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2 / 00:01 이 책이 말하는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난 이제 여기서 이 책에서는 기본적으로 이제 그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괴물이다라는 그런 쪽으로 약간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잖아. 근데 난 약간 그 생각에 동의를 할 수가 없는 게 일단 피조물이 맨 처음에는 이제 그 마음이 착하고 선했잖아요. 이제 사람들을 돕고 이제 같이 살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사람들한테 배척받고 이제 차별당하면서 이제 점점 이제 약간 일종의 흑화를 한 거잖아. 그렇게 이제 그렇게 되면 이제 이제 프랑킨 슈타인이 그 피조물이 진짜 괴물이라고는 난 볼 수 없을 것 같아. 난 오히려 이제 피조물을 만들고 자기 욕심으로 이제 피조물을 만들었는데 이제 그에 대한 책임이랑 의무는 그런 건 안 지고 그냥 도망쳐서 나 몰라라 하고 가는 이제 프랑크 빅터가 진짜로 이제 진짜 괴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
참석자 3 / 00:56 나는 재석이의 의견에 반대해 반 이거 반대가 아니야 나는 괴물을 이 소설 속에서 진짜 괴물은 이 괴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그러니까 즉 사회의 시선이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사람들이 괴물을 그런 배척하는 시선과 소외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괴물은 사람 사람에 대해 복수할 생각과 사람을 살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물론 창조한 빅터에게도 그런 윤리적 문제를 책임지지 않은 책임 문제가 있지만 그 근본적인 괴물 내가 생각하는 근본적인 괴물은 사회라고 생각을 해.
참석자 4 / 01:43 나는 그 앞에 말했던 재석이의 말에 동의하는 게 만약에 빅터가 자기가 창조한 피조물을 먼저 받아들였다면 사람들에게 질타받지 않고 빅터가 그 피조물에게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잘 설명해 줬다면 그 중에도 군중들도 그 피조물을 좋게 봐줬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빅터가 더 괴물인 것 같아.
참석자 5 / 02:10 나는 피조물이 진정한 괴물이라고 생각을 해. 빅터가 이제 만들어 놓고 도망가긴 했어도 그가 한 작중의 행적들을 보면은 이제 빅터의 가족들을 죽이고 자신의 자신의 욕구를 안 들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은 너를 못 살게 굴겠다라며 협박하는 등 그런 짓을 많이 했으니까 아무리 사회가 이제 그 괴물을 못 살게 만들었다 해도 이제 괴물의 잘못도 많이 크지 않을까라고 생각.
참석자 2 / 02:53 근데 일단 어쨌든 그 피조물이 어떻게 행동을 했든 간에 이제 그렇게 행동을 하게 만든 건 이제 이제 아까 말했던 것처럼 빅터의 무책임이랑 이제 사회의 시선이었잖아. 그렇게 하면 물 진짜로 진정하게 그렇게 행동을 이끌어낸 이 진짜 배우는 사회랑 비터가 아닐까.
참석자 1 / 00:01 개인의 호기심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나는 호기심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약간 이미 일종의 윤리적 경계선 그런 게 존재하고 그 경계선 안에서만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해. 근데 여기 소설 속에서도 비터는 이제 순수한 과학적 열망이랑 호기심으로 생명을 창조해 냈는데 결국에는 주변 사람들이랑 가족, 이제 심지어 본인까지 죽게 되는 비극으로 끝나잖아. 처음엔 단순히 인류를 죽으면서 구원하겠다 그러면서 연구를 시작했을지는 몰라도 생명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손을 댔던 것도 이런 윤리적인 경계선을 생각하지 않고 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그런 비극을 가져왔다고 생각해.
참석자 2 / 00:44 근데 나는 호기심 자체를 처음부터 여기까지만 해 하고 선을 그어버리면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소설에서 비터가 생명을 만들려고 했던 것도 원래는 죽음을 극복해 보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거잖아. 그런 점에서 보면 의학이나 과학이 발전하려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는 호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참석자 3 / 01:09 윤주의 말처럼 기술 발전도 중요하긴 한데, 여기서 그 호기심이 단순한 물건이나 대상의 대하는 게 아니라 책 속의 피조물처럼 윤리적인 문제와 엮여 있으면 달라진다고 봐. 책에서 피조물은 빅터의 호기심 때문에 태어났는데 정작 태어나자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음연담만해서 외롭게 살았잖아. 근데 그것처럼 누군가에게 비극이나 고통을 주는 그런 호기심이면 그건 단순한 탐구가 아니라 그냥 이기적인 행동처럼 보여.
참석자 4 / 01:46 나는 처음에 질문 들었을 때 송윤주랑 저기 숙련제처럼 과학이 발전하려면은 호기심에 제한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근데 준영이의 말을 들으니까 그 호기심이 자기가 감당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결과를 가져오면 그 호기심이 순수한 탐구라고 할 수 있는지가 좀 궁금해졌어.
참석자 2 / 02:26 근데 요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새로운 걸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잖아. 그런 사람들 중에서는 처음부터 내가 이걸 100%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시작한 사람이 별로 없을까? 요즘 나오는 AI나 유전자 연구 같은 것도 처음에는 낯설고 위험해 보였잖아. 근데 그렇다고 그렇다고 해서 아예 안 건드리는 것보다는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호기심을 풀어나가는 게 맞는 거 아닐까?
참석자 1 / 03:02 근데 이제 그 호기심을 풀어나갈 때 약간 무작정 행동하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약간 선을 지켜가면서 연구하는 게 중요한 거지.
참석자 4 / 03:11 채석이의 말처럼 윤지의 말처럼 살짝 못 찾게 100% 통제할 수 없다고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연구에는 최소한의 공공적인 윤리나 브레이크가 있어야 될 것 같아.
참석자 3 / 03:35 그 브이리크라는 게 결국 호기심에 대한 책임인 것 같아. 만약에 예를 들어서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다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터져서 누군가 피해를 입는다고 그 연구나 행동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난 이 부작용을 몰랐어 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거고 그러니까 호기심에 따르는 결과를 예상하면서 그 행동하는 것만큼 자신의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참석자 1 / 04:04 자 두 번째 질문 사람은 원래 악하게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환경에 의해 악해지는 것일까? 이 소설 속에서도 이제 피조물이 나는 원래 선했지만 비참한 사람이 나를 바꿔 놓았어라는 말을 하거든. 근데 그럼 진짜 사람은 원래 선하게 태어나지만 주변 환경이나 외부 요인 때문에 악해지는 걸까?
참석자 2 / 04:27 나는 솔직히 사람이 완전히 순수하고 착하게만 태어난다고 생각하진 않아. 왜냐하면 아기들도 자기 욕심 먼저 챙기거나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할 때도 있잖아. 이처럼 사람의 본성에는 어느 정도 이기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 근데 그 이기적인 면을 교육이나 사회의 규칙 같은 걸로 누르면서 사는 거지.
참석자 3 / 04:52 근데 나는 적어도 태어날 때는 선하게 태어난다고 생각해. 소설에서 그 피조물도 처음에는 나쁜 짓을 하려고 하진 않았잖아. 오히려 몰래 장작을 패주면서 도와주는 걸 보면 사람은 착하게 태어났지만 환경에 의해서 악해졌다고 보여.
참석자 4 / 05:11 나도 윤주랑 같은 생각인 게 사람도 동물이잖아. 어쨌든 간에 사회적인 교육이나 제약이 없으면은 사람도 본능적으로 이기심이 먼저 튀어나올 것 같거든. 근데 준영이가 말한 것처럼 장작을 패주면서 도와주는 것도 태생적으로 선하게 태어나서가 아니라 사실 그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한 행동이라 생각해 본능적으로 이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한 행동인 거지.
참석자 1 / 05:44 근데 이제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본성이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선하게 태어난다는 증거 아니야 만약에 본성이 처음부터 악했어 그럼 처음부터 남을 도울 생각조차 안 했겠지. 피조물이 진짜 악해진 계기가 여기서 선한 마음에 돌아온 게 사람들의 배척이랑 폭력이었기 때문이잖아.
참석자 2 / 06:06 보니까 환경이나 주변 요인이 악한 마음에 아예 영향을 안 미친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근데 그렇다고 해서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까지 전부 환경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결국 환경이 나빠도 선을 지키는 사람이 있고 악해지는 사람도 있는데 그 선택을 하는 건 결국 개인 본인의 이기심이랑 악함이잖아.
참석자 3 / 06:33 환경이 모든 행동의 핑계가 될 순 없지. 근데 이제 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지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환경이면 말이 달라질 것 같아. 한 번도 남들에게 인정받거나 친절은 받지 못하는 그런 환경에서도 무작정 넌 무조건 착하게 살아라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아. 본성이. 어쨌든 그걸 악하게 물들이는 건 결국 그 주변 환경의 힘이 더 크다고 봐야 할 것 같아. 농업 정비
참석자 4 / 07:04 그 말을 들어보니까 타고난 본성에 악한 면이 있더라도 주변에서 받아주고 보살펴주면 충분히 선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반대로 아무리 선하게 태어났어도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괴물 취급당하면은 그 선한 본성을 유지하기 힘들겠지. 그래서 결국 본성보다는 환경이 선하이나 악함을 결정하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참석자 1 / 07:31 계속 들어보니까 결국 본성이 선하냐 나쁘냐 그걸 단정짓기보다는 주변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이끌어가냐가 중요한 것 같아. 그 본성이 선이나 악으로 완성되어 있다기보다는 이제 그 환경이 그걸 완성해 나가는 거지. 세 번째 질문 사람이 만든 피조물이 스스로 사고한다면 사람과 같은 권리를 주어야 할까? 난 아무리 피조물이라고 하더라도 이제 스스로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사람이랑 똑같은 권리를 주고 하나의 존재로 인정해야 된다고 봐.
참석자 2 / 08:09 난 좀 재석이 의견이랑은 다르게 생각하는데, 아무리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이 있다고 해도 피조물에게 사람이랑 완전히 똑같은 권리를 주기는 힘들다고 봐. 왜냐하면 권리라는 건 단순히 생각한다고 해서 주는 게 아니라 인간 사회 안에서 일종의 약속 같은 거잖아. 그런 권리를 사람이 만든 피조물에게까지 주면 기존의 사회 질서나 기준이 좀 어지러 어지럽히지
참석자 2 / 08:46 어지럽혀질 것 같다고 생각해.
참석자 3 / 08:49 그래도 나는 그 피조물에게 아예 권리를 안 주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소설에서 피조물도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선하게 살아가고 싶어 했는데, 그런 식으로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면은 단순히 사람이 만들어낸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안 주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
참석자 4 / 09:13 실제로 소설에서 보면은 피조물이 괴물이 된 이유 중 하나가 사람과 같은 수준의 이성이랑 감정을 가졌는데도 사회로부터 버려졌기 때문이잖아. 스스로 고통을 느끼고 판단할 수 있으면 최소한의 권리나 존엄성은 존중받아야 된다 생각해.
참석자 2 / 09:36 현실에서도 근데 AI는 충분히 사고하고 우리랑 매끄럽게 대화할 수 있잖아. 근데 그렇다고 해서 AI한테도 권리를 주지 않는 것처럼 단순히 생각한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주는 건 난 아니라고 생각해.
참석자 1 / 09:51 근데 AI가 사고를 한다고 봐야 되나? AI는 그냥 입력된 정보에 맞게 대답해 주는 거 아니야. 그냥 단순히 이제 입력된 자극에 반응하는 거랑 진짜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서 판단하는 사고는 좀 다른 것 같아.
참석자 4 / 10:09 나도 사고한다는 거는 단순히 대화가 통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깊이 생각할 수 있고 윤리적인 문제 같은 것도 고민할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
참석자 2 / 10:21 뭔 말인지는 이해하겠는데 그래도 스스로 사고할 수 있다고 해서 권리를 주는 건 다른 문제 아닐까 왜냐하면 권리는 그냥 개인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것만 아니라 거기에 따르는 의무나 책임도 같이 포함하는 거잖아. 사람이 사람의 피조물이 사람의 피조물이 그런 의무나 책임을 지키고 따를 수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하는 것 같아.
참석자 3 / 10:48 근데 이제 권리의 의무나 책임도 같이 따른다고 생각하니까 무작정 피조물이랑 사람이랑 같은 권리를 줄 수는 없는 것 같기도 해. 예를 들어 AI와 같은 기술이 발전해서 감정도 느끼고 아까 말한 것처럼 사고를 해서 권리를 준다고 해도 행동이나 말에 책임을 묻기가 애매하잖아.
참석자 1 / 11:10 난 그래도 사람이랑 이제 100% 완전 똑같은 권리를 주는 것까진 아니어도 그렇게 사고하고 그런 존재라면 최소한 차별받지 않을 권리나 아니면 이제 보호받을 권리 그런 기본적인 권리는 줘야 될 것 같아.
참석자 4 / 11:26 결국에는 피조물에게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줄 것인가가 아니라 사고하는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포용하고 또 어디까지 권리를 인정해 줄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