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자들의 김대건 신부 묘소 순례 (순교자 현양운동의 시작 )
천주교가 금지되고 탄압받던 시기에 치명한 사제나 신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신자들은 서로 돈을 모으고 힘을 합쳐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수습하고 안전한 곳인 미리내에 안장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은 스스로 김 신부의 묘소를 찾아가 그의 신앙과 희생을 기리면서 그의 뒤를 따라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김 막달레나[29회차]는 미리내에 있는 김 신부의 묘소에 가 보았다고 진술했으며, 신치관에게 미리내 안장 소식을 들은 오 바실리오[70회차]는 여러 번 미리내를 찾아가 김 신부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러한 신자들의 모습은 ‘순교자 현양운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기해 · 병오 순교자 시복재판록』에 나오는 신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활동을 정리해 보았다. 동료 선교사제의 서한이나 관찬 자료와 함께 신자들의 증언은 김대건 신부의 시복시성 추진 과정에서 핵심 자료로 활용되었다. 현재에도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기해 · 병오 순교자들과 그 시대의 교회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복재판록’의 분석과 연구가 필수적이다. 교회사의 저변 확대와 연구 심화를 위해 ‘시복재판록’을 비롯한 교회사 자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 이 글은 수원교회사연구소의 소식지인 『상교우서』 71~77호(2021년 4월~10월호)에 연재된 내용을 수정 · 정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