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려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바닥이 녹진하다.
바람 한 점 없는 개울가의 어린 나무들도 등이 휘었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봉쇄수도원 팻말 앞에 잠시 멈추어 서서 마음을 가다듬고 옷깃을 여민다.
숲의 새들도 수행 중인지 지저귐이 나직나직하다.
접수부에 예약 표를 내밀자 열쇠와 주의사항을 적은 종이를 건네준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굵은 붓글씨의 '침묵' 이 걸려있다.
뒤꿈치를 들고 발소리를 죽인다.
시계를 빼서 가방 깊숙이 넣고 전화기의 배터리를 뽑는다.
말과 소리, 문명과 잠시 단절할 요량으로 고립 속으로 자처해 들어왔으니 기꺼이 스며들어야 한다.
지구촌을 달군 올림픽이 절정에 이른 때다.
밤낮 켜대는 텔레비전 열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모터는 손이 델 듯 뜨겁고, 에어컨 바람은 약한 면역력을 시험한다.
잦은 비눗물 세례를 견디지 못한 피부는 벌에 쏘인 듯 바짝 약이 올랐다.
더위에 맥을 못 추는 나로서는 염천에 노인 사망률이 높다는 보도가 실감난다.
잠이 부족하니 인내심이 바닥나고, 끼니를 챙기는 일도 짜증이 났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왕왕거리는 도시와 집만 벗어나면 신천지가 있을 것 같았다.
배낭을 내려놓다가 풀썩 무릎이 꺾인다.
한증막 같은 일인용 작은 방엔 낡은 선풍기와 좁은 나무 침대와 앉은뱅이책상이 전부다.
서쪽으로 난 네댓 뼘의 창틀 쇠붙이와 방충망이 불덩이다.
며칠 시원한 곳에서 살랑살랑 신선놀음이나 하자던 계획이 어긋나고 있다.
쾌재를 부르며 떠나왔는데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흘만 버텨 보자. 정해진 프로그램에 맞춘 것이 아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식사 시간을 뺀 나머지는 자유다.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낮은 종소리에 맞춰 손님용 식당으로 갔다. 간간이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있을 뿐 사람들은 침묵 중이다.
서로 방해하지 않기 위해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내가 먹은 접시를 닦아 놓고 방으로 왔다.
모처럼 남이 해주는 밥 먹으며 빈둥거리는 호사를 누릴 참이었지만 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만만치 않다.
좁은 방안에서 고작 다리를 뻗었다 오므렸다 엎드렸다 바로 누웠다 하는 게 전부다.
선풍기 다이얼을 삼단에 놓고 잠을 청해보지만, 괭이잠을 자고 나도 해는 중천에 있다.
휴게실 책꽂이에서 몇 권의 책을 뽑아 왔다가 도로 갖다 놓았다.
그런 것에서 도망쳐 왔음을 깜빡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죽이고 앉았으니 막연한 불안감이 올라온다. 일할 때 말고도 쫓기듯 무엇을 보거나 듣거나 읽거나 많은 말을 쏟아내며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던 자신을 본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노동하고 기도하는 수도자의 삶이 엄숙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분들의 일과에 동참해볼 참으로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났지만, 한나절 따라 하다 말았다.
수도복에 비하면 내 옷은 입은 둥 만 둥 한데도 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같은 공간에서 수도자와 나 사이를 가르는 것은 낮은 칸막이가 전부지만, 내 기도는 그분들의 기도가 지향하는 곳에 가닿을 수 없을 것 같아 아득하다.
하느님 앞에 다 내려놓고 '나'의 바닥까지 톱아 보자든 계획도 여의치 않다. 머릿속은 오직 '덥다'에 갇혀 집중이 안 된다.
물을 끼얹어도 돌아서면 몸이 끈적인다.
밤 여덟 시가 되자 수도원은 손님방을 제외한 전깃불을 모두 끈다.
내 방에서 새 나가는 불빛이 고요의 대지에 얼룩 같아 나도 불을 껐다. 침대 모서리에 기대앉아 하늘을 본다.
나무들은 차츰 형태를 감추고 어둠에 스며든다.
하늘과 땅을 분간할 수 없고 반딧불 한 점 보이지 않는다.
우주 한가운데 오직 나 혼자다.
어깨의 힘을 빼고 두 팔로 껴안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어둠에 몸을 맡긴다.
스르르 내 안에 접힌 바닥이 열린다.
달아나고 싶어 안달한 것이 더위뿐이었으랴.
내심 도망치고, 싶었던 건 일상이 아니었을까.
칭칭 동여 결박하는 것들이 있어 일탈을 꿈꾸었을 터이다.
하지만 묶인 줄이 없다면 한낱 떠돌이에 불과한 것.
바람이 거셀수록 단단히 잡아주는 가족과 세상의 끈이 있어 달아나고 싶다는 꿈을 꾸었으리.
힘주어 발목 잡고 있어야 마음 놓고 팽팽하게 날아오르는 연(鳶)처럼.
파파 미미 솔라 솔라, 풀벌레들의 합창이 낭자하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고요해야 들을 수 있는 만트라다.
침묵과 어둠은 생물의 자웅들이 무수한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도록 돕는 거룩한 선물이다.
외통으로 치닫던 생각들이 순치되면서 나는 하나의 점이 되어 잦아든다. 우주와 내가 일치되는 느낌이다.
어머니의 자궁이 이처럼 편안할까. 영원으로 길 떠나는 순간도 이러했으면 좋겠다.
나는 비로소 오래 감추어둔 눈물을 원 없이 쏟았다.
문혜란 수필집 [바람의 옷] 중에서
첫댓글 참으로 리얼한 작가의 표현력이 한없는 공감을 느끼게 하네요
예전에 한참 가톨릭에 열중할 때 가끔 피정을 갈 때가 있습니다
짧으면 하루 몇시간, 길어야 삼일 중 몇시간 침묵인데
그것도 집중(?)하기 참 어려웠던 기억입니다
이제 다시 봉쇄수도원에 갈 기회가 된다면 모든걸 내려놓을 수가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백선생 고마워요.
몇 편 올리다 말겠지 했는데 이렇게 많은 글을 올릴 줄 몰랐어요.
파일을 보내달라고 했으면 쉬울텐데 한자 한자 작성하느라 수고 많았어요.
힘들면 말해요.^^
검색해 여기서 내 글을 읽었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읽고 일일이 댓글로 공감해준 스텔라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잠잠해지면 밥 먹읍시다.
하나하나 입력하는 것은 아니고 폰으로 한 페이지씩 캡쳐한 것을 텍스트로 변환해 주는 앱을 사용해서 작성합니다.
제대로 변환되지 않은 것만 수정하여 작성하는데 20분 정도 걸리려나?
내가 여태 책 읽는 버릇을 들이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너의 글이라든지 스텔라님이 올리는 글들은 읽게 되어 조금이나마 책 읽는 습관이 들어지는 것 같아서 모두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