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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왔습니까(1)
청소부터 하십시다
2024년 8월 27일 / 눅 18:9-14
■ 바리새인과 세리의 쓰레기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눅 18:9-14(현대어성경) / 자기들만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이들에게 예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자기가 옳은 사람이라는 것을 뽐내는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은 남의 것을 빼앗는 세관원이었다. 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죄인이 아닙니다. 더욱이 저기 있는 세관원과 같은 죄인이 아닌 것을 얼마나 감사한지요! 나는 절대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일도 없고 간음한 일도 없습니다. 12) 나는 한 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내가 얻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13) 그러나 세관원은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볼 생각도 못하고 슬픔에 잠겨 가슴을 치며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하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용서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그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세관원이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누가 청소를 잘하였는지 예수님은 정확히 판단해 주셨다. ‘누구의 기도가 상달되었는지? 누구의 기도가 상달되지 않았는지?’는 유년주일학교 학생들도 알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문제는 ❶ 나의 기도 목표는 어디까지이며, ❷ 어디까지 하나님께 상달되어 응답을 받았는지? 특히 기도를 많이 했다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청소는 언제나 해야 한다 / 사람은 누구나 더러운 곳보다 청결한 곳을 선호한다. 그러나 어디든 저절로 깨끗해질 수는 없다. 가만히 있어도 먼지는 쌓이고, 무엇을 하든지 간에 쓰레기는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청소를 해야한다. 하기 싫은 청소를 매일 하면서도 내 영혼의 청소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한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실제의 본보기 : 마음에는 찬란한 아침 해가 / 그날도 이씨는 새벽 일찍이 일어나 아현동 주택가 골목길로 향했다. 먼동이 트기 전, 조용한 아침이었다. 그는 쓰레기통에서 쓰레기 뭉치를 하나씩 꺼내 실었다. 어느 집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컴컴한 쓰레기통 위에서 서류 봉투를 발견했다. 봉투를 열어 가로등 불빛에 비춰 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120만 원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자기앞 수표 등 모두 5억여 원의 유가증권이 들어 있었다. 생전 처음 만져 보는 돈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순간 그의 뇌리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쓰레기통 주인집의 벨을 누르고 있었다. 비록 더러운 쓰레기를 가득 실었지만, 그날 새벽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날보다 상쾌했다. 그의 마음에는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아침 해가 어둠을 뚫고 떠오르고 있었다. 그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 평생 간증이 되었을 것이다.
■ 실제 1980년대 60만 건 이상의 중범죄의 중심 무대였던 뉴욕 지하철이 오늘날 시민들에게 안전성을 인정받게 된 것은 낙서 지우기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사소한 낙서를 지울 시간에 범죄 단속에 더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낙서로 인한 더러움이 중범죄를 불러온다는 의견에 따라 무려 5년에 걸쳐 전 차량의 낙서 지우기가 단행되었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차차 줄어들기 시작한 범죄율이 3년 후에는 80%나 급감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요즈음에는 담배꽁초가 길거리 하수구에 있으면 그곳에 계속 담배꽁초를 버린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낙서 하나, 쓰레기 하나, 내 속에 있는 욕심, 용서하지 못하고 분을 품고 있는 것 하나하나가 교회와 나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클까? 반대로 깨끗하게 청소를 했을 때 그 긍정적인 효과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약 1:15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엡 4:26-27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좁은 문 /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 가면 예수탄생교회가 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들어가는 문을 아주 작고 좁게 만들어 놓았다. 높이가 120cm, 넓이가 80cm밖에 되지 않는다. 아주 좁은 문이다. 거기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허리를 굽혀야 한다. 헛된 교만 버리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교만하게 고개를 세우고, 자신이 자랑하는 것들을 바리바리 들고 있으면 절대로 통과할 수가 없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도 추한 죄를 반드시 회개해야만 한다. 헛된 자부심, 교만, 자기 의, 아집과 고집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간절히 사모해야만 한다. / 왜 하나님은 광야를 통과하게 하시는가? 그것도 40년 동안이나(신 8:1-6)
1. 바보같은 행위를 버리자.
1.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는 바보다(마 7:26, 고전 10:4)
예수님의 교훈에 따르면 슬기로운 건축자는 반석 위에 집을 세우지만 어리석은 바보는 모래 위에 집을 세운다고 하였다. 여기 견고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고전 10:4), 무너질 모래는 이 세상을 상징한다(마 7:26).
슬기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건축하지만 어리석은 바보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를 거부하고 자기 생각과 기분대로 건축한다. 즉 듣고도 행치 아니하는 자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바보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슬기로운 사람의 건물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홍수가 나도 보존되지만, 어리석은 바보가 지은 모래 위의 집은 무너지고 파괴될 것이다.
2. 말세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고 빈 등만 가지고 다니는 자는 바보다(마 25:1-10)
신자들은 세 가지를 준비하라고 하였다. ❶ 죽음에 대해서 항상 준비하라 ❷ 장차 다가올 환난에 대하여 준비하라 ❸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준비하라고 하였다.
우산 준비는 비 오기 전에 해야 하며, 월동 준비는 겨울이 오기 전에 해야 하고, 시험 준비는 시험 치르기 전에 해야 한다. 기름 준비도 주님 오시기 전에 준비해야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 혹시 우리는 빈 등만 들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바보들이 아닐까?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밖의 어두운 곳에서 쫓겨나 슬피 우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3. 심지않고 거두려는 자는 바보다(시편 126:5-6, 갈 6:6-10)
참으로 한국 교회에 문제가 생겨났다. 어디서 온 물결인지 모르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막 9:23)’라는 이 귀한 말씀이 어떻게 도적들의 무기가 되었는지? 신명기 28장에 나타난 축복에 관한 말씀도 엄연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그리고 그 후에 주어지는 약속들이다. ‘주 안에서, 믿는 자, 순종하면’이라는 조건을 벗어나서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이렇게 강조하는 사람은 거짓교사이거나 거짓선지자이다. 심는 방법보다는 추수하는 방법부터 가르치는 자, 순종보다는 축복을 주장하는 자들은 축복을 전제로 미혹한 후에 자기들의 욕망을 채운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한다고 하듯이 이들을 따르는 사람 자체가 바보다.
3. 성경에 나타난 바보란?
1.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최고의 창조물 아담과 하와가 최고의 지상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이다.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뉘우치기는커녕 책임을 회피하고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이다. 왜 먹지 말라고 하셨는지를 그들이 이해했더라면,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더라면 그리고 자기들을 찾아온 하나님을 왜 멀리하였으며, 죄를 지은 자기들에게 은총을 베풀기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을 왜 원망하였던가?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
2. 시험이 닥쳐올 때 기도하지 않고 원망하던 욥의 아내(욥 2:9)
평상시의 욥과 그의 가족들의 행위를 볼 때 욥의 아내 역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운 시험이 오자 하나님께 기도하여 극복할 생각은 아니하고 자기보다 더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남편을 위로하기는커녕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니 …. 악처 중에 하나로 남은 그녀의 행위는 참으로 바보스러운 것이다.
3. 말세를 만난 이들의 거울이 된 롯과 그의 처
아브라함을 따라 우상의 도시를 떠나 축복의 땅 가나안에 왔지만, 욕심을 극복하지 못하여 여호와께서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여 그곳에 들어가서 산 롯,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멸망하기 직전에 구출받은 것도 다행인데 마지막까지 세상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처. 이들은 말세를 만난 우리의 거울이 되고 있다.
4. 비겁한 재판장으로 낙인이 찍힌 빌라도(마 27:11-26)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의를 위해 쓰지 못하고 악에 눌려 악하게 써 버린 빌라도, 그의 종말이 말하듯이 그는 총독직을 파직당하고 로마로 소환되어 사형을 받았다고 한다.
올바른 판단과 아내의 간곡한 충고를 군중의 압력에 의해 저버리고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내림으로 어리석은 길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매 주일 수많은 교인의 입에 지금도 그의 이름이 불리고 있다.
그는 자기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면 기꺼이 정의를 행하지만 자기에게 희생이나 손해가 될 경우에는 올바른 행위를 못하는 비겁한 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의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이 많다던데 …
5. 자기 재산 때문에 예수님을 계속 좇지 못하고 영생의 문턱에서 돌아서야 했던 부자 청년(마 19:16-26)
생명을 얻는 계명을 훌륭히 지킨 젊은 청년.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돈이 많은 고로 걸림이 되어 근심하며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서 돌아서야 했던 아쉬운 사람이다. 만일 삭개오와 같은 결단을 내렸다면 ….
6. 되지도 못하고 된 줄로 아는 자(갈 6:3)
자기의 분수와 처지를 모르고 분별력이 부족하여 상좌에 앉기를 좋아하고, 대접과 높임 받기를 자청하며, 자기의 행위를 나타내기를 좋아하며 말하기를 ‘이만하면 하나님께서도 나의 행위를 인정하시겠지, 주여! 나를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어리석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실로 이들은 불행한 자 중에 불행한 자였다. 자기가 의인인지 죄인인지를 분별했더라면, 죄가 있는 줄로 알았다면, 자신의 영혼에 병듦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핍박하지도 멀리하지도 아니했을 것을 …. 알면 알수록 겸손해야 할 터인데 조금 배웠다고 조금 안다고 자기보다 높은 사람없는 줄 착각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이요 부족한 자임을 알고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7. 백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았을 때에 옥에 갇힌 된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
마 18:21-35 / [용서의 교훈] 그때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물었다. ‘주님, 형제가 제게 죄를 지었을 경우에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아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어라.’ 23) [무자비한 사람의 비유] 하늘나라는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정해진 날에 셈을 맞춰 보는 것에 비할 수 있다. 24) 셈을 하는 중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 나왔다. 25) 그가 빚을 갚을 돈이 없음을 알자 왕은 그의 아내와 자녀들과 그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는 왕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제발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빌었다. 27)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놓아 보내며 빚도 탕감해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사람을 만나자 멱살을 잡고 당장에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29) 그 사람이 엎드려 조금만 시간 여유를 달라고 빌었으나 30)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다른 종들이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고해바쳤다. 32) 그러자 왕은 용서해 주었던 그를 불러서 말하였다. ‘이 악독하고 뻔뻔한 놈아! 네가 애걸하기에 불쌍히 여겨 내가 그 엄청난 빚을 탕감해주지 않았느냐? 33) 그러니 내가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남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 왕은 몹시 노하여 그를 형리에게 보내고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게 하였다. 35)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진심으로 네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데나리온이란 로마의 은전으로 보통 근로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의 돈이다. 달란트와 데나리온 사이의 비율에 관해서는 정확한 환산기준을 알 수 없고 이에 관한 견해의 차가 대단히 크다. 한 달란트는 최소 60데나리온에서 최대 만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만 달란트와 100데나리온의 비율은 최소 6,000배에서 최대 100만 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본문의 비유 속에서의 악한 종은 최소한의 비율로 말하자면 자기는 6,000만원을 탕감받고도 자기에게 겨우 1만원 빚진 사람을 옥에 갇히게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최대한의 비율로 말하자면 자기는 100억 원을 탕감받고도 자기에게 단돈 1만 원 빚진 동료를 옥에 갇히게 했다.
▶ 예수님께서 이 악한 종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려고 의도하신 것은 무엇이겠는가?
❶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에 비해 우리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용서하는 것은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은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❷ 그렇게 작은 용서 하나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용서의 기적 / 미국 캘리포니아에 오션게이트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갑자기 성장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느 날 밤, 마을의 불량 10대 소년 9명이 일제히 교회를 향해 돌을 던졌다. 문화재로 지정된 아름다운 교회의 형형색색 유리창이 무려 73장이나 파손됐다. 재산상의 손실도 엄청났다. 당연히 소년들은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되어 모두 법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때 웰스 목사와 교인들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교회에 돌을 던진 소년들은 나이가 어립니다. 우리 지역의 소년들을 우리 교회가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잘못도 큽니다. 소년들을 용서해 주세요.” 교회의 간절한 탄원 덕분에 소년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그러자 소년들이 동네를 다니며 외쳤다. “우리가 교회 유리창을 깨뜨린 소년들입니다. 그런데 웰스 목사님과 교인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도소를 가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을 만나보세요. 이 교회야말로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소년들은 마치 전도특공대가 된 것처럼 이 소식을 알렸고 교회가 부흥되기 시작했다.
4. 나는 바보가 되지 않겠다
성경에는 어리석은 바보도 있지만 위대한 바보도 있다. 예수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어른이라는 체면을 버리고 나무 위로 올라갔던 삭개오, 예수님이 오늘 네 집에 유숙하리라고 하자 기뻐하며 영접한 후 자기의 재산을 반 떼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는 삭개오. 체면과 재물 모우기 대회를 하는 듯한 현대인들은 삭개오를 보고 어리석다고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삭개오를 향하여 잘했다고 손뼉을 쳐 줄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기회를 잘 포착하고, 주어진 말씀을 잘 활용하여 큰 축복을 받은 위대한 인물들이 나오고 있다.
1. 한번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와 자기 식구를 구원한 노아. 하나님의 말씀을 잠시 간직하기도 어려운데 약 120여 년 동안 많은 사람의 비난과 조롱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믿고 방주를 만든 노아는 성경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위대한 의인이었다.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바보로 보였을지라도 끝까지 하나님 말씀을 믿어준 노아,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고 하셨으며, 후세 사람들도 노아의 행위를 위대하였다고 인정하고 있다. 만일 우리에게 이런 명령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당신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셨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신다.
♬ ❶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후렴 :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❷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것 하나 주의 손길 안미친것 전혀 없네
2. 부지중에 손님을 대접하여 큰 축복을 받은 이들(창 18:1-15, 왕상 17:8-16)
아브라함은 자식을 얻기 위해 수많은 날을 기다렸고 많은 기도도 하였다. 물론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여러번이었지만 그러나 약속은 쉽사리 오지 않았다. 기도 중에, 환상 중에, 꿈을 통하여 언제 주시겠다는 보장은 받지 못한 아브라함이었다. 오랜 기간 마음이 흩어질만도 한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에 천사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아브라함이 거하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나타나셨다. 실망에 차서 아무 일도 하기 싫은 아브라함이었겠지만 그는 부지중에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때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로 임하게 되어 아브라함은 그로부터 1년 뒤에 자식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자를 돌보시고 축복하시지만 특별한 은혜를 내리실 때는 반드시 어떤 계기를 만들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멸망할 이방인의 성읍인 여리고 성에서 하나님을 찾은 라합을 그냥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정탐꾼을 숨겨주는 수고 끝에 주셨으며, 또 아랍의 아내인 이세 벨의 고향인 시돈 땅 사를 밧에서 홀로 신앙생활을 하였던 한 과부를 흉년 중에 그냥 먹이시지 않고 하나님의 종 엘리야 선지자를 공궤하도록 명령하신 후에 순종 여부를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자기에게 주어진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들의 믿음을 본받자.
3. 축복을 사모하되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야곱(창 25:29-34, 27:1-38, 32:22-32)
태어날 때부터 에서에게 장자의 자리를 빼앗긴 야곱은 기어코 장자의 축복을 받으리라는 결심하에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형 에서의 굶주려 허기짐을 보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아버지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았으며,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올 때 형 에서의 복수를 두려워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천사까지 보내셨다. 야곱은 천사와 더불어 밤새도록 씨름을 하여 끝내는 복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의인이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매사를 돕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 구할 것은 구해야 하며, 지킬 것은 지켜야한다. 또 야곱처럼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번 잃은 기회를 회복한다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다시 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야곱의 행위는 오늘도 어떻게 해야 복을 받는지에 대한 본이 된다.
4.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시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포기한 룻 그러나 그녀를 저버리지 않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동서 오르바를 따라 자기 고향, 자기 백성, 자기 신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희망도 없고 소득도 없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시기로 결정한 룻의 결심은 결코 하루만의 결정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보아왔던 하나님의 역사와 신앙생활 그리고 모압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모압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들을 비교하여 하나님을 따르기로 다짐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자신을 염려하는 배려도 있어 마음이 흔들릴만도 하였지만 굳은 결심을 보여 이것이 후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축복과 사랑을 받는 귀한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기쁘게 여긴 그녀의 마음 자세는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본보기가 된다(룻 1:16-17).
5. 끔찍한 범죄를 하였지만, 회개와 더불어 경건한 생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밧세바
밧세바와 다윗의 범죄는 단순한 간통 이상의 끔찍한 행위였다. 다윗의 처지에서 보면 목숨까지 바칠 충성된 부하를 의도적으로 희생시킨 파렴치한 행위였고, 밧세바 처지에서 보면 충실한 남편을 기만하고 다윗의 범죄가 진행되는 동안 오히려 남편의 희생을 빌미로 자신의 부귀영화를 꿈꾸는 추악한 탐욕을 노출시켰다. 이들의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었지만 회개를 통해 자신들이 범한 잘못을 미래의 길잡이로 삼아 보다 착실한 삶을 살아갔다. 이들 사이에서 난 첫 번째 자식이 죽는 슬픔을 맛보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축복하사 솔로몬을 주셨다(삼하 12:24-25). 후일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밧세바는 경건하고 사려있게 아들을 양육하여 엄격한 교훈을 하였다(잠 22:6). 특히 전승에 의하면 잠언 31편은 밧세바가 바로의 딸과 결혼하려는 솔로몬을 훈계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잘못을 돌이켜 경건의 소재로 삼으므로 큰 축복을 받은 좋은 본이 되었다.
6.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부끄럽지 않게 한 욥. 그 결과 배의 축복을 받은 인내의 대명사 욥(욥 1-2장, 약 5:10-11)
하나님은 욥의 신앙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그에게 축복하신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셨다. 사단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사단의 이런저런 시험도 있었으나 욥은 하나님을 배신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설령 자신마저 고통 속에 죽어갈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신앙을 지키겠다고 결심하였다. 이것은 극심한 인내를 요구하는 것으로 웬만한 신앙인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욥은 잘 감당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자신 있게 더 욥을 축복하셨다. 욥을 축복하셨던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은 욥은 절대 부끄럽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이며, 우리 모두의 갈망일 것이다.
7. 주제파악을 하여 십자가만을 자랑한 사도 바울(빌 3:7-11, 고전 15:9, 엡 3:8, 딤전 1:15)
빌 3:7-11 / 그러나 한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모조리 내던졌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입니다. 8)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9) … 10)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던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11)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이 가지는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고전 15:9 / 나는 모든 사도 중에서 가장 보잘 것없는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던 인물이니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엡 3:8 /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딤전 1:15-16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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