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미과 「야광나무」
* (사진 1/1) 야광나무 수피와 밑둥치
진남문鎭南門을 들어서면 잔디밭 오른 쪽에 이 나무가 딱 한 그루 서있다. 군계일학이라고 할까, 주위엔 같은 나무가 없다. 연륜이 꽤 돼 보이지만 꽃을 풍성하게 맺는 걸 보면 아직도 청춘인 나무이다.
야광이란 나무 이름이 꽤나 멋있어 보인다. 족보를 따져보면 장미과에, 밤 야夜가 들어있어 휘황찬란한 밤거리가 연상된다. 현미의 안개 자욱한 밤거리를 생각하면 화려한 불빛이 쏟아지고, 그 빛날 광光자는 뭔가 반짝거리는 보석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야광나무」를 ‘밤을 밝히는 나무’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자 문화권에 살면 자연히 그렇게 이해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야광나무」는 딱히 한자로 된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광나무」를 ‘밤을 빛내는 나무’로 보면 안 된다고 나무 전문가들은 말씀을 한다. “夜光으로 풀이하면 한마디로 억지스럽지요.” 그럼 뭐라고 해석을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夜光이라고 하면 될 텐데? 이름을 묘하게 지어놔서 헷갈리게 하게 하는 나무다. 「야광나무」가 밤을 어떻게 하든 말든 이 나무는 이름이 특이해서 잊어먹을 수가 없어 좋다.
벚꽃이 만발하고 아카시 꽃들이 그윽한 향기를 퍼뜨릴 때, 고모산성의 진남문안에 들어설 때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었다. 마치 꽃 대궐에 묻혀 사는 기분에 꽃은 마냥 그렇게 피어있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화무십일홍이 되고, 꽃들이 시들어 떨어졌을 때, 문경 새재 아리랑 한 구절이 스쳐갔다.
꽃이거든 지지 말고 님이 거든 늙지 마소 가는 세월 어찌 하리 아리랑 고개는 열두 고개 내 넘어갈 고갠 한 고개라 천하의 명산은 여기인데내 혼자가기가 원통하다. |
순환이란 무섭구나. 초목에 꽃이 피면 지게 마련이고, 미련 없이 떠나는 낙화에, 낙엽은 제 할 일 다 하고 거름이 되고 만다. 모두가 열매를 위한 것이니, 꽃 같은 화려한 인생이든 낙화처럼 다 된 삶이든, 인생무상이다.
되돌아가서, 꽃들이 다 진후에도 유독 흰색 꽃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처음엔 여사로 봤다. 어쩌다가 늦게 핀 꽃이려니 했다. 하지만 품새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높이 달린 하얀 꽃들이 약간은 낯이 설고, 이 동네에선 처음 본 것 같았다.
‘이상하다. 야는 대체 무슨 나무지?’ 가지가 높게 뻗어 있었고, 꽃도 하늘에 묻혀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무슨 꽃인지 접착제처럼 붙어 있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자세히 볼 수 없어 마음만 초조했다. 안되겠다 싶어 수피를 살펴봤다. 껍질조차도 특이한 점이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궁금증을 안고 4일이 흘렀다.
어느 날 문득 장미과란 생각이 들었다. 맞아 장미과일거야. 근래 피었던 꽃들은 장미과가 많으니까 분명 그 중에 하나겠지, 희망을 가졌다. 차안에 모셔두었던 두꺼운 책을 꺼내들었다. “흰 꽃에 장미과라.” 노는 입에 염불을 하면서 흰 꽃 피는 장미과 대소가를 죽죽 훑어 나갔다. 팥배나무라고하기에는 수피가 달랐고, 돌배나무로 보기에는 가시가 없고, 산사나무는 잎이 전혀 아니고, 아그배나무도 아니고, 야광나무도 아닌 것 같고, 결국은 또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문경새재 길에서 본 야광나무가 떠올랐다. 바로 이때쯤이다. 제2관문인 조곡관 쪽으로 올라 가다가 보면 오른쪽에 교귀정이 나오고, 그 바로 위쪽에 「고안동부사김수근추사타루비故安東府使金洙根追思墮淚碑」가 서있다. 바로 그 맞은편 길가에 큰 야광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 길을 오르내리며 ‘오래된 야광나무지만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구나’ 하면서 감탄을 한 기억이 났다. 맞아, 이 즈음에 흰 꽃은 「야광나무」밖에 없어. 생각을 골똘히 하면 머리통에서 정보가 가로세로 정교하게 이어지는 모양이다. 다시 책을 들여다봤다. 물론 아그배나무도 있지만, 아그배는 야광보다 키도 작고, 꽃도 좀 더 일찍 피기 때문에 제외했다. 확인을 해야 진실이 된다.
다시 나무 밑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병아리처럼 이 책 한 번 보고 나무 한번 쳐다보고, 저 책 한 번 보고, 또 쳐다보면서 씨름을 하다 보니, 나무가 보기에 딱했던지, “지가 「야광나무」올시다.” 하면서 이름을 알려주었다. 사실이 그렇다. 낯익은 나무도 다른 지방에 가서 보면 긴가민가하게 된다. 수피도 그렇다. 나무가 아주 어리거나, 좀 오래되면 껍질의 특징이 없어져서, 외관만 보고는 이름을 알기가 어렵다.
나중에 보니까 야광 나무둥치 아래 움푹 파인 옹달샘에 새들이 들락거리며 놀다 가곤 했던 나무였다.
「야광나무」나 「아그배나무」는 촌수로 사촌간이다. 「아그배나무」가 「야광나무」보다 키가 좀 작고, 잎이 좀 다르다. 장미과「아그배나무」의 잎은 녹나무과「생강나무」의 잎처럼 같은 가지에 모양이 다른 두 가지 잎을 달고 있다. 하지만, 고욤나무가 감나무의 대목이 듯 둘 다 사과나무의 접붙이는 대목으로 이용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참고로 장미과 「야광나무」와 「아그배나무」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장미과 낙엽소교목「야광나무」 | 장미과 낙엽소교목「아그배나무」 |
* 학명: Malus baccata Borkh.[Malus: 그리스어 melon(사과)에서 유래Baccata: 장과의 장과상의 라는 뜻] * 영명: Siberian Crab * 일명: シベリヤコリンゴ * 중명: 山荊子산형자 ① 개화: 4~6월 흰색 꽃 ② 잎: 호생互生 ③ 열매: 이과, 구시월에 붉은 열매 ④ 높이: 6~10m * 열매는 맛이 떫다 * 翅果: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신나무 등과 같은 시과 * 漿果: 씨가 多肉質의 果肉속에 들어 있는 열매. 감, 포도, 귤, 무화과 등
| * 학명: Malus sieboldii Rehder.[Malus: 그리스어 melon(사과)에서 유래Sieboldii: Sidbold 씨를 기념한 것] * 영명: Toringo Crab * 일명: ズミ * 중명: 三葉海棠삼엽해당 ① 개화: 4~5월 흰색 꽃 ② 잎: 호생互生 ③ 열매: 이과, 구시월 붉은 열매 ④ 높이: 3~6m* 열매가 시고 떫은맛이다. * 잎에 결각, 짝짝이 잎이다. * 梨果: 겉껍질, 다육질의 중간껍질, 딱딱한 속껍질 등 뚜렷한 3개의 층으로 둘러싸인 씨가 있는 형태의 열매. 사과, 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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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2020.9.2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