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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보면서 … (2부)
2026년 8월 15일 / 누가복음 23:34 <성경은 현대어성경 사용>
3. 예수님을 닮은 스데반의 모습
예수님의 이 모습을 닮았던 사람도 있었으니 스데반이다. 그 역시 복음을 전하다가 돌로 침을 받아 순교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감동적이며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행 7:54-60 / [스데반의 순교] 유대인 지도자들은 스데반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부드득 갈았다. 55)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시는 예수의 모습이 보였다. 56) 그가 소리쳐 말하였다. `보시오! 하늘이 열리고 메시아이신 예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서 계십니다!' 57) 그러자 사람들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면서 스데반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58) 그러고는 돌로 쳐 죽이려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공증인들, 곧 사형 집행인들이 겉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놓았다. 59) 그러나 돌들이 우박처럼 날아오는 속에서 스데반은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다.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 말을 남긴 뒤 그는 눈을 감았다.
이렇게 말하면 ‘스데반은 스데반이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지 나야 뭐!’하며 뒷걸음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 5:44-45 /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45)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약 5:17-20 / 엘리야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18) 다시 비가 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자 비가 쏟아져서 초목이 다시 푸르게 되고 들의 곡식들이 자라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19)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더 이상 진리를 믿지 않게 되었을 때 누가 그의 마음을 돌이켜서 다시 진리를 깨닫게 해주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20) 그를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한 이 사람은 방황하던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고 또 그 사람이 저지른 많은 죄를 용서받게 하는 일을 해낸 것입니다.
스데반은 죽음의 자리에서 두 가지 기도를 드렸다(행 7:59-60). 자신의 영혼을 주 예수께 맡기고, 저들의 죄악을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기를 기도했다. 스데반 집사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철저하게 따랐다. 성령충만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스데반은 그 마지막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예수님처럼 자신을 돌로 치는 저들을 사랑하여 걱정했고,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스데반 집사가 이러한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초대교회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믿음의 사람 일곱 중의 한 사람이었다. 늘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했고, 땅의 것보다 하나님 나라를 삶의 목적으로 삼았고, 원수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삶이 죽음 앞에서조차 굴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나 자신과 더불어 모두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어떤지? 우리는 환난이나 시련을 겪으면 더욱 하나님을 찾는지? 이 땅에서 아무리 큰 화를 당해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 중에 기뻐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악한 일을 한 자들’을 위해 기도를 할 수 있는지?
우리도 스데반처럼 성령충만하여 늘 하나님만 의지하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섬기는 삶을 살자. 이런 삶을 사는 성도만이 스데반처럼 위기를 당해도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지킬 수 있으며 예수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도 스데반 못지않게 적나라하게 이스라엘의 어리석음과 죄를 지적하자 유대 백성들은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회개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7장에서 교만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리자 오히려 분노하여 스데반을 죽였다. 그러면 스데반은 타락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자극하면 자신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몰랐을까?
잠언 9:8 /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스데반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강하게 책망한 것은 자신의 목숨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귀한 일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비록 복음을 전하다 죽을지라도 자기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생명이 일어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스데반은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이러한 경우를 당할 때가 있다. 고난과 핍박이 뻔히 보이는 길을 가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가 있다. 그러할 때 스데반을 기억하라.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서 맞아주시는 영광을 받으시라.
우리도 언젠가는 일생을 마치게 된다. 그때 영의 눈이 열려 맞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설령 죽음이 내 눈앞에 있더라도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고, 우리를 맞아주시는 예수님을 뵈올 수 있기를 바란다. 스데반처럼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는 기도도 할 수 있기를 … .
스데반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지금도 우리에게 말한다. 언뜻 보기에 스데반은 너무나 허무한 죽음을 당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동족 유대인들을 전도하다가 설교를 채 마치기도 전에 돌에 맞아 죽었다. 또 스데반의 죽음 이후 예루살렘에서 큰 박해가 일어나서 여러 사람이 체포되고 옥에 갇히게 되었다(행 8:1, 3).
하지만 스데반의 죽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을 향해서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져 갔던 모든 과정에서 스데반의 죽음은 큰 역할을 하였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큰 핍박을 피하여 많은 그리스도인이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지역으로 흩어졌고,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때(행 8:4), 구브로와 다메섹과 안디옥에까지 복음이 전해져서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서 이방인들에게 미치게 되었다. 그렇게 세워진 안디옥교회는 바울의 1, 2, 3차 선교여행을 후원하는 교회가 되었다.
스데반의 죽음은 교회 역사 가운데에서 핍박받고 죽임을 당한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스데반은 복음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많은 성도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었고, 그들에게 큰 교훈과 모범을 주었다. 수많은 순교자가 죽어가면서 스데반의 죽음을 떠올렸을 것이다. 핍박 아래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서 스데반처럼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을 것이다.
4. 나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1.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구해야 한다.
아무리 큰 상처를 입고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해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의식을 품고 평생 살아가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다. 자신도 더 피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입은 피해만으로도 고통은 충분했다. 가해자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움켜쥐고 있는 동안 거꾸로 자신을 파괴하고 고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미 종결된 사건 때문에 계속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분노 에너지를 진취적인 일에 쏟아부어라. 그래서 행복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용서해 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도 죄사함을 얻게 하는 기도까지 해 주셨다. 우리가 믿음의 성도가 되려면 극한 상황 속에서, 용서해 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도 기도하며 용서해 주어야 한다. 성도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건한 모습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사실 용서는 쉽지 않다. 인간의 의지나 결단으로는 용서가 잘 안 된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도하면 문제해결과 응답 이전에 내가 변하고, 내게 용서와 사랑이 생긴다.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아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미운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기도해서 용서하는 마음이 생길 때 내 마음에 하늘로부터 오는 평안이 임하고 나를 얽어맨 질병과 저주의 사슬이 풀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 자체도 힘든 세상에 원수같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자체가 모순인 것 같다. 이런 요구는 성인(聖人)에게나 통할 이야기같다. 그러나 아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셨고 이를 위해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되 간청하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44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용서는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선물이다.
눅 11:5-8 / 예수께서는 기도에 대한 것을 더 많이 가르쳐 주시면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한밤중에 그 친구에게 가서 ‘여보게, 떡 세 덩이만 꾸어 주게. 친구가 여행 중에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먹으라고 내놓을 것이 없어 왔네.’ 하고 말하면 7) 그 친구는 침실에서 큰소리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제발 나를 귀찮게 하지 말게. 문은 이미 다 잠가 놓았고 우리는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네. 그러니 지금은 자네에게 어떻게 해줄 수 없네.’ 8) 그러나 내 말을 잘 들으라. 그가 친구라는 이유로는 일어나서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 그 간곡히 조르는 것 때문에 일어나 그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눅 11:9-13 / 기도도 이와 같다. 구하라, 주실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어주실 것이다. 10)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아버지된 사람으로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겠느냐? 12) 아들이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비록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불쌍히 여기기 위해 기도하자. 기도하면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기도하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단점은 보이지 않고 이해와 더불어 장점이 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이다. 능력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능력이다.
용서는 내 힘으로 불가능하다. 내 의지나 내 노력으로 불가능하다. 용서하는 마음은 기도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이다. 누가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구하는 자가 용서할 수 있다. 용서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2. 인간의 연약성을 깨닫고 남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이는 살 수 없는 포도나무의 가지와 같은 존재이다.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에는 많은 열매를 맺지만 그렇지 않으면 말라 불에 던져질 뿐이다.
타락한 죄인은 죄짓지 않고 사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연약한 존재다. 자신들이 범하는 죄조차 죄인 줄 모르는 실정이다. 그래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예수님이 기도하실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용서의 기도는 원문에 살펴보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 주어라.’라고 하셨다. 계속 죄를 범하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또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시면서 인간의 연약성을 이해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전부 말에 실수가 있고, 행동에 실수가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보았을 때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처럼 율법의 잣대로만 정죄하지 말고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침착하게 헤아려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누가복음 15:11-32에서 집을 나간 동생 탕자가 돌아오자 아버지가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었다. 일하다가 집에 돌아온 형이 보고 말하는 것을 보면 형이 맞는지 의심이 간다.
눅 15:29-30 / 그는 아버지에게 투덜거렸다. ‘저는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 중의 어느 하나도 거역한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지금까지 제게는 친구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신 일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에게 아버지의 돈을 다 써버린 아들이 오니까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시는군요.’
인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형이 항의하는 말이 일리가 있다. 이때 아버지는 형을 달랜다.
눅 15:31-32 / 아버지가 말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었고 내가 가진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더냐? 32)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잔치를 벌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형은 동생이 집을 나간 후 행한 일을 판단하면서 마치 죄인을 정죄하는 재판관처럼 했지만, 아버지는 동생의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면서 형에게도 공과 사를 분명히 하였다. 형에게 주어진 권리와 형으로서 무엇이 부족했었는지에 대하여 가르쳐 알려주셨다. 아버지가 보시기에는 동생이나 형 모두가 연약한 인간이라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세리와 창기, 죄인들이나 이들을 비판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나 모두가 다 죄인이라는 말이다.
▶ 요 8:3-11 / 그때 유대인 지도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군중 앞에 세워 놓고 4)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여자를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아 왔습니다. 5) 모세의 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되어 있는데 선생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6) 그들은 예수께 올무를 놓아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7) 그들이 계속 대답을 재촉하자 예수께서 일어서서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 8) 그러고나서 예수께서는 다시 앉아서 땅에 무엇인가 더 쓰고 계셨다. 9) 그러자 유대인 지도자들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한 사람씩 슬그머니 빠져 나가 버리고 그 여자 앞에는 오직 예수만 남았다. 10) 예수께서 일어서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를 고발하던 자들은 어디 갔느냐? 그들 중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하나도 없더냐?’ 11)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 하고 그 여자가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유대인 지도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간음하다가 잡힌 한 여자나 모두가 다 죄인이다. 죄인이라고 정죄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를 향해 죄인이라고 하기보다는 자신도 죄에 빠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갈 6:1 /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죄에 빠져 있거든 성령을 따라 사는 여러분이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를 도와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십시오. 그리고 혹시 여러분 자신도 악한 길에 빠져들지 않을까 늘 주의하십시오.
남을 판단하며 비판하여 정죄할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여호와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 가르침을 밤낮으로 읽으며 늘 묵상하는 편이 유익할 것이며 예수님처럼 연약한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편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므로 이제 우리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기도를 생각하며 기도하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3.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성경은 인간의 감정을 따라 용서하라고 하지 않았다. 용서할 마음이 있을 때만 용서하라고 하지 않았다. 용서할 기분과 느낌이 있을 때 용서하라고 하지 않았다. 내 의지를 따라서 용서하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내 노력으로 용서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용서는 나의 선택이 아니다. 용서는 권면도 아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마태복음 18장에서는 죄 사함을 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의무라고 하셨다. 그런데 사실 내게 큰 아픔과 상처와 실패를 준 그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용서할 수 없다. 그래도 말씀대로 용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용서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형제의 사랑이며 성도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셨다. 내 기분이 내키지 않아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싫어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변명과 이유를 대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라고 순종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힘써 용서해야 한다. 미워하면 같이 죽게 되지만 용서하면 같이 살게 된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일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저주이다. 왜냐하면, 남을 죽이려고 하면 먼저 내가 죽는다. 내 영혼이 먼저 죽기 때문이다. 용서하지 못하면 그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토양으로 삼아 암세포가 독버섯처럼 자란다. 성격도 점차 나빠진다. 건강도 나빠진다. 용서하지 않는 것은 고혈압, 당뇨, 두통, 손발 마비 증상, 구토, 위장병, 신경통, 설사 등의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오직 용서만이 사는 길이다.
■ 용서해라 이것은 나의 명령이다 / 1983년 전 세상을 떠난 전세계가 존경하던 화란의 코리텐 붐여사가 있다. 유대인들을 숨겨두었다가 화근이 되어 독일이 침략했을 때에 독일 병정들에게 잡혀서 라벤슨 부르크 수용소에서 처절한 감옥생활을 했다. 여자로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끔찍한 아픔을 겪었다. 그 고통을 이길 수 없었던 언니 베티는 감옥에서 죽었다. 코리는 극적으로 생명을 보존하고 살았지만, 독일이란 말만 들어도 오장 육 보가 뒤틀리는 고통을 느꼈다. 독일의 국기와 지도만 보더라도 온몸이 아파지는 고통을 느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려운 명령을 그녀에게 주셨다. ‘독일인을 사랑해라. 독일을 찾아가 용서의 복음을 선포해라. 독일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한다고 얘기해라. 독일인들에게 치유의 복음을 전파해라. 용서의 복음을 전파해라.’. 그녀가 찾아가 집회를 시작할 때에 인산인해를 이루어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어느 날 뮌헨의 한 교회에서도 그녀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이 코리 여사의 손등에 키스하기 위하여 줄을 서서 한 걸음씩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저만큼 한 낯익은 얼굴이 다가왔다. 바로 라 벤슨 부르크 수용소의 그 간수, 히틀러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내 몸에 모질게 고문을 가하던 그 간수, 발가벗겨 내게 부끄러움을 주던 바로 그 간수, 언니가 고통 가운데 죽어가던 그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는 나의 피난처’ 책에서 코리 할머니는 이렇게 기록을 했다. ‘그 순간 내 피는 거꾸로 용솟음쳐 오르고 있었다.’ 내게서 한마디 대답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님 저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어요.’ 하나님은 내게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용서해라.’, ‘아니 하나님 할 수 없어요.’, ‘용서해라’, ‘할 수 없어요. 하나님. 용서할 마음이 아닌걸요.’, ‘아니다. 코리야 용서해라.’ 그 사람은 계속 한 걸음 한 걸음 아무 일도 모르고 다가왔다. ‘나는 너에게 용서할 마음이 있는가 아닌가 묻는 것 아니다. 용서해라! 이것은 나의 명령이다. 용서해라.’ 그 순간 코리 할머니는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고 용서할 수 있는 기분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단했다. 바로 그 앞에 섰을 때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단하고 손을 내밀어 그 간수를 끌어안았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내게 주었다. 용서는 하나님의 뜻이다. 용서는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4. 성령을 힘입어 지옥 가는 죄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원하셨던 것으로 사명이다.
마 28:18-20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들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막 16:15-18 /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나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은 죄인으로 선고받을 것이다. 17) 믿는 사람들에게는 표적이 따를 것인데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만지거나 독을 마시더라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그 병이 나을 것이다.’
눅 24:46-49 /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리스도가 반드시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기록된 말씀이다. 47) 그리고 내게 돌아오는 사람은 모두 죄를 용서받는다는 이 구원의 도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 48) 너희는 이 예언들이 이루어진 것을 목격한 증인들이다. 49) 이제 나는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러니 너희는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고 성령이 오셔서 하늘의 능력을 채워주실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어라.’
우리는 여기에서 더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마 16:13-19 /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오셨을 때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침례 요한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께서 다시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참으로 복되구나.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에게 알려 주신 것이다. 18) 내가 네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그 어떤 죽음의 세력도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네가 땅에서 잠가 둔 문은 어떤 것이든 하늘에서도 잠길 것이고, 땅에서 열어 둔 문은 하늘에서도 열릴 것이다!’
예수님이 주신 천국 열쇠를 받았다면 우리는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천국 열쇠(마스터키)를 가지고 축복의 통로가 되어 최선을 다하자. 죄 사함의 복음을 온 땅에 전하자.
요 20:19-23 / 그날 저녁 제자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무서워서 자기들이 모여 있는 집의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안이 있으라!’ 하고 20) 자기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으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그러고 나서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으라. 23) 만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만일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부탁하신 말씀을 함께 묵상하자.
행 1:4-8 / 이렇게 사도들에게 나타나시던 어느 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보내실 성령을 기다려라. 내가 말해 온 대로 5) 너희가 전에는 요한에게 물로 침례를 받았지만 이제 곧 성령으로 침례를 받게 될 것이다.’ 6) 예수께서 다시 나타나셨을 때에 사도들이 물었다.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때가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때가 언제인가는 아버지께서 정해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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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LA에서 흑인 폭동사건 때에 한인타운과 한인상가들이 제일 큰 피해를 입었다. 그만큼 미국사회에서 한국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거부감이 완전히 해소된 한 일이 있었다. 인디아나 주 블루밍턴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26살 윤원준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던 학생이었다. 예배를 드리고 나오다 백인 우월주의자 벤자민 스미스가 무차별 난사한 총에 이 학생이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일주일 후 오후 7시 뉴스시간에 미국 전역에 추모예배 광경이 방영되었다. 미법무장관과 한국에서 온 윤원준 학생의 부모와 그의 친척들 그리고 한인교인들 1,500여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장엄한 분위기였다. 추모예배 마지막에 윤원준 학생의 이종사촌 형인 박승호 목사가 가족을 대표하여 인사를 했다. 미국 언론들은 박승호 목사의 인사에 온몸이 감전되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나는 오늘 가족을 대표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사촌을 죽인 벤자민 스미스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가족의 꿈을 빼앗아 가고 아우의 피를 흘리게 한 이 미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용서를 위해 오셨기 때문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 우리의 구세주로 믿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이후 한인상가를 떠났던 미국인들의 발걸음들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 심리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유없이 가끔 토하는 사람이 있다. 대게 그 마음속에 분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그렇다. 육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손과 발이 마비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병이 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암세포가 꾸준히 생성되는 사람이 있다. 그 마음속에 분노의 문제, 갈등의 문제, 이 용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신경통, 위궤양, 밥만 먹으면 이유없이 설사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대게 용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그런 사람들이 허다하다고 한다. 손양원목사를 한국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성자로 인정한다. 왜? 그의 용서가 위대했기 때문이었다. 용서가 초라한 신앙인은 초라한 신앙인이요 용서가 위대한 신앙인은 위대한 신앙인이다.
❚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일은 용서가 없는 것이다. 용서가 없으면 그 마음을 토양으로 삼아 암세포가 독버섯처럼 자란다. 성격도 빡빡해진다. 용서가 없는 것은 자기가 되돌아갈 고향집 다리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용서가 없으면 성령충만도 없고 은혜도 없고 기도 응답도 받기 힘들어진다. 또한 암, 고혈압, 당뇨, 두통, 손발 마비, 위장병, 신경통, 설사 등의 수많은 질병이 생기면서 몸과 마음이 함께 죽어간다. 용서만이 살 길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팔이 부러졌는데 치료해도 잘 붙질 않았다. 의사가 ‘이상하게 부러진 팔이 잘 붙지 않네요.’라고 말하자 환자가 말했다. ‘그럴 겁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이 팔로 아내를 때렸거든요.’ 그 후 그의 아내가 용서한다고 말하자 비로소 팔이 붙기 시작했다. 용서와 치유는 깊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 건강 주세요.’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아무개야! 네가 먼저 용서해라. 그래야 치료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 어느 날 한 아버지가 뉴욕 출장 중에 고등학생 아들이 상급생에게 맞아 죽었다는 비보를 들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귀국하면서 비행기에서 복수심으로 이를 갈았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기도할 때 자꾸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다. ‘아들아, 네 죄로 인해 내가 십자가를 지고 용서했으니 너도 이번에 용서해라.’ 너무 용서하기 힘들어서 비행기 안에서 16시간 동안 마음으로 수없이 원수를 죽였다 살렸다 하면서 몸부림을 쳤다. 공항에 도착할 때쯤 그는 살인한 학생을 용서하겠다고 작정했다. 집에 도착하자 학교 선생님이 얼굴을 못 들고 기다릴 때 그는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저도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그 학생을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재판장에게 그 학생을 관대하게 처분해달라는 탄원서를 써 보냈고 상당한 재정을 아들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얼마나 복된 삶인가?
❚ 우리는 유명한 [벤허] 영화를 잘 안다. 벤허는 자기를 노예로 보내고 어머니와 누이 동생이 문둥이가 되게 한 친구 맛셀라에 대한 증오심에 불탔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마차 경기장에서 맛셀라를 통쾌하게 물리침으로 원수를 갚았다. 그러나 벤허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증오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 끌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오히려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벤허는 예수의 그 행동을 통해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움에 감동을 받게 되며 이제까지 자신이 쥐고 있던 복수의 칼을 내려놓게 된다. 그러는 순간 이제까지 한센병으로 고생하던 어머니와 여동생이 치료됨을 목격하게 된다.
❚ 뉴욕의 유명한 시장으로 알려진 ‘라과디아’란 분이 즉결 재판부 판사로 있을 때였다. 그는 어느 날 빵을 훔치다 체포되어 기소된 노인을 재판하게 되었다. 그는 노인에게 어찌하여 빵을 훔쳐먹었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배가 너무나 고파서 자기도 모르게 빵집에 들어가서 빵을 훔쳐먹었습니다. 저의 잘못입니다. 진심으로 후회하고 뉘우치고 있으니 용서를 빕니다.’라고 했다. 재판장 라과디아는 ‘당신의 죄는 10불 벌금형에 해당합니다. 벌금 10불을 내시오.’라고 판결하였다. 라과디아 판사는 선고를 내리고 자기의 지갑을 열어 10불을 내놓으면서 ‘이 10불은 내가 내겠습니다. 이처럼 배고픈 사람이 뉴욕 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나는 그 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 죄로 이 벌금은 내가 내겠습니다. 혹 여기에 나 같은 죄인 있으면 여기 모자를 돌릴 테니 벌금내실 분은 내십시오.’라고 하여 그 자리에서 47불을 모금해서 노인에게 주었다. 그 노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재판장을 걸어나갔으며, 훗날 ‘라과디아’는 뉴욕의 시장이 되었고, 그의 훌륭한 인격과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뉴욕의 여러 개 공항 중의 하나를 '라과디아 공항'이라고 명명하였다.
❚ 순교의 피는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스데반의 사역은 사도 바울의 사역의 서곡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 사도 바울은 스데반의 죽음으로 중단된 사역을 대신 담당한 것이다. 비록 그는 스데반이 죽을 때 그를 돌로 치는 자들의 옷을 맡아보고 있었고 그 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극렬한 박해자로 나섰지마는, 훗날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가장 뜨거운 복음전파자로 돌아섰을 때 그는 그가 목도했던 스데반의 순교를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돌을 맞아 죽어가며 그를 돌로 치는 이들을 위해 드린 스데반의 그 기도는 바울의 뇌리 속에, 그의 심장에 대못처럼 박혀서 잊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그가 저지른 박해의 죄과를 돌아보며 그가 협력한 스데반의 처형으로 말미암은 복음사역의 손실을 자신의 헌신으로 메워야 하겠다는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교회의 큰 스승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스데반이 기도하지 않았다면 교회는 바울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 용서해야 하는 이유 / 한 자매님이 신분 상승을 꿈꾸면서 부잣집 아들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로부터 말끝마다 ‘거지 근성은 버릴 수 없다’는 면박을 받았다. 신분 상승은커녕 큰 상처를 입고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 자아상을 갖게 되었다. 그는 시댁 식구들 만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고, 남편과의 사랑도 점차 식기 시작했다.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지고, 시어머니를 죽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복음지 한 장을 받게 되었다. 용서와 화해에 대한 말씀이었다. 그 말씀 속에는 ‘용서는 선택이다, 용서는 용서하지 않았을 때의 처참한 결과로부터 자신을 풀어주는 것’이라는 말에 전율을 느꼈다.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날 이후, 시어머니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음처럼 용서가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보기만 해도 미움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용서하는 법과 화해하는 법은 배워야 한다. 용서는 인생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꾸는 활력소이기 때문에 내 자아가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일곱 번 용서해야 하느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나를 위해 형제를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이었다.
❚ 빠삐용과 샤리에르 / 영화 빠삐용의 실제 주인공 ‘앙리 샤리에르’는 20세 때 파리 시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당했다. 검사는 거짓 증인을 내세워 살인자로 누명을 씌웠고, 샤리에르는 중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검사에 대한 복수심으로 탈옥을 결심했고 탈옥 후에는 남미 곳곳을 다니면서 갖은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자신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자 그 검사를 죽이기 위해 파리로 돌아왔다. 복수에 대한 다짐으로 누명을 당했던 거리를 거닐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내가 복수를 포기한 대가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이겼다. 친구여.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네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기에 있다. 내 원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라. 그들은 과거의 한 부분일 뿐이다.’ 37년동안 스스로 가두어 두었던 자신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 대학생선교회 CCC를 운영하며 한국교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김준곤 목사의 실화이다.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목사님의 가족이 다 공산당에게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 눈앞에서 부친과 아내가 공산당에게 맞아 죽는 것을 보아야 했다. 목사님도 너무 매를 많이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때 미군 함정이 나타나는 바람에 겨우 위기를 벗어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급기야 목사님의 가족을 죽인 공산당원들을 미군들이 잡아들였다. 그런데 목사님은 빵을 들고 미군에게 찾아가서 공산당원에게 주고, 미군에게 사정사정해서 풀어달라고 하였다. 미군이 목사님의 간청에 못 이겨서 풀어주었다. 그런데 그 공산당원들이 산속에 들어가서 계속 게릴라전을 벌였다. 그때 김목사님은 성경책을 들고 산속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는 공산당원들을 찾아 들어갔다. 그 결과 그들 공산당원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108명이 모이는 시골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아버지와 아내를 죽인 사람까지도 용서했다.
▮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은 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하다가 27년 감옥 생활했다. 그의 대통령 취임식 때, 빌 클린튼 미국 대통령이 그를 만나 물었다. ‘진정코 그들을 미워하지않나요?’ 그가 대답했다, ‘미워했지요, 그러나 어느날 채석장에서 바위를 깨다가 문득 그들이 내 정신과 마음 말고는 모든 걸 뺏어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만은 절대 내주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빌 클린튼 대통령이 이어서 물었다. ‘감옥 안에서는 그렇다 치고, 감옥에서 나올때 다시 증오가 솟구치지 않던가요?’, ‘맞습니다, 그랬지요, 하지만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를 27년이나 감옥에 가뒀는데, 그들을 증오한다면 계속 갇혀있는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나는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증오를 털어버리기로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