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집 제28권 / 잡저(雜著) / 도협총설 104조항 〔陶峽叢說 一百四則〕
25. 내가 젊었을 때 최창대(崔昌大)와 한원(翰苑)의 동료가 되었는데, 창대가 주자(朱子)의 학문이 취할 만한 것이 없다고 함부로 말하였다. 내가 매우 놀라 꾸짖으며 말하기를,
“자네가 감히 이런 악담을 하니, 어찌 하늘이 두렵지도 않은가.”
하였다. 창대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대 또한 세속의 논의에 빠져 있네. 자네는 한번 주자의 태극(太極)에 관한 문답(問答)을 보게나. 이는 다만 장사꾼의 말버릇이지, 어찌 조금이라도 함양(涵養) 공부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하였다. 나는 더욱 놀라서 그와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그 뒤에 《사변록(思辨錄)》과 《예기유편(禮記類編)》의 일이 계속하여 나왔는데, 이는 평소 주자를 경시하였으므로 주자의 주해(註解)를 보고 망녕되이 하자를 지적할 생각을 내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한편으로는 애처롭다.
또 우옹(尤翁 우암)이 매양 주자를 존숭(尊崇)함을 위주로 하였으므로, 우옹을 미워하는 자들이 주자에게 분노를 옮겨서 모든 주자의 말씀과 관계되는 것이면 반드시 배척할 것을 생각하였다. 수백 년 전 중국 사람인 주자가 오늘의 시비에 무슨 상관이 있기에 이처럼 저들에게 분노와 시기를 당한단 말인가. 또한 가소롭다.
우옹은 일찍이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 《주문작해(朱文酌海)》 두 책을 합하여 한 책을 만들었는데, 숙종(肅宗) 말년에 이 책을 진강(進講)할 적에 정승 이자빈(李子賓)이 임수간(任守幹)과 함께 옥당관(玉堂官)이 되어 입시(入侍)하였고, 판서(判書) 이인엽(李寅燁)이 경연관(經筵官)으로 들어갔다.
임수간은 주자의 한만(閒漫)한 서찰(書札)들을 굳이 법연(法筵)에서 진강할 필요가 없다고 극언하였는데, 이 정승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자 임수간이 또 등등한 기세로 변론하여 배척하였다.
이 판서가 임수간의 말을 지지하여 두 사람이 교대로 발언해서 모두 이 정승을 배척하니, 이 정승은 평소 담론을 잘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이를 마음속에 품은 채 물러나면서 스스로 탄식하기를 ‘주자는 바로 천하의 주자이시니, 내가 사사로이 할 수 있는 분이 아닌데, 두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배척하니, 내가 어찌 피곤하지 않겠는가.’ 하였으니, 여기에서 또한 시배(時輩 소론)들이 주자를 높이지 않는 일단(一端)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