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남편이 데려다주는 곳이 아니면 문밖을 거의 나서지 못했다. 아파트 주변 공원이나 산 중턱을 서성이는 것으로 답답함을 풀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 본 게 언제였더라.
코로나는 여름날 모기떼만큼이나 극성스러워지고 불안한 우리는 3차까지 예방 접종을 하였다. 여덟 명 친구 모임이 있는데 정희가 코로나에 걸려서 못 나온단다. 2주간 격리란다. 멀게만 느껴지던 코로나가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왔음이다. 함부로 외출하지 마세요 큰일납니다. 의사는 내게 신신당부했지만 나는 모임에 참석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아니 마음이 자석처럼 끌렸다는 말이 옳다. 같은 시대를 걸어온 동행자요 감성과 도덕성과 생각의 틀이 비슷해서 이 말하면 저 말까지 척하니 알아듣는 사이가 아닌가.
늘 어디에서 만날 것인가가 만남의 첫 번째 관문이라면 관문이다. 수원쪽과 인천쪽과 위례와 강북과 강남으로 널리 퍼져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제안을 하였다. 지난번에 언니들과 함께 식사했던 곳. 음식이 다양하고 깔끔하고 맛까지 있었다. 일부러 그날 나는 전화번호를 저장하였는데 친구들과 함께 오고 싶어서였다. 집안 살림을 착실하게 챙겨온 우리 아닌가.오랜만에 느긋하면서 우아하게 대접받는 기분으로 식사할 수 있는 그곳이라면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인천 쪽 친구들이 너무 멀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내가 한 시간 반이 소요 되는데 비해 그쪽은 적어도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정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은근히 미안해지는데. 내 친구들은 이럴 때 절대로 다른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 체력이 부족한 내가 좀 더 가까워야 한다는 배려심을 잃지 않는 친구들이다. 특히 가장 먼 관순이는 그래그래 좋아좋아 기쁜 마음으로 호응해 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이쁘게 하고 나와. 카톡방에서 혜림은 말했다. 일본 여행 때도 고운 원피스를 하나씩 꼭 준비해오라고 하였었다. 하루 정도는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우리가 되어보자는 생각이었을 터. 원피스를 입었던 그날처럼 내가 다르게 보이는 기분, 좋았다. 오늘도 친구의 말대로 그래도 괜찮다 싶은 코트를 골라 입고 부추를 신고 집을 나선다. 구두 뒷굽이 지면에 닿는 소리가 경쾌하다.
서초동 대나무골 한정식집. 코로나가 있기나 한 걸까 싶을만큼 사람이 가득이다. 코로나에 걸린 정희와 직장일로 바쁜 학영이가 불출석이다. 여섯이 모였다. 서현이가 말했다. 이 정도 음식이면 멀어도 괜찮구 말구 하나하나가 정말 맛있네 맘에 들어 이런 음식점이 내게는 딱 맞아. 다들 맛있게 먹는다. 입맛이 그저 그런 나도 제법 많이 먹었다. 천천히 음식 맛을 음미하면서 나누는 이야기 맛이야말로 진미 중의 진미가 아닐까. 밥을 먹으러 모인다지만 이야기를 먹으러 모인다는 표현에 나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싶다. 잘 지냈어 얼굴 괜찮은데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어. 한마디 한마디에 얼마나 따스한 사랑과 배려가 듬뿍 담겨있는가.
식사후 가까이에 흰물결 겔러리가 있으니 전시장에 가잔다. 남편과 미술관을 자주 찾아 나서는 혜림이가 제안했다. ‘빛의 노래’ 라는 제목으로 신부님이신 ‘김인중’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단다.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알고 우리에게 열심히 설명해주던 그녀가 참 존경스럽다. 누구보다 문화와 여유를 즐기며 나이에 맞게 살아가고 있다. 빛의 노래라! 유럽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좀 더 추상적이면서 자유로운 빛깔과 형태로 나이프와 붓을 이용해 표현해 놓은 작품. 훨훨 어딘가로 날아가거나 다른 모습이나 빛깔로 변화되고 싶어하는 내 마음 같기도 하다. 창조되었다기보다는 기도의 깊이에서 솟아나 온 듯하다는 어느 수녀님의 말씀이 참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 들어갔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한적한 곳이 있나 싶다. 사람이 거의 없고 조용하다. 마침 밖에 따로 설치해놓은 공간이 있다. 실컷 수다를 떨어도 좋겠다 싶어 그곳에 앉았다. 우리만의 세상이다. 소소한 이야기들이지만 얼마나 정겨운가. 우스개와 농담으로 깔깔거리니 얼마나 즐거운가. 가슴에 가두고 있던 말을 꺼낼 수 있으니 얼마나 후련한가. 그래그래 그렇지그렇지 그렇구말구 맞아맞아 그래야지 그래야지. 맞장구만한 위로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작년 오월에 시어머니가 된 경희의 이야기에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다. 며느리보다 아들이 주방에 더 오래 서 있는 모습에 울컥 화가 치밀더란다. 언니가 넷인 나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라는 이야기다. 당연히 며느리는 며느리다.
분홍이가 나한테만 화장품을 내밀었다. 이건 찬미 꺼. 주름살이 유별나게 많아지는 내가 측은했나보다. 얼굴에 열심히 발라보란다. 효과가 좋으면 인터넷에 들어가 주문해서 쓰란다. 거기다가 잘 구운 고구마와 제주도에서 공수했다는 귤까지 챙겨왔다. 마스크를 한 묶음씩 나눠주었다. 팽팽한 그녀를 보면 내 조카뻘 같은데 마음 씀씀이는 언니뻘이다.
서현 경희 혜림 학영 정희 관순 분홍. 이만한 동행자와 동행하는, 육십 후반전 인생길은 얼마나 아름답고 따스할 것이냐.
첫댓글 아유~~
따듯해라
행복하다
글을 읽고 있다보니
친구들이
금방
또 보고싶네~~~
늘~
고맙고
사랑스런 내친구!우리들의 친구!
박찬미시인~~
많이 아프지말고
아주 아주 쪼끔만 아프고
만만세하며
좋은글 좋은시
부탁해요~♡♡♡
친구들이
금방
또 보고싶네
그러네
보고싶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