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계명
2008년 5월 18일 / 대예배 / 출 20:1-17
하나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다고 먹을 것을 찾아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는 먹을 것이 많았고, 농사짓기도 쉬웠습니다. 그러다가 생명의 위협을 당하여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많은 재물을 얻어 가나안으로 돌아왔지만 애굽은 하나님의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에 의하여 야곱의 아들들이 그곳에 가서 살았지만, 요셉을 모르는 왕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은 많은 고생을 겪게 되었습니다. 애굽왕 바로는 히브리인들에게 국고성 라암셋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멀리서 흙을 운반해 오고 볏짚을 썰어서 진흙을 이겨 무거운 벽돌을 구웠습니다. 벽돌을 날랐습니다. 농사일에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애굽에서 해방을 시키시어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세계적인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순종하면 복을 받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실 애굽에 있을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사람이 사람대접 받지 못하면 견딜 수가 없는 겁니다. 육신을 가졌기에 사람은 1주일에 한번은 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사람의 인체 구조를 1주일에 하루를 쉬도록 만드셨습니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부자로 살 것 같지만 아닙니다. 모든 달력에는 주일을 빨간색으로 했는데, 그것은 무조건 쉬라는 것입니다. 신호등도 빨간색에는 갈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모든 주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요, 그 말씀을 듣고 몸과 마음이 쉬면서 새로 충전하는 날입니다. 이런 저런 것들을 보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된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요즘 개발된 음향 기기나 전축 등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실제 소리를 재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꼭 오페라 홀이나 극장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편하게 좋은 음악을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음향 기기나 전축 등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지금과 같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유성기라고 부르는 나팔통이 달린 옛날 전축에서는 녹음 상태도 나쁘고 기계적 결함도 많았기 때문에 잡음이 음악과 함께 흘러나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음향기기 회사 중에 하나가 바로 ‘빅트롤라(Victrola)’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상표는 유성기의 나팔통 곁에 개가 앉아있는 모습을 그려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표는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충직한 개가 많은 잡음 가운데서도 주인의 음성만을 귀 기울이고 잘 분별하듯이 비록 잡음이 많아도 좋은 음악에 귀 기울여 달라는 의미에서 고안된 상표라고 합니다.
▶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릅니까? 어떤 양이 예수님의 양인가를 요 10:24-27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10:24-27 /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물었다. ‘당신은 얼마나 더 우리 속을 뒤집어 놓을 작정이오? 당신이 만일 그리스도라면 분명히 우리에게 말해 주시오.’ 25)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미 너희에게 말했는데도 너희는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해 준다. 26) 그러나 너희는 내 양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27) 내 양들은 내 음성을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예수님의 양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① 예수님의 양은 자기 주인, 곧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② 예수님은 자신 소유의 양들을 아시며, ③ 그 양들은 주인인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목자의 음성을 따르는 양과 같이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계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따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인 줄 모르지만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하나하나 음성으로 들려오게 됩니다.
요 14:21-26 / “내 말을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여 내 자신을 그에게 나타내 보일 것이다.” 23)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 26) 이제 아버지께서 내 대신에 보내실 돕는 자이신 성령이 오시면 또다시 많은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또다시 일깨워 주실 것이다.”
▶ 성경도 사람의 언어로 기록되고 수천 년을 두고 전해져 왔으므로, 현대인이 이해하기 힘들거나 윤리나 생활 교훈 등에서 따라가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실천하기 힘든 말씀이라도 그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유명한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인의 음성(my master’s voice)’라고 표현했습니다. 에밀 브루너의 표현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우리를 지어주신 창조주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탠퍼드라는 호텔의 지배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객실마다 성경을 비치해 두어 손님들이 읽을 것을 기대했으나 대부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15년간 성경책이 단 한 권도 분실되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되었다고 합니다. 반면 영어 사전을 놓아두었더니 한 달 사이에 14권이나 분실되었다고 합니다. 그 호텔 지배인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어서 각 방의 성경은 비치된 상태 그대로 15년 동안이나 놓여 있었는데, 인간의 언어는 훔쳐갈 정도로 관심이 많았던 모양입니다.”라고 말하며 크게 한탄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 때에 세상에서 율법을 얼마나 공부하고 지켰는가에 대한 상벌이 따른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암송하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정말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특별히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율법의 핵심은 바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십계명은 율법의 핵심이면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십계명을 주신 사랑의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들,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은 실로 대단한 문명입니다. 특별히 사막 한가운데에 거대한 흙벽돌을 구워 만든 피라밋과 같은 거대한 축조물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와 같은 이집트 문명을 세우기 위해서 430년 동안이나 노예 생활을 한 민족이 바로 히브리 민족,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한 두 해도 아니고 무려 430년간을 타국에서 그것도 노예로 지냈으니 그들이 당한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우리가 짐작할 수도 없는 고통을 당했을 것이 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통하여 지긋지긋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의 출애굽을 할 수 있었으니 그 기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느꼈던 해방감은 얼마나 감격적이었겠습니까? 하지만 자유와 해방의 출애굽 도정이 결코 순탄하거나 희망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지도자 모세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무모하게 출애굽을 시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거룩한 열망과 비전으로 불타올랐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상당수 사람들은 군중 심리에 이끌려 모세를 따라 나섰습니다. 이처럼 최초에는 오합지졸이었던 히브리 민족이 시내 광야에 다다르게 되어 장막을 쳤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주시는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출 19:5-6 / 온 누리가 다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뭇 민족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되리라. 6) 너희야말로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반드시 일러주어라.
출애굽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시내산에서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이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을 소유한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단지 교회에 출석했다, 열심히 봉사한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거나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그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처럼 우리들도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할 때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충직한 명견(名犬)은 주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뒤를 따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될 수 없습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복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민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법이 필요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예가 아닌 자유민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거룩한 계명,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법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 19장에서 아멘으로 화답하며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은혜의 선물이지 결코 사람을 얽어매는 율법이 아니었습니다.
■ 중세 시대의 유명한 랍비 마이모니데스(Maimonides)는 구약에서 ‘하라’는 긍정 계명과 ‘하지 말라’는 부정계명을 찾아서 분류했는데,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을 하라”는 긍정적이 248개와 “○○○을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계명 365개로 모두 구약성경에는 613가지의 크고 작은 계명들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사람의 인체가 248개의 조직으로 이루어 졌고, 그것이 건강하려면 365개의 하지 말라는 것을 금해야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248개의 인체 조직이 바로 한 몸을 이루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많은 계명들의 기본이 바로 제 1계명입니다. 그러니까 제 1계명은 모든 계명의 기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성경에 ‘하라’는 계명을 무거운 짐으로 생각하고, ‘하지 말라’는 계명을 간섭으로 생각합니다.
제 1계명, 그 위대한 선포, 하나님의 첫마디가 무엇입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 얼마나 웅장하고 엄위 있는 말씀입니까? 짧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짧은 한 구절이 얼마나 위대한지요. 이 한 구절 속에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들어 있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들어 있고, 우리에게 복을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의지가 서려져 있습니다. 또 우리가 복 있게 사는 것을 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도 엿보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그것도 알 수 있습니다.
▶ 예수를 믿는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죄 사함을 받았다. 이제는 죄의 사슬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와 계신 후에는 우리에게 자유가 넘치게 됩니다. 마치 새 그물에 걸린 새가 그물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공을 향하여 나르는 것처럼 죄에서 벗으나 은혜 가운데서 마음 놓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단이 벌을 받아 한번 떨어지면 헤어나지 못한다는 영원한 구렁텅이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사단은 오늘도 역사하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걸려들도록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사단의 올무에 걸려들지 않는다고 장담하겠습니까? 우리로서는 결코 마음 놓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미리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즉 새가 그물 쳐 놓은 것을 안다면 왜 걸리겠습니까? 노루가 사냥꾼이 쳐 놓은 올무를 안다면 왜 걸리겠습니까? 이 계명은 하나님께서 “어디에 올무가 있다, 어디에 그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모르면 올무에 빠집니다. 모르면 그물에 걸립니다. 계명을 모르는 사람은 무엇이 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알고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올무에 빠지거나 시험에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계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복을 주시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敎人)들은 법, 계명, 규칙이라면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누구나 규칙, 법규라는 말이 괜히 싫습니다. 저는 혹시 택시를 탈 때 가능하면 앞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전벨트를 하기 싫어서입니다. 그냥 하라고 하면 할 텐데 “법이요, 벌금을 내야 되요.” 하니까 이상하게 거부반응이 생깁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많은 남자 분들은 예수를 믿어야 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앙을 갖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예수 믿으면 자유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끊어야 되고, 주일에는 놀지도 못하고... 대부분 ‘무엇도 못하고 무엇도 못하고...’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이 너무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예수 믿는 것이 자유도 빼앗기고 인생의 재미도 잃어버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제일 좋은 것, 인생의 가장 귀한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진정한 의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떤 법이나 규칙으로 묶어두거나 또는 형벌이나 저주로 위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계명의 의도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려 하심이요,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본문에 보면 두 번째 계명에 대해 말씀하실 때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면 3-4대까지 벌을 내리겠다고 하셨고(5절),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면 1,000대까지 은혜를 베풀겠다(6절)고 하셨습니다. 멸망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를 베풀고 복을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신 4:39-40 / 그러므로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서 참 하나님은 여호와뿐이시며 더 이상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깨달아 알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40) 또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하는 계명과 규정들을 잘 지키며 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과 후손들이 모두 잘되고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아주 주시는 땅에서 여러분이 언제까지나 평안히 살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계명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표현입니다. 아빠가 사랑하는 딸에게 “밤늦게 다니지 마라. 밤 10시까지는 꼭 들어와야 돼!”라고 말할 때 이것은 딸을 행동을 제약해서 딸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이 어두운 현실, 풍파가 휘몰아치는 깊은 바다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에 우리 자신을 붙들어 매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이나 사람들의 말, 역술인의 말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우리를 깊이 권면하며 이끌어줄 수 있는 분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자신의 앞길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말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망합니다. 자기를 속이는 말인지 자기에게 유익된 말인지 혼동하기 쉽습니다. 마귀나 사기꾼들은 기준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 어린 여자아이가 부모님으로부터 “찻길에서 놀지 말아라.”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모님은 매일 똑같은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 어린 꼬마 아이는 부모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지만, 때때로 공이 찻길로 굴러 갈 때나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다보면 그러한 명령을 잊어버릴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찻길 근처에서 놀다가 속력을 내며 지나가는 차에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 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끼익’ 하고 차가 급정거를 하긴 했지만 강아지는 차에 치여 죽고 말았습니다. 어린 소녀는 놀라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부모님이 하신 당부를 떠올리며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깨달았습니다. 우리들도 유대인들처럼 믿기 전에 증거를 요구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냥 믿음으로 어떠한 법칙을 따르기 보다는 어째서 그 규칙에 순종하여야 하는가를 알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따라야 할 계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계명들을 지켜야 하는 까닭을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 굳이 계명을 주신 이유를 설명하라면 이러합니다. -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탐욕에 대한 계명은 우리가 탐욕적인 존재임을 가르쳐 줍니다. 인간이 자연적으로 탐욕을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면 탐욕을 품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계명은 우리가 타락한 존재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런 식으로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성경을 통해 주시는 부정적인 계명 중에서 그 부정을 제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지 말라’에서 부정을 빼면 거짓말 하는 것이 남습니다. 바로 거짓말하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계명에 대해서는 거꾸로 생각해 들어감으로써 본성에 대해 알 수 있게 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이기라.’는 말씀은, 우리에게는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성질이 본성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악을 선으로 이기게끔 방향 지어져 태어났다면 그러한 계명을 우리에게 주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죄악된 본성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생각한다면 우리로서는 계명을 주신 하나님께 엎드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의 율법을 소유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후에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3번째 왕이었던 솔로몬 왕 이후에 하나였던 나라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또 남북으로 분단된 이 후에도 서로 외세를 업고 전쟁을 일삼았으며 결국에 북왕국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하고 남왕국은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었던 그들이 이처럼 비참한 운명으로 전락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 말씀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언약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외면하며 살았을 때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것을 예견(豫見)하여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수없이 경고를 하셨던 것입니다.
신 28:9-10 /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분이 가리키는 길로만 따라가면 여호와께서 이미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을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자기 백성이라고 선포해주시면 세계 만민이 모두 보고 여러분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