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번째 금강경 25장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汝等이 勿謂如來作是念호대 我當度衆生이라하라
須菩提야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實無有衆生如來度者니 相 - 마음에 쌓임(나가 없음, 형상으로 無)
若有衆生如來度者인댄 如來卽有我人衆生壽者니라
須菩提야 如來說有我者는 卽非有我어늘
而凡夫之人이 以爲有我라하나니라
須菩提야 凡夫者는 如來說卽非凡夫일새 是名凡夫니라
* 단어공부
凡夫 ~ 어리석은 사람. 평범하고 용렬한 사람. 어리석은 자.
어리석은 일반사람들. 무지한 어디에나 있는 흔한 사람들.
불교의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 평범한 인간.
아직 불도에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들. 미혹한 자.
성자(聖者)에 댓구 되는말.
* 해설
부처님께서는 고해에서 해매는 중생들을 위하여 출가를 하셨으며
득도 하시고 45년동안 수없는 법문으로 중생을 제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법문을 하신 바도 없고 중생을 제도한 바가 없다고 하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觀하여 봅니다.
첫째는 복을 짓고도 지었다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하고 그 상이 남아 있으면 악의 씨가 트기 때문에
상을 뗀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마음을 돌린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돌리면 상이 떨어지기 쉽지 않습니다.
물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고 그 물체나 빛이 사라지면
그 그림자도 없어지는 것이 진리인데
우리 중생들은 그림자가 남아 있어서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相이라고 합니다.
꿈속에 소유했던 것도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착각입니다.
다음은 성품자리에 합일하는 겁니다.
성품의 자리는 절대의 세계입니다. 법신의 자리입니다.
분별 이전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하는 자리입니다.
대소유무와 이시이해를 떠난 자리입니다.
부처와 중생도 없고 하고 안하고 함도 없습니다.
이 자리에 바탕하면 나와 남이 둘이 아니며
선악과 고락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도할 것은 무엇입니까.
* 부처와 중생의 관점
부처 – 중생이 따로 있지 않고 모두가 부처님이다.
현재의 내 모습은 변하는 것이라 생각
육도는 과정에 불과
영혼이 나
중생 – 부처와 중생을 구분하고 원래 부처님이 계신다고 생각
현재의 나의 모습은 영원할 거라는 생각
한번 육도에 떨어지면 영원한 거러 생각
육신이 나
원기 109년 7월 3일
제목; 음료수
일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정류장에는 한 가족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버스를 기다린다. 그 사람들의 손에는 시원한 커피가 들여있었다.
커피를 본 순간 옛 생각이 떠올랐다. 언젠가 커피를 들고 버스를 타려고 했더니 버스 기사가 못 탄다고 제지를 한다. 아마도 차가 흔들리면 커피를 쏟을까 봐 그러는 모양이다. 포장을 제대로 해서 들었는데도 안 된다고만 해서 차를 못 타고 내린 경험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커피를 들고선 버스를 못 탈 건데 하면서 말을 건넸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기사님 드릴 거라며 시큰둥하게 말한다. 어 기사에게 커피를 준다고 무슨 말이야 당황스럽다. 조금 있으니 버스가 도착했다. 아이가 버스에 오르면서 기사님에게 커피를 전달하니 자연스럽게 받는다. 아빠라고 부르는 걸 보니 가족인 것 같다.
내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버스에는 커피를 가지고 탈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아주머니를 위해서 미리 알려주려고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다.
금강경 공부를 하면서 예를 든 생각이 난다. 부산에서 대전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북쪽이라고 대답을 한다. 그런데 서울에서 대전이 어느 쪽에 있느냐고 한다면 우리 교무님이 틀림없이 북쪽에 있다고 가르쳐주셨다고 우기면 안 된다고 하였다. 부산에 있을 때는 대전이 북쪽이지만 서울에서는 남쪽에 있다. 어느 곳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우리 중생들은 한번 경험한 것을 전부인 줄 안다. 상황이 다르면 바뀔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자기의 경험에 사로잡혀 끝까지 위기기도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 하시고 고정 관념을 가지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 같다.
내가 아는 것이라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고 표현을 하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 경험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교무의 의견
언젠가 커피를 들고 버스를 타려는데 제지를 받으셨군요. 커피를 들고 버스를 타려는 사람을 보니 그때 생각이 나서 미리 알려주려고 말을 건넸는데 그 사람들은 기사님 가족이었고 애쓰시는 아버지를 위해 커피를 들고 탔네요.
무슨 일이든지 일관성은 있어야 합니다. 커피를 들고 버스를 못 타게 하려면 똑같이 제지를 하여야 하는데 가족이면 되고 일반인은 안 된다면 불평할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법은 공평하게 적용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상황은 언제나 똑같지 않습니다. 상황이 다르면 변역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살생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과수원을 하는 사람이 농약을 치지 않으면 과일을 수확할 수 없다고 하는데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하여 농약을 안 치면 어떻게 될까요.
일광성과 수시변역을 적절하게 적용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취사공부를 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었습니다. 일기 감사합니다.
수시변역(隨時變易) - 때에 따라 변화한다
세상에 절대 선(善)이 있을 수는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변화·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주역(周易)의 ‘수시변역(隨時變易)’이라는 말이나, 회남자(淮南子)의 ‘인시제의(因時制宜)’라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다.
원기 109년 7월 1일 월요일
경계 : 남편의 짜증
남편이 뒷목이 아프다고 주물러 달란다. 만져보니 정말 많이 뭉쳤다. 이 정도면 목이 안 돌아갈 정도로 아팠을 텐데... 좀 주물러 줬더니 많이 좋아? 라고 하며 덜 아프다고 살짝 웃는다. 그리고 표정과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아 그때 알았다 '많이 아팠구나! 그래서 짜증 내고 화도 내고 욕도 했구나
그런데 내가 인상을 쓰고 있으니 손봐달라고 못했었구나! 아이고 참 내가 그걸? 이제서야 알아차렸네' 넘 미안했다.
교무님 말씀대로 어떠한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했는데 이제야 그 말뜻을 알게 되었다. 내 멋대로 해석하는 그 못된 습관을 버리는 게 잘 안 된다.
마음공부란 마음을 금방 알아차리는 것이 시작인 것 같다.
교무의 의견
남편이 짜증 내서 불편하셨군요. 왜 짜증을 내는지 원인은 모르고 짜증 낸다고 탓을 하셨네요. 그런데 알고 보니 몸이 불편하니 불편함의 호소가 짜증인 것을 알게 되셨네요.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근원을 찾아가면 영혼에서 한마음이 일어나고 그 마음이 육근으로 전달이 되어 원인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즉 우리의 심신 작용이 인이라 하셨습니다. 이 인(因)이 씨앗이 되어 어디엔가 심어졌다가 움이 트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심지도 않고 거두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좋은 결과만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결과는 과정의 나타난 모습인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7월 2일
제목 : 불편하신 어머니
어머니가 퇴원하여 집에 오셨다. 몸 움직임도 불편하고 입맛도 없으니 식사도 잘 안 하시려고 한다. 그런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자니 화도 나고 짜증도 난다.
어머니에 대한 불편한 내 마음을 본다. 어머니로 인해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니 그렇다. 그 불편하고 힘든 마음 안에 결국은 내가 있음을 본다. 나와 남편의 애씀에 대해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도, 이렇게 좀 하면 좋을 텐데 왜 안되실까? 하는 안타까움도 오랫동안 내 안에 어머니에 대해 주착된 마음이 보인다. 모두가 분별하고 있는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구나 해진다.
타인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될 때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보고 초점을 나에게 돌려라! 하는 말씀을 읽으며 연마하니 그동안 이해가 안 되었던 어머니가 그대로 인정되어진다. 내가 힘들고 서운하고 짜증 나는 마음이 나는 것은 어머니가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본 것임이 알아진다.
경계를 따라 있어진 나의 마음을 보며 연마를 하는 것이 곧 나에게 들이는 불공이라 함을 깨닫게 되었다.
교무의 의견
불편하신 어머님을 모시게 되었네요. 몸이 불편하면 얼굴이 편안하지 않고 말도 편안하지 않게 되지요. 편안하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면 받아들이는 사람도 불편하게 되지요.
육조대사가 어느 절에 갔는데 행자 두 사람이 논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바람이 부니 깃발이 움직인다. 다른 한 사람은 깃발이 약해서 움직인다고 하면서 서로 주장을 하였다고 합니다. 바람이 부니 깃발이 움직인다는 말이 맞지요. 그러나 바람이 분다고 깃발이 다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두꺼운 천으로 만든 깃발은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경계 따라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경계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경계가 심해도 마음이 굳건한 사람은 경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의 주인은 나입니다. 외부의 경계가 내 마음을 맘대로 하도록 하는 것은 자주력이 없음입니다. 수양을 통하여 마음의 자주력을 세우고 경계 따라 흔들려도 주고 때로는 경계에 끌려가지 않기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