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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 1구간
한양도성길 1구간(숭례문-남산-흥인지문-낙산-혜화문)
*산행일자; 2020.02.02
*오늘의 날씨; 내일예보; 구름 많고 최저;-3도 최고;4도 바람;h/7km
서울; 최저;-2.1도 최고;5.3도 평균운량;6.1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온통 세상이 뿌연 하고 보이는게 근거리 뿐이다
*계략적인 코스; 서울역-숭례문-백범광장-남산타워-국립극장-신라호텔 광희문-오간수교-흥인지문-
낙산-혜화문
*동행인; 혼자
*거리및 소요 시간; 도성길 도상거리;10.39km 실거리; 13.95km 소 요시간; 5시간34분
시간당 평균속도; 2.5km
*소요경비; 약8000원
**산의 높이는 각각의 지도마다 높이를 달리 표기 하는 경우가 많고
저의 gps도 높이를 달리 표현 되기 일수이므로 참고 사항으로 보시기를**
*산행지도 ; 파란선은 가져온트렉, 빨간선은 본인의 간길
한양도성길 1구간-1
한양 도성길 1구간-2
*오늘산행의 높낮이; 의미없는 것
*코스별 시간(봉이라 표시는 지도상높이 이고, m 또는 m봉이라 표시는 내gps상의 높이임)
오늘의 들머리;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오늘의 날머리;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혜화문
09;35 서울역 구 청사 앞 도착 막걸리;1200원
09;56 서울역 출발 서울로 7017 육교 공원경유
10;09 숭례문 건전지 떨어져 근처에서 1000원 짜리 구입했는데 3시간도 못 쓴다,
건전지;7800원
10;26 회현4거리
10;36 성재 이 시영 선생 동상 그 옆 건물이 서울시 교육 연구원이다
이어서 김구 동상도 둘러보고 김구선생의 유묵 탑도 둘러보고
10;45 한양도성 유적 박물관 신축 공사장 옆 통과
10;58 잠두봉 조망처
11;03 남산 케이블카 탑승장
11;09 남산 팔각정 270.1봉
11;30 236m봉 조망터 성벽위 267.5봉은 출입금지 구역이라 우회하여 성터로 옴
11;44 국립극장 정문
11;56 118.9봉, 성곽마루 팔각정봉
12;08 신라호텔 옆
12;14 장충체육관위
12;36 광희문 식사 약 20분
12;55 성동 글로벌 고등학교 앞
13;00 동대문 해치공원 입구
13;14 오간수교
13;16 동대문(흥인지문)
13;42 낙산 성곽
13;48 104m 낙산공원 조망터
13;55 암문, 암문에서 외곽으로 나가야한다 알바 후 백 하여 돌아온길
14;12 알바끝 백 한다 동성 중학교 옆에서
14;27 성곽길 막 힌곳
14;32 암문 빠져 나와 성 외곽길 따른다 약 30여분 알바함
15;03 혜화문 답사 끝 탈출
15;21 혜화역 도착
*오늘의 산행개요
오늘 성곽 1구간은 음력 설도 지나 곳곳에 민속놀이 등도 있을 듯 싶어 계획했는데
그런 광경은 볼수가 없고
최근 온 세계가 시끌벅적하는 신종 코로나 때문인지 남산 정상에도 외국인들이 별로이고
가끔씩 베트남 쪽의 동남아에서온 관광객들만 몇팀 보이고
항시 중국인 관광객들로 시끌 벅적인 동대문 시장 근처도 중국인들은 눈에 안 띄인다
성곽길은 상상 이외로 그 흔적들이 많이 유지되어 있고 다소 허물어진 곳들은 복원을 해서인지
전체적으로 잘 이어져 있다 할수 있겠다
전체 거리가 20km도 안되어 마음먹기로는 하루면 답사가 충분한데
1구간 답사 참여할 사람이 있을듯 싶어 카페에 공고를 했기 때문에
10;00까지 기다리느라 늦게 출발 했으므로 계획대로 두 구간에 답사를 해야 할듯싶다
다음구간은 삼각산쪽 청와대 뒤산이라 울 마눌도 같이 참여 시킬 예정이다,
구간별 산행기는 생략하고 유적지별로 사진과 해설은 넣어 작성한다
*구간별 사진및 유적지 해설
구 서울역 정문에서 바라본 서울로 7017 가로공원의 모습
구 서울역 앞의 강 우규 의사 동상
구 서울역사의 사진맟 해설판 **서울역 ; [ Seoul Station ] 요약 서울시 중구 봉래동과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기차역 및 지하철역. 1900년 영업을 개시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관문으로서 경부선과 경부고속철도(KTX), 경의선의 시종착역이며, 수도권 지하철 1호선과 4호선의 환승역이다. 1900년 경성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으며, 1905년 남대문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23년 다시 경성역으로 바뀌었고, 1925년 역사(驛舍)가 준공되었다. 1946년 광복 1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의 명칭인 경성부를 서울시라 칭하기로 한 서울시 헌장이 공포되었고, 이에 따라 같은 해 11월 1일부터 서울역이라 부르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 서울역 광장에서 본 신 서울역사
구 서울역 출입문 앞의 광장바닥에 설치한 방위각 표
신 서울역사 옆의 롯데 건물 과 서울역 광장에는 문재* out 라는 시위용 차량에서 스피커소리요란하다
숭례문으로 가기위해 서울로 7017 가로 공원으로 올라왔다 **서울로 7017 ; Seoullo since 7017 서울로 7017은 '1970년 만들어진 고가도로가 2017년 17개의 사람이 다니는 길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에서 명명된 서울역고가도로의 도시 재생 공원화 사업명이다. 서울시는 서울역고가를 공원화해 2017년 5월 20일에 개장하였고, 인근 보행로와 고가를 잇는 구조물을 추가 설치해 최종적으로 총 17개의 보행로와 연결할 계획이다.
서울로 공원에서 본 서울 역
서울 숭례문(남대문)에 도착했다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조선시대 서울 성곽의 정문이며 1398년에 완성되어 1448년에 개축되었다. 현존하는 서울의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1962년 국보 제1호로 지정되었다.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로 숭례문이라 하였다. 1934년 일본이 ‘남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했으나 1996년 ‘숭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2008년 2월 10일 방화 화재로 석축만 남긴 채 누각 2층 지붕이 붕괴되고 1층 지붕도 일부 소실되었다. 5년여에 걸친 복원 공사 끝에 2013년 5월 4일 준공·공개되었다.
숭례문 전경 과 파수꾼
숭례문의 해설판
숭례문 복구 해설판
숭례문 입구의 깃발의 문양인데 무순뜻의 깃발인줄은 모르겠다
숭례문을 벗어나 남산 공원으로 향하면서 뒤 돌아본 숭례문
남산 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용궁사는 길 건너로 만 보고 지난다
숭례문에서 여기까지는 성벽이 없는 길을 왔다
남산 공원 입구의 표시
남상 공원 쪽의 성벽 과 남산 타워가 보인다
뒤돌아 본 성벽과 힐튼 호텔
성재 이 시영 독립유공자의 동상
김구 선생님의 동상
김구 선생님의 안내문
김구 선생님 동상 옆면의 글자
김구 선생님의 유묵
그리고 다른 쪽에 있는 유묵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 안중근의사가 1909. 10.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에서 쓴 글. 눈 앞에 이익이 보일 때는 의(옳음)를 생각하고, 위험이 직면하여도 자기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 있을 때에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한다 - 공자의 논어 -
남산 공원에는 서울시 교육연구원의 건물이 있다
남산 공원을 벗어나면서 있는 이정목은 어지럽다
이곳은 국치의 길이란다
우측으로 가림막이 있는데 이곳은 유적 박물관의 신축중이란다
남산으로 오르는 길 좌측에는 잠두봉이 있다
잠두봉 오름길의 성벽과 인도길 계단
잠두봉 전망대이다
잠두봉 전망대에서 본 서울시내, 미세먼지 땜시로....
또 다른 쪽의 조망이고
잠두봉을 지나면서 본 서울 타워
그 유명한 남산 케이블카 탑승장
남산 정상은 이제 열쇠 진열장이 되어 버렸다
열쇠 진열장 과 동남아세아인들이 기념 찰영을 하고있고 뒤로는 봉수대가 보인다
남산(목멱산) 봉수대 안내판
온통 사랑의 열쇠만 보인다
남산 팔각정 중앙에 있는 수준점인듯 **남산 본래 이름은 인경산(仁慶山)이었으나 조선초 태조가 1394년 풍수지리에 의해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겨온 뒤에 남쪽에 있는 산이므로 ‘남산’으로 지칭되었다.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산신령을 모시는 신당을 세워 목멱대왕 산신을 모시고 있어 '목멱신사'라고 불리고 이때부터 인경산은 목멱산(木覓山)으로 불렸다. 조선 도읍 초기부터 신성한 영산으로 여겨져 온 남산은 통신제도의 하나인 봉수제(烽燧制)의 종점인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
남산 타워
**남산 서울타워 서울 남산전파탑을 가리키는 것으로, 남산타워라고도 한다. 해발고도 479.7m 상에 위치해 있다. 탑 자체의 높이는 236.7m로 세계에서 모스크바타워(해발고도 537m) 다음으로 높은 탑이다. 1969년 8월 동양·동아·문화방송 등 3개 민영방송국이 공동으로 종합전파시설 및 관광전망대 시설허가를 받아 1975년 8월 완공하였다. 준공 3개월 뒤 체신부가 인수하여 보안상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다가, 1980년 10월부터 공개되었다. 2000년 뉴스 전문 텔레비전 방송국 YTN이 인수한 후 2005년에 개보수하여 타워층을 “N서울타워”(정식 이름은 “YTN 서울타워”)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크리스 마스 츄리 모양도 다 열쇠로 만들어져 있다
장충단 공원쪽으로 내려가는 길의 성벽
성벽위 조망처에서 본 국립극장 과 신리호텔도 보인다,
우측은 타워호텔이고
성벽 위 조망터에서 본 성벽과 아래 국립극장
이 표지판도 따라가야 한다
이렇게 보수한 흔적이 있는데
성벽 쌓는 방법에 따라 연대가 틀린단다,
보수한 연대를 알수있단다
이제 용산구에서 중구 쪽으로 넘어간다,
국립극장위쪽 도로의 인도에 있는 표지판
국립극장, 지난달에 춘풍이 온다라는 마당놀이 보려 왔던곳
**국립극장 ; [ National Theater of Korea , 國立中央劇場 ]
해오름극장 1,563석, 달오름극장 427석, 별오름극장 80~100석, 하늘극장 600석
1950년 4월 29일 아시아 최초의 국립극장으로 설립되었다. 설립과 동시에 국립극단을 창단하고,
1950년 4월 30일 창단공연으로 연극 《원술랑》과 《뇌우》를 무대에 올렸다.
6·25전쟁 당시 대구로 이전하였다가 1957년 6월 1일 다시 서울로 이관하고,
1962년 1월 15일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오페라단 등의 전속단체를 창단하였다.
1969년 3월 8일 KBS로부터 교향악단을 인수하여 국립교향악단으로 개칭하고, 1973년 5월 국립발레단과 국립합창단을 창단하였다. 1973년 10월 17일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국립극장을 개관하고
1981년 8월 1일 국립교향악단을 KBS로 이관하였다.
1982년 5월 15일 야외놀이마당을 개장하고 1991년 국립중앙극장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5년 1월 1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하였으며
2000년 2월 1일 국립발레단·국립오페라단·국립합창단이 재단법인으로 독립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산터널 입구 쪽의 조망
타워호텔 정문(반얀트리 클럽이라 했다)
타워호텔 건물
성곽마루 팔각정이 보인다
성곽마루 팔각정 조망은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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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마루 팔각정에서 본 남산
성곽마루 팔각정을 내려서니 신라 호텔이 우뚝하다
신라호텔 영역에 있는 팔각정
장충 체육관 건물이 닥아 온다
**장춘체육관 ; [ 奬忠體育館 ]
대지 1만 865㎡. 건평 7,755㎡. 돔식(式). 수용인원 8000명.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실내경기장으로 1963년 2월 1일에 개관하였는데, 원래 육군체육관으로 사용하던 것을
서울시에서 인수하여 본격적인 경기장으로 개보수한 것이다.
건축가 김정수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구조설계 및 건축설계는 건축가 최종완이 맡았다.
1,000kW 수은등 40개, 1,500kW 자연등 40개가 장치되어 있으며
전자식 스코어보드도 설치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희문이다
**광희문 ; [ 光熙門 ]
요약 서울 중구 광희동(光熙洞)에 있는 조선의 사소문(四小門).
시구문(屍軀門)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으며 서소문(西小門)과 함께 시신(屍身)을
내보내던 문이다.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 때 창건되었으며, 1422년(세종 4) 개축된 것으로
추측된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 1711년(숙종 37) 민진후(閔鎭厚)의 건의로
금위영(禁衛營)으로 하여금 개축하게 하고, 문루(門樓)는 목재를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후에
개축하기로 하였다는 기사가 있으며, 1719년 문루를 세워서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그 후 1975년 도성복원공사의 일환으로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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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독도 난해하다, 성동 글로벌 경영 고등학교 앞 지나
동대문 프라자 해치공원의 안내도
동대문 해치공원의 일부
**
동대문 해치 공원안의 성화탑 과 해설판
**
2019년 9월22일 불이 났던 제일 평화시장은 복원에 열중이다, 불난집은 불같이 일어 난단다
ddp지역 안내도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여성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10.31~2016.3.31.
이라크에서 태어난 영국의 건축가)가 설계한 DDP는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건축한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이다.
위 치 :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81 DDP(20필지, 옛 동대문운동장 터)
규 모 : 연면적 86,574m2(지하3층, 지상4층, 최고높이 29m)
건립 기간 : 2009.04.28 ~ 2014.03.21
시설 공간 : 5개 시설 15개 공간
알림터, 배움터, 살림터, 디자인장터, 어울림광장,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등
동대문 운동장을 개조한곳
오간수교인데 이간수교는 못 찾았다
오간수문 ; [ 五間水門 ]
서울특별시 동대문에서 중구 을지로 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 6가에 있던
조선시대의 수문(水門)으로 수문이 5칸, 즉 5개의 수문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초기 도성을 수축하면서
물길을 낼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6가에 있는 동대문(흥인지문)에서 중구 을지로(乙支路) 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 6가에 있던 조선시대의 수문(水門)이다. 오간수문은 수문이 5칸,
즉 5개의 수문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초기 도성을 수축하면서 물길을 낼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대문 남쪽 성벽 아래로 흐르는 냇물이 도성 밖으로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설치한 수문이다. 사람들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수문마다 쇠
창살로 만든 철문을 설치하였다. 각 수문의 크기는 1.5m 정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간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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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흥인지문)의 옆 모습
흥인지문에서 본 흥인지문 이후의 성터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문. 대한민국 보물 제1호이며, 속칭 '동대문'이라 부른다.
본래 ‘흥인문’이었으나 풍수지리상 한양의 동쪽이 비어있다 하여
‘지’자를 넣어 무게감을 실어 주었다고 한다.
1996년 일제강점기 문화재 재평가작업을 통해 ‘흥인지문’이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흥인지문 해설판
동대문(흥인지문)
흥인지문의 측면
흥인지문에 있는 스탬프 찍는곳
낙산으로 오르면서 뒤 돌아본 동대문
낙산으로 오르는 길의 성곽
성곽 밖쪽의 창신동 쪽 조망
낙산 조금 전 조망터에서 본 북한산, 도봉산쪽 조망
조망터에서 본 삼각산 쪽의 조망
조망터에서 본 남산 쪽의 조망
조망터에서 본 낙산 공원
**낙산(駱山)
낙타산(駱駝山)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산의 모습이 낙타 등처럼 볼록하게 솟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낙산은 태조 3년 한양을 수도로 정하면서, 북쪽의 북악산, 남쪽의 남산,
서쪽의 인왕산과 함께 서울을 감싸는 네 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동쪽 경계인 낙산의 능선을 따라 흥인지문(동대문)에서 혜화문(동소문)까지 성벽을 쌓아
한성을 감싸고 있다.
낙산공원을 내려서면서 이 암문에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알바시작한곳
이곳에서 성길이 막힌다
백하여 암문을 나가면 있는 이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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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이 길 건너로 보인다
혜화문의 안내판
**혜화문 ; [ 惠化門 ]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翼工式) 우진각지붕건물.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5년 뒤인
1397년(태조 5)에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축조하면서 함께 세웠다.
이 때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소문 가운데 동문과 북문 사이에
위치하였으므로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이 문을 나서면 수유현(지금의 수유리)을 거쳐 의정부·양주로 도로가 이어졌다.
당시 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혜화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
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으로 하였다가
1483년(성종 14)에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역시 홍화라고 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에 혜화로 고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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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에서 본 혜화문
혜화문 관리사무소가 한 쪽에 있다
혜화여교 쪽에서는 바자회를 하는 모양이다
혜화동 로타리의 시가 적힌 비석
대명거리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