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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5.주일오전 예배 설교
설교본문/ 창세기 50:1~14(구약80쪽)
설교제목/ <야곱의 엄숙한 장례식>
서론/
오늘 주일오전 예배 말씀은 <야곱의 엄숙한 장례식>이란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야곱의 엄숙한 장례식>*2회.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그런 일은 거의 없겠지만, 잘 아는 두분이 있는데, 한 날에 장레식과 결혼식이 있다면 어디를 가겠습니까? 장레식은 3일이고 결혼식은 하루여서, 둘다 갈 수도 있겠지만, 만일 여건상 두곳 다 갈 수 없고 한 곳을 선택하여 가야 된다면, 어디를 가겠습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장레식보다는 결혼식을 더 많이 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장례식에 가는 것은 마음이 무겁고, 어둡고, 허전하고 슬픈 마음이 들어서 꺼려지만, 장례식에 가면 더 많은 배우고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7장 2절과 4절을 읽어드립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오늘 우리는 <야곱의 장엄한 장레식>을 살펴봄으로 중요한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본론/
1.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하는 요셉, 70일간의 애도
첫번째로 살펴볼 점은 아버지 야곱과 작별인사를 하는 요셉의 모습과 70일간의 애도하는 모습입니다. 50장 1절부터 3절을 보면, 요셉이 숨을 거둔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하고, 수종드는 의원에게 염을 하고, 70일 동안 애도의 기간을 보낸 것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먼저 요셉은 147년 생애,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아버지 야곱, 그토록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아버지의 시신 앞에, 아버지 얼굴에 몸을 구푸려 울며 입맞추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맞추고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수종드는 의원에게 명령을 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였는데, 향으로 처리하는 기간이 무려 40일이나 되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는데 40일이 걸렸다는 것은 아버지 야곱의 몸을 당시 왕이나 최고의 귀족들이 행하였던 미이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고대 애굽 나라는 미이라를 만드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였으며, 하나의 미이라를 만드는데 여러 과정의 세밀한 기술이 요구되었다고 합니다. 미이라는 죽은 사람의 뇌와 내장을 다 긁어내고 방부제인 몰양과 향을 채우고, 시신을 천연 탄산 소다로 씻어서 몸에 고무 진액을 바른 다음 세마포로 싸서 관 속에 넣는데, 이렇게 하는 과정이 40일정도 걸린 것입니다.
지금도 이집트에 가면 거대한 피라밋은 고대 왕들의 무덤으로 미이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신라시대, 가야 시대에 무덤에서 미이라가 간혹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죽음에 대한 애도기간(장래식기간)은 미이라를 만든 기간을 포함해서 70일동안이었는데, 그냥 단순히 애도만 한 것이 아니라 장례식을 70일 동안 거행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이 아버지 야곱과 작별 인사를 하고, 미이라를 만들고, 장례식을 70일간 치르는 보면, 어떤 마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는 요셉이 울고, 애곡하고, 미이라를 만들고, 장레식을 70일간이나 치른 것에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좀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요셉의 마음과 정성입니다. 요셉의 마음은 아버지 야곱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극진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어느 정도 자기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하지만,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 존경심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는 천차만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만해야 하고, 또 자신의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에게 무엇을 많이 받고 적게 받고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모두 세대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자신의 행복이고, 가족과 가문의 행복이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2절과 3절을 읽어드립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2.국장과 같은 야곱의 장례식 규모
두번째로 살펴볼 점은 국장과 같은 야곱의 장례식 규모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애도기간이 끝날 즈음에, 장례식 마지막에 와서 바로의 궁에 아버지 장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합니다.
5절은 요셉이 바로왕에게 전달한 내용입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제에게 맹세하게 한 것이 있습니다. -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하오니 왕이시여, 저로 가나안땅으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고 오게 해주십시오.>
이에 바로왕은 총리 요셉의 요청에 흔쾌히 허락해줍니다. 드디어 야곱의 장엄한 장례식 발인이 시작되었습니다. 7절과 8절과 9절을 보면, 야곱의 장례식 규모가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례식 발인에 참여하여 먼 거리에 있는 가나안땅 장지까지 간 사람들의 규모를 보면, 바로왕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올라간 것입니다. 정착지 고센땅에 그들의 아이들과 양떼와 소떼만 남겨놓고 모든 가족들이 매장지로 간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요셉을 호위하는 병거와 기병(전차부대 군인과 말타는 군인)이 따라 올라갔는데, 그 떼가 심히 컸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의 장례식 규모는 한 나라의 왕 장례식 규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가족들만 해도, 입애굽할 때 70명이었는데, 17년이 지난후이기에 적어도 두 배이상 늘어났다면, 적어도 200명이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신하와 궁의 원로들, 나라의 원로들이 모두 장례식에 참석해주었는데, 그들의 비서들들도 많았을 것이고, 또 매장지까지 거리가 몇 일이 걸리기에 먹을 것과 가다가 잠잘 곳 등을 준비해서 가려면 준비해서 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장례식 규모가 이렇게 크고 왕같은 장례식이었다는 것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장례식의 규모는 그 자신이나 그 자손들의 영향력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잘 되고 주변에 영향력을 끼쳤다면, 그의 장례식은 큰 규모의 장레식이 될 것이고, 또 그의 자손들이 잘되고 주변에 영향력을 많이 끼쳤다면 큰 규모의 장례식이 될 것입니다.
야곱의 경우는 자기 자신보다도 전적으로 아들 요셉의 영향력때문에 왕과같은 장엄한 장례식이 된 것입니다. 장엄하다는 말은 크고 위엄이 있고 엄숙하다는 말인데, 야곱의 장례식은 왕의 장례식처럼 크고 위엄이 있고 엄숙한 모습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147년의 생애동안 험악한 세월을 보냈지만, 그의 마지막 장례식은 영광스럽고 장엄한 장례식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장례식은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것을 말해준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이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대변해주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자신의 장례식이 어떻게 치르지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이름과 그 사람의 삶의 열매는 장례식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이나 우리 자녀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때, 장례식 때를 생각하며 끝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야 하고, 가장 좋은 영향력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영향력입니다. 요셉은 애굽나라에나 가족들에게나 선한 영향력을 끼침으로 아버지의 장례식을 장엄하게 영광스럽게 아름답게 이루게 되었습니다.
<<서서평 선교사 장례식,
독일출신 미국선교사,엘리자베스 셰핑, 1880년 9월 26일 생, 1912년 일제강점기에 간호선교사로 32살에 조선땅에 들어옴,1934년 54세,영양실조와 풍토병으로 죽음, 22년간 병자들,여성들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음, 소록도 나환자 요양시설을 만들게 한 장본인.이일학교를 설립, 조선의 어머니라는 말을 들음, 광주시민장, 광주천에 구름떼같은 시민들이 나와 애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장례식이 장엄하고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장례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장례식의 규모가 크든 작든 사랑과 존경과 아름다운 이별이 있는 장례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곳에 온지 6년째를 보내고 있는데, 두번의 장례식을 하였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에 대한 바램은 전교인이 특송을 하고, 특히 장례식 발인예배부터 하관예배까지 다 참석하여 성도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것입니다. 아멘
3.큰 애통의 장례식 행렬과 가나안 땅에 묻힌 야곱
마지막 세번째로 살펴볼 점은 큰 애통의 장례식 행렬과 가나안 땅에 묻힌 야곱의 모습입니다. 10절부터 14절을 보면, 야곱의 장례식 행렬이 애통과 애곡의 행렬이었고, 자신의 소원대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묻힌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장례식 행렬이 애굽 나라 고센땅을 떠나서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머물렀습니다. 요단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은 아닷 지역의 한 타작 마당인데, 그곳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가나안 땅 막벨라 굴 무덤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것같습니다. 여기서 장례행렬은 크게 울고 애통하였고, 특히 요셉은 아버지를 위하여 이곳에서 7일동안 애곡하였습니다.
얼마나 슬피 울며 애곡하였는지, 가나안 땅 원주민들이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는데, 다같이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강 건너편이더라>.
가나안 땅 원주민들은 야곱의 장례행렬이 아닷 타작 마당에서 7일동안이나 애통하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의 큰 고통이라 하였고, 이곳 이름을 <애굽인의 애곡함이란 뜻을 가진 아벨미스라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의 장례행렬이 얼마나 큰 애통을 하였는지 신조어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야곱의 장례식은 야곱이 요셉과 아들들에게 명령한대로,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함으로 마무리되었고, 요셉은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들과 호상꾼들과 함께 애굽나라로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의 장례 행렬이 울고 애통한 것은 국가 권력에 동원되어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야곱의 장례식에는 유족이나 친척보다도 조문객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요셉 총리의 아버지의 장례에 예의를 표하면서, 함께 울고 함께 슬퍼하며 애통하며 애곡한 것입니다.
여러분,
장례식에서 울고 안 울고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어떤분은 눈물 한방 흘리지 않은 자식들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새눈물만큼 찔끔 흘린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유족이 아닌데도 고인과 유족을 생각하면서 애통하며 우는 분들도 있습니다. 울며 애통한다는 것은 아쉬움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천국에 가기 때문에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슬퍼하거나 애통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요셉이 7일 동안 애곡하였는데, 요셉이 믿음이 없어거나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처럼 믿음이 좋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믿은 사람이요, 부모와 조부모와 증조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은 믿음의 조상과 같은 인물입니다.
요셉은 형제들과 아버지와 백성들을 눈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도 울고 애통한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이 없는 것처럼 절망하여 땅에 주저 앉아서 울고 불어서는 안되겠지만, 사랑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친구, 사랑하는 분과 이별의 아픔이 있기에 함께 울고 슬퍼하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짐승들도 슬픔이 있을 때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소는 주인이 새끼를 팔려고 끌고 갈 때, 닭똥만한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눈물이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장례식에서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없는 것같습니다. 조문객들도 덤덤한 모습이고, 유족들도 별로 눈물을 흘리지 않은 것같습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는데, 눈물없이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눈물은 많이 흘릴 수록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회복해야 할 것은 참 사랑입니다. 가족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고, 교회 식구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하고, 이웃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야곱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소망하며 살다가 가나안 땅에 묻힌 것처럼 우리들도 천국을 소망하며 살다가 부활의 동산에 묻힐 수 있길 바랍니다. 아멘.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일오전에 우리는 <야곱의 엄숙한 장례식>이란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울며 얼굴에 입맞추며 작별 인사를 하는 효심이 가득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맹세하게 한 대로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고 소망했던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아버지를 장사하기 위해서 애굽 나라에서 960킬로가 떨어진 곳까지 갔습니다. 정말 야곱의 장례식은 왕과 같은 장엄한 장례식이었습니다.
여러분,
아직 부모가 살아계시다면, 부모님의 장례식이 어떤 장례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또 훗날 자신의 장례식은 어떤 장레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조문객이 많이 오고 많은 분들이 함께 하여 슬픔을 나누며 함께 우는 장례식이 되면 좋겠지요. 장엄하고 좋은 장례식은 사랑의 눈물과 아쉬움과 위로와 소망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
이런 장례식은 억지나 사람이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사랑으로 선한영향력을 끼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장례식의 모습은 그분이나 그분의 자식들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를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과 이별과 가족과 이별하는 장례식이 아름답고 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으로 감동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냥 죽을 때 죽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냥 살면 안됩니다. 어떤 분은 웰빙(잘 사는 것)보다 웰다잉(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문지 타임지 창간자의 부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죽은 날로 기억된다.> 살아 있는 사람은 생일로 축하를 받습니다. 그러나 죽은 이들은 죽은 날로 기억됩니다. 그가 언제 돌아가셨는지를 기억하지 생일은 기억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신의 죽음과 장례를 잘 대비하며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 특히 성도들의 죽음과 장례식에 함께 참여하고 함께 울고 함께 슬퍼해줄 아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공동기도> 다같이 따라서 하겠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 야곱의 장엄한 장례식처럼 앞으로 언젠가 있게 될 우리의 장례식도 아름답고 복된 장례식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