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지명고(地名考)
내 고향은 論山市 彩雲面(논산시 채운면) 배꽃이라는 곳이다. 논산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을까 하고 생각해 보아도 언뜻 짐작이 가질 않는다. 한자로 쓰면 논의할 論字에 뫼 山
이니 산을 논한다는 것인데 이치에 맞지 않는다. 누구는 시적으로 풀이하여 들이 많은 지방
이니 어느 가을 넓은 들판에 벼가 익을 때 저녁 노을과 어루러지는 그 황홀한 아름다움을 연
상하여 노을과 발음이 비슷한 한자를 대입하여 논산이 되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나도 지금까
지 대충 그런 정도로 이해하여 왔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 이 것은 좀 비약한 발상인 것
같다. 몇 군데 문헌을 찾아 찾아보았다. 어느 국어학자가 논산지방은 원래 백제의 중심이
었던 관계로 백제 시대의 말에서 그 뜻을 헤아려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옛 문헌을 연구해 보
았더니, 백제 말로 누르 뫼란 말이 있었는데 누르 뫼란 높지 않은 산들이 죽 늘어선 것을 가리
키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실제로 논산시에는 連山面이라는 이름의 지역이 있는데
이 곳은 낮은 산들이 꽤 있다. 나는 이곳이 바로 논산이라는 지명이 생겨난 본 고장이라고
여겨진다. 이 연산면의 벌판이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계백 장군이 장렬하게 전사한 백제 사
람에게는 한이 맺힌 황산벌 싸움이 있었던 곳인데 그러면 왜 그 전투를 연산벌 싸움이라고
하지 않고 황산벌 싸움이라고 이름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설명은 이렇다. 누르뫼의
누르의 발음이 누르다 -- 누렇다와 비슷하여 누르 黃이 借字되어 황산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 것 같다. 아무튼 논산이라는 이름은 이와같이 누르 뫼가 변전하여 놀뫼가 되고 놀이
논자를 차자하여 논산이 된 것으로 이해하여도 좋으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다음으로 彩雲面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은 어떻게 하여 붙여진 이름일까? 아름답게 채색된 구
름이라면 지명으로보다는 어느 시인 화백의 아호나 아리따운 여인의 별호쯤으로 더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이다. 얼마 전 도서관에 들렸을 때 서가에 꽂힌 전국 지명에 대한 내력을 수집한
도서가 우연히 눈에 띠었다. 무심코 뽑아 들고 혹시? 하는 생각으로 강경의 한 귀퉁이에 있는
채운산을 염두에 두고 채운산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해발 57 미터의 산이라 기보다는 높은 언
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채운산에 대한 내력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부른 일이 있다. 이
채운산에서 채운이라는 이름이 따와졌을 것은 분명한 일이니까.
채운산에 얽힌 이야기는 이러하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백제의 어느 장수가 병마를 이끌
고 이 곳을 지나다가 잠시 이 산에서 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랜 전투에 병마 모두는 지치
고 목이 타 들어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절박한 심정의 장수는 손에 쥔 칼로 바위를 내려치
니 맑은 물이 샘솟듯 용출하여 이 물을 마시고 병마는 다시 힘을 얻어 전장으로 향하게 되었
는데 이곳을 떠나면서 고마운 마음에 뒤돌아보니 바위의 물줄기가 영롱한 빛을 띠고 있어
장수는 이 산을 채운산이라 명명하였는데 그 후로 그렇게 불려지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한
다.
높지도 않은 이 채운산은 봉우리에 짙푸를 정도로 솔밭이 있어서 지근의 강경중학교 교가는
"채운산 푸른 솔을 바라모면서 ..."로 시작되고 강경상고 교가도 "채운에 어린 계룡 한 깃을 타
고"로 시작되는 것만 보아도 이 지역에서는 명산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채운산과 더불어 자
란 셈이다.
호남선열차로 강경을 지날 때 하행 시 좌측으로 보이는 산이 바로 채운산 이다.
끝으로 내가 태어난 배꽃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일찍이 한글전용을 부르짖은 바도 없는데
우리 동네는 늘 배꽃이라고 불리어 왔다. 괜히 좀 아는 체 하여 梨花라고 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은 억지로 붙인 이름이고 우리고장에서는 누구나 배꽃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배나무가 많아서 철이 되면 배꽃이 활짝 피어 배꽃이라 불리었을까? 그렇지도 않다. 내가 자
랄 때도 동네에 배나무가 있는 집은 손꼽을 정도였고 돌아가신 어머니한테 여쭤보아도 이 동
네로 시집오실 때도 배나무는 별로 본 일이 없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처음에 어떻
게 하여 이 아름다운 이름이 주어지게 되었을까?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최현배 선생이 "배꽃 계집애 큰 집 배움터" 라고 하면서 한글전용을 역
설하였다는 얘기를 듣고는 우리 동네는 벌써 한글전용이 이렇게 잘되어 있는데...하는 생각을
해본 일이 있다. 아무튼 어찌된 일인지 행정적으로는 禹基里(우기리) 1구 인데도 누구도 우리
동네를 우기리라고 부르지 않고 그저 배꽃동네도 아니고 그저 " 배꽃"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
는 앞에서 말했듯이 배나무가 많아서 그리 된 것이 아니고, 추측컨대 동네의 모습이 배꽃처럼
맑고 아름답다는 데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내 나름대로 좋게 해석을 해볼 수 있을 따름이
다.(2003.7.2)
첫댓글 애향심이 대단 하시군요 정말 자랑 하실 만한 고향이시네요
어머나~~ 저도 고향이 논산시 상월면이고 외가는 광석면 입니다. 넘넘 반갑습니다.
이래서 카페는 필요한 곳이군요. 그리고 꼬리말이 꼭 필요하고요.
인간이귀소본능이가장강한데 언제쯤돌아가실건지요. 건방지게벌써고향가고싶네요
전 이런것 생각도 않해 봤는데.. 우리동네 지명도 왜 그리 불리게 되었는지 궁금해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