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
60년 전통이 '모락모락'…공복의 마음가짐으로 만드는 손두부
상주 함창 할매 손두부집 한상차림.
웰빙 붐으로 그 옛날 옛 방식 그대로 만드는 손두부가 인기를 끌게 된 지 오래되면서 도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인기리 판매되고 있는 이 손두부의 유통기간은 하루다. 방부제 등 아무런 식품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만든 두부는 그날 다 팔고, 팔다 남은 두부는 바로 폐기해야 한다.
1980년대 초 강릉 경포대 초당두부가 간수 대신 바닷물을 이용해 두부를 굳히고 비닐포장 두부를 처음 선보였다. 초당두부는 낱개 포장 방식으로 당시까지 하루이던 두부 유통 한계를 돌파해 냈다. 유통기간이 3~4일로 늘어나면서 국내 처음으로 동네두부가 대관령을 넘어 서울 등 수도권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이렇게 두부 유통 전국화가 시도된 이래 국내 굴지의 식품유통 업체가 두부시장에 뛰어들면서 영세한 동네 두부공장은 다 문을 닫았지만 그때 까진 시골이든 대도시든 동네마다 두부공장이 있었다.
손두부로 다시 부활한 동네두부. 서민들의 기초식품인 손두부는 밤새도록 콩을 갈고 꼭두새벽에 콩물을 끓여서 두부를 만든다. 그리고 동이 트기 전 이른 아침에 낸다. 때문에 두부 만드는 곳은 어느 곳보다 일찍 하루가 시작된다
△60년 전통 함창 동장댁 ‘할매순두부’집.
상주시 함창읍 버스 정류장 맞은편 골목은 언제나 버스 정류장보다 더 빨리 불이 켜진다.
일 년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김없이 새벽 6시면 불을 켜는 바로 ‘할매손두부’집 때문이다. 정류장 등대처럼 새벽 불을 밝히는 주인공은 채갑철(68) 신복순(63) 부부. 손두부를 만들어 온 지 23년이란 세월의 무게는 매일 아침마다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 낸 따끈따끈한 두부를 정성껏 고객들의 손에 쥐어 준다.
채씨의 고향은 문경시 흥덕동. 어릴 때부터 채씨는 ‘두붓집 아들’로 통했다. 채씨의 어머니가 60여 년 전부터 손두부를 만들어 팔아 왔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두부를 만들어 낸 채씨 어머니의 소원은 아들이 공무원이 되는 것. 어머니의 바램을 저버리지 않고 ‘두부집 아들’은 문경시 공무원이 되었다.
“어린 시절 부터 ‘두붓집 아들’이라는 소리는 참 듣기 좋았어요. 바로 어머니의 정겨운 모습이 연상되니까요. 이웃 어르신들도 당신 아들이 공무원에 합격한 것 마냥 엄청 기뻐해 주셨지요”
사무관으로 승진해 자신이 태어난 동네에서 동장으로 근무하면서 어머니를 흐뭇하게 해 드리기도 했다. 정년 퇴직 후 지금은 부인의 두부 일을 돕고 있다.
채씨의 부인인 신복순 동장댁이 두부를 만들고 음식점 일을 하기 시작한 사연은 이렇다. 23년 전인 1998년 IMF라는 경제난국이 몰아쳤을 당시 시어머니가 두부전문 식당을 해보길 권하면서다. 박봉인 아들 공무원 월급에만 의지할 만큼 국내 경제가 좋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아들 벌이를 보태 보자는 시어머니의 제안에 손맛 좋기로 소문난 효부 며느리가 마다할 리 없었다.
그렇게 탄생했기에 간판도 ‘할매손두부’ 집. 정확히 말하자면 ‘동장댁 할매손부두’집이다. 시어머니의 두부 이력까지 합하면 이집 두부 맛의 내공은 반세기를 훌쩍 넘어 60여 년이란 세월이 녹아 있다.
“어머닌 제 형편이 넉넉지 못한데에 늘 가슴 아파 하셨지요. 그러나 어머니가 만든 손두부와 더불어 자라고 공부하고 손두부에 의지해 큰 허물 없이 한평생 별고없이 무난하게 살아왔으니 이 손두부는 제 삶에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산초두부
△아늑한 한옥 집에서 접하는 특미 두부요리.
할매손두부집에 너무 큰 기대를 걸면 안 된다. 좁다라한 골목 안쪽에 자리해 있는 한옥이기 때문이다. 우선 문경과 상주시 사이에 위치한 함창읍 버스정류장 맞은편 작고 긴 골목을 찾아야 한다. 유심히 쳐다봐야 발견할 정도로 골목 담벼락에는 ‘할매손두부’라 쓰여져 작고 오래된 이정표 같은 간판 하나가 걸려 있다. 간판 밑에는 방향을 알리는 화살표가 재미나게 그려져 있다. 화살표를 따라 고개를 돌려 보면 간판 없이 불만 켜진 한옥 한 채가 보인다. 바로 이 집이다.
“처음엔 이곳에 올 때에는 식당할 생각으로 들어온 집이 아니 였어요. 그래서 조금씩 손봐가면서 식당을 하는데 손님들에게 허름해서 미안할 때가 많아요”
주인 얘기와는 달리 방마다 통하는 문지방 위로 옛날 그대로 대들보와 가는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는 천정이 너무나 친근하다. 마치 고향집에 온 듯한 운치가 난다. 꼼꼼하게 바른 벽지, 전혀 손색없는 손두부집 자연 인테리어다. 외갓집에 온 것처럼 마음까지 편안한 공간이다.
명태양념구이와 두부 부침
매일 만듫어지는 신선반찬들.
이곳에서 내는 메뉴는 시작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그간 세월은 흘렀지만 맛은 옛 그대로다. 이렇게 대를 이어 지켜온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데 먼저 감사한 마음이 든다. 돈을 냈지만 대접받은 거 같아서 ‘정말 잘 먹고 갑니다’라는 인사를 손님마다 잊지 않는다.
메뉴는 할매정식이 1만3천원, 할매한상이 8천원, ‘할매한접시’라는 접시떼기 단품 메뉴도 있다. 접시당 산초두부구이 1만3천원, 두부구이 1만원, 두부김치 1만원, 명태구이 1만3천원, 조기구이 3천원이다.
곁들임 반찬으로 내어지는 명태양념구이.
콩비지장
이 집 두부요리에다 갖가지 찬류를 다 맛 볼 수 있는 것이 ‘할매정식’이다. 애호박과 가지볶음, 감자조림, 나물무침, 도라지무침, 꽈리고추찜 거기에 내장을 발라내고 반으로 갈라 낸 큰 멸치를 고소하고 매콤하게 무쳐낸 멸치조림, 양념에 재워 구워낸 명태구이는 잔뼈 하나 입에 걸리지 않는다. 두부요리에 곁들인 찬류가 열 가지가 넘는다. 저장반찬은 없다. 전부 갓 조리한 신선반찬이다. 왠지 맛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도 든다. 정성을 다한 그 수고로움이 눈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관지 천식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서 옛날부터 어머니들이 두부에다가 산초기름을 부어서 구워 주셨는데 요즘은 귀해서 맛보기가 좀 힘들지요” 산초기름은 향이 강해서 호불호가 강한 향신료이나 한번 맛을 들여놓으면 자꾸 생각나는 우리 전통 향신료. 채씨가 추석전후 산에 올라서 직접 채취한다고 한다.
간장 소스에도 산초기름을 띄웠다. 한입 찍어 먹어보니 역시 산초의 강한 향이 입안에 오래 남는다. 그렇다고 전혀 낯선 향도 아니다. 추어탕이나 민물매운탕에 넣어서 먹는 제피가루와 비슷한 향이다. 두부막지를 이용한 비지장도 별미지만 이 집 비지장은 삶은 콩을 성기게 갈고 청국장 띄우듯 발효를 시켜 멸치육수에 끓여 낸다. 구수한 맛과 성기게 간 콩이 주는 식감이 독특하다.
콩
△손두부 만드는 일도 공복의 마음가짐으로.
“아내의 식당일을 거들어 보니 애써 찾아 주시는 손님들에게 공무원의 자세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채씨는 공무원만 공복(功服: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으로 공무원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손두부 만드는 일도, 식당일도 다 공복의 자세라야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손두부 만드는데 상주지역 국산 콩만 쓴다.
“두부 한판을 만들려면 3시간에서 4시간이 걸려요. 그렇게 오래 걸리고 아까운 시간에 뭣 하러 맛없는 두부를 만듭니까? 우리콩으로 맛있고 자부심 나는 두부를 만들어야지요” ‘수입 콩을 써 봤냐’고 툭 던진 질문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펄쩍 뛴다. 채씨의 이 ‘공복정신’은 단골손님들이 다 안다. 맛없는 두부를 사러 또 먹으러 그 먼 데서 이 골목 끝까지 그리 오랫동안 찾아 올 리가 없을 터이니.
“요새는 아는 동네 사람 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이 찾으셔요. 어찌 알아 내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물어 찾아 오십니다” 손님마다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함창 할매손두부집을 알리는데 열을 올린다. 대를 이어 지켜온 우리 전통음식에 대한 애정은 주인이나 손님이나 다를 바 하나 없는 모양이다.
박정남 전통음식칼럼니스트·예미정종가음식연구원장
“두부는 게으른 며느리에게 맡겨라”라는 옛말이 있다. 이는 우리 전통음식 슬로우푸드에 대한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성격 급한 며느리보다는 게으르지만 한곳에 오래 버틸 수 있는 느릿한 며느리가 제격이라는 말이다. 두부를 만드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격이 급해도 두부를 만들 때 만큼은 느긋 해져야 한다는 뜻이며, 기다림의 미학이 주는 음식의 질과 맛을 아는 장인 정신만이 비로소 해낼 수 있다는 조상들의 슬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좋은 손두부를 만들기 위해 처음처럼 그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이들 부부는 말한다. 새벽에 일어나도 주어진 대로 만족하는 욕심 없는 삶이 준 행복 때문일까. 손두부 하나로 성실하게 살아온 모습이 부부의 미소에서 주름에서 있는 그대로 오롯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