이 필요하단 말이오?"라고 반문할 뿐이었다.(박화목 '윤용하 일대기')
윤용하는 순수음악을 고집했다. "예술의 순수성을 지킨다"며 대중음악 일자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순수함를 추구한 윤용하는 어린이들이 즐겨 부를 우리 노래도 만들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요즘도 많이 불리고 있다.
그는 황해도 은율에서 4대째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따라 만주에 가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성가대에서 노래하고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음악을 배웠다. 프랑스 신부는 그를 음악신부로 키우려고 했다. 그러나 음악신부가 되려면 먼저 일본에서 1년 동안 라틴어와 불어를 배워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부모가 반대했다. "자식을 왜놈 땅에 보낼 순 없다"는 것이었다.
박화목은 윤용하가 "검은 얼굴에 눈동자가 크고 검고 서글서글했다"고 전했다. 올해(2020년)는 순수하고 가난하게 살다 1965년 43세에 절명한 작곡가 윤용하의 55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