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풍루光風樓 縣監장세남시張世南詩 주련 天 邊 烟 川 年 三洞名區別有天 *洞 (去聲01送) ◐●◐○◐●◎ 一樓風月浩無邊 *浩(上聲19皓) ◐○◐●●○◎ 西園竹樹宜疎雨 *園(上平13元) *樹(去聲07遇) *疏(上平06魚) ◐○◐●○○● 東嶺山嵐和暮烟 *嵐(下平13覃) *嶺(上聲23梗) *暮(去聲07遇) ◐●◐○◐●◎ 漠漠田間飛白鷺 *间[jiān] 사이 閒(上平15刪) *x间[jiàn] 틈 ◐●◐○○●● 磷磷石上瀉晴川 *磷(上平11眞)(去聲12震) *瀉(去聲22禡) ◐○◐●●○◎ 蠹翁去後今吾至 *翁 (上平01東) ◐○◐●○○● 此樂寥寥二百年 *寥(下平02蕭) ◐●◐○◐●◎ | 光風樓 縣監 張世南詩 *押韻 天 邊 烟 川 年 *仄起式 三洞名區別有天 ◐●◐○◐●◎ 一樓風月浩無邊 ◐○◐●●○◎ 西園竹樹宜疎雨 ◐○◐●○○● 東嶺山嵐和暮烟 ◐●◐○◐●◎ 漠漠田間飛白鷺 ◐●◐○○●● 磷磷石上瀉晴川 ◐○◐●●○◎ 蠹翁去後今吾至 ◐○◐●○○● 此樂寥寥二百年 ◐●◐○◐●◎ 압운: 天 邊 烟 川 年 / 시법: 칠언율시(칠언사운) / 압운 / 평기식 평기평결 / 측기식 측기측결 / 이사부동이륙동 / 홀짝부동짝홀동 / 중련(함련경련)대우 |
光風樓 縣監장세남시張世南詩
주련 天 邊 烟 川 年
三洞名區別有天 *洞 (去聲01送)
◐●◐○◐●◎
一樓風月浩無邊 *浩(上聲19皓)
◐○◐●●○◎
西園竹樹宜疎雨 *園(上平13元) *樹(去聲07遇) *疏(上平06魚)
◐○◐●○○●
東嶺山嵐和暮烟 *嵐(下平13覃) *嶺(上聲23梗) *暮(去聲07遇)
◐●◐○◐●◎
漠漠田間飛白鷺 *间[jiān] 사이 閒(上平15刪) *x间[jiàn] 틈
◐●◐○○●●
磷磷石上瀉晴川 *磷(上平11眞)(去聲12震) *瀉(去聲22禡)
◐○◐●●○◎
蠹翁去後今吾至 *翁 (上平01東)
◐○◐●○○●
此樂寥寥二百年 *寥(下平02蕭)
◐●◐○◐●◎
沈相福(1871 ~ 1951) 恥堂文集卷之二 詩 登光風樓次板上韻 1光風飄灑洞中天 1◐○◐●●○◎ 2百尺元龍活水邊 2◐●◐○◐●◎ 3四野桑麻當肇夏 3◐●◐○○●● 4千家楊柳羃淸煙 4◐○◐●●○◎ 5堪憐先輩優遊地 5◐○◐●○○● 6可惜光陰逝似川 6◐●◐○◐●◎ 7自此尋眞知未遠 7◐●◐○○●● 8山如太古日如年 8◐○◐●●○◎ |
*측기식* 1◐●◐○◐●◎ 2◐○◐●●○◎ 3◐○◐●○○● 4◐●◐○◐●◎ 5◐●◐○○●● 6◐○◐●●○◎ 7◐○◐●○○● 8◐●◐○◐●◎ | *평기식* 1◐○◐●●○◎ 2◐●◐○◐●◎ 3◐●◐○○●● 4◐○◐●●○◎ 5◐○◐●○○● 6◐●◐○◐●◎ 7◐●◐○○●● 8◐○◐●●○◎ |
해장집(海藏集) 신석우(申錫愚 1805~ 1865) 海藏集卷之五 / 詩 / 光風樓 霽月光風別洞天。 先賢氣像浩無邊。 攀梯一上餘丹艧。 開戶平臨濕翠煙。 未了仙緣遅出峽。 將尋往蹟逝如川。 十分春色名亭酒。 何似湘江宴宰年。 | 沈相福(1871 ~ 1951) 恥堂文集卷之二 詩 登光風樓次板上韻 1光風飄灑洞中天 1◐○◐●●○◎ 2百尺元龍活水邊 2◐●◐○◐●◎ 3四野桑麻當肇夏 3◐●◐○○●● 4千家楊柳羃淸煙 4◐○◐●●○◎ 5堪憐先輩優遊地 5◐○◐●○○● 6可惜光陰逝似川 6◐●◐○◐●◎ 7自此尋眞知未遠 7◐●◐○○●● 8山如太古日如年 8◐○◐●●○◎ | *평기식* 1◐○◐●●○◎ 2◐●◐○◐●◎ 3◐●◐○○●● 4◐○◐●●○◎ 5◐○◐●○○● 6◐●◐○◐●◎ 7◐●◐○○●● 8◐○◐●●○◎ |
恥堂文集(치당문집) 沈相福(1871 ~ 1951) 恥堂文集卷之二 詩 登光風樓次板上韻 光風飄灑洞中天 百尺元龍活水邊 四野桑麻當肇夏 千家楊柳羃淸煙 堪憐先輩優遊地 可惜光陰逝似川 自此尋眞知未遠 山如太古日如年 | *평기식* 1◐○◐●●○◎ 2◐●◐○◐●◎ 3◐●◐○○●● 4◐○◐●●○◎ 5◐○◐●○○● 6◐●◐○◐●◎ 7◐●◐○○●● 8◐○◐●●○◎ |
장세남(張世南, 1642~1700) 본관 인동(仁同), 자는 두이(斗以)
張世南 通訓大夫癸亥(1683,숙종9)宰改修光風樓霽月堂丙寅(1686,숙종12)災傷罷
今年春。安陰縣監張侯世南以書來請曰。縣有光風樓,霽月堂。乃一蠹先生之所刱也。斯二者歲久而未免支拄矣。堂則朴尙書長遠已葺理之。而樓則今方裒稡財力以治之。此實前賢之遺跡。...時崇禎旃蒙赤奮若(을축1685,숙종11,우암79세)孟秋日。
川之西岸客舘之北。有所謂光風樓霽月堂者。實一縣之名勝也。按縣誌。樓及堂。皆弘治甲寅。一蠧文獻公先生所創搆者。樓本宣化樓故址。堂舊在金灘上。去樓五六十步。肅廟甲子(1684,숙종10)。張侯世南移之。以連於樓爲今制也。
光風樓 縣監張世南詩
김윤수 고증 읍지 배열은 시법에 안맞음, 주련상태가 시법에 맞음 주련이 타당함.
安義邑誌 題詠
光風樓
縣監張世南詩曰
읍지 | 주련 天 邊 烟 川 年 |
三洞名區別有天 * 洞 (去聲01送) ◐●◐○◐●◎ 一樓風月浩無邊 *浩(上聲19皓) ◐○◐●●○◎ 漠漠田間飛白鷺 ◐○◐●○○● 磷磷石上瀉晴川 *晴(下平08庚) ◐●◐○◐●◎ 西園竹樹宜疎雨 *x疏[书疏](去聲06御) ◐●◐○○●● 東嶺山嵐和暮烟 ◐○◐●●○◎ 蠹翁去後今吾至 ◐○◐●○○● 此樂寥寥二百年 ◐●◐○◐●◎ | 三洞名區別有天 *洞 (去聲01送) ◐●◐○◐●◎ 一樓風月浩無邊 *浩(上聲19皓) ◐○◐●●○◎ 西園竹樹宜疎雨 *園(上平13元) *樹(去聲07遇) *疏(上平06魚) ◐○◐●○○● 東嶺山嵐和暮烟 *嵐(下平13覃) *嶺(上聲23梗) *暮(去聲07遇) ◐●◐○◐●◎ 漠漠田間飛白鷺 *间[jiān] 사이 閒(上平15刪) *x间[jiàn] 틈 ◐●◐○○●● 磷磷石上瀉晴川 *磷(上平11眞)(去聲12震) *瀉(去聲22禡) ◐○◐●●○◎ 蠹翁去後今吾至 *翁 (上平01東) ◐○◐●○○● 此樂寥寥二百年 *寥(下平02蕭) ◐●◐○◐●◎ |
압운: 天 邊 烟 川 年 / 시법: 칠언율시(칠언사운) / 압운 / 평기식 평기평결 / 측기식 측기측결 / 이사부동이륙동 / 홀짝부동짝홀동 / 중련대우 |
*측기식* 1◐●◐○◐●◎ 2◐○◐●●○◎ 3◐○◐●○○● 4◐●◐○◐●◎ 5◐●◐○○●● 6◐○◐●●○◎ 7◐○◐●○○● 8◐●◐○◐●◎ |
해장집(海藏集) 신석우(申錫愚)생년1805년(순조 5)몰년1865년(고종 2)자성예(成睿), 성여(成如), 성여(成與), 성여(成汝), 성부(誠夫)호해장(海藏), 금천(琴泉), 이당(頤堂), 맹원(孟園), 난인(蘭人)본관평산(平山)시호문정(文貞)특기사항신위(申緯), 홍종응(洪鍾應), 정공수(程恭壽), 조광(趙光) 등과 교유
海藏集卷之五 / 詩 / 光風樓
철종 | 6 | 1855 | 을묘 | 咸豐 | 5 | 51 | 경상도 관찰사가 되다. |
철종 | 7 | 1856 | 병진 | 咸豐 | 6 | 52 | 경상도에 큰 재해가 발생하자 被災田 10,000結을 조정에 보고하여 그대로 準劃을 받아 백성들을 구제하다. |
철종 | 8 | 1857 | 정사 | 咸豐 | 7 | 53 | 여름, 殿最에서 下考를 받자, 사직하는 상소를 올리다. ○ 대사헌이 되다. |
철종 | 9 | 1858 | 무오 | 咸豐 | 8 | 54 | 資憲大夫에 오르고 판윤, 知春秋館事가 되다. ○ 3월, 慶尙右道暗行御史 徐相至가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할 때 耗穀을 규정 이상으로 걷었다는 혐의로 論啓하여 中和府에 유배되었다가 곧 사면되다. ○ 11월, 판윤이 되었으나, 사양하다가 경기도 해안 고을로 유배되고 곧 사면 받다. |
霽月光風別洞天。先賢氣像浩無邊。
攀梯一上餘丹艧。開戶平臨濕翠煙。
未了仙緣遅出峽。將尋往蹟逝如川。
十分春色名亭酒。何似湘江宴宰年。
*〈乙卯十一月十六日辭朝祗承引接于克綏齋 ……〉는 저자에 대한 哲宗의 眷遇가 잘 드러나 있는데, 이 시부터 권말까지는 모두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 중에 지은 시들이다. 〈東京懷古〉는 慶州의 유적을 읊은 작품으로 앞서 언급한 〈평양회고〉, 〈용주잡영〉, 〈이진죽지〉와 맥이 통하는 작품이다.
권6은 시(149제)이다. 〈達城觀燈〉부터 〈行期將筮樂育諸斯文來訪拈韻共賦以敍別懷〉까지는 경상도 관찰사 재직시에 지은 작품이며, 〈離達城〉은 경상도 관찰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오며 지은 작품이다. 〈止酒〉는 음주 뒤에 거리낌 없이 말하는 습관을 고치라는 지인의 충고를 듣고 禁酒를 다짐하며 지은 작품이다.
〈加請年災疏〉는 1856년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 중에 올린 글로 심한 재해를 입은 영남 지역의 被災田을 애초에 요청한 대로 10,000結로 準劃해 달라는 내용이다. 〈還納察典後自引疏〉는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 중인 1857년 여름 殿最에서 下考를 받자, 철종이 啓本을 내려 보내 다시 평가하라는 下敎를 내렸으나, 전최를 고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 하여 스스로 사직을 청하는 내용이다.
〈謁表忠先院記〉부터 〈梵魚寺記〉까지 19편은 저자가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하던 1856년에 지은 것으로, 그중에서 〈盤龜臺記〉는 암각화로 유명한 盤龜臺의 集淸亭에 들러 黃景源이 지은 記를 읽어 보고, 이곳이 鄭夢周가 좋아하던 곳이라는 것을 알고 그 유래를 기록한 글이다.
권12는 기(38), 跋(18)이다. 기 중에서 〈東萊府記〉부터 〈盈德霽景樓記〉까지 19편은 역시 경상도 관찰사로 재직하던 1856년에 지은 것으로 이 가운데 〈安義縣治記〉는 朴趾源이 다스렸던 安義縣의 관아에 들러 그 흔적을 더듬으며 쓴 글로 박지원을 얼마나 존모하고 있는지 잘 드러나 있다.
읍지 竹軒曹淑詩 | 읍지 石谷成彭年詩 |
羈旅三年滯海濱 ◐●◐○◐●◎ 鏡中華髮與時新 ◐○◐●●○◎ 裁詩倚醉悲南極 ◐○◐●○○● 遺興登樓望北辰 ◐●◐○◐●◎ 月霽風光心浩蕩 ◐●◐○○●● 山明水秀俗厖醇 ◐○◐●●○◎ 歸田願結鷄豚社 *鸡[jī]豚[tún]社[shè] ◐○◐●○○● 自擬忘榮傲世人 ◐●◐○◐●◎ | 嶺外仙區說我陰 ◐●◐○◐●◎ 光風山水更淸深 ◐○◐●●○◎ 龍門白石還明月 ◐○◐●○○● 鶻岳丹霞半綠林 *霞(下平06麻) ◐●◐○◐●◎ 地怪靈芝春長至 ◐●◐○○●● 廚香班筍日烹簪 *筍(上聲11軫) 斑笋[bān sǔn] ◐○◐●●○◎ 使人登眺多留躅 ◐○◐●○○● 退老當年亦越呤 ◐●◐○◐●◎ |
竹軒曹淑詩曰 羈旅三年滯海濱 鏡中華髮與時新 裁詩倚醉悲南極 遺興登樓望北辰 月霽風光心浩蕩 山明水秀俗厖醇 歸田願結鷄豚社 自擬忘榮傲世人 | 石谷成彭年詩曰 嶺外仙區說我陰 光風山水更淸深 龍門白石還明月 鶻岳丹霞半綠林 地怪靈芝春長至 廚香斑筍日烹簪 使人登眺多留躅 退老當年亦越吟 |
題詠 東軒 裵屯詩曰 山陰朝發暮安陰獨倚東軒秋夜深一點客燈明半壁數聲村笛隔前林興亡萬古山依舊榮辱千般雪滿簪未報聖恩嗟已老三峰漢水入長吟
題詠 東軒 裵屯詩曰(평기식) | 시법 칠율 평기식 이사부동이륙동 홀짝부동짝홀동 평기평결 측기측결 |
山陰朝發暮安陰 ◐○◐●●○◎ 獨倚東軒秋夜深 ◐●◐○◐●◎ 一點客燈明半壁 ◐●◐○○●● 數聲村笛隔前林 ◐○◐●●○◎ 興亡萬古山依舊 ◐○◐●○○● 榮辱千般雪滿簪 ◐●◐○◐●◎ 未報聖恩嗟已老 *嗟(下平06麻) ◐●◐○○●● 三峰漢水入長吟 ◐○◐●●○◎ | *평기식* 1◐○◐●●○◎ 2◐●◐○◐●◎ 3◐●◐○○●● 4◐○◐●●○◎ 5◐○◐●○○● 6◐●◐○◐●◎ 7◐●◐○○●● 8◐○◐●●○◎ 【제영】 수성촌적격전림(數聲村笛隔前林) 배둔(裵屯)의 시에, “아침에 산음을 떠나 저물녁에 안음에 와서, 홀로 동헌에 기대니 가을 밤이 깊어 온다. 한 점 등잔불은 벽을 반쯤 밝히는 데, 두어 마디 피리 소리 앞 숲에서 들려오네. 만고의 흥망 속에 산은 옛날 그대로이고, 천 가지 영욕속에 머리가 눈 빛일세. 성은을 보답하지 못하고 늙음이 슬퍼라. 삼각산과 한수가 그리워 길게 읊조리네.” 하였다. |
石谷先生文集(석곡선생문집)成彭年(1540 ~ 1594)石谷先生文集卷之一七言四韻次雙淸軒韻題退溪先生詩後二首 雙淸軒卽李繼綸之號也...退老當年亦越吟 時先生以掌令赴京 位已淸顯雨登樓有詠故有越吟...
47 面
次雙淸軒韻題退溪先生詩後 二首 雙淸軒卽李繼綸之號也
嶺外仙區說我陰 光風山水更淸深 龍門白石還明月 鶻岳丹霞半綠林 地怪靈芝春長玉 廚香斑筍日烹簪 使人登聎多留躅 退老當年亦越吟
時先生以掌令赴京 位已淸顯雨登樓有詠故有越吟之語
又
淸流脩竹擁摟陰 誰遣霜臺入境深 今日銀鉤棲粉壁 當時仙翰舞風林 參差狼 疑作狠 石黿鼉骨 隱見層巒玳瓃簪 一去美人空有閣 耳邊猶想聽高吟
淸流脩竹擁摟陰 誰遣霜臺入境深 今日銀鉤棲粉壁 當時仙翰舞風林 參差狼石黿鼉骨 隱見層巒玳瓃簪 一去美人空有閣 耳邊猶想聽高吟 * 疑作狠 *玳瑁 [dàimào]
*측기식* 1◐●◐○◐●◎ 2◐○◐●●○◎ 3◐○◐●○○● 4◐●◐○◐●◎ 5◐●◐○○●● 6◐○◐●●○◎ 7◐○◐●○○● 8◐●◐○◐●◎ | <次雙淸軒韻題退溪先生詩後> 1嶺外仙區說我陰 2光風山水更淸深 3龍門白石還明月 4鶻岳丹霞半綠林 *霞(下平06麻) 5地怪靈芝春長至 6廚香班筍日烹簪 *筍(上聲11軫) 斑笋[bān sǔn] 7使人登眺多留躅 8退老當年亦越吟 |
평기식 1◐○◐●●○◎ 2◐●◐○◐●◎ 3◐●◐○○●● 4◐○◐●●○◎ 5◐○◐●○○● 6◐●◐○◐●◎ 7◐●◐○○●● 8◐○◐●●○◎ | <次雙淸軒韻題退溪先生詩後> 1淸流脩竹擁摟陰 2誰遣霜臺入境深 3今日銀鉤棲粉壁 4當時仙翰舞風林 5參差狠石黿鼉骨 6隱見層巒玳瑁簪 7一去美人空有閣 8耳邊猶想聽高吟 | <次表校理韻題光風樓仍用其意> 1鰻川流水水南濱 2百代盤空畵閣新 3澹子宛憑趨偃日 4武城親見割鷄辰 5竹階模魚牛羊茁 6秦鼎烹龍琥珀醇 7遺迹至今磯石老 8萬金難鑄釣璜人 | <表作專爲一臺先生作故用其意而變其體云> 1平生麋鹿喜相親 2十室來潛社稷身 3自是光風生白室 4不緣層榭盪紅塵 5文章星斗沈山海 6陶冶乾坤屬鬼神 7畢竟大江舟不返 8可憐樓月獨留眞 |
次表校理韻題光風樓仍用其意二首 校理沿沫藍溪
鰻川流水水南濱 百代盤空盡閣新 澹子宛憑趨偃日 武城親見割鷄辰 竹階模魚牛羊茁 秦鼎烹龍琥珀醇 遺迹至今磯石老 萬金難鑄釣璜人
49 面
又 表作專爲一臺先生作故用其意而變其體云
平生麋鹿喜相親 十室來潛社稷身 自是光風生白室 不緣層榭盪紅塵 文章星斗沈山海 陶冶乾坤屬鬼神 畢竟 缺 江舟不返 可憐樓月獨留眞
.............................
평기식 1◐○◐●●○◎ 2◐●◐○◐●◎ 3◐●◐○○●● 4◐○◐●●○◎ 5◐○◐●○○● 6◐●◐○◐●◎ 7◐●◐○○●● 8◐○◐●●○◎ | <張咸陽 世南 輓> 1白衣蒼狗摠須臾。 2倚伏人間定有無。 3不是吾賢愁厄困。 4堪憐世路自崎嶇。 5風塵幾伴黃岡鶴。 6嶺海未歸葉縣鳧。 7十二橋中明月夜。 8酒徒何處更追呼。 | <暮春。與居昌宰金太初趙聲伯盍簪于安陰宰張斗以縣齋。呼韻共賦。乙丑> 1官閒縣僻住溪涯。 2時把漁竿下白沙。 3兩地相思春已暮。 4一樽高會日初斜。 5東風忽送千峯雨。 6南陌仍催萬樹花。 7且倩龍眠輸此景。 8與君歸向洛城誇。 |
병산집(屛山集) 이관명(李觀命)생년1661년(현종 2)몰년1733년(영조 9)자자빈(子賓)호병산(屛山)본관전주(全州)시호문정(文靖)
屛山集卷之一 / 詩 / 張咸陽 世南 輓
숙종 | 26 | 1700 | 경진 | 康熙 | 39 | 40 | 2월, 司書가 되다. ○ 3월, 都堂錄에 들다. ○ 7월, 부수찬에서 수찬이 되다. ○ 8월, 부교리가 되다. |
白衣蒼狗摠須臾。倚伏人間定有無。不是吾賢愁厄困。堪憐世路自崎嶇。
風塵幾伴黃岡鶴。嶺海未歸葉縣鳧。十二橋中明月夜。酒徒何處更追呼。
병산집 제1권 / 시(詩) / 장 함양세남 만사〔張咸陽 世南 輓〕
구름의 변화처럼 모두가 순간이니 / 白衣蒼狗摠須臾
화복의 순환 인간 세상에 정녕 있는지 모르겠네 / 倚伏人間定有無
어진 그대는 곤액을 근심하지 않았으나 / 不是吾賢愁厄困
가련토다 세상살이 절로 기구했지 / 堪憐世路自崎嶇
풍진에 몇 번이나 황강의 학 벗 삼았는가 / 風塵幾伴黃岡鶴
영해에서 섭현의 오리 돌아오지 않았구려 / 嶺海未歸葉縣鳧
십이교에 밝은 달 떠오르는 밤이면 / 十二橋中明月夜
술친구들이 어디에서 다시 불러야 하나 / 酒徒何處更追呼
[주-D001] 장 함양(張咸陽) : 장세남(張世南, 1642~1700)으로,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두이(斗以)이다.[주-D002] 구름의 변화 : 백의창구(白衣蒼狗)는 세상일이나 세태가 수시로 변하는 것을 가리킨다. 두보(杜甫)의 시에 “하늘에 뜬 구름 백의 같더니, 어느새 푸른 개로 모습 바꿨네.”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21 可歎》[주-D003] 화복(禍福)의 순환 : 의복(倚伏)은 화복을 가리킨다. 《노자(老子)》 제58장에 “화는 복이 기대는 바이고, 복은 화가 엎드려 있는 바이다.”라고 하였다.[주-D004] 황강(黃岡)의 학 : 황강은 중국 황주부(黃州府)에 있던 현 이름인데, 1082년에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가 이곳으로 귀양을 갔다. 이때 그가 지은 〈후적벽부(後赤壁賦)〉에 “마침 외로운 학 한 마리가 강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오니, 나래는 수레바퀴만 하고 검은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서 끼룩끼룩 길게 울며 나의 배를 스쳐 서쪽으로 날아갔다.”라고 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8》[주-D005] 섭현(葉縣)의 오리 : 동한(東漢) 현종(顯宗) 때 섭현 영(葉縣令) 왕교(王喬)가 신술(神術)을 사용하여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임금을 찾아뵈었는데, 타고 온 거마(車馬)가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임금이 태사(太史)를 시켜 지켜보게 하였는데, 한 쌍의 오리가 섭현 쪽에서 날아오기에 그물로 오리를 잡아 놓고 보니, 신발 두 짝이었다고 한다. 《後漢書 卷112上 方術列傳 王喬》[주-D006] 십이교(十二橋) : 강소성(江蘇省) 강도현(江都縣) 서교(西郊)의 24개 교량(橋梁)이 있는 명승지를 가리킨다. 두목(杜牧)의 시에 “이십사교의 달 밝은 밤에, 어느 곳에서 옥인이 퉁소를 불게 했나.”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이십사교는 곧 가무 번화(歌舞繁華)의 명승지를 뜻한다.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유영봉 황교은 (공역) | 2015
.........................
측기식 1◐●◐○◐●◎ 2◐○◐●●○◎ 3◐○◐●○○● 4◐●◐○◐●◎ 5◐●◐○○●● 6◐○◐●●○◎ 7◐○◐●○○● 8◐●◐○◐●◎ | <挽張咸陽 名世南> 1襟抱恬和笑語淸。 2早從同閈得平生。 3靑衿少日推才望。 4墨綬中年藹政聲。 5魂斷嶺雲仍旅舘。 6櫬歸湖月卽新塋。 7竹林舊迹渾如昨。 8寄淚春風倍愴情。 | <暮春 與居昌宰金太初> 1自笑鮎魚上竹竿。 2六年爲客宦情闌。 3日邊歸雁隨春盡。 4天畔群山帶雨寒。 5故友相逢宜耐醉。 6殘花欲謝更須看。 7良辰易邁佳期促。 8秉燭寧辭竟夜歡。 | <早春 偸隙訪張斗以> 1春景城西尙未華。 2獨騎羸馬到君家。 3偏憐雅志窮逾固。 4自笑詩情老更加。 5臘後山梅初落蕊。 6雪中溪草始生芽。 7留連杯酒忘歸去。 8窓外殘陽忽已斜。 |
손와유고(損窩遺稿) 최석항(崔錫恒)생년1654년(효종 5)몰년1724년(경종 4)자여구(汝久)호손와(損窩), 돈와(遯窩)본관전주(全州)특기사항최규서(崔奎瑞), 정제두(鄭齊斗), 이광좌(李光佐), 조태억(趙泰億), 윤순(尹淳) 등과 교유
損窩先生遺稿卷之四 / 詩 / 挽張咸陽 名世南。字斗以。庚辰春。
숙종 | 26 | 1700 | 경진 | 康熙 | 39 | 47 | 3월, 승지가 되다. ○ 5월, 대사간이 되다. ○ 冬雷로 陳戒하다. ○ 12월, 慶尙道 觀察使가 되다. |
숙종 | 28 | 1702 | 임오 | 康熙 | 41 | 49 | 4월, 慶尙道의 輿圖를 작성하여 올리다. ○ 8월, 호조 참의, 대사간이 되다. |
襟抱恬和笑語淸。早從同閈得平生。靑衿少日推才望。墨綬中年藹政聲。
魂斷嶺雲仍旅舘。櫬歸湖月卽新塋。竹林舊迹渾如昨。寄淚春風倍愴情。
.........................
*측기식* 大雪寄景三 1◐●◐○◐●◎ 1今日山中惡風雪。 2◐○◐●●○◎ 2一寒江上復如何。 3◐○◐●○○● 3白屋獨燒秋後葉。 4◐●◐○◐●◎ 4孤舟應得夜來魚。 5◐●◐○○●● 5千林極望無行逕。 6◐○◐●●○◎ 6十里何由見尺書。 7◐○◐●○○● 7莫向山陰回小棹。 8◐●◐○◐●◎ 8故人搖落正端居。 | *측기식* 1◐●◐○◐●◎ 2◐○◐●●○◎ 3◐○◐●○○● 5千林極望無行逕。 4◐●◐○◐●◎ 6十里何由見尺書。 5◐●◐○○●● 3白屋獨燒秋後葉。 6◐○◐●●○◎ 4孤舟應得夜來魚。 7◐○◐●○○● 8◐●◐○◐●◎ | 평기식 1◐○◐●●○◎ 2◐●◐○◐●◎ 3◐●◐○○●● 4◐○◐●●○◎ 5◐○◐●○○● 6◐●◐○◐●◎ 7◐●◐○○●● 8◐○◐●●○◎ |
.........................
수촌집(水村集) 임방(任埅)생년1640년(인조 18)몰년1724년(경종 4)자대중(大仲)호수촌(水村), 우졸옹(愚拙翁)본관풍천(豐川)시호문희(文僖)특기사항송시열(宋時烈)의 문인. 권상하(權尙夏), 이여(李畬), 정호(鄭澔), 이이명(李頤命) 등과 교유
水村集卷之三 / 詩 / 暮春。與居昌宰金太初趙聲伯盍簪于安陰宰張斗以縣齋。呼韻共賦。乙丑
숙종 | 6 | 1680 | 경신 | 康熙 | 19 | 41 | 장악원 주부가 되다. ○ 雲峯, 大興 縣監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다. ○ 겨울, 山陰 縣監이 되다. 田政과 軍額의 문란을 잘 처리하여 考課에서 항상 最를 받다. 관찰사 尹趾完이 仍任을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다. |
숙종 | 13 | 1687 | 정묘 | 康熙 | 26 | 48 | 의금부 도사, 형조 정랑이 되다. |
숙종 | 26 | 1700 | 경진 | 康熙 | 39 | 61 | 사옹원 첨정이 되다. |
官閒縣僻住溪涯。時把漁竿下白沙。兩地相思春已暮。一樽高會日初斜。東風忽送千峯雨。南陌仍催萬樹花。且倩龍眠輸此景。與君歸向洛城誇。
其二
自笑鮎魚上竹竿。六年爲客宦情闌。日邊歸雁隨春盡。天畔群山帶雨寒。故友相逢宜耐醉。殘花欲謝更須看。良辰易邁佳期促。秉燭寧辭竟夜歡。
水村集卷之三 / 詩 / 早春。偸隙訪張斗以山家。呼韻共賦。戊辰
숙종 | 14 | 1688 | 무진 | 康熙 | 27 | 49 | 호조 정랑이 되다. |
春景城西尙未華。獨騎羸馬到君家。偏憐雅志窮逾固。自笑詩情老更加。臘後山梅初落蕊。雪中溪草始生芽。留連杯酒忘歸去。窓外殘陽忽已斜。
..........................
水村集卷之九 / 記 / 安陰縣光風樓改構月日記
安陰縣之客館北。舊有宣化樓。一蠹鄭先生來守是縣。改搆是樓。而更名曰光風。其後萬曆辛丑(1601,선조34)。又復改搆而不知何人所改也。歲久撓圮。幾將毀破。張君世南莅縣之初。登眺而歎曰。是樓也不改且廢。豈可使先賢遺蹟。泯滅而無傳。此眞吾責也。經營三歲。乃於乙丑(1685,숙종11)。盡撤腐傷。更易以他材。欄檻房堗。稍增舊制。煥然一新。蓋今乙丑。去前辛丑。八十五年矣。十月二十日開基。二十六日豎柱。十二月六日上樑。張君要余文以記之。余乏詞華。媿無以揄揚盛事。略書其改搆月日。俾藏于樑上。山陰知縣任埅謹識。
.........................
水村集卷之八 / 序 / 晉州營將先生案敍
乙丑冬晉陽鎭大閱。十四邑領兵齊赴。旣罷。營將元令德徽謂余及安陰宰張君世南曰。往在營將建置之初。吾家尊君曾拜是任。今吾承乏而又忝焉。父子繼任。世所罕有。營中舊有先生題名案。而紙弊書拙。吾今欲倩得佳筆。改其書。且以一語題其卷。願兩君無辭也。余與張君俱應曰諾。仍念是任之設。自孝廟朝始。而修明鎭管之制。以復祖宗之舊。聖意所存。不偶然也。況晉陽一鎭。以八千兵馬。控壓海防要衝。則獨當一面之責。隱若長城之望。其倚重何如哉。在昇平無事之日。訓鍊精而撫綏勤。然後緩急可以得其力。爲將之道。其亦難矣。後之人。將以是案歷數而議之曰。某也嚴。某也懦。某也明。某也昏。某也仁。某也虐。嗚呼。可不懼哉。張君旣書其卷而以序屬于余。敢以是弁其首。山陰知縣任埅謹識。
......................
송자대전(宋子大全) 송시열(宋時烈)생년1607년(선조 40)몰년1689년(숙종 15)자영보(英甫)호우암(尤庵), 화양동주(華陽洞主), 남간노수(南澗老叟), 교산노부(橋山老父)본관은진(恩津)아명성뢰(聖賚)시호문정(文正)특기사항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의 문인. 노론(老論)의 영수
宋子大全卷一百十二 / 書 / 答張斗以 世南○庚申七月
숙종 | 6 | 1680 | 경신 | 康熙 | 19 | 74 | 5월, 淸風으로 이배되다. ○ 6월, 陜川에 도착했을 때 庚申換局으로 西人이 재집권하자 석방되어 懷德으로 돌아오다. ○ 10월, 영중추부사에 제수되자 상경하여 입대하다. 당시 仁敬王后가 승하하여 慈懿殿의 服制를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다. ○ 12월, 仁敬王后의 誌文을 짓다. |
扶桑驛前。深恨路有岐也。昨因過去人聞已交龜。殊以密邇爲幸。承此耑書。慰荷無已。所伴四種佳味。尤宜於山楹霧濕之時矣。書辭過爲隆重。甚非賤陋之所敢承者。從此惠書擺脫文華。只以簋缶相與。是所望也。李君怯於水籠寒暄卽去矣。水落之示。令人凝佇。溪山依舊。而海外二豎子。亦隨而來。不知其意竟如何。好笑。倩草不宣。
宋子大全隨箚卷之十三 / [隨箚] 目錄
張斗以
名世南。官郡守。居水原。修撰次周子。
....................
5 | 張次周 | 1606 | 1651 | 弘文館修撰張公墓誌銘 | 墓誌 | 朴長遠 | 久堂集 | a121_280c |
6 | 張次周 | 1606 | 1651 | 弘文館修撰張公墓碣銘 幷序 | 墓碣 | 李宜顯 | 陶谷集 | a181_121d |
구당집(久堂集) 박장원(朴長遠)생년1612년(광해군 4)몰년1671년(현종 12)자중구(仲久)호구당(久堂), 습천(隰川)본관고령(高靈)시호문효(文孝)
久堂先生集卷之十二 / 墓誌 / 弘文館修撰張公墓誌銘
張次周 | 1606 | 1651 | 仁同 | 文哉 |
余友弘文館修撰兼經筵檢討官春秋館記事官張君文哉歿旣葬十年辛丑春。其孤參奉世明自爲狀。以其大父前任尙州牧使公之命。奔走謁其父友某於龍山灘上之閑居。泣而告曰。吾父進塗甫闢而奄不起疾。生旣未究厥施。歿宜有以昭稚昧于後。尸其責者。豈不在於先友。而吾父所與遊。唯吾丈最善。其知之詳而信者。其不在於吾丈耶。敢以幽堂之誌累吾丈。某於是慊然不足。不敢起拜而恭受。辭以本自無文。無以揭諸幽。又以事坐廢退。病懶冥然。疏筆硏久矣。其奚以副吾子所需。謝遣之。旣三四往返。其請益懇。余旣悲其志。又愧無以應。反覆却難幾半年矣。然亦記余於崇禎甲戌年間。遊於膠庠。始識某面。旣又聞某於乙亥從祀牛栗二賢之議興也。爲齋任。其所論議。雖峻而不至於激。又能善於周旋。士皆多之。旣又丙丁之難作。與余各鳥獸散。亂稍已。余歸掃臨湍先墓。塗間忽遌所謂某者。握手班荊。自言避兵於江都。吾妻死於節。國破家亡。士於斯時。豈復有仕意。而乃今得官爲恭陵參奉。奉親命不敢違。以守齋往焉。時余雖竊第。未及從仕。而亦遭江都之亂。無意斯世者。相看脈脈。揮淚而別。旣又遷官濟用監奉事。官罷後七年癸未。余出監安陰縣。君亦督自如郵。郵去縣雖不邇。地係同道。書疏往復不絶。其明年甲申秋。聞君捷庭試某科幾人。同朝甚喜。喜於余尤甚。是年冬。余被召入玉堂。君自槐院正字。入春坊爲說書。陞南宮郞。已有聲新進之列矣。其明年。余拜獻納。君爲正言。同入諫省。一日同奏事。君獨狼狽而出。遂西敍不調者二年。其明年丙戌。余出守白川郡。君又以巡察幕佐。往來路由白。每見輒不以屬吏遇我。君雖不飮必具酒。酒間談笑。如在京洛時。翌年丁亥。余遽賦歸。君亦任滿而東。久乃除三南漕臺。所在職辦。又得漕卒心。余家城西。與君石井里第相近。而余則犯准期科。閑住殆一年強。門無來客。而君出必投余。所談說十八九皆涉雅淡。不及時事。其明年己丑。余自承宣又出爲春川府使。翌年辛卯。君則已入玉堂爲修撰階通訓。蓋參館錄已有年。而至己丑始入。寔孝宗初元也。時與命會。若將有以信其志者。而君遂以訃告矣。得年僅四十六。余在春聞之。不覺驚隕。翌年壬辰。余復入銀臺。而儕友猶爲君歎惜不能已。蓋與君相識幾二十年所矣。君雖登用稍晩。而出入略與余同。及君之歿。余尙白首如寄。年已半百矣。能不感念於後死之托。而所以固讓者。豈情也哉。其狀有曰君以萬歷丙午生。生質甚美。辭氣溫雅。言不苟合於人。行不苟同於世。其好善惡惡。出於天性。一切外誘。不留於心。事父母孝。得祿致養。所受俸與騶直。皆獻于親。有需必咨。不敢擅用。面告之儀。亦從容可法。撫視同氣之出。與己無間。敎導無不至。至於馭僕隷。皆盡誠意。未嘗少有呵責。當其未釋褐時。人或期公以玉堂。後果稱其職。及其歿也。孝宗大王下敎曰。此人長在經幄之中。忽然身死。不勝驚悼。仍令有司。於常賻外加賜以愍焉。實異數也。惟我孝宗繼照之初。得人於斯爲盛。而君能生死被恩遇至此。此豈他人所及哉。此其所以欲銘而眎於後者歟。君諱次周。本嶺南仁同縣人。麗朝奉常卿伯其鼻祖也。至諱季文而顯於本朝。爲議政府舍人。生諱鳳禎。尙瑞院副直長。寔君高曾祖也。祖諱旻。隱德不仕。贈戶曹參議。其子遇漢。卽通政牧使。而命余述銘。君之父也。母柳氏。郡守浩之女也。妻淑人光州金氏。吏曹參判槃之女。沙溪先生大司憲贈諡文元公長生之孫女。賢有婦道。可占其家法所自。終於江都之亂。事聞旌門。此則與余所遭外家禍變同焉。故把筆臨楮。有不忍索言者。君葬以歿之年六月日。而淑人之葬。以癸未十月日。葬地則廣州草月里坐子之原。同岡異宂。從先兆也。有子男一人。卽世明進士。此必趾君美者。女三人。進士金元厚,士人洪九敍其壻也。一女夭。
繼娶淑人綾州具氏。進士仁至之女。生一男一女。男世南業儒。女夭。世明娶府尹沈摠女生六男。
世南娶參奉趙重素女生一女。皆幼。其狀所敍如此。君雖歿而父母尙無恙。遺胤子若孫。可期其昌大。則於君亦足以無憾也歟。以余不文。不銘固當。而銘之亦豈能不朽君也。敢辭辭之。辭之竟不獲。奈何乎銘。銘曰。
堂堂乎玉山祖太常。歷舍人至君繼立揚。揚之以榮父母職論思。謂仁有壽吁至斯。愍有優錫。聖主之悲。廣麓同岡。如唱斯隨。是亦足以銘。以永厥垂。
....................
도곡집(陶谷集) 이의현(李宜顯)생년1669년(현종 10)몰년1745년(영조 21)자덕재(德哉)호도곡(陶谷), 도수(陶叟)본관용인(龍仁)시호문간(文簡)특기사항김창협(金昌協)의 문인
陶谷集卷之十四 / 墓碣銘 / 弘文館修撰張公墓碣銘 幷序
張次周 | 1606 | 1651 | 仁同 | 文哉 |
故弘文修撰張公。仁同府人。曾祖鳳禎尙瑞副直長。祖旻不仕。贈戶曹參議。考遇漢尙州牧使。妣晉州柳氏。郡守浩女。以萬曆丙午生公。公資稟端愨。氣度溫雅。有內行。事父母盡孝。不有私財。有所得。雖微必獻。不敢用。出入必告。視同氣子女。無間己出。敎廸必以義。早以詞藝鳴塲屋。筆翰亦華美。二十五。升上庠游太學。爲士友所重。當栗,牛兩先生從祀議起。周旋調劑。正而能和。士論多之。强圉之難。天地翻覆。內子殉節江都。見家國剝喪。疚傷絶世念。謝跡公車。久之。爲親老屈意取應。又勉就寢郞。陞奉事。連拜督郵。登甲申文科。選槐院。轉春坊說書。陞佐春曹。遷司諫院正言。論事不撓。忤旨處散者二年。出爲黃海都事,海運判官。錄弘文館選。屢擬而不用。至孝宗卽位。始入玉堂爲修撰。登筵講義。明暢可觀。間以御史出嶺南。亦稱廉察得體。辛卯。自禁直得疾。還家竟卒。三月二十九日也。上下敎曰。張某長在經幄。今聞身死。不勝驚悼。仍命賜賻加常例。異數也。公立朝。言議不詭隨。善善惡惡。一出天性。遇事。挺然有立。誄者所稱獨立千仞岡。風采世爭推者。可謂得其實矣。平居。淡若無爲。不以俗事經心。廉介自飭。家無偫餘。旣沒。待衆助乃殮。所交遊盡一時名勝。而最與朴公長遠,趙公復陽爲知己。朴公誌公藏。深致痛惜意。當時期許之隆。此可以見焉。噫。當寧陵在宥之日。上方厲精圖治。羣才應運並騖。公以淸裁雅望。處於深嚴。朝夕論思。斯誠不易得之嘉會。而天遽奪之。半塗而稅。豈獨公之不幸也哉。公諱次周。字文哉。享年止四十六。媲光州金氏。參判槃女。沙溪先生長生孫。卽上所謂殉節者。朝家旌其閭曰烈女之門。繼媲綾城具氏。進士仁至女。亦有婦道。後以嗣子從勳。贈公吏曹參判。金氏從贈貞夫人。具氏固在受眞封。公有二男三女。男世明郡守。女適縣監金元厚,府使洪九叙。金出也。
男世南郡守。具出也。一女側出爲郡守趙顓妾。世明娶府尹沈捴女。生五男。始顯主簿。夏顯贈判書。致顯,普顯監役,鼎顯。後娶成後相女。生一女。適宋混源。金元厚生五男五女。男礸,碩,硅,磂都事,
。女適郡守趙泰彙,進士李徵舟,李相何,尹東周,參奉李普溟。洪九叙生三男三女。男尙度,以度兵使,彦度正郞。女適參贊鄭亨益,臨城君熀,趙殷彬。
世南娶僉知趙重素女。生一女。適僉正李明升。
始顯生四男。遠翼,溟翼,夢翼,鴻翼。夏顯生二男二女。男鵬翼武科判書。海翼奉事。女適趙文範,兪彦璧。致顯無子。子夢翼。普顯生五男。商翼,晉翼,文翼,虎翼,民翼。鼎顯生一男二女。男光翼。女適執義韓德厚,李濟相。玄孫斗紹,德紹俱武科府使。泰紹武科兵使。啓紹奉事。餘未官者及幼者外裔之繁者不盡錄。吁盛矣哉。公之嗇於身者。其責報於玆乎。公葬在廣州草月里。以金夫人祔。具夫人別葬隔一岡。銘曰。
粤我寧王。駕馭髦俊。帷幄之儲。公最先進。論思獻納。地淸望峻。炯其章美。如玉孚尹。孰意短造。中摧遠軔。生才匪偶。天故占恡。華質長潛。英魄弗泯。篆此遺芳。來世是訊。
도곡집 제14권 / 묘갈명(墓碣銘) / 홍문관 수찬 장공 묘갈명 병서 〔弘文館修撰張公墓碣銘 幷序〕
고(故) 홍문관 수찬 장공은 인동부(仁同府) 사람이다. 증조 봉정(鳳禎)은 상서원 부직장이고, 조고 민(旻)은 벼슬하지 않았는데 호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선고 우한(遇漢)은 상주 목사(尙州牧使)이고, 선비(先妣) 진주 유씨(晉州柳氏)는 군수 호(浩)의 딸인데 만력(萬曆) 병오년(1606, 선조39)에 공을 낳았다.
공은 자품이 단정하고 정성스럽고 기상과 법도가 온화하고 고상하였으며 특히 가정에서의 행실이 뛰어났다. 부모를 섬길 적에 효성을 다하여 사사로운 재물을 소유하지 않았으며, 얻은 것이 있으면 비록 하찮은 물건이라도 반드시 올리고 감히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나가고 들어올 적에 반드시 어버이에게 아뢰었다.
동기(同氣)의 자녀를 자기 소생과 차이가 없이 대하여 가르치고 인도하기를 반드시 의리로써 하였다.
문장의 재주가 있어 과장(科場)에서 일찍부터 이름이 났고, 글씨 또한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25세에 상상(上庠 성균관)에 올라 태학에서 유학할 적에, 사우들이 매우 소중히 여겼다. 율곡(栗谷 이이(李珥))과 우계(牛溪 성혼(成渾)) 두 선생을 문묘에 종사(從祀)해야 한다는 의논이 일어나자, 공이 주선하고 조정하였는데 바르면서도 화합하게 하니, 선비들의 의논이 훌륭하게 여겼다.
강어(强圉)의 난리에 천지가 뒤집혔을 때에 부인이 강도(江都)에서 순절하였다. 공은 집안과 나라가 망한 것을 보고는 서글퍼하여 세상에 진출할 생각을 끊고 과장에 발길을 하지 않았는데, 오랜 뒤에 늙으신 어버이를 위해 뜻을 굽혀 과거에 응시하였고, 또 억지로 침랑(寢郞)으로 봉직하였다가 봉사로 승진하고 연이어 독우(督郵 찰방)에 제수되었다.
갑신년(1644, 인조22) 문과에 올라 괴원(槐院 승문원)으로 선발 보임되고 춘방(春坊)의 설서로 옮겼으며, 승진하여 예조 좌랑이 되었다. 사간원 정언으로 옮겨 정사를 논하고 굽히지 않다가 성상의 뜻을 거슬러 2년 동안 한산직에 머물고 황해도 도사(黃海道都事)와 해운 판관(海運判官)으로 나갔다.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었으나 여러 번 의망에 올랐어도 등용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효종(孝宗)이 즉위하자 처음으로 옥당에 들어가 수찬이 되었는데, 경연에서 강론할 적에 분명하고 통창하여 볼 만하였다. 중간에 암행어사로 영남(嶺南) 지방에 나갔는데, 또한 정탐함에 대체를 얻었다고 칭찬받았다.
신묘년(1651, 효종2)에 궁중에서 숙직하다가 병을 얻어 집에 돌아와 끝내 별세하니, 3월 29일이었다. 성상은 전교를 내리기를, “장 아무개는 오랫동안 경연에 있었는데 이제 그가 죽었다 하니 놀랍고 서글픈 마음을 이길 수 없다.” 하고는, 부의(賻儀)를 내리기를 상례(常例)보다 더하도록 명하였으니, 이는 특별한 예우였다.
공은 조정에 있으면서 언론을 맡았을 적에 함부로 남을 따르지 아니하여,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한결같이 천성에서 나왔으며, 일을 만나면 지조가 꼿꼿하여 확립함이 있었다.
공의 상(喪)에 만사(挽詞)를 지어 애도하는 자가 “천길 산봉우리에 홀로 서 있으니 높은 풍채를 세상에서 다투어 추앙하였네.〔獨立千仞岡 風采世爭推〕”라고 한 것은 그 실상을 잘 표현했다고 이를 만하다.
공은 평소 성품이 담박하여 경영하는 일이 없는 듯해서 세속의 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청렴과 깨끗함으로 스스로를 단속하여 집에 쌓아둔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별세한 다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염습을 하였다.
교유한 분은 모두 한 때의 유명한 사람들이었는데, 박공 장원(朴公長遠)과 조공 복양(趙公復陽)과 가장 친하여 지기지우(知己之友)가 되었다. 박공은 공의 묘소에 묘지명을 지으면서 깊이 애통하고 애석해하는 뜻을 다하였으니, 당시의 기대와 추앙이 높았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아, 영릉(寧陵 효종)이 재위하던 때에 성상이 온 마음을 다하여 훌륭한 정치를 도모하자, 여러 인재들이 시운에 응하여 함께 달려왔다. 공은 깨끗한 모습과 고상한 명망으로 깊숙하고 엄숙한 경연에 있으면서 아침저녁으로 경서를 강론하고 의견을 개진하였다. 이는 진실로 쉽게 얻을 수 없는 좋은 기회였는데, 하늘이 갑자기 영릉을 빼앗아가서 중도에 그쳤으니, 이 어찌 공만의 불행이겠는가.
공은 휘가 차주(次周)이고 자가 문재(文哉)인데, 향년이 46세에 그쳤다. 배위(配位) 광주 김씨(光州金氏)는 참판 반(槃)의 딸이고 사계(沙溪) 선생 장생(長生)의 손녀이니, 바로 위에서 말한 호란에 순절한 분이다. 조정에서는 그 마을에 ‘열녀지문(烈女之門)’이라 정표(旌表)하였다.
계배(繼配) 능성 구씨(綾城具氏)는 진사 인지(仁至)의 딸인데, 또한 부인의 도리가 있었다. 뒤에 큰아들이 원종공신이 됨으로 인하여 공에게 이조 참판을 추증하고 김씨 부인에게도 따라서 정부인(貞夫人)을 추증하였으며, 구씨는 생존하여 직접 정부인에 봉해졌다.
공은 2남 3녀를 두었다. 아들 세명(世明)은 군수이고 딸은 각각 현감 김원후(金元厚)와 부사 홍구서(洪九叙)에게 출가하니, 김씨 부인의 소생이다. 또 다른 아들 세남(世南)은 군수인데 구씨 부인의 소생이다. 한 딸은 서출인데 군수 조전(趙顓)의 첩이 되었다.
세명은 부윤 심총(沈總)의 딸에게 장가들어 5남을 낳았는데, 주부 시현(始顯), 증 판서 하현(夏顯), 치현(致顯), 감역 보현(普顯), 정현(鼎顯)이다. 뒤에 다시 성후상(成後相)의 딸에게 장가들어 1녀를 낳았는데, 송혼원(宋混源)에게 출가하였다.
김원후는 5남 5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찰(礸), 석(碩), 규(硅), 류(磂), 도사 흡(石翕)이고, 딸은 각각 군수 조태휘(趙泰彙), 진사 이징주(李徵舟), 이상하(李相何), 윤동주(尹東周), 참봉 이보명(李普溟)에게 출가하였다. 홍구서는 3남 3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상도(尙度), 병사 이도(以度), 정랑 언도(彦度)이며, 딸은 각각 참찬 정형익(鄭亨益), 임성군(臨城君) 황(熀), 조은빈(趙殷彬)에게 출가하였다.
세남은 첨지 조중소(趙重素)의 딸에게 장가들어 1녀를 낳았는데, 첨정 이명승(李明升)에게 출가하였다.
시현은 4남을 낳았으니 원익(遠翼), 명익(溟翼), 몽익(夢翼), 홍익(鴻翼)이다. 하현은 2남 2녀를 낳았으니 아들 붕익(鵬翼)은 무과에 급제하여 판서이고 해익(海翼)은 봉사이며 딸은 각각 조문범(趙文範), 유언벽(兪彦璧)에게 출가하였다. 치현은 아들이 없어 몽익을 양자로 삼았다. 보현은 5남을 낳았으니 상익(商翼), 진익(晉翼), 문익(文翼), 호익(虎翼), 민익(民翼)이고, 정현은 1남 2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광익(光翼)이고 딸은 각각 집의 한덕후(韓德厚)와 이제상(李濟相)에게 출가하였다.
현손인 두소(斗紹)와 덕소(德紹)는 모두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이고, 태소(泰紹)는 무과에 급제하여 병사이며, 계소(啓紹)는 봉사이다.
나머지 아직 벼슬하지 않은 자와 어린 아이와 외손은 너무 많아 다 기록하지 못하니, 아, 자손이 번성하다. 공이 자기 몸에 복을 누리지 못한 것을 아마도 이 후손들에게서 보답을 받는가 보다.
공의 장지는 광주(廣州)의 초월리(草月里)에 있는데 김씨 부인을 부장(祔葬)하였고, 구씨 부인은 등성이 너머에 따로 장례하였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아 우리 효종께서 / 粤我寧王
여러 준걸들을 등용하시니 / 駕馭髦俊
경연의 신하 중에 / 帷幄之儲
공이 가장 선진이었네 / 公最先進
경전을 논하고 생각하여 좋은 계책 올리니 / 論思獻納
지위가 깨끗하고 명망이 높았다오 / 地淸望峻
그 아름다움 밝게 드러나 / 炯其章美
옥처럼 진실한 덕이 사방에 미쳤네 / 如玉孚尹
누가 생각했으랴 단명하여 / 孰意短造
먼 길 중간에 꺾일 줄을 / 中摧遠軔
인재를 낳음은 우연이 아니니 / 生才匪偶
하늘이 일부러 아끼셨네 / 天故占恡
화려함과 질박함은 길이 잠겼으나 / 華質長潛
영명한 넋은 없어지지 않으리니 / 英魄弗泯
이 아름다운 내용을 새겨서 / 篆此遺芳
후세에 길이 고하노라 / 來世是訊
[주-D001] 강어(强圉)의 난리 : 병자년(1636, 인조14)과 정축년(1637, 인조15)에 걸쳐 일어났던 호란(胡亂)을 이른다. ‘강어’는 고간지(古干支)에 천간(天干)의 네 번째인 정(丁)으로 정축년을 가리킨다.[주-D002] 박공 장원(朴公長遠) : 박장원(朴長遠, 1612~1671)으로, 자는 중구(仲久), 호는 구당(久堂)ㆍ습천(隰川),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1636년(인조14)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출사가 미루어지다가 1639년 검열(檢閱)이 되고 이조 판서, 대사헌, 예조 판서,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한 뒤, 자청하여 개성부 유수에 부임했다가 재직 중에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구당집(久堂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주-D003] 조공 복양(趙公復陽) : 조복양(趙復陽, 1609~1671)으로, 자는 중초(仲初), 호는 송곡(松谷), 본관은 풍양(豐壤)이다. 좌의정 조익(趙翼)의 아들이며,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이다.
ⓒ 성신여자대학교 고전연구소ㆍ해동경사연구소 | 이정은 사경화 류재성 김창효 (공역) | 2014
......................
장릉지(莊陵誌) - 장릉지(莊陵誌)
서지/해제 권차/해제 이미지
○ 二月二十(日)
ㆍ일기 기사정보
ㆍ원문
封 王后陵。 舊主。嘗奉于寧陽慰鄭悰後裔家私廟。及 大禮。旣定。 命刊旁題。權移于時敏堂。祔廟禮訖。埋安于 思陵。而 莊陵舊祠。亦有兩位板。埋于 本陵。並令禮官莅事焉。蓋百年矌典。一朝始擧。誠文兩盡。幽鬱克伸。眞可以增光宗●(祐)祏。而有辭於百世矣。後六年甲申。史臣言。舊史於端宗紀。書以 魯山君日記。當時据實之書。雖不敢議。冊面標題。今不宜仍舊。請改曰。 端宗大王實錄。又請裒輯追復事實。別爲一錄。以倣 列聖實錄附錄之例。上亦可之。乃命設廳撰次。以大臣領其事。於是謹取中廟朝以後。凡所以崇飭之者。首載於上。以見 聖上今日之擧。實出繼述之意。不專由一小臣之言。而又以復位時疏若議。及謚冊祝告頒敎等。文類次編入。而著其始終。合而名之曰。 端宗大王實錄附錄。錄旣成。命分藏于諸史閣。我 聖上致隆楊烈之意。至此而無復餘憾矣。以臣方忝太史。俾記其事于後。臣承 命悸▣ 141恐。撮其大槪敬書如右。而錄中序次凡例。則皆經 稟裁取 旨。不敢贅一辭於其間云。
復位祔廟都監題名序。 同副承旨金鎭圭。上之二十四年十月。追復 魯山大君王位。於是公卿博士議上 大王謚曰。純定安莊景順敦孝。 廟號曰。端宗。 后謚曰。定順。徽號曰。端良齊敬。而將隮祔于 廟。設都監以敦匠。而置都提調以下若干員。有總治有分幹。咸奔走董釐月再閱。而工告訖。悉具冊寶鹵簿諸儀物。涓吉親享 祧室。而納 新主。旣禮成。計諸臣勞以錫賚焉。嗚呼。自昔有國。 祖宗之▩未遑。至後嗣。乃擧若稽。 皇明景帝之位。復於成化。我 神德后祔禮。行于 崇陵之世。而然 景帝位復。而不祔 神。德后初固有顯稱。豈若玆事之較重而盛也哉。然則 聖朝所行。蓋不特合乎從周之義。抑其追遠之誠。有光於繼述矣。惟我諸臣。幸而遭際 聖世。承是 命而相是役。亦可謂與有榮焉。凡▣ 142國有事。而設都監。董事之臣。例題名爲屛。若障爲志同事以毋忘於後耳。今所遭際。其榮也。若此。則尤宜圖所以毋忘。提調閔公李公。遂諗于僚屬。命工爲屛列。題始終同事者之官職名氏屬。不佞記其事。夫屛之爲也。固爲毋忘同事。而然後之覽此者。必將興感於今日矌世之典禮。而仍歎諸臣之幸際 聖世。託名盛事矣。是不可槪以尋常題名論也。故爲之序。 都提調領議政柳尙運。提調戶曹判書閔鎭長。兵曹判書李濡。禮曹判書崔奎瑞。吏曹參判李寅煥。都廳副應敎金鎭奎。弘文校理李寅炳。
郞廳戶曹正郞張世南。
禮曹正郞洪景濂。兵曹正郞成碩夔。刑曹正郞尹寔。工曹正郞李濟。工曹正郞權世泰。工曹正郞金載文。敦寧判官趙泰彙。監造官內侍敎官朴泰輿。典牲奉事申鳴華。童蒙敎官李徵海。四山監役李湛。禁府都事尹志任。翼陵參奉李宜遂。別工作繕工監役魚史衡。奉常僉正李礥。
..........................
석북집(石北集) 신광수(申光洙)생년1712년(숙종 38)몰년1775년(영조 51)자성연(聖淵)호석북(石北), 오악산인(五嶽山人)본관고령(高靈)특기사항정범조(丁範祖), 목만중(睦萬中) 등과 교유
石北先生文集卷之三 靈川申光洙聖淵甫著 / 詩 / 大雪寄景三
1今日山中惡風雪。2一寒江上復如何。
3白屋獨燒秋後葉。4孤舟應得夜來魚。
5千林極望無行逕。6十里何由見尺書。
7莫向山陰回小棹。8故人搖落正端居。
【4】七律仄起首句不押韵
(仄)仄(平)平平仄仄
(平)平(仄)仄仄平平(韵)
(平)平(仄)仄平平仄
(仄)仄平平仄仄平(韵)
(仄)仄(平)平平仄仄
(平)平(仄)仄仄平平(韵)
(平)平(仄)仄平平仄
(仄)仄平平仄仄平(韵)
石北先生文集卷之三 靈川申光洙聖淵甫著 / 詩 / 又寄
牢落誰知歲暮心。君能愛我郢中音。
蒹葭極浦時歸鳥。松桂空山獨抱琴。
一夜寒梅渾欲發。數莖白髮更難禁。
無緣對酒寬懷抱。怊悵林臯又夕陰
*측기식* 1◐●◐○◐●◎ 2◐○◐●●○◎ 3◐○◐●○○● 4◐●◐○◐●◎ 5◐●◐○○●● 6◐○◐●●○◎ 7◐○◐●○○● 8◐●◐○◐●◎ | *측기식* 1◐●◐○◐●◎ 2◐○◐●●○◎ 3◐○◐●○○● 4◐●◐○◐●◎ 5◐●◐○○●● 6◐○◐●●○◎ 7◐○◐●○○● 8◐●◐○◐●◎ | 평기식 1◐○◐●●○◎ 2◐●◐○◐●◎ 3◐●◐○○●● 4◐○◐●●○◎ 5◐○◐●○○● 6◐●◐○◐●◎ 7◐●◐○○●●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