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장. 약품(우연히 발견된 예상 밖의 효과)
페니실린, 설파제, 세팔로스포린, 시클로스포린 등은 우연히 발견되었다. 대부분의 약도 세 렌디피티 또는 최소한 유사 세렌디피티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목적에 사 용되던 약이 전혀 엉뚱한, 때로는 대단히 중요한 목적에 효과가 있음이 나중에 발견된 경우 도 더러 있다. 이 장에서는 그런 타입의 발견의 예를 몇 가지 밝히기로 한다. 아스피린. 이 약은 무척 오랫동안 가장 많이 사용되던 약 중의 하나였으며 최근에 다시 그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처음에 아스피린은 내복용 살균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효과가 없다고 판명되었다. 그러나 귀중한 진통제와 해열제로 밝혀졌으며, 최근에는 마비를 방지하는 데 추천되고 있다. 조셉 리스터가 외과 수술용 살균제로 페놀을 처음 이용하게 된 직 후, 연구자들은 세균성 질환 환자의 내복용 약을 찾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살리실산이 합성되었으며, 그것이 체 내에서 페놀을 생산한다는 것이 알려져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해열의 효과는 있으나 열의 원인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구역질을 일으킨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 후 바이엘 사 의 화학자 페릭스 호프만이 살리실산의 개향형으로서 아세틸 유도체를 합성했더니 해열과 관절염의 통증을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으며 반갑지 않는 부작용도 적다는 것을 알았다. 아 스피린(aspirin)이라는 이름은 살리실산을 처음에 장미과의 조팝나무과(Spiraea)의 식물에서 얻은 데서 유래되고 있으며 접두어인 a는 아세틸을 뜻하여 붙여진 것이다. 1890년대에는 제약업계가 등장한 이래 아스피린은 다른 어떤 약보다도 많이 사용되어 왔 다. 심장발작예방효과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시험되지 않는 응용분야이지만, 이 미 미국에서는 연간 1800만톤의 아스피린이 생산되고 있으며 이것은 1인당 매년 약 300정에 해당된다. 정신병 치료제. 1950년대 이전, 정신병은 약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다. 정신분열증, 심 한 조울증이나 신경증(노이로제) 등의 환자는 정신병원에 감금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약 10년 가량 동안에 정신병에 치료하는 약이 개발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하는 희망을 갖 게 함으로써 정신병원은 사실상 텅텅 비게 되었다. 거의 모든 정신병 치료약의 발견에는 세 렌디피티가 얽혀있다. 클로로프로마진: 1940년대 후반, 프랑스의 정신외과 의사인 헴리라보리는 수술에 앞서 마취 보다도 먼저 환자를 안정시키기 위한 약을 찾았다. 수술 전의 불안에 의해서 환자의 체내에 히스타민이 방출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으므로 라보리는 항히스타민제가 이 목적에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라보리는 어느 제약회사로부터 프로메타진이라는 이름이 진정용 항히스타민제를 얻어서 사용해 보았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그는 좀더 강한 항히스타민테인 클로로프로마진(chlorpromazine)을 구했다. 라보리는 클로로프로마진에 의하 여 수술 전의 환자가 '평온한 행복감'을 갖게 되는 것에 강한 감명을 받고 그의 동료들에 게도 이 약을 사용할 것을 권했다. 다른 두 사람의 프랑스인 정신과 의사 장 드레와 피에르 드니케르는 이 약이 수술 직전의 외과 환자에게 유용할 뿐만 아니라 조울증 환자를 진정시키는 데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알았 다. 그들을 포함한 또다른 정신과 의사들이 1952년부터 1955년에 걸쳐 정신병 환자에게 이 약을 사용해 보았더니 정신분열증의 치료에 특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50년 후반, 클로로프로마진은 유럽과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약 10년만에 정 신분열증 환자는 그때까지 갇혀 있었던 보호시설의 완충벽으로 둘러싸인 방과 구속하는 옷 으로부터 해방되어 사회의 생산적인 일과 거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미 국에서는 주립 정신병원의 환자가 수십만 명이나 감소했으며, 정신장해자를 가정에서 가족 과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만든 사회의 정책변화도 강도가 심한 정신병 환자의 증상을 완화시 킬 수 있는 클로로프로마진의 효능 때문에 비로소 가능하게 된 것이다. 클로로프로마진의 사용은 정신질환의 약물치료에 있어서 두 번째 혁명의 계기가 되었다. 임상시험 결과 이 약을 대량으로 투여하면 파킨슨병(뇌질환의 후유증으로서 일어나는 신경 증상)과 유사한 증상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뇌의 운동기능을 관장하는 부분에 고 농도로 존재하는 신경 전달물진인 도파민(dopamine)은 파킨슨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뇌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뇌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도파민으로 변화시키는 화학물질 L-도파 를 주사하면 파킨스병 환자의 증상은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스웨덴의 약리학자 아비드 칼슨은 클로로프로마진과 같은 약이 정신분열증을 억제하는 것 은, 사실상 도파민 수용체를 막아냄으로써 뇌안에 도파민의 부족상태를 유발하기 때문이 아 닌가 하고 추측했다. 1975년 존스 흡킨즈연구소의 솔로몬 H. 스나이더 박사에 의해서 뇌안 의 도파민 수용체의 측정이 가능하게 되면서 클로로프로마진과 같은 항정신분열증 약의 치 료 효과가 도파민 수용체의 방응억제에 의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이 발견은 정신분열증 환 자의 뇌의 기본적 이상이 도파민이의 과잉생산이거나 도파민 수용체의 과민화에 의한 것임 을 시사한다. 이미프라민(Imipramine): 정신분열증에 대한 클로로프로마진의 세렌디피터적 성공은 화학 적으로 유사한 약을 다수 합성하여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들 중의 하나가 스위스의 제약회사인 가이기(Geigy)사에 의해서 합성된 이미프라민이었다. 롤랜드 쿤 박사는 이것이 정신분열증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안 후, 다른 정신질환에 실험해 보았다. 1957년 그 는 이 약이 클로로프로마진과 상반되는 약리 효과인 '항우울제'로서 훌륭하다고 보고했다. 리튬(Lithium): 항정신병약으로서의 리튬의 발견은 그야말로 있을 수 없을 뻔했던 일이었 다. 1940년대 말엽, 젊은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인 존 케이드는 조울증의 일종인 조병이 요 산의 대사 이상으로 인하여 발병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이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 해 그는 요산을 리튬염의 형으로 해서 탄산르튬과 함께 실험 동물에 주사하여 극적인 치료 효과를 관찰했다. 그는 이 발견을 오스트레일리아의 논문지에 보고했는데 1950년데 중엽까 지 그의 관찰 결과에 주목한 정신과 의사는 거의 없었다. 그 무렵 덴마크의 의사 모건스 쇼우가 케이드의 논문을 읽었다. 그는 케이드가 말한 화합 물을 조병 치료에 사용해 보았더니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이 약의 성분 중 요산 부 분은 유효성분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요산이 르튬염의 형태로 사용된 것이 치료 효과의 원인이었으며 다른 어떤 리튬염에서도 마찬가지로 효과가 있는 것을 알았다. 리튬염 따위는 흔해 빠진 것으로서 약으로서도 특허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제약회사는 임 상용으로서 대량 제조에 관계하기를 꺼려 했다. 리튬의 임상 사용을 더디게 한 또 다른 원 인은 리튬이온을 약으로서 대량으로 섭취하면 화학적으로 유사한 나트륨이온과 몸 안에서 경쟁하여 독성을 나타낼지도 모른다는 위험성이 예상되었기 떄문이었다. 그 결과 조울증을 억제하는 리튬의 효과가 발견된 지 20년 이상이 지난 1970년이 되어서야 겨우 리튬이 미국 정신과에서 치료에 받아들여졌다. 이 간단한 리튬이온은 조병의 치료용으 로서는 가장 효과가 있는 약제이지만 그 효과의 원인은 아직 해명되지 않고 있다. 리브륨(Librium)과 발리움(Valium): 화학 요법의 역사에 있어서 1960년은 중요한 해였다. 이 해에 발매된 두 가지 약은 사회의 각각 다른 명에서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새로운 진정제 시리즈의 첫 번째 약은 리브륨과 여성호르몬 경구피임약이다(피임약 필의 발견에 관 해서는 재20장 에 설명되어 있다). 1960년대에 가장 많이 처방된 리브륨은 1970년대가 되어 서 화학적으로 비슷한 성질인 발리움에게 그 수위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 두 가지의 진정 제가 개발된 사연은 유사 세렌디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호프만 라 로슈 사의 레오 스턴 바흐는 불안을 치료하는 약의 개발에 착수하고 있었다. 레오 스턴바흐는 1908년, 당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일부였으며 그 후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된 풀라반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약학의 석사와 박사학위의 폴란드의 크라쿠프대학 에서 받았다. 1940년에는 스위스 바젤에 있는 호프만 라 로슈 사의 연구소에서 일했으나 다 음해 미국 뉴저지 주 너틀리에 있는 연구소로 옮겼으며, 1946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 후 그는 1973년 의약품 화학 부장을 마지막으로 호프만 라 로슈 사를 퇴직했다. 1953년 스턴바흐 박사는 새로운 타입의 진정제를 개발할 것을 임명 받있다. 경쟁회사가 같 은 약을 개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성을 감소하기 위해 핑요한 화학물로는 어느 정도 합성의 연구 노력이 요구되면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물질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경제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화합물은 입수하기 쉬운 출발물질이어야 한다. 게다가 효과가 있는 약을 발견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화합물의 기본적인 분자구조가 다수의 유도체로 변환 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턴바흐는 크라쿠프대학에 있을 때 염료 합성의 출발물질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연구하였던 화합물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화합물군은 새로운 신경안정제로 앞서 말한 희망하는 바를 거의 만족시키고 있었다. 그 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스턴바흐가 합성한 이래 18년 동안이나 아무도 이와 관련된 어 떤 연구도 하지 않았었다). 합성은 쉬우며, 생물학적으로 알려진 몇 가지 화합물과 마찬가지 로 방향성 고리에 질소원자 하나가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요구되고 있는 진정효과가 없다고 밝혀졌다. 1957년 4월, 스턴바흐는 부하 연구원들에게 이 화합물군에 관한 연구를 끝내고 다른 타입 을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대청소를 하던 중 한 연구원이 2년 전에 합성되었으나 약 리 시험을 하지 않았던 화합물을 찾아내고 스턴바흐에게로 내밀었다. 그는 약리 시험을 해 보았자 어차피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여 희망을 포기하고 모든 사람의 관심 이 다른 타입의 화합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턴바흐가 매우 놀란 것은 이 소홀히 했던 화합물이 강력한 진정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런 진정효과도 보이지 않았던 화합물군과 화합적으로 닮았을 이 화합 물의 이상한 성질을 알아보기 위해 조사했더니 이 화합물은 그때까지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는 것을 알았다. 합성하는 동안에 예상 외의 분자내 전위반응이 일어나 전혀 다른 구조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잊고 있었던 화합물의 구조를 닮은 다른 화합물군 을 합성시켜 보았으나 원래의 것보다 효과가 큰 것은 하나도 찾지 못했다. 이어서 신중한 임상시험 후 이 '잊혀졌던 화합물'은 1960년에 리브륨이라는 상품명으로 발매되어 바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미 리브늄이 발매되기 이전에 호프만 라 로슈 사 의 연구자들은 리브늄이 체내에서 가수분해될 때 생기는 것으로 여겨지는 화합물이 동일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가수분해 화합물의 여러 유도체를 합성해 본 결과 그 중의 하나가 리브륨보다도 여러 가지 점에서 우수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새로운 약의 상품명은 발리움(일반명은 디아제팜)이라고 명명되었다. 1963년에 발매되어 신경안정제로 리 브륨과 교체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강력한 진정효과를 지닌 정신분열증 치료제인 클로로프로마진과 항우울제인 이미프라민이라는 두 가지 약이 서로 닮은 분자구조로 되어 있으면서도 거의 상반되는 약리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리브늄과 발리움도 닮았으나 똑같지는 않다(약으로서 유용한 것은 아니지만 강력한 강력한 항정신성 물질인 LSD의 우연한 발견에 대해서는 제20장에서 설명 했다.) 발리움이 발매된 이후 미국에서는 유사한 화학 구조의 약이 12종류 개발되어 판매되 고 있으며,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규제가 미국보다 엄하지 않는 점도 있고 하여 그 외 에도 21종류가 판매되고 있으나 리브늄과 발리움의 우연한 발견 후에는 진정제의 분야에서 기본적인 약리학적 진보는 없다. 부정맥 치료제(이것으로 충분한 수면을). 상품명 노보카인과 자일로카인(xylocaine)〔일반명 은 프로카인(procaine)과 리도카인(lidocaine)〕은 국소마취제로서 (예를 들면 치과 마취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1940년대에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심장부정맥 증상이 있는 개에게 전 신을 마취시킬 때 노보카인을 주사했더니 그 심장이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 였다. 이것이 마취과 의사에게 알려져 바로 그 효과를 사람에게 시험해 볼 기회가 생겼다. 미국 육군의 어느 흉부 센터에서는 급성심장혈관부전인 환자 몇 명에게 이를 시험하기로 결 정하였다. 이 선구적인 테스트는 찰스 버스테인 대령에 의하여 실시되어 1946년에 보고되었 다. 이와 같은 사람에 대한 최초의 테스트는 기능부전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경우에만 실 시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식이 있는 환자에 대한 노보카 인(novocaine) 주사는 결과적으로 마비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기 떄문에 항상 세심한 주의 가 요구된다. 그러나 심한 부정맥 증상이 진행 중인 마취상태의 환자에게 국부 마취제를 주사할 경우에 나쁜 영향은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심장 순환 개선이 관찰되었다. 1950년 에는 J.L. 사우스워즈와 그의 공동연구자들이 자일로카인이 뛰어난 항부정맥 효과가 있다는 임상적 증거를 제출했다. 그 이후 심장수술에 관련되는 국부마취약의 정맥주사는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어떤 목적을 위해 개발된 약이지만 전혀 다른 목적에 유용하다는 것이 우연히 발견된 명백한 예이다. 미녹시딜(머리카락도 깜짝 놀라다). 1980년 펜실바니아 주 브라인 모어의 자퍼코스터 박사는 38세된 남성의 고혈압을 미녹시딜(minoxidil)이라는 약으로 치료하고 있었는데 두피에 새로 운 털이 돋아났다는 것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지에 편지로 보고했다. 이 환자는 20세 때부터 거의 대머리 상태였다. 자퍼코스터이 편지나 그 후 나오기 시작한 다 른 보고는 먼저 피부과 의사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리고 곧 이어 이 뉴스가 번 지기 시작하자 일반 남성들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대머리는 많은 사 람들의 관심의 표적이며 그 치료법은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탐구되어 왔던 것이다. 피부과 의사 중에는 시카고의 일리노이 대학병원의 버지니아 피들러 와이스라는 여의사가 있었다. 그녀는 만일 이 약을 국소적으로 사용하면 혈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기타 반갑지 않은 부작용 없이 머리털을 성장 촉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미녹시딜의 정제를 분쇄해서 로션으로 만들어 3명의 환자 두피에 1일 2회씩 발라보았다. 그러자 수 주 일 후에 3명의 환자 중 2명의 머리에서 머리털이 돋아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피 들러 와이스 박사가 미녹시딜의 제조원인 어브존 사에 전화를 하자 거기에서도 이미 이 약 의 로션을 사용하여 예비적인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피들러 와이즈는 그 후 어브 존 사와 공동으로 대규모의 연구를 시작했다. 1984년에 보고된 논문에 의하면 48명의 환자 중 25명에게 새 털이 돋아났으나 미용상으로 만족할 만한 사람은 그 중 11명이었다. 그 외에 1987년까지 다수의 연구가 실시되었는데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 미녹시딜액은 탈보가 심한 모든 환자에게 전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이 약의 가장 유효한 사용 법은 환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머리카락을 유지하게 하며, 대머리가 되는 초기단계에서 회 복하는 것을 돕게 될 것이다. 이 약은 무한으로 사용되지 않으면 효과를 볼 수 없으며, 한편 장기간을 사용할 경우 피부의 안전성은 확인되어 있지 않다. 1987년 말까지 그 일반적인 사 용을 FDA(미국 식품 의약품국)로부터 인가받지 못하고 있으며 설령 인가가 된다 하더라도 의사의 처방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혈압의 치료약인 미녹시딜이 머리털의 발모를 촉진하는 것은 임상 시험에 의해서 증명된 셈이다. 'Clinical Pharmacy'(임상 약학)의 1987년 5월호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 었 다. "어느 환자가 이 요법에 양성 반응을 보일 것이가를 미리 알 수 있는 적당한 지침은 아 직 정해져 있지 않다. 아마도 가장 적당한 용매를 만들어 냄으로써 그 효율을 향상시킬 수 가 있겠으나 역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탈모치료에 있어서 미녹시 딜의 위치를 화고히 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인터페론(암과 관절염). 1955년, 아이잭스와 린덴만은 인터페론(interferon)이 바이러스 감염 에 대응하는 세포가 만들어 내는 단백질 및 당 단백질이며, 이것으로 넓은 범위의 바이러스 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새로운 타입의 항암제일 가능성 때문에 매스콤과 대 중 그리고 의학계의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순수한 물질의 적당량을 얻기가 곤란했기 때문에 인터페론의 임상 응요의 진보는 매우 더디었다. 몇 년 전에 처음으로 인간의 인터페론 유전자가 클로닝되어 사정은 극적으 로 변화했다. 1984년에 실시된 임상적인 암 치료의 실험도중에 우연한 관찰을 통해 인터페론 주사가 류 머티즘성 관절의 통증과 부기를 완하시킨다는 놀라운 이 사실이 발견되었다. 예비적인 연구 결과 일반적인 치료로는 도움받지 못했던 환자 중 3분의 2에게 이 호르몬이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만일 이 결과가 보다 넓고 일반적인 것으로 확인된다면, 유전자공학에 의해 대 량 생산된 인가 호르몬은 예상밖의 큰 시장이 될 것이다. 암 치료약이 관절염을 치료한다는 세렌디피티적 발견은 생물공학 회사인 바이오젠 사의 독 일 자회사 바이오페론 사에서 연구 중에 생긴 일이었다. 제스 루드닉 박사에 의하면 암과 류머티즘성 관절염 두 가지를 앓고 있는 환자 몇 사람이 관절염의 동통에 어느 정도 개선을 보였다고 한다. 회사의 간부는 처음에 회의적이었으나, 독일 국내에서 38명의 환자에게 테스 트했더니 1주일에 5회의 주사로 1주일에 2주일 동안에 28명은 관절염의 통증이 완화되었으 며, 또 몇 사람은 통증이 없어졌다. 그러나 여기서는 인터페론이 플라세보인지를 비교하는 검사가 더욱 필요하며, 이 호르몬이 단지 증상을 완화시키기만 하는 것인가 또는 원인인 관 절염이라는 병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가를 조사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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