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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포션 이름 (파라샤) | 모세오경 (토라) | 예언서 (하프타라) | 신약 (브리트하다샤) |
나쏘 / 계수 / 들어올린다 | 민 4:21-7:89 | 삿 13:2-13:25 | 요 11:1-11:54 |
<단락 1> 민수기는 광야와 같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서 정렬하는 훈련서입니다. 정렬이란? 하나님의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도록 자신을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광야는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훈련과정입니다. 광야 (히 : 미드바르)란?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지만,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민수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훈련을 통과하지 못하고 넘어진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예슈아로 인해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었지만, 광야와 같은 이 땅에서 군사 훈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믿음의 히브리어는 ‘에무나’이며, 충성과 신실함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슈아를 마음으로 믿었다고 하면, 예슈아에 대한 충성된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1. 민 4:2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을 ... 계수할지니 ... 22. 게르손 자손도 그 조상의 가문과 종족에 따라 계수하되 29. 너는 므라리 자손도 그 조상의 가문과 종족에 따라 계수하되
원래 희생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가 가족을 대신하여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자들이 금송아지 우상숭배에 참여하게 되자,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십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에 참여하지 않은 레위지파 (게르손 자손, 고핫 자손, 므라리 자손, 코하님 자손)에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제사장의 특권을 주십니다. 제사장의 특권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레위의 뜻은 연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과 연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골치 아픈 숙제로 여깁니다. 하지만 죽지 않는 자아의 전형적인 문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안에 계신 예슈아의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의 자아를 예슈아의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된 안식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상태가 되는 것이며 (시 62:5), 하나님과 연합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슈아를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매일 예슈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친밀한 관계를 맺길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예슈아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1) 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시록 12장은 7년 환난 가운데, 후 3년 반의 모습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그때 여자의 남은 자손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토라 준행), 예슈아에 대한 증거를 가진 자로 일어나서 사단과 싸우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예슈아를 믿는 것은 서로 충돌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예슈아는 마태복음 7장 13절에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3. ...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말씀합니다. 예슈아를 주로 인정한 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불법이란? 삶의 방식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예슈아를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세상과 너무 쉽게 타협함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 직분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슈아를 믿으며, 하나님의 계명 (말씀)을 지키는 것을 갈망하는 자는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의 거룩함을 말씀하십니다.
2) 민 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3.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 7.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고 있는 진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하고 있는 진영이 더럽혀지면 하나님의 영광은 그곳에 머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영 안에 있는 부정함을 멀리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세상의 문화와 가르침이 들어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와 함께 하실 수 없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더욱 더 가까이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그는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회개의 시작은 먼저, 자신의 죄를 철저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로 인해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면, 선을 행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오분의 일을 더하여).
(1) 현대인 민 5:14 남편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거나 또 아내가 몸을 더럽히지 않았어도 그녀에 대하여 의심이 생기면 (히 : 루아흐 카나 = 질투의 영) 15. 남편은 아내를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서 그녀를 위해 보리가루 2. 2리터를 바쳐야 한다 ... 이것은 의심하는 남편이 사실을 밝히려고 드리는 예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부부관계 (결혼관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모델입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들 사이에서 성행하게 되는 대표적인 죄가 바알과 앗세라, 아스다롯, 몰렉, 바알세불 등 우상숭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이스라엘을 간음한 여인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란? 신부를 향한 신랑 하나님의 열정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방해되어지는 것에 질투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질투하는 것은 육체의 일이며 헛된 영광 (자기를 위하여)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갈 5:20-26).
<단락 2> 2. 민 6:2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하나님은 레위 지파를 정렬하시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레위인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온전히 헌신할 기회를 열어주셨습니다. 나실 (히 : 나지르)의 뜻은 ‘헌신하다, 구별되다, 절제하다’ 입니다. 나실인의 서원의 내용은 첫째,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기쁨을 세상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으로 채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삭도를 머리에 대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나의 머리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셋째,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은 죄의 값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부정한 것을 뜻합니다. 한정된 기간 동안 (통상적으로 30일에서 100일) 하나님을 위하여, 세속적인 쾌락을 멀리하고, 자신의 시간, 재능, 자원을 여호와께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실인으로 헌신한 사도 바울 (행 18:18, 행 21:22-26) 이 있으며, 세례 요한 (눅 1:15-17)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나실인으로 살았습니다. 이는 구약에 나온 제사장들만이 (또는 이 시대 목회자들만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 어느 누구나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나실인 서원을 법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군사로서 나실인을 찾고 계십니다. 이번주 예언서 (하프타라)에는 삼손이 등장합니다. 삼손의 이름은 태양, 빛입니다. 그러나 삼손이 나실인으로 살지 못하게 한 유혹은 큰 유혹이 아니었습니다.
1) 삿 16: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 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드릴라의 말 한마디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로 인해 삼손은 패배하게 됩니다. 드릴라의 이름은 밤의 여인 (밤의 히브리어 : 라일라)입니다. 태양과 밤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작은 타협을 통하여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영적 파산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죄에 대해서 작은 타협들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교만, 판단, 분노, 게으름, 시간소비, 세상적인 생각, 너무 성급한 말로 인해 넘어집니다. 다음은 제사장의 축복기도문 (히 : 비르카트 코하임)이 나옵니다.
2) 민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눈동자로 지키시는 분이신데, 이는 이스라엘이 온전한 자들이 될 수 있도록 ‘신실하게 훈련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슈아는 마태복음 12장 50절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복 (히 : 바라크)의 뜻은 ‘무릎을 꿇다’입니다. 참고로 ‘송축’의 히브리어도 ‘바라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은 왕이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시편 1편 1절에 ‘복’은 히브리어로 ‘아쉐르’이며, 그 뜻은 ‘하나님만이 왕이십니다’ 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 물질의 복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오는 복이 아닌 세상의 방법으로 오는 복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맘몬의 영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져다 주며, 그 결과 재정에 자유하지 못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계획하신 진정한 복을 구하고 그것을 받아야 합니다.
(1) 민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에게 비추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하나님의 말씀 (음성)의 계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랑 예슈아의 신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자신의 삶을 단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히 : 샬롬)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샬롬은 ‘평화’라는 뜻도 있지만, ‘온전함’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온전함이란?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세상과 사람은 우리를 온전히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항상 아쉬운 것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기쁘시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물질적인 복이나, 이 땅에서 성공하는 복만을 구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비추어달라고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