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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 유리와 인형 김삼동
유리가 팔과 손등에 주사바늘이 꽂힌 채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곁에는 크고 작은 곰 인형이 세 개, 토끼 인형이 두 개, 강아지 인형과 다람쥐 인형이 있습니다. 유리는 큰 병원에서 1년 동안이나 치료를 했지만 도저히 고칠 수 없다는 말기 암에 걸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오래 살아야 한 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리의 소원대로 집에 가서 요양을 하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엄마, 나 괜찮아요.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 먹고 싶어요!” “알았어.” 엄마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유리의 방 밖으로 나왔습니다. ‘먹지도 못할 걸.’ 냄새라도 맡으려는 유리의 마음 때문에 더욱 아픕니다. 아빠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감추려고 유리 곁에 있는 인형들을 보십니다. 친구들이, 담임선생님이, 병원에 계신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빨리 완쾌하라고 준 인형들, 처음엔 좋아서 안고 자기도 했지만 이삼일 지나면서 시들하였습니다. 유리가 몸이 아프기 때문에 소홀히 한다는 걸, 아빠는 잘 압니다. 그래서 ‘인형들이 유리와 이야기도 하고 놀아줬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셨습니다. “아빠, 인형이 무슨 말을 해요. 자꾸 인형을 보게요.” “아, 아무것도 아냐.” 아빠는 고개를 살긋 움직이고는 웃으십니다. “음! 맛있는 냄새.” 유리가 코를 흠흠거리며 환하게 웃습니다. “엄마, 파도 넣어야 돼요. 의사 선생님이 그래야 건강하댔어요.” 엄마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파를 제일 싫어하면서 넣어달라는 유리의 마음을, 마지막이라도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병원 입원하기 전에는 음식 투정, 옷 투정 잘 하고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유리였습니다. “엄마, 이제 맛있는 냄새가 나. 전 엄마가 만든 떡볶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엄마는 금방이라도, 먹어보지도 못하면서 뭐가 맛있다고 그래! 라고 속이 후련하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습니다. “아빠, 오늘은 옛날이야기 안 해요?” 유리가 아플 때부터 희망을 주기 위해 들려준 이야기, 사실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나 어렸을 때 봤던 동화책 속에 이야기들을, 사육사로 일하면서 동물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조금 짜 맞춰서 들려주었습니다. “들려줘야지.” 말은 그렇게 말했지만, 들려 줄 이야기도 없고 마음도 목소리도 슬픔이 묻어날 것 같아 망설였습니다. “아빠, 오늘은 무슨 이야기 해 줄 거예요.” 티없이 웃는 미소, 은구슬이 굴러가는 맑은 목소리에 아빠는 미소를 짓습니다. “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야지.” “아이 좋아라!” 아빠가 원숭이 흉내를 내면서까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응,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다."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리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며 잠이 듭니다. 동물원에서 키우는 아기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듣는 유리의 애틋한 마음 때문에, 아빠의 마음은 아픕니다. 한동안 인형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빛이 빛나더니 유리 엄마의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유리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유리의 방에 있던 인형을 소리나지 않게 큰 방에 옮기고 유리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갑니다. 다음 날 아침, “엄마, 아빠!” 유리가 놀라서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싱글벙글 웃으시며 유리의 방에 천천히 들어갑니다. “인형들이 움직여요!” “정말이네!” 엄마가 유리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유리는 달아나려는 곰에게 눈길을 줍니다. “이리 와.” 유리의 손이 옅은 밤색 곰의 귀를 잡아당깁니다. 곰은 유리의 곁으로 가더니 킁킁 냄새를 맡습니다. 흰 바탕에 밤색 점박이 강아지도 유리의 침대로 다가가 곰처럼 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습니다. “엄마, 내게서 아픈 냄새를 맡나 봐요.” 아직 유리의 몸에는 병원에서 나는 소독 냄새가 납니다. “그래.” 엄마는 침대 위로 오르려고 애쓰는 강아지를 유리의 품에 안겨줍니다. “너무너무 예쁘다!” 유리의 눈에 맑은 구슬이 커 갑니다. ‘이제 이야기를 만들 필요 없겠구나! 유리가 동물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줄 차례니까.’라고 아빠는 생각 하셨습니다. 다음 날부터, 유리는 인형들에게 이야기를 아빠보다 더 재미있게 들려줍니다.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유리는 아빠의 도움으로 몸을 일으켜 앉아 동물들에게 먹을 것을 줍니다. “엄마, 인형들이 먹는 것 좀 보세요. 너무 귀여워요.” “그래.” 토끼가 풀을 오물오물, 곰이 밥을 와그작와그작, 강아지가 죽을 할짝할짝, 유리는 아픈 배를 손으로 누르며 웃었습니다. “엄마, 나도 배가 고파. 김치찌개 먹고 싶어요!” “그래, 맛있게 끓여줄 게.” 엄마는 유리가 냄새만이라도 맡는 것이 기쁩니다. “파하고 마늘하고 많이 넣어야 돼요.” 더 밝아진 유리의 목소리입니다. 밖으로 나가려는 큰 곰을, 아빠가 유리의 곁으로 곰의 엉덩이를 톡톡 건드려 몹니다. “아빠, 어떻게 인형들이 움직여요?” 유리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아빠는 속으로 어떤 말을 할까 궁리를 합니다. “유리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꿈! 맞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봐요.” 아빠는 유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인형들이 움직이는 것은 아마 꿈에서나 있을 수 있어요.” “그래, 유리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아마 인형들만이 사는 나라에 유리를 데려가려고 인형들이 온 거야.” “정말이어요. 아빠?” “그럼. 인형들이 사는 나라에는 꽃들도 아름답게 피고, 새들도 시냇물도 곱고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곳이야.” “와! 좋겠다. 빨리 나아서 가고 싶다.” 유리는 인형들의 나라가 너무 좋아, 손등을 꼬집으려다 멋쩍게 웃으며 치웁니다. “빨리 일어나고 싶어요.” “유리는 할 수 있지. 용기만 있으면 돼.” 곰이 코로 유리의 볼에 킁킁 거립니다. “아이 간지러워. 아빠, 곰이 나하고 놀고 싶데.” “그래, 유리가 빨리 나아서 곰돌이하고 놀아줘야지. 밖에도 나가고-.” “알았어요.” 유리의 목소리가 아빠의 목소리처럼 들떠 있습니다. 아빠는 유리의 맑은 눈동자 속에 반짝이는 은구슬 하나를 보았습니다. “유리가 병원에서 힘든 항암치료도 잘 견뎌내 듯 반드시 이겨낼 거야. 우리 곰돌이도 이렇게 빌거든.” 아빠는 곰돌이의 앞다리를 모아 비는 시늉을 보여줍니다. 유리가 곰돌이의 손을 잡습니다. 작은 곰이 열린 방문으로 빠져나가자, 강아지도 큰 곰도 따라 나갑니다. “봐라, 우리 유리 빨리 나아서 밖에 나가자는 거야.” 유리도, 언뜻 쓸쓸한 빛이 스쳤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는 척 했습니다. 며칠 동안을 인형과 지낸 유리의 얼굴에는 핏기가 조금 도는 것처럼, 아빠와 엄마의 눈에는, 보였습니다. 토끼들과 강아지가 침대에 올라와 뒹굴고 장난하니까, 유리는 기쁨에 그랬던 것입니다. “아빠, 큰 곰이 밖에 나가고 싶은가 봐요.” 큰 곰이 앞발로 현관문을 자꾸 긁는 소리를 듣고 유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습니다. “글쎄.” 아빠는 곰이 산에 가고 싶어 한다고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리의 표정이 왠지 슬퍼 보입니다. 앞발로 현관을 긁는 큰 곰을, 아빠는 덥석 안아서 유리 곁에 놓습니다. “곰돌아, 산에 가고 싶어?” 큰 곰이 마치 대답이라도 하 듯이 코를 킁킁거립니다. 작은 곰도, 강아지도 큰 곰을 따라 코를 큼큼거립니다. 아빠는 유리를 위해 인형들을 밖에 내보낼 수가 없습니다. 먹을 것을 듬뿍 주어 곰들과 강아지를 달래봅니다. 인형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걸 보고, 유리는 빙그레 웃는가 싶더니 잠이 듭니다. 강아지가 귀를 쫑긋, 곰도 귀를 세워 바깥쪽을 응시합니다. 엄마가 인형들이 좋아하는 생선, 고구마, 배추 등을 시장에서 사오셨습니다. 장바구니를 들여놓고 문을 막 닫으려할 때,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큰 곰이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도, 작은 곰도 뛰쳐나갔습니다. 엄마 품에는 토끼만 있었습니다. 아빠는 인형들을 잡으러 쫓아갔습니다. 다행히 산으로 가는 길에는 어스름 저녁이라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너희들 어디 가니?” 몇 번이나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인형들은 야트막한 뒷산으로 자꾸자꾸 달렸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피해 곰들과 강아지가 길도 나지 않은 산 속으로 사라집니다. 아빠는 숨이 차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헤맸지만 곰들이 간 곳을 찾지 못하고, 어깨가 축 처진 채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빠, 괜찮아요. 며칠 전부터 산에 가고 싶어 코를 킁킁거렸는데요, 뭘.” 유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합니다. “그래, 창틈으로 들어오는 산바람을 맡고 아마 많이 참았을 거야. 너를 위해…….” “전, 오히려 마음이 편한 걸요!” 유리가 더욱 환하게 웃습니다. 아빠도 일부러 이마에 주름이 잡히게 크게 웃습니다.. 곰들과 강아지가 집을 나간 지 3일이 지났습니다. 유리가 애써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아빠와 엄마는 유리가 곰돌이와 강아지를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빠도 엄마도 혹시 집을 나간 곰돌이와 강아지가 올까, 귀는 항상 현관문에 가 있습니다. 밤에 피곤하여 아빠는, 유리가 토끼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을 보다, 그만 침대 곁에서 잠이 듭니다. 엄마도 식탁에서 설거지를 할까말까 망설이다 그만 잠이 듭니다. 유리도 토끼에게 이야기를 둘려 주다가, 아빠가 자는 걸 보고 잠을 청했습니다. 새벽이 되었을 때입니다. 현관문을 긁는 소리에 엄마가 먼저 잠을 깨고, 아빠도 깼습니다. 아빠가 쿵쾅거리며 달려가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 곳에는 3일 전에 나갔던 곰돌이와 강아지가 온 몸에 흙과 나뭇잎을 묻힌 채 서 있었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너무 좋아 눈물이 났습니다. 찬바람이 확 불어와 유리도 잠이 깼습니다. “유리야, 유리야!” 엄마는 유리의 눈이 초롱초롱 뜬 것을 보고도 불렀습니다. 유리는 큰 곰의 입에 가득 물린 풀과 빨간 열매를 보고 의아해 합니다. “유리야, 인형들이 너를 위해 산삼과 약초를 구해왔어!” 엄마는 기뻐 어린아이처럼 엉엉 웁니다. 아빠도 눈물이 쏟아져 나와 볼을 타고 흐릅니다. 큰 곰과 작은 곰, 강아지가 유리의 방에 몰려가 유리의 손과 발을 핥아줍니다. 유리도 반가워 연신 인형들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립니다. 인형들이 약초를 가져오게 된 이야기를 코를 큼큼거리며 서로 먼저 하려고 야단입니다. 유리는 인형들의 말을 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오랫동안 동물들과 지냈기 때문에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공주님, 빨리 나아서 산에 가요. 지금 산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었는 걸요!’ 곰이 코를 빠르게 킁킁거렸습니다. ‘그 뿐이 아니에요. 공주님이 좋아하는 다람쥐도 있고요. 새들도, 맑은 시냇물도 놀러 오라고 노래를 해요.’ 강아지도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빠는 곰돌이와 강아지가 이야기하는 것을 유리에게 빠짐없이 들려주었습니다. 유리의 눈에는 반짝이는 금구슬, 은구슬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구슬들이 볼을 타고 또르르 굴러와 꽃들이 그려진 이불 위에다 꽃을 그렸습니다. 며칠 동안, 인형들이 가져온 약초를 달여 유리에게 조금씩 먹였더니 혈색이 돌고 몸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왕진하러 오신 의사 선생님이, ‘기적입니다! 유리가 아픔을 이겨내고 나아지는 것은 아빠와 엄마의 사랑입니다!’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강아지는 “멍멍”, 곰들은 코를 “킁킁” 하며 ‘우리가 구해준 약초 때문에 나은 거예요.’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의사 선생님의 하얀 가운을 입으로 살짝 물어 당겼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곰돌이와 강아지가 자신을 공격하는 줄 알고 무서워 달아났습니다. 유리와 아빠, 엄마의 웃음소리가 창틈으로 빠져나와 허둥지둥 달아나는 의사 선생님의 귀를 간지럽게 하였습니다. 유리가 아빠의 부축을 받으며 창가로 다가가 파란 하늘을 바라볼 때, 아빠와 엄마는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빠가 유리 몰래, 새끼 곰에게 곰 인형의 옷을, 토끼에게 토끼 인형의 옷을, 강아지에게도 옷을 입혀 유리를 기쁘게 했던 것입니다. 유리 곁에서 인형들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마치 유리가 병석에 누워있는 것 같아, 아빠가 지혜를 짜낸 것입니다. 유리는 금빛 햇살을 따라 하늘에 있는 구름 위에 올라가 앉습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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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이 너무 작아 복사해서 크게 보았습니다. 유리의 병을 낫기위해 아빠 엄마 인형들이 노력하는 동화같은 글에 감동해 저도 최면 속에 보았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종종 올려 주세요...