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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章 마음을 두 개로 나누라! 1 고도(古都) 악양(岳陽). 중원천하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이다. 수 차례 왕조를 거치면서 번창을 거듭한 결과, 중원에서 가장 풍족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 는 곳이다. 고루거각들이 거리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문물이 번성하기에 늘 사람들로 북적거 린다. 새벽 안개가 걷힐 무렵, 성내(城內)로 걸음을 옮기는 죽립 흑의인 하나가 있었다. 먼길을 달 린 듯 옷자락 아래 흙먼지가 약간 묻은 차림인데, 숨소리는 오랫동안 푹 쉬고 일어선 사람 같이 편안하기만 했다. 내공이 반박귀진의 상태에 이르렀는지라 아무리 오래 달린다 해도 지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겠군." 악양 안으로 걸어드는 사람은 바로 상관안이었다. 상관안은 동정호(洞庭湖) 둘레에 형성되어 있는 악양의 저잣거리를 보며 걷다가 누각 하나 를 보게 되었다. 동정호를 바라볼 수 있게 세워져 있는 고루(高樓), 하늘과 땅을 나누었다는 동정대호와 함께 이름을 날리고 있는 오랜 유적지 악양루(岳陽樓)가 그것이었다. 악양루 근처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유서 깊은 고적지인지라 사시사철, 그리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유람객들이 모여드는 곳 이 악양루가 아닌가? 그런데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대막쌍마군이 나를 속인 것은 아닐 텐데…….' 아버지를 보고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악양으로 달려온 상관안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 없다는 것이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었다. 상관안은 악양루를 바라보고 가다가 약양루 위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굳은 듯 서 있는 사람 다섯, 모두 붉은 옷을 입고 있어 붉은 기둥으로 인해 얼핏 발견되지 않았던 홍의인들은 오행(五行) 방위를 이루고 서 있었다. 그들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아 목석으로 깎은 사람들 같이 보였는데, 그들이 서 있는 가 운데 장창(長槍) 두 개가 악양루의 나무 바닥에 박혀 있었다. 창 끝, 두 개의 사람 머리가 피를 줄줄 흘리고 창대를 몸통으로 삼아 한 폭 지옥도 같은 참 경을 만들고 있었다. 한 사람의 머리통은 아주 컸고, 한 사람의 머리통은 반쯤 부서져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다. 사람 머리가 효시되어 있다는 것이 상관안을 경악하게 했다. '수급 두 개가 있다니… 홍의인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상관안은 서둘러 악양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갈대숲 근처를 지날 때였다. "주… 주인!" 유난히 울창한 갈대밭 안에서 가느다란 신음성이 들려 왔다. "아니?" 상관안은 흠칫 놀라 갈대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갈대를 헤치며 핏물로 범벅이 된 금포노파가 기어 나왔다. 그녀의 두 다리는 싹뚝 잘려 나간 후였다. 흉칙한 얼굴에 핏물을 뒤집어쓴 금포노파, 그녀는 바로 실혼여마였다. "이… 이게 어인 일이오?" 상관안이 기절초풍 놀랄 때, 실혼여마가 엉금엉금 기던 몸을 푹 눕히며 더듬더듬 말했다. "주… 주인이 오시리라 믿고 숨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 어인 일이오?" 상관안이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그… 그 계집이 왔었습니다." 실혼여마가 인상을 찡그리며 가슴팍을 매만졌다. 그녀의 옷자락에 검은 장인 하나가 남아 있었다. 불에 달구어진 인두로 지진 듯한 자국으로, 사람과 옷을 한꺼번에 태운 장인이었다. 태양신장(太陽神掌)이 아니라면 실혼여마의 강철 같은 몸뚱이를 이렇듯 태우지 못했을 것이 다. "천… 천녀제가 나타났었습니다." "뭐… 뭐라고?" 상관안의 눈에서 신광이 폭사되었다. "그… 그 계집을 배반하고 주인을 따랐던… 대… 대막의 쌍마군(雙魔君)이 사력을 다해 막 다가 역부족으로 죽었고, 한… 한세랑객 큰주인께서 붙잡히셨습니다. 저… 저는 이… 이 소 식을 전하기 위해 분루를 머금고 도망치다가… 그… 그년의 장력에 당하고 말았습니다." 실혼여마는 거기까지 말한 후 정신을 잃었다. 상관안은 눈에서 피눈물을 떨구고 있다가 품안에서 무림화타가 만든 구령단 한 알을 꺼내 실혼여마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혈도에 손바닥을 대고 추궁과혈(推宮過穴)해 주고 있을 때였다. "히히히……!" "기다리고 있던 보람이 있군." "실혼여마가 멀리 도망간 것이 아니라 다친 채 동정호 속으로 숨어 들어갔었군. 둘 다 잡게 되었으니……." 악양루 위에 버티고 서 있던 다섯 홍의인들이 거의 동시에 상관안 주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의 옷자락에 금빛 수실로 수놓아진 글씨가 있었다. <혈탑제일호법(血塔第一護法)> 그들의 수는 다섯, 모두 비슷한 생김새였고 나이는 백 살도 넘어 보였다. 얼굴이 길쭉하고 눈알이 유난히 큰 것이 똑같은 다섯 홍의노인은 한날 한시에 어머니 뱃속 에서 태어난 쌍둥이들이었다. 청해오룡(靑海五龍)이라 불리는 자들. 청해 근처에서는 이미 신으로 불리는 자들이다. 이들은 대막쌍마군이 천녀교를 배반하고 흑백쌍괴가 상관안에게 죽은 후 천녀교의 제일호법 이 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상관안이 누구인지 아는 듯 경계하는 표정을 하고 다짜고짜 오행진(五行陣)을 일으 켰다. 휘류류륭-! 붉은 담이 만들어지며 회오리가 일어났다. "옥면혈마(玉面血魔)라는 것을 안다!" "네 부하들은 죽거나 붙잡혔다. 태상교주께서 너의 목에 황금 백만 냥을 걸었다." "네놈과 항마령주만 없어지면 천녀교는 강적이 없게 된다. 우리 다섯 늙은이들은 네 수급으 로 천녀교에 들어 이제껏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불명예를 말끔히 씻을 것이다." 청해오룡이 득의해 외치며 오행진을 압축시킬 때였다. "우……!" 상관안이 돌연 고개를 쳐들고 장소성을 질러 냈다. 사자후(獅子吼)를 능가하는 장소성이 뿌려지자, 악양루가 흔들거리고 동정호의 물결이 거세 게 일어났다. 꽈르르릉-! 잠잠하던 동정호의 물결이 성난 파도로 화하는 가운데 청해오룡이 일제히 사색이 되어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그제야 상관안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피… 피하자." "아우들, 모두 물러나세." 청해오룡이 나타난 것을 후회하고 뒷걸음질칠 때, 실혼여마 곁에 앉아 장소성을 질러 내던 상관안이 앉은 채 대비신검(大悲神劍)을 뽑아 위로 집어던졌다. "우……!" 장소성은 그대로 계속되었다. 그리고 대비신검이 상관안의 손을 떠나 십 장 날아올랐다가 갑자기 은빛 광막(光幕)으로 검신을 휘감으며 곤두박질쳐 떨어져 내렸다. "어… 어검술(馭劍術)이다." "피해라!" 청해오룡이 기절초풍 놀라 뿔뿔이 흩어지려 했다. 그러나 사신(死神)의 손을 떠난 대비신검 은 이미 그들의 몸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츠츳-! 흰빛이 뿌려지더니 피보라가 일어났다. 청해오룡의 하나가 목을 잃고 뒤로 나뒹구는 직후, 상관안이 손을 내저었다가 거두는 듯하 자 대비신검이 더욱 빨리 움직여 나머지 넷을 노려 갔다. 우르르르릉-! 대비신검이 번갯불로 화한 듯, 청해사룡은 해양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속에서 냉 기가 목 근처를 스침을 느꼈다. "아악!" "크윽!" 피보라가 네 군데에서 뿌려지며 대비신검이 광막 속에서 나타나며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도 잠깐. "돌아와라!" 상관안이 손을 앞으로 긋는 듯하자, 대비신검이 다시 빠르게 날아 그의 손아귀 안으로 쥐어 졌다. 대비신검의 날에는 깨알만한 흠집도 없었다. 그것이 방금 절세고수 다섯을 한순간에 시체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믿을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천녀제도 저 꼴로 만들리라." 상관안은 청해오룡의 시신을 바라보다가 실혼여마의 몸뚱이를 들쳐업고 악양루 위로 오르는 데까지 단 두 번 발을 땅에 댔다. 악양루를 혈향(血香)에 젖게 하고 있는 두 개의 수급은 상관안이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의 목 윗부분이었다. 천왜수(天倭 ), 그리고 패천마제(覇天魔帝)가 그들이었다. 그들의 눈은 아직 감기어져 있지 않았다. 그들의 수급 아래, 벽공지력으로 바닥에 세 치 깊이로 새겨 넣은 오만무도한 글귀가 있었다. <천녀제천하일통(天女帝天下一統). 천녀교의 반도(叛徒)들은 모두 이렇게 된다. 혈탑성회에서 천녀제가 천하제일인이 되는 의식이 있으리라. 그 자리, 강호를 어지럽히던 삼 살일령의 수급이 바쳐지리라.> 세 치 깊이를 갖고 있는 글씨를 쓴 사람이 누구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천녀제라……." 상관안의 눈에서 원독에 찬 눈빛이 뻗쳐 나왔다. 이 순간, 천도봉 위로 가 천녀제와 겨루어 보고 싶을 뿐이었다. 태극선강을 살기를 갖고 시전할 수만 있다면, 글을 보는 즉시 몸을 날려 황산으로 달려갔으 리라. "크으으……!" 상관안은 대막쌍마군의 수급을 내려 겉옷에 싸며 피눈물을 흘렸다. 과거 그들을 경시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죽은 모습을 보자 그들의 충성심이 울 컥울컥 치밀어 눈에서 피눈물을 쏟아 내게 하는 것이었다. "복수를 하겠소." 상관안은 천녀제를 죽이리라 다시 맹세했다. 자신의 무공이 모자란다면 동귀어진(同歸於眞)해서라도 죽이리라. 맹세하던 상관안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실혼여마 쪽을 바라봤다. 실혼여마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두 다리를 잃은 채 물 속에 숨어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실혼여 마의 충성심이 다시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아……!" 상관안은 자신이 늦게 온 것이 천추의 한이라 여기며 실혼여마의 몸을 받쳐 들려 했다. 순 간. "책이 떨어졌군." 상관안은 실혼여마의 옷자락에서 흘러나와 그녀의 허리께 근처에 떨어져 있는 오래된 책 하 나를 주워 들게 되었다. 실혼여마가 갖고 다니던 책인데, 실혼여마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 다. 표지 위. <천녀절기(天女絶技)> 이런 네 자 글씨가 적혀 있었다. "천녀절기라고? 이… 이것이 왜 실혼여마의 품안에 있단 말인가?" 상관안은 깜짝 놀라 겉장을 열어 봤다. <세상을 원망하는 여인 천녀(天女)가 절기를 전해 후세(後世) 여인들의 천하가 있게 하겠다. 여기 남기는 절기는 모두 아홉 가지이다. 이것을 익혀 천녀지한(天女之恨)을 풀라.> 그것은 일천 년 전에 만들어진 비급이었다. 아주 원통한 일에 접해 세상을 한탄하고 살던 한 명의 가련한 여인이 평생 모은 절기 아홉 가지가 그 안에 수록되어 있었다. 봉황단천검(鳳凰斷天劍)과 한천팔검(恨天八劍)이라는 두 가지 지극히 악독한 검법, 흑마장(黑魔掌)과 적양마기공(赤陽魔 功)이라는 두 가지 지극히 무서운 마장법(魔掌法), 귀조신법(鬼鳥身法)이라는 절묘한 신법 한 가지, 섬뢰지공(閃雷指功), 패도적인 절기인 구혼수(拘魂手)와 귀령진기(鬼靈眞氣), 그리고 한 가지 기이한 내공심법(內功心法)이 마지막 장에 적혀 있었다. <쌍심마법(雙心魔法).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리라. 두 사람은 네 사람이 되고, 이리하여 한(恨)을 천하에서 뿌리 뽑으리라.> 쌍심마법이라는 것은 천년절기라는 비급 안에서 가장 신비한 무공이었다. 그 구결은 지극히 난해해 상관안도 한 번 보아 알기 힘든 정도였다. 구결의 끝. <삼백 년 공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시전할 수 없다. 익히기 아주 난해하나, 한 번 익히면 천하무적이 된다. 오른손으로 검법을, 왼손으로 장법을 시전할 수 있게 되고, 열 손가락으로 열 가지 지공을 시전할 수 있기도 하다.> 이런 주석이 달려 있었다. '이제 보았더니, 도가(道家)의 양심신공(兩心神功)과 비슷한 것이군. 그러나 훨씬 오묘하다. 도가 양심신공이 오래 전에 실전되어 비교해 볼 수는 없으나, 가히 세상에서 제일 신비한 구결이라 할 수 있다. 실혼여마가 이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의 부하가 된 이유는, 자질이 없어 이것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관안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비급을 접어 실혼여마의 품안으로 밀어넣으려 했다. 그때 딱딱한 것 하나가 손가락에 만져졌다. 차가운 기운을 흘려내는 옥(玉)으로 만들어진 동그란 옥패 하나가 손가락에 만져진 것이었 다. 그 끝은 사슬이 걸려 있었다. 상관안이 그것을 꺼내 볼까 할 때. "으음……!" 실혼여마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자, 그것이 저절로 그녀의 품안에서 빠져 나왔다. 땅그랑-! 맑은 소리를 내며 나무 바닥에 구르는 것은 손바닥 반만한 크기를 갖고 있는 초록색 냉옥패 (冷玉 )였다. <천녀령(天女令)> 세 자 글씨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천… 천녀령이라니? 설… 설마 실혼여마도 과거 천녀교의 여인이었단 말인가?" 상관안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으음……!" 그때 잠들어 있던 실혼여마가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나 상관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표정을 경직시켰다. 벌레 씹은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은 천하에서 가장 추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 얼굴에다가 괴로 운 표정까지 지으니, 더욱 추악하게만 보였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상관안은 무림인이라면 남에게 알리기 싫은 한 가지 사연을 갖고 있는 법이리라 여기며 아 무 말 없이 천녀령을 돌려줬다. "주인!" 실혼여마가 드러누운 채 눈을 꾹 감고 크게 외쳤다. "어… 어이해 노신에게 자초지종을 묻지 않으시오?" 질그릇 깨지는 소리같이 듣기 역겨웠으나 진정에 찬 소리였다. "말하기 싫은 것일 것 같아 묻지 않는 것이오." 상관안이 말하자. "아, 이… 엄청난 비밀을 갖고 있기 거북하오. 이… 이제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소. 무… 무 공을 잃어 노신의 힘으로는 복수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 "……." "노… 노신이 누구인지 아시오?" 실혼여마가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입술을 질끈 깨물며 상관안 의 손가락 끝에 걸려 있는 천녀령을 가리켰다. "저… 저것은 노신이 만든 물건이오… 노… 노신은… 바로 천녀제라 불렸던 여인이오!" "어… 어인 말이오?" 상관안은 황망한 표정이 되었다. 실혼여마가 천녀제라니? "노신이 진짜 천녀제란 말이오. 지금 천녀제라 행세하고 있는 계집은 가짜요. 과거 노신의 제자였던 계집이오. 그 계집이 노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소. 심지어 얼굴 가죽까지… 노신 이 빼앗기지 않은 것이라고는, 천녀절기 비급 하나와 노신의 더럽고 추악한 몸뚱이뿐이오." 실혼여마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정신을 잃었다. "천… 천녀제가 가짜라고?" 상관안의 얼굴이 백지같이 하얗게 물들었다. '천녀제가 가짜라고? 실혼여마가 진짜 천녀제라고?' 세상이 뒤죽박죽으로 보였다. 천녀제 세 글자에 원한의 칼을 갈던 상관안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녀제가 뒤바뀌었을 줄이야? 진짜와 가짜가 있었고, 그중 진짜가 상관안 자신의 부하일 줄이야? 상관안은 자신이 천녀제라 말하고 정신을 잃어버린 실혼여마의 몸뚱이를 내려다보다가 주위 가 시끄러워짐을 알게 되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많은 사람들이 악양루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앞장 서 있는 사람은 관병 (官兵)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무림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상관안은 그들 있는 곳을 힐끗 바라보다가 실혼여마의 몸뚱이를 들쳐업고 동정호 있는 쪽으 로 몸을 날렸다. 갈매기가 수면을 차고 나는 듯한 광경이 펄쳐졌다. 상관안은 실혼여마의 몸뚱이를 지푸라기 하나같이 가볍게 들고 중인의 시야를 피해 아주 멀 리 사라져 갔다. 2 정오경, 대별산 기슭으로 치달리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인데, 한 사람은 정신을 잃고 업혀 있는 중이었다. 혼절한 사람의 몸뚱이를 가볍게 업어 들고 몸을 날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상관안이 었다. '난음이가 기다리겠군.' 상관안은 죽립을 벗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실혼여마에게 들은 몇 마디 말이 그를 괴롭혔고, 대막쌍마군이 죽었고, 한세랑객 이능운이 혈탑으로 잡혀 갔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상관안은 번놔를 떨치려는 듯 속도를 배가시켰다. 그가 유성이 되어 산야를 스쳐 지나갈 때였다. "주… 주인!" 그의 등에 업혀 있던 실혼여마가 아주 희미한 말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대로 계시오." 상관안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말했다. "아아, 노… 노신을 내려놔 주시오. 노… 노신은 일각도 채 버틸 수 없소. 심중의 모든 비밀 을 말하고, 이곳 아름다운 곳에서 뼈를 묻고 싶소." "죽다니?" 상관안은 놀라 고개를 돌리다가 더 크게 놀랬다. 실혼여마의 입 근처가 피투성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눈구멍과 코, 그리고 양 귓구멍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그 계집은 노신이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음양무상신공을 완벽 이상으로 익혔소. 노… 노신은 살 수 없소. 살… 살 수 있다 해도 죽음을 택할 것이오. 내… 내려놔 주시구려." "아……!" 상관안은 몸을 세우며 그녀의 몸뚱이를 풀섶 위에 눕혀 주었다. 실혼여마가 눈을 찡그린 채 천천히 말해 나갔다. "노신이 천녀제라는 말은 거짓이 아닌 사실이오. 노신은… 과거 중원무성에게 패해 은거에 들었었소. 중원무성을 꺾을 절기를 익히고자 했던 것이오." "으음……!" 상관안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노신은… 은거하던 중… 음양진경(陰陽眞經)이라는 것과 스무 방울의 음양혈로(陰陽血露)를 얻는 기연을 만났소." "아……!" "그… 그러던 중이었소. 노신은 주인이 이미 알고 있는… 노… 노신을 그곳에 감금시켜 둔 전인을 발견하게 되었소." "그… 그 여인이 바로 지금의 천녀제로군요?" "그… 그렇소. 그 계집은 단방(檀芳)이라는……." "단… 단방? 그… 그러면……." 상관안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든 일이 꼬치에 꿰인 생선같이 쭉 연결되어 뇌 리에 떠올랐다. 천녀제가 무림제일기녀 단방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자, 몇 가지 미혹스러웠던 일이 쉽게 해결되었다. "단… 단방이라는 계집은… 원… 원래 착한 계집이었소." "……." "그… 그 계집이 악독하게 된 이유는, 사랑하던 천룡신협 상관위와 결혼하지 못하고 사도제 일인 이검엽이란 자와 결혼하게 되었기 때문이오." "그… 그런 일이……." "단… 단방은 그 일이 한이 되어 독심(毒心)을 먹었다가 우… 우연한 기회에 혼세인마(混世 人魔)의 비급을 찾게 되었소. 그리고… 마… 마성에 젖어 마인(魔人)이 되고 말았소." 들을수록 놀라운 일이었다. 진짜 천녀제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그… 그 계집은 자신의 사랑을 배반한 천룡신협의 아내를 죽이는 무서운 일을 저질렀소. 그…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천룡신협의 노여움을 사 천룡신협의 천룡대승강기에 격중되었고, 그러다가 노신의 눈에 뜨인 것이오. 노신은 그 계집의 자질을 귀히 여겨 전인으로 삼았는데, 결… 결국 배반당하게 된 것이오." "그럼 천녀제라는 지위와 음양진경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단 말씀이시오?" "그렇소. 그 계집은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소. 그리고 그렇게 붙잡아 두었던 것이오." "천녀교주라는 지위를 되찾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오?" "그…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소. 천… 천녀교는 과거의 천녀교가 아니오. 과거의 고수들은 다 없어지고……." 그녀의 말이 다시 그녀가 진짜 천녀제라는 것을 밝혔다. "노… 노신은 한을 풀기 위해 천녀제를 찾아다녔소. 아니, 단방이라는 반도를 찾아다녔던 것 이오." "……." "한… 한데, 단 일 초도 받아 내지 못하고 이런 꼴이 되었으니… 이… 이렇게 큰 한이 있다 한들 풀 수 없으니, 살아 있는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오. 주… 주인께 모든 것을 전하고 죽겠 으니, 노… 노신의 한을 풀어 주시오." 순간, 상관안의 눈에서 신광이 뿜어졌다. "죽지 않소!" "죽… 죽을 수밖에 없소. 음양무상신공에 당한 상세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소." 천녀제가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 있소." 상관안이 엷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그녀의 혼혈을 점했다. "흐음……!" 천녀제의 고개가 스르르 떨어졌다. "태극선강이 그것이오!" 상관안이 자신에게 말하며 두 손바닥을 한데 합했다. 순간, 수만 마리 벌이 떼를 이루어 날 때의 소리와 함께 두 손바닥 사이에서 신령한 흰 기 루가 일어났다. 그리고 상관안의 표정이 아주 장엄한 것으로 변화했다. 태극선강을 끌어올린 것이었다. 상관안은 태극선강의 기운을 십이 성 혼신의 힘으로 기울였다가 실혼여마의 가슴팍에 갖다 댔다. 내공의 소모를 생각하지 않는 구명의 수법이었다. 우르르릉-! 은은한 뇌성벽력과 함께 흰 기류가 더욱 짙어졌다. 상관안은 무념무상의 경지에 접어들었고, 그의 손바닥에서 일어나는 흰 기류가 두 사람의 몸을 뒤덮었다. 일각이 지났을까? 상관안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흰 기류 밖으로 들려 왔다. "단방이라는 계집이야말로 만악의 근본이다. 그 계집은 기필코 내 손 아래 쓰러질 것이다." 이게 웬일인가? 상관안은 지금 운기행공 중이지 않는가? 운기행공하는 가운데 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닌가? 그의 말소리가 끝난 직후. "아……!" 갑작스러운 탄성이 뒤이어졌다. 상관안 자신도 자신이 운기행공한 가운데 말을 했다는 데에서 놀라움을 느끼는 것에 틀림없 었다. 상관안은 눈을 번쩍 뜨고 있었다. 그것은 그로서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태극선강을 시전하는 가운데 눈을 뜨고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조금 전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분명 의식은 깨어 있었다. 태극선강을 일으켜 실혼여마를 구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 한 사실이었다. '어이된 일일까? 태극선강을 시전하는 가운데에서도 생각이 끊이지 않으니… 운기행공이라 는 것이 망아지경에서 하는 것인데…….' 상관안은 전전긍긍해 하다가 어디선가 경미한 파공성이 일어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스슥- 슥-! 그가 있는 곳을 향해 소리 죽여 다가서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수는 다섯이었다. "좋은 기회다." "저놈의 얼굴을 내가 알고 있다. 저놈은 옥면혈마라고 불리우는 놈이다. 여기서 저놈을 보게 되다니……." "으흐흐… 저놈의 목에 황금 백만 냥이 걸려 있으니, 우리들은 이제 부자가 된 것이나 다름 없다." "헤헤… 저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천 땅에서 태상교주께 죽은 흑의선협과 함께 본교의 가장 큰 적이다. 저놈을 잡게 된다면 큰 공을 세우는 것이 될 것이고, 백만 냥의 상금은 물 론이거니와 일약 당주(堂主) 지위로 오를 수 있다." 홍의인들 다섯이 다가서고 있었다. 그들은 상관안이 흰 기류로 몸을 뒤덮고 한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는 데 안심해 하며 어깨를 으쓱으쓱거렸다. "운기행공하고 있으니 반격할 수는 없다. 까딱하다가는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 것이니 ……." "으하하… 우리들이 무슨 복이 있어 이런 행운을 잡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헤헤… 꿈이 길면 좋지 않는 법! 어서 놈의 목을 잘라 내세. 여차하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도 있으니……." 다섯 명 중 성질 급한 자 하나가 등에 걸고 있던 귀두대도(鬼頭大刀)를 빼들고 상관안의 곁 으로 다가들었다. 슉-! 홍의인이 손을 내젓자, 허공에 검화가 뿌려졌다. "으헤헤……!" 홍의인은 형장(刑場)의 망나니같이 어깨춤을 추어 가며 귀두도를 흔들어 대다가 한순간 상 관안의 목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귀두도가 검화를 날리는 찰나였다. 두 손바닥을 실혼여마의 가슴에 대고 있던 상관안이 눈을 번쩍 뜨며 그중 왼손 하나를 떼어 홍의인 쪽으로 휘저었다. 꽝-! 벼락치는 소리와 피모래가 일어났다. 귀두도를 휘둘러 대던 자가 상관안의 손에서 일어난 흰 기류에 휘말리며 형체도 없이 사라 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귀신이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 네 명의 홍의인이 놀라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순간. "너희들만 도망가서는 의리 있는 행동이 될 수 없다. 함께 저승으로 가는 것이 의리를 지키 는 일이다!" 상관안이 냉랭히 말하며 왼손 네 손가락을 일제히 퉁겼다. 핑- 핑-! 네 줄기 지력이 허공을 갈랐다. 직후, 네 마디의 비명 소리가 합창되어 들리는 가운데 네 명 의 홍의인이 네 구의 시체가 되어 길게 눕혀졌다. 가슴과 등판에 오리알만한 구멍 하나씩을 가진 채. 상관안은 다섯 홍의인들을 찰나지간 저승으로 보낸 후, 다시 눈을 감고 태극선강 운용에 전 념했다. 그로부터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 되었겠군." 상관안이 천녀제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 중얼거렸다. 그는 천녀제가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자는 것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품안에서 천녀절기 비급 을 찾아 냈다. "이것이었다!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은……." 상관안은 손끝을 떨며 천녀절기 비급의 맨 마지막 장을 열었다. <쌍심마법(雙心魔法)> 그 이름 아래 수록되어 있는 구결이 바로 조금 전 무학(武學)의 상리를 깨는 일을 가능케 한 것이었다. 상관안은 어느 글이든 한 번 보면 외우고 마는 천하제일의 기재가 아닌가? 그는 악양루 위에서 천녀절기를 쓰윽 훑어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안의 내용을 모두 외우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현듯 떠오르며 기이한 일을 발생케 했던 것이다. "마음을 두 개로 쪼개게 되었으니……." 상관안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는 비급을 갑자기 내려놓고 두 손을 땅바닥에 대었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두 손을 일제히 놀렸다. 파팍-! 흙먼지가 일어나며 글씨가 파여졌다. 오른손에 의해서도 글씨가 쓰여졌고, 왼손에 의해서도 글씨가 쓰여졌다. 오른손에 의해 쓰여진 글씨는. <가짜 천녀제 단방을 이 손으로 죽이리라.> 그리고 왼손에 의해 쓰여진 글씨는. <태극선강으로 천녀제를 죽이리라. 마음을 언제나 밝게 하고, 그와 동시에 살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쌍심마법으로 한몸에 두 가지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태극선강을 일으킬 수 있는 자비심과 함께 살기를 갖는 것이다.> 상관안은 각기 다른 글을 써 놓은 후, 천녀제에 대고 절을 두 번 했다. "할머니는 나의 은인이시오. 내가 쌍심마법을 익혀 천녀제를 죽이게 된다면, 할머니는 무림 의 은인이 되는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과거 천녀제 시절에 지은 죄를 모두 다 씻었다 할 수 있는 것이오." 상관안은 중얼거린 후 천녀제를 등에 업고 훌쩍 날아올랐다. 휘익-! 그의 신법이 지극히 빨라졌다. 이전에 비해 사(四) 성(成) 정도 증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쌍심마법을 한 번 읽고 터득하게 되었을 줄이야… 이것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운명일 것 이다.' 상관안은 이제 어떤 마음 상태로도 태극선강을 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두 개 이상으로 나누어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너무도 기뻐 입이 찢어져라 벌리고 웃어도 시원치 않을 정도였다. 상관안은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아버지와 이 대숙, 그리고 무림화타가 기다리고 있을 무성 곡을 향해 몸을 날렸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